Cover Story

단독 인터뷰|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세계 1등 화학회사 만들겠다” 

분리경영 후 실적·주가 고공행진…“올 영업이익 목표 초과”
“그룹과 결별은 모두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울산공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요즘 금호석유화학은 시쳇말로 정말 잘나간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고 올해도 가볍게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유동성 위기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지만, 금호석유화학만큼은 완전히 부활한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박찬구 효과’라는 말이 나온다. 2009년 불거진 ‘경영권 분쟁’ 이후 박찬구(64) 회장은 그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는 그간 공동기자회견을 제외하고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 역시 수차례 사양한 끝에 어렵게 이뤄졌다. 8월 17일 금호석유화학 울산공장에서 박찬구 회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분리경영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쟁력도 심층 취재했다.


8월 17일 오후 2시 51분 금호석유화학 울산고무공장 바로 옆의 현대EP 공장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화학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불길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인근 공장 근로자들은 놀라 도로로 뛰어나왔고 공장마다 대기 중이던 소방차가 출동했다. 100여 개 공장이 모인 울산 석유화화공단에는 일순간 긴장이 흘렀다.

그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 회장은 공장 시찰을 위해 울산에 와 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1976년 금호석화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해 줄곧 화학 부문 일만 했던 그다. 사고 직후 박 회장은 임원들에게 폭발 추정 원인과 인명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공장 중앙 통제센터로 자리를 옮겨 안전진단과 소방훈련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박 회장은 임원들에게 “안전대책을 다시한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박찬구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런 소란 직후 시작됐다.

놀라셨겠다.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우리 회사에도 영향이 좀 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경영 생각이 먼저 나나?

“기업인이 그런 것 아닌가.”

요즘 금호석화가 잘나간다.

“아주 괜찮다. 업황도 좋고 증설도 잘 진행된다.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다.”

금호석화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알려졌다시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한때 재계 서열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무리한 M&A(인수합병)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빛이 바랬다. 두 회사 인수가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가 흔들리며 위기에 빠졌다.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매각하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2009년 12월 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금호석화와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알짜배기 회사로 통했던 금호석화는 그룹에 M&A 자금을 대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M&A를 반대했던 박찬구 회장은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2009년 7월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채권단의 분리경영 결정에 따라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했고 금호석화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분리경영을 시작한 지 1년6개월 정도 됐다. 뭐가 달라졌나?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 밑에 있으면서 금호석화 스스로 개척할 룸이 없었다. 이제는 인사, 재무, 투자 결정까지 채권단과 함께 분리경영을 하면서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직원 대우와 복지도 좋아졌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한 임원은 “요즘 회사 분위기가 최고조”라고 언급했다.)

금호석화는 지난해 매출 3조8863억원, 영업이익 3595억원을 기록했다. 1970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올해도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주가도 급등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 일가와 채권단의 협약에 따라 금호석화의 분리경영이 시작된 2010년 3월(이때 박찬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당시 2만원대였던 주가는 올 7월 25만원까지 치솟았고 급등락이 연출되는 요즘은 16만~17만원대에서 거래된다. 주식시장이 금호석화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탄력을 받은 금호석화는 요즘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 합성수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박찬구 회장은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설비투자가 매우 공격적이다. 그런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나?

“영업 파트에서 시황을 보고 제안을 하면 기획, 재무 파트와 협의해 결정한다. 때로는 내가 직접 증설을 지시한다. 다른 경쟁사보다 먼저 규모를 키워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다. 금호석화는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의사결정이 훨씬 빠른 게 강점이다.”

과잉생산 우려는 없나?

“중국 등 신흥시장이 좋고 자동차, 타이어 등 전방산업 전망도 괜찮다. 걱정하지 않는다. 합성고무시장 시황은 특별히 나쁜 적이 별로 없다. 불황이 와도 단기에 그친다. 불황은 짧고 호황은 긴 사이클을 보인다. 고무가 워낙 끈질기지 않나(웃음).”

합성고무 외에 합성수지 사업은 어떻게 보나(금호석화의 2010년 매출 비중은 합성고무 63%, 합성수지 28%, 정밀화학·건자재·기타 등이 9%다).

“고무에 비하면 고전하고 있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좋다. LG나 삼성처럼 우리가 생산한 제품을 소화해 줄 계열사가 있는 다운스트림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순전히 자생력으로, 영업력으로 버틴다. 합성수지 부문 임직원들의 열정으로 선방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매우 높다. 지속 가능한가?

“화학 분야에 집중하고 경쟁력을 키우면서 충분히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업이익률 10% 안팎을 유지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금호석화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출 5조원 이상, 영업이익 7000억원 안팎이 증권가의 컨센서스(추정 실적)다. 한 증권사는 금호석화 분석 보고서에 ‘미운 오리새끼, 백조가 되어 날아 오르다’는 제목을 달았다. 합성고무 생산능력 세계 1위인데 추가 설비 확장으로 성장성까지 확보했다는 것이 이유다. 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지분법 손익이 개선되고 부채가 줄어드는 등 영업외 가치도 높이 평가 받는다. 박찬구 회장은 “올해 금호석화 영업이익이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본다”며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은 “이 중 이자 내고 부채 상환하고 하면 4000억원 정도 현금이 생긴다”며 “시설투자를 많이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입금이 아닌 보유 자금으로 투자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말이면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할 것으로 본다. 졸업 조건은 무엇이고 어떻게 전망하나?

“부채비율이 200% 밑으로 떨어지는 게 졸업 조건이다. 현재 280% 정도니까, 80% 정도 차입금을 더 줄여야 한다. 올해 말 달성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채권단 자율협약 졸업 이후 금호석화가 보유한 대우건설(3.5%), 아시아나항공(13.67%) 지분 정리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떤 복안이 있나?

“대우건설 지분은 졸업 후 언젠가는 블록세일을 할 생각이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

박찬구 회장은 그동안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형제 경영’으로 잘 알려진 금호그룹의 특성상 형님들 뒤에서 화학부문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몰두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경영스타일이나 경영철학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 업종에서 세계 1등이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박 회장을 오래 보좌한 한 임원은 “20~30대부터 갖고 있던 확고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크게 벌이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현금을 자체 동원할 수 있는 범위라면 언제든 벌인다. 하지만 캐시플로가 받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벌이면 회사를 한순간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금호가 그래서 어려워진 것 아닌가?”

그룹과의 분리를 결심한 이유는 뭔가?

“한 업종이라도 세계에서 1등 하자는 것이다. 난 그것이 선친(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께서 늘 강조하신 정도경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형(박삼구 회장)과는 경영철학이 너무 달랐다. 대우건설 인수 전부터 간격이 있었다. M&A도 시장상황을 보면서 해야 하는 데 너무 진보적인(공격적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경영을 했다.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될 때는 반대했었고 대한통운 인수 때는 유동성 악화를 우려해 더욱더 강력하게 반대했다.하지만 내 의견을 철저히 배제했다.”

경영에 복귀한 후 박 회장은 금호석화를 그룹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금호석화가 보유하던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지분은 모두 매각하고 박 회장 본인의 금호석화 지분을 대거 늘렸다. ‘그룹과의 완전한 결별’에 대한 박 회장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금호석화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윙 마크’ 로고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로고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는 두 차례에 걸쳐 신입사원 공채를 독자적으로 실시해 금호그룹이 아닌 금호석화 신입사원 100여 명을 뽑았다. 6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계열 제외해달라’는 신청을 했다가 기각당했다. 금호석화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를 상대로 ‘계열제외신청 거부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냈다. 박 회장은 “그룹과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며 “채권단의 의중이 중요하지만 분리에 대한 내 신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분리경영에 집착하나?

“그동안 그룹이 금호석화에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룹의 캐시카우였기 때문에 신규사업 진출이나 M&A 때 자금을 제공하면서 재무상태가 안 좋아졌다. 이를 금호석화 주주와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금호석화의 분리는 모두다 살기위한 길이다”

지금도 피해가 있나?

“인사, 조직, 사업 투자 등 일반경영은 분리돼 운영되고 있지만 법적으로 그룹에 묶여 있다 보니 여신 연장이나 자금 조달 등이 힘들다. 금리 대우도 못 받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앞날을 어떻게 보나?

“나는 나대로 아들(박준경 부장)과 조카(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부장)와 함께 금호석화를 글로벌 화학전문기업으로 키울 것이다. 그룹은 우선 금호타이어를 정상화하고 나머지 계열사들을 추스르면 된다. 서로 싸울 시간이 없고 싸울 생각도 없다.”

다른 화학기업은 2차전지나 태양광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하고 있다. 금호석화의 신성장동력은 무엇인가?

“누차 얘기하지만 세계에서 1등 하는 글로벌 화학전문 회사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사업을 충분히 다각화할 수 있다. 한 업종에 주력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 합성고무 생산능력은 세계 1위에 올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40년 가까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화학사업을 키워온 일등 공신이 박찬구 회장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는 이제 ‘홀로서기’를 꿈꾼다. 경영능력은 이미 검증됐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아직 법적인 절차와 지분 정리 단계가 남았지만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서 분리돼 나오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이로써 박인천 창업회장 사후 이어져 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 경영’도 막을 내리게 됐다. 박찬구 회장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친께서 박 회장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박 회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이러실 것 같아요. 찬구야, 잘했다. 석화라도 살린 것은 잘했어.”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202405호 (2024.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