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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YOUNG CEO KANG, HO-GAP - 중견기업계 이끄는 ‘불도저’ 

 

사진 김현동 기자
강호갑 신영그룹 회장은 한 번 목표를 세우면 꼭 이룬다. 중견기업연합회장 취임 후 단 10개월 만에 ‘중견기업특별법’을 성사시켰고, 부도 위기에 몰린 신아금속(현 신영그룹)을 인수해 매출 9000억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미국 포드자동차에 수출할 금형의 시제품을 자랑하는 강호갑 신영그룹 회장. 촬영 장소는 경북 영천의 금형 공장.



지난해 연말 중소·중견기업인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12월 26일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하 중견기업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7월 22일 시행된다. 앞으로 중견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받는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일정기간 중소기업에만 적용되는 금융 지원과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동안 중소기업은 성장을 기피해 왔다. ‘피터팬 증후군’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77개의 지원혜택을 못 받기 때문이다.

중견기업특별법 탄생을 가장 먼저 반긴 이가 강호갑(60) 신영그룹 회장이다. 지난해 2월부터 중견기업연합회장을 맡은 그는 “죽을 각오로 밀어붙였다”고 들려줬다. 업계에도 “강호갑 회장이 아니었으면 못했을 일”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3월 중순 그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처음 만난 곳은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사무실이었다. 체격 좋고 호방한 인상의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래 입술은 부르텄다. 워낙 일이 많다보니 잠잘 시간이 부족해서다. 그는 “이제 법이 만들어졌으니 시행령에 담길 주요 정책 사업들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겐 포기란 없다.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중견 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분법적 분류 속에서 소외받았다”고 들려줬다. 그나마 2011년 산업발전법에 처음으로 중견기업 개념이 등장했지만 제대로 된 중견기업 정의로는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지난해 6월부터 6차례에 걸쳐 국회에서 릴레이 정책 토론회를 마련했다.

여기에 기획재정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10여명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 중견기업 CEO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을 키울 해법을 찾는 자리였다. 강 회장은 끊임없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의 노력이 통했다. 국회의원들도 중견기업을 키워야한다고 적극 나섰다. 그리고 6개월 후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강 회장은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 사다리인 동시에 건전한 경제생태계를 지탱하는 경제의 허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맨손으로 시작해 중견기업을 일궈낸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이 한국의 저성장 국면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안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가업상속 상속세 공제 대상 확대다. 과거 매출액 2000억원 이하에서 3000억원 미만으로 상속세 공제기준이 완화됐다. 강 회장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부 기업은 혜택을 받지만 여전히 수많은 중견기업은 비껴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1위 종자 기업인 농우바이오입니다. 창업자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았는데 1000억원 이상의 상속세가 부과된 거죠.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창업자가 정성스럽게 키운 회사가 단숨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 겁니다. 가업승계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경영권 방어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우선 기업을 살려놓은 후에 세금을 걷어도 늦지 않다고 봐요. 사회적으로도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기술의 계승으로 봐야 합니다.”

강 회장은 중견기업 성장을 적극 지원하는 ‘중견기업 펀드’를 구상 중이다. 금융자본을 배제하고 정부와 산업계가 주도하는 펀드로서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기업을 도와주는 게 목적이다.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93년에 출범한 요즈마펀드는 이스라엘 정부가 40%, 민간기업이 60%를 부담하는 구조로 수익이 발생하면 민간기업이 정부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창업국가로 변신했다. 미국·중국 다음으로 많은 벤처기업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켰다. 전 세계 220개 벤처캐피털 펀드 중 35%가 이스라엘에 투자한다.

미국 회계사에서 사업가로 변신

강 회장이 이토록 중견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중견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1999년 부도 위기에 몰렸던 신아금속을 인수해 지금의 신영그룹으로 키웠다. 자동차부품 전문회사인 신영그룹은 모회사인 신영과 신원, 신호 등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인터뷰 도중 기자가 직접 공장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차 껍데기 보러 오라”고 했다. 신영그룹은 차체부품 중 측면 차체와 후륜 패널 등을 주로 생산한다. 강 회장은 자동차의 차체를 ‘차 껍데기’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며칠 뒤 경북 영천시 본촌공단의 신영 공장을 찾아갔다.

차 껍데기 만드는 공장이라고 표현하기엔 규모가 상당했다. 2만9817㎡(9020평)에 달하는 공장 안을 들어서자 차체부품이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여있다. 800t 규모의 프레스 기계가 차체를 찍어내는 소리가 공장 안을 울린다. 우렁찬 기계음에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본사 내 강 회장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세상일은 알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진주교육감을 지낸 부친의 반대로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딸깍발이라고 아십니까. 청백리 선비같은 분이었어요. 대학시절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모아놓은 재산이 거의 없었어요. 당장 대학 생활이 어렵더라고요. 3남3녀 중 막내였습니다. 시집 간 누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서울 도봉구 번동에 단칸방을 하나 마련해줬어요.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6개의 과외를 뛰면서 학비를 모았고요.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했어요.”

그가 198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큰형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 큰형 강호일 비와이(BY) 대표는 1980년 조선부품회사를 세웠다. 그러다 일본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을 기회가 왔다. 영어로 해외 영업을 해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강 회장은 “아내에게 딱 2년만 형을 도와주고 다시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고 들려줬다. 그게 벌써 26년이나 지났다. 그는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아내에게 사기(?)를 친 셈이 됐다”며 껄껄 웃는다.

“막상 와보니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알겠더라고요. 연구개발부터 직원 교육, 전산 시스템 등이 제대로 안돼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했으니까 한눈에 문제점이 보이더군요. 그때부터 형을 도와서 회사를 꾸렸습니다. 자금도 융통해오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 포기했죠. 일본 기업과 기술 제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6년 후엔 조선부품 중 하나인 컨트롤 밸브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제 별명이 ‘인나~’ 였어요. 새벽 5시면 기숙사에서 자는 직원들을 깨워서 운동시키고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경상도말로 ‘일어나’를 ‘인나~’라고 합니다. 하하하”

인수한 부도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

형을 도와 15년간 비와이를 기술력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그가 자신만의 사업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1998년 현대차그룹이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은 기아차를 합병하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이 망하면 커다란 타격을 받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자동차산업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고 봤습니다. 자동차 부품회사를 하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매물로 나온 자동차부품회사를 찾았다. 마침 경북 영천에 부도가 난 신아금속이 경매로 나왔다. 큰형부터 그를 아는 모든 지인이 극구 말렸다. 기업을 인수하기엔 국내외적으로 경제 사정이 안좋았다. 하지만 강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믿었다. 1999년 12월 190억원에 신아금속을 인수했다. 당시 종업원은 170명이었다. 쉽진 않았다.

인수 직후 금속노조 소속인 노조위원장이 삭발한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찾아왔다. 노조위원장은 “정리해고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강 회장은 노조원들과 밤마다 소주잔을 기울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파업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존 직원을 그대로 고용 승계했다. 신영그룹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

강 회장의 예측도 맞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내수시장을 장악했다. 2000년부터 꾸준히 고속 질주를 했다. 1차 협력사인 신영그룹에는 호재였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발 맞춰 성장했다. 2008년 중소기업을 졸업한 순간 문제가 터졌다. 최신 생산설비를 도입하려고 이탈리아에서 400억원가량의 발주 계약을 했다. 주거래 은행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한참 후에 돌아온 답변은 “어렵다” 한마디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지침으로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80%로 정해진 겁니다. 규정상 대기업으로 분류된 신영그룹에 400억원을 꿔주면 중소기업에 1600억원을 빌려줘야 했습니다. 부담이 너무 크다는 얘기였죠.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러다 회사가 문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방으로 뛰어 4개월만에 가까스로 설비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강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중견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2010년 수억원의 사재를 털어 중견기업학회를 만들고,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12년엔 중견기업의 발전 방안을 찾는 글로벌 전문기업 포럼의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2월 중견기업연합회장으로 선출됐다.

신영그룹은 사업다각화로 기업 경쟁력을 키운다. 그동안 사양산업으로 외면받던 금형사업을 집중 육성했다. 특히 요즘 자동차 업체의 관심이 높은 강하면서도 초경량의 금형 제품을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바로 핫스탬핑(Hot Stamping Press) 공법이다. 뜨거운 철강 소재를 도장 찍듯 프레스로 찍은 뒤 냉각시키면 가공 전에 비해 강도가 높아진다. 이 기술로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BMW, 포드, GM, 르노 등 해외 유명 완성체 업체에 금형을 수출한다. 지난해 금형사업으로 836억원을 벌었다.

2012년 480억원보다 74% 증가한 수치다. 금형 뿐 아니라 지그(Jig) 사업에도 공을 들인다. 지그란 차체 부품을 조립할 때 각각의 부품을 고정하는 장치다. 지그 관련 부서를 사업부로 키우고 유럽·말레이시아 등 새로운 해외 수요처를 발굴해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강 회장이 수트 안쪽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며 “이 펜을 만든 파버카스텔은 253년 된 독일의 가족기업”이라며 “신영그룹은 이보다 더 오래 장수하려고 ‘260년 기업’을 목표로 삼았다”고 들려줬다. 이제야 본사나 공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의 숫자 ‘260’의 비밀이 풀렸다. 그는 앞으로 기업가 정신을 계승하고 260년 이상 장수할 수 있도록 경영권 유지를 위한 전반적인 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1405호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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