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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Chefs - 부대찌개 만들다 프랑스 요리에 빠지다 

 

사진 오상민 기자
한국인 최초로 피에르 가니에르 밑에서 실습을 하고 돌아왔다. 프렌치 레스토랑 두 개를 열었다 접었는데도 손님들은 그의 음식을 찾았다. 박민재 비앙 에트르 셰프가 성심을 다해 요리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날 비웃겠죠, 내가 뭐든지 한다고(On peut bien rire de moi Je ferais n`importe quoi).’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가 흘러나오는 서울 화동의 레스토랑 비앙 에트르. 소매에 갈색 소스가 묻은 박민재(46) 셰프는 이 노래 가사처럼 요리를 하기 위해 일생 뭐든지 했다.

그는 프랑스 요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부대찌개 식당을 운영했다. 친구가 하는 부대찌개 식당에서 일주일을 배운 뒤 서울 논현동에 덜컥 음식점을 냈다. 장사하는 틈틈이 소스의 베이스가 되는 기름·햄과 소시지를 바꿔 써봤다. 시작한지 1년 만에 박 셰프만의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그런 시행착오가 맛에 대한 훈련이 됐다”고 했다. 그렇게 5년간 부대찌개를 팔았다.

어느 날 신문에서 프랑스의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에 대한 기사를 봤다. 그때까지 프랑스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한 달간 아내를 설득해 석 달 만에 한국 생활을 정리했다. 그렇게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때가 32세였다.

파리에서 6개월 동안 프랑스어를 배운 후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르 코르동 블루는 118년 된 프랑스 요리·제과제빵·와인 전문학교다. 미국의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일본의 츠지요리학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힌다. 연일 계속되는 고된 실습과 평가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박 셰프는 초급과정에 들어갔지만 따라가기 힘들었다. 푸아그라·캐비어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요리를 만들려니 쉽지 않았어요. 대략 어떻게 해야한다는 감 조차 잡히지 않았죠.” 한국에서 접하지 못한 향신료도 그에겐 어려운 재료였다. 양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소스에 향신료를 너무 많이 넣어 선생에게 지적 받기도 했다. 박 셰프는 한국에 있을 때 생선이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의 주 재료로 생선이나 고기를 사용하려니 싫어도 맛을 알고 적응해야 했다.

저녁 5시에 수업이 끝나면 틈틈이 파리 시내의 헌 책방에 가서 요리책을 봤다. 예쁜 소품을 눈여겨봤다가 가격이 내릴 때 사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면 쓰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날 배운 걸 정리하고 다음날 실습할 것도 공부했다. 이곳저곳 다니며 재료의 맛을 보며 깨우쳤다. “슈퍼에 가면 가격대별로 다양한 치즈가 있었어요. 맛이 다 다르죠. 싼 것도 나름의 맛이 있어요. 버터도 빵도 여러가지죠.”

중급·고급 과정에 올라갈수록 박 셰프의 실력은 성장했다. 초급 과정에서는 한 과정 당 50~60명 학생 중에 상을 받는 5명 안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중급과 고급 과정에서는 그 5명 안에 들었다. 지도하는 셰프들도 그의 발전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봤다.

교육 과정이 끝나고 실습을 나갈 때가 다가왔다. 르 코르동 블루에서 가르치는 셰프 중 가장 연장자인 선생과 면담을 했다. 박 셰프는 헌 책방에서 산 요리책에 소개된 피에르 가니에르 밑에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요리스타일로 유명한 세계적 스타 셰프다. 파리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주어지는 미슐랭 별 3개를 받았다.

아직 르 코르동 블루에서 피에르 가니에르 식당으로 가서 실습한 사람은 드물었다. 선생은 직접 박 셰프를 데리고 피에르 가니에르를 찾아갔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승낙을 받은 그는 거기서 3개월 일을 배웠다. 박 셰프는 피에르 가니에르 밑에서 실습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첫날 출근해 주방에 들어가니 가니에르가 자기 옆에 오라고 하더군요.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 자리에 서서 주방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라고 했어요. 보통 레스토랑에 실습생이 오면 셰프는 물론이고 직원들도 별 관심이 없어요. 잘 쳐다보지도 않죠. 대단한 영광이었어요.” 박 셰프는 가니에르가 직접 주방에서 고기를 구우며 소리치는 옆에서 자신이 해야 할 요리를 보고 느꼈다.

그가 처음 한 달간 배치 받은 곳은 디저트 등을 만드는 제과 쪽이었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왜 여기로 보내나 했어요. 하지만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채요리나 디저트가 전체 코스 요리에서 3분의 1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요.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경험이었죠.”

박 셰프는 디저트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의 코스 요리를 먹을 때 “디저트 먹을 배를 따로 비워놓으라”고 할 정도다. 수플레와 아이스크림, 마카롱과 케이크 등이 나온다. 특히 계란 흰자 등을 재료로 부풀리는 ‘수플레’는 모양을 잡기도 힘들고 온도와 시간·반죽 등을 정확히 맞추기 까다롭다.

처음 실습 나가서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에 긴장도 많이 했다. 인덕션(전기 렌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시럽을 만들 때였다. 너무 집중해서 옆에 있던 믹서의 전선이 인덕션에 닿은 줄도 몰랐다. 믹서의 전선이 타버렸다. 어쩔줄 몰라 하던 박 셰프에게 수석 셰프가 다가왔다. 믹서의 탄 전선을 가위로 자르고 다시 연결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게 고친 믹서를 주고 가더라고요. 처음 와서 긴장한다는 걸 알았나봐요.”

유명 셰프지만 늘 주방 지켜

어느 날 스페인의 TV 방송사에서 가니에르의 식당에 촬영 왔다. 그때 선보인 요리를 박 셰프는 잊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요리는 대체로 특별한 장식 없이 수수했습니다. 그런데 방송 카메라 앞으로 해산물 요리가 나오는데 말린 야채와 과일로 장식이 돼 있었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맛있기만 한 게 아니라 예쁜 요리 말입니다.” 그가 요리를 예쁘게 장식하는 이유다. 박 셰프의 푸아그라 요리는 소스를 흰 접시에 색실로 수 놓은 것 같다. 스프 접시 가장자리에도 아기자기한 장식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2년 동안의 파리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2002년 처음 레스토랑을 차린 곳은 경기도 양평.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단골도 생겼다. 1년을 조금 넘게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양평 레스토랑을 처분한 돈을 받지 못했다.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빚을 내 2003년 서울 압구정동에 ‘르 꺄레’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냈다. 양평 레스토랑을 처분한 돈과 관련한 소송도 3년 동안 계속됐다.

결국 돈은 못 받고 빈털터리가 됐다. 요리 강의를 나갔다. 밤새 집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학회 등에 배달해 돈을 벌었다. 단골들이 명절이나 생일에 먹을 타르트도 주문 받았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게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아내와 단 둘이 할 식당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단골들이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돈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서울 청담동 구석에 작게 문을 연 ‘비앙 에트르’다.

간판에는 ‘비스트로(가벼운 음식을 파는 곳)’라고 써 있지만 나오는 음식은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이었다. 원래는 간단한 프랑스 음식을 만들어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고마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음식에서 정성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찾아온 손님이 너무 고마워 대충 만들 수 없다는 게 박 셰프의 생각이다.

지난해 비앙 에트르는 서울 화동으로 이사왔다. 양평에서부터 단골이던 지인이 “함께 해 보자”고 제안한 때문이다. 그는 새로 식당을 열고 이틀 이상 쉰 적이 없다. 다른 유명 셰프들이 방송·비즈니스로 자주 밖에 있는 것과 달리 그는 항상 주방에 있다. 자기를 믿고 투자한 사람과 자신에게 배우고 싶어 일하는 직원들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는 질문에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했다. 그는 요즘 너무 바빠서 새로운 요리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끝까지 요리생각만 하는 ‘요리 바보’다.




CEO를 위한 가을 요리 노릇노릇 구워진 껍질 아래로 몽글몽글 부푼 ‘수플레’가 나왔다. 수플레는 원래 ‘부풀다’는 뜻의 프랑스어다. 계란과 버터, 바닐라향이 어우러진 달콤하고 촉촉한 디저트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안을 감싼다. 단순해 보이지만 반죽의 농도와 오븐의 온도, 조리 시간 등을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음식이다. 박 셰프는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추천 이유를 말했다.

201310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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