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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RICH CHAIRMAN YUAN, KUOTUNG - “재미난 일에 돈 쓸때 행복하다” 

 

사진 오상민 기자
화교 큰손인 원국동 에버리치 홀딩스 회장의 삶은 다채롭다. 한의사로 활동하다 1999년부터 7년동안 국내 화교 조직인 한국중화총상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엔 서울에서 세계화상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은둔했던 그가 인천 강화도에 호텔 ‘에버리치’를 선보였다. 평소 좋아하는 책과 미술 작품 그리고 자연을 품은 ‘인문학 호텔’이다.

▎호텔 ‘에버리치’를 선보인 원국동 에버리치홀딩스 회장. 객실 곳곳에 책이 진열돼 욕조든, 어디서든 독서가 가능한 호텔이다.



2005년 10월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전 세계 중국계 기업의 경제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8차 세계화상(華商)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엔 중국,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20개국 70여 개 화교 경제단체장과 중국계 유명 CEO 등 해외 화교 2500명, 국내 기업인 500명이 참가했다.

세계적인 행사를 이끈 주인공은 원국동(56) 에버리치 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1999년부터 7년 동안 국내 화교 조직인 한국중화총상회에서 회장을 맡았고, 5년간의 노력 끝에 세계화상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성황리에 행사를 끝낸 원 회장은 곧바로 은둔에 들어갔다.

10년 가까이 언론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원 회장이 강화도에 호텔을 지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됐고, 3월 중순 그를 만나기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 마포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달리니 강화읍 남산리의 남산이 나타났다. 산 중턱에 높다란 붉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논밭을 지나 산쪽으로 올라가자 3월 22일 개장을 앞두고 단장 중인 호텔 에버리치가 보였다. 잠시 후 만면의 미소를 띤 원 회장이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왔다. 동그란 얼굴에 사람 좋아보이는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지난 삶은 더 흥미로웠다. 차 한잔 마실 시간으로 부족해, 점심을 먹고 호텔 내부를 구경하며 얘기를 나눴다.


▎호텔에서 바라본 주변 전경. 호텔을 둘러싼 담을 없애 누구나 자유롭게 야외 공연과 호텔 갤러리를 즐길 수 있다.
화교인 원 회장의 본업은 부친의 뒤를 이은 한의사다. 그의 부친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지주였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국민당 장교였던 부친은 1949년 일본행 밀항선을 탔다. 이 배는 목포 앞바다에서 표류하다 한국 해경에 구조됐다. 6.25 전쟁이 끝난 뒤 대구에서 원 회장의 어머니를 만나 무면허 한의사로 한국에 자리 잡았다.

한의사에서 출판·호텔 경영자로 변신

경기도 포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원 회장은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했고, 중국 베이징의 중의약대학에서 신경내과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그는 1983년 경기도 부천에 중국한의원 성유당을 열었다. 이곳은 실력 좋고 친절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부천에서 손꼽히는 한의원이 됐다. 특히 중풍과 류마티스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큰돈을 벌자 끊임없는 세무조사를 받았다. 화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것. 결국 원 회장은 1991년 한국을 떠나 대만으로 이민 갔다. 8년 뒤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제한 등 각종 규제가 풀리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한국은 태어나고 자란 그리운 고국이다.

국내에서 한의사 다음으로 선택한 일은 출판사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특히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를 흠모해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부친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한의사가 된 것. 2005년 설립한 출판사 에버리치 홀딩스는 중국 서적 출판 회사로 특화했다. 자금은 대만 부동산 투자로 마련했다. 현재 그는 대만에 현지회사와 합작한 건설사 에버리치랜드를 갖고 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부동산을 개발한다.

원 회장은 “돈은 대만에서 벌고, 한국에선 좋아하는 일에 쓴다”고 했다. 그가 출판한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노자, 인생을 말하다』 『장자, 우화를 말하다』 등 그가 관심있는 중국 사상부터 정치·문화 관련 전문 서적이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사학자이자 샤먼대 교수인 이중톈의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 『독성기』와 『품인록』이 인기를 끌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 속에 파묻혀 살던 그가 호텔 운영에 나선 이유는 뭘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예상치 못한 인연이었다. 2010년 그는 매물로 나온 서울 마포구 한 빌딩을 눈여겨 봤다. 건물주는 주저하며 가격을 세 차례나 올렸다. 원 회장은 매번 올린 가격으로 사겠다고 했다.

협상이 끝나고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건물주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원 회장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때 동석했던 부동산 전문가인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강화도의 유스호스텔이 매물로 나왔다는 내용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원 회장은 지인과 함께 강화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울창한 숲 속에 있는 유스호스텔을 본 순간 반했다”고 했다.

“나무를 좋아해요. 노후에 이곳에 나무 심고, 공원을 만들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그가 사겠다고 하니, 친구는 펄쩍 뛰었다. 유스호스텔에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원 회장은 밀어붙였다. 약 55억원을 주고 유스호스텔을 샀다. 바로 호텔 에버리치의 전신인 강화 남산 유스호스텔이다.

역시나 수익은 신통치 않았다. 골칫덩이가 될 때쯤 희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9월에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다는 것. 경기가 열리는 장소에 강화도가 포함됐다. 당장 마땅한 숙소가 없는 강화군청 관계자가 원 회장을 찾아와 상의했다. 그는 기회라고 봤다. 실제 강화도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더 비싼 가격에 사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날 정도였다.

원 회장은 2012년 8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이곳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어 부수고 새로 짓긴 어렵다. 30억~40억원을 예상하고 시작한 공사 규모는 자꾸만 커졌다. 말 그대로 건물 외관만 빼고 확 바꿨다. 방 크기도 넓히면서 기존 110여 개의 방은 70개로 줄었다. 산책길과 야외 공연장을 만들었다. 리모델링 비용으로만 무려 100억원을 쏟았다. 유스호스텔이던 빌딩이 특2급 관광호텔로 변신했다. 이미 인천아시아게임 협력 호텔로 지정돼 경기가 열리는 9월은 예약이 꽉 찼다. 심판과 VIP고객들이 묵을 예정이다.

인천아시안게임 협력호텔 선정

그가 공들여 꾸민 호텔 에버리치의 콘셉트는 ‘인문학 호텔’이다. 출판사를 갖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 책 뿐이 아니라 음악과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9만9174㎡(약 3만 평) 부지엔 크게 세 공간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갤러리를 품은 호텔, 음악 공연을 할 수 있는 야외 무대, 수많은 책이 진열된 북 카페다. 원 회장은 “이곳이 강화도의 문화 아지트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개방형 공간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원 회장은 평소 토지공개념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투자한 이 땅도 잠시 빌려 쓰는 것이지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 회장은 보다 많은 사람과 공간을 나눠 쓰기 위해 기존의 호텔을 둘러싼 녹색 울타리를 모두 없앴다. 땅의 경계가 사라졌다.

호텔에서 묵지 않아도 누구나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미술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호텔 주변에 나무 800그루를 심었다.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수백년 이상 자랄 수 있는 나무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나무는 계속 자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에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갤러리 공간은 각층 복도로 이어진다. 100여 점의 작품은 모두 원 회장의 수집품이다. 그는 김미랑 등 유망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주로 모은다.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객실 안도 구경했다.

다른 호텔과 확연한 차이점은 두 가지. 우선 객실을 개방형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예컨대 방과 욕실을 구분짓는 벽이 없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책장 등 가구를 가림막으로 이용했다. 막힌 공간이 없으니 방이 시원스럽고 넓어 보인다. 둘째 특징은 책이다. 방마다 다양한 책이 진열돼 있고, 독서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했다.

예컨대 방 곳곳에 독서등이 있고, 편안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 의자를 마련해뒀다. 원 회장은 “이곳에 진열된 책은 읽다가 가져가도 된다”고 귀띔했다. 호텔 분수대엔 야외 무대가 있다. 그는 “다양한 음악회를 계획 중”이라고 들려줬다. “무대가 필요한 음악인에게 무료로 장소를 빌려줄 계획이에요. 야외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커피숍도 만들었습니다. 과거엔 객실로 사용하던 별관을 개조한 겁니다. 이곳에도 책장을 만들어서 책을 꽂아뒀어요. 음악회를 구경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답니다.”

노년엔 라벤더 사업에 몰두할 계획

원 회장은 “돈은 움켜쥐고 있을 때보다 잘 쓸때 기분이 좋다”고 했다. “중국 하(夏)나라 우왕이 남긴 정치이념을 정리한 『홍범구주』를 보면 ‘물진기용(物盡其用)’이란 말이 나옵니다. 사물은 무릇 그 용도를 다하도록 써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쉽게 얘기하면 모든 자원은 효용을 충분히 발휘하고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제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건물은 허름하고 볼품없었지요. 지금은 수많은 사람이 가꾸고 돌보면서 호텔로서 면모를 갖췄습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요.”

그는 앞으로도 재미난 일에 아낌없이 돈을 쓸 예정이다. 이미 목표도 정해졌다. 라벤더 사업이다. 알싸한 향기와 보라색 꽃이 인상적인 잉글리쉬 라벤더를 재배하는 일이다.

“라벤더는 쓰임새가 많아요. 꽃잎으로 라벤더 꽃차를 만들 수 있고요. 향이 좋아 향주머니, 화장품, 비누 등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줄기는 음식 재료로 쓸 수 있고요. 게다가 다년생이라 키우기도 편합니다. 문제는 겨울을 넘기는 게 힘들어요. 적어도 10년을 목표로 한국의 겨울을 이겨낼 라벤더를 키워볼 계획이에요.

우선 호텔 뒷편 등산로에 라벤더 8000주를 심었고 앞으로 2만5000주를 더 가꿀 계획입니다. 남산리 일대 주민에게 무료로 라벤더를 분양해 주고 있고요. 올 6월이면 남산 일대가 보라색으로 물들 겁니다. 멋지겠죠. 국내 최대 라벤더 정원이 생기는거지요.”

201405호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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