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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s - 꽃중년 로망① 할리데이비슨 

할리를 탄다, 세상은 내 것이다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은퇴를 앞둔 50대. 인생 2모작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직장 때문에 묻어뒀던 개성을 찾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모터사이클은 진정한 로망이기도 하다.

▎할리 동호인들이 지난해 10월 전북 무주 정기 투어에서 행렬을 지어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다. 올해 강원도 횡성 투어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감안해 단체 투어를 생략했다.



꽃중년! 대기업이나 정부기관 같은 안정된 직장에서 은퇴를 앞두거나 막 은퇴를 한 50대를 말하는 신조어다. 경제적으로는 아파트 한 채는 갖고 있고 여가를 즐길 여유도 있다. 아이들은 대학생이라 사교육비 부담도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중상층’으로 분류되는 경우다.

이들에게는 그동안 직장생활 30여년보다 더 긴 제 2막 인생이 남아 있다. 무엇에 새롭게 도전해도 시간은 충분하다. 20대 신입사원 때와 다른 점도 있다. 젊은 패기와 체력은 달리지만 노련함과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그렇다고 체력이 ‘노인’ 급에 해당하 것은 아니다. 운동으로 잘 가꾼 경우에는 30대를 뺨친다. 여기에 직장에서 쌓은 폭넓은 지식과 외국어 능력, 인적 네트워크가 아직도 건재하다. 뭘 시작해도 준비된 상태다.


▎한국GM 부사장으로 지난해 퇴직한 김태완(54)씨. 미국 유학 시절 동경했던 할리 마초맨을 떠올리고 과감하게 모터사이클에 도전했다. 횡성 할리 투어를 끝내고 눈물이 났다. 그동안 사랑을 주지 못했던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사업에 자신감도 생겼다.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건 남은 30년 이상을 노인이 아닌 활기찬 중년으로 보내고 싶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취미에 대한 로망이 가득하다. 대표적인 게 모터사이클, 컨버터블 스포츠카, 색소폰, 그리고 럭셔리 캠핑 같은 조금은 사치스런 것들이다. 꽃중년과 함께할 색다른 취미를 다뤄본다.

굴지의 대기업인 한국GM에서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지난해 퇴직한 김태완(54)씨. 20대 미국 유학시절 그는 떼를 지어 할리데이비슨(이하 할리) 모터사이클을 타는 마초맨들을 자주 보곤 했다. 그때마다 ‘자유라는 냄새가 물씬 나는 그들의 세계에는 뭔가 다른 게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들곤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행렬에 동참해 봐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대기업 시절, 잠시도 짬을 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퇴직 이후 자연스럽게 20대 시절 꿈꿨던 로망이 떠올랐다. 지금은 시간만큼은 여유가 있다. 평소 피트니스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해왔던 터라 체력도 자신이 있었다. 주변에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도 힘이 부쳐 겁난다는 동년배 꽃중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모터사이클 공부를 시작했다. 아울러 그해 9월 자동차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대형 모터사이클(통상 배기량 600㏄ 이상)을 타려면 기존 운전면허증인 2종 보통(또는 1종 보통)이 아닌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해서다. 한 달 만에 면허를 딴 그는 올해 봄이 찾아오자 전투에 나갈 무사처럼 채비를 하고 경기도 일산 집을 나섰다. 앞으로 30여년을 같이 보낼 애마(愛馬)를 찾기 위해서다. 이윽고 지난 4월 할리 판매점에서 배기량 1690㏄ 엔진을 단 ‘소프테일 슬림’ 한 대를 장만했다. 가격은 3000만원이 조금 넘어 은퇴 이후 가장 큰 지출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꿈꿔왔던 로망을 되새겨보고 앞으로 30년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웠다.

애마 장만과 함께 그동안 망설였던 인생 2모작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 직장에서 쌓았던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이름을 딴 ‘완에디’라는 디자인경영 컨설팅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대표가 됐다. 꽃중년을 시작할 본격적인 준비를 끝낸 것이다.

할리는 자유·개성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그의 첫 도전은 지난 6월 18일부터 3일간 강원도 횡성 웰리힐리파크에서 열리는 ‘할리오너스클럽 정기 투어’ 참가다. 4월 중순 모터사이클을 인수하고 집 부근 도로에서 하루 평균 3시간씩 혼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어 변속도 서툴렀다. 시속 60㎞만 넘어도 겁이 났다. 옆에 큰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놀랐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애마의 특성을 알게 됐고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됐다. 얼마나 열심히, 아니 힘을 주고 탔던지 손가락에는 어느덧 궂은 살이 배겼다.

드디어 기다리던 투어 당일이다. 전날부터 비가 내려 마음이 어수선했다. 오전 10시 애마의 상태를 점검하고 일산 집을 나섰다. 처음 만나는 할리 동호인 6명과 함께하는 단체 투어다. 아뿔싸! 30여분도 안돼 꾸물꾸물 거리던 하늘은 비를 쏟아 붓는다. 첫 장거리 투어에 비까지 겹친 셈이다. 이미 심장은 흥분으로 콩당거렸지만 비가 쏟아지고부터는 걱정이 앞서 마구 두근거린다.

“우비도 제대로 준비 못했는데 비가 쏟아지더군요. 골프할 때 쓰던 우비를 입었는 데 엔진 열에 눌러 붙을 것 같아 벗어 버리고 그냥 비를 맞기로 했죠. 한참을 맞았더니 심장소리, 엔진소리, 배기음소리 세 개가 한 박자로 들리더구요. ‘아 이게 자유구나’하는 쾌감이 들면서 두려움도 싹 가셨어요.”

한참을 달렸더니 사타구니에는 엔진 열이 뜨겁게 올라와 거북했다. 헬멧에는 김이 서려 시야도 불투명했다. 할리의 전통복장인 청바지는 흠뻑 젖어 몸을 죄어 왔다. 이런 악조건이지만 기분만큼은 날아갈 듯했다. 비를 쫄딱맞고 오후 3시쯤 230여㎞를 달린 끝에 무사히 횡성 행사장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횡성은 비는커녕 화창했다.

“행사장에 도착해 애마를 주차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내가 해냈다는 정복감뿐 아니라 ‘인생은 이제부터’라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제 스스로 칭찬해줄 기분이라고 할까요.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저에 대한 사랑이었지요.”


▎횡성 정기투어에서 개성 만점 복장을 한 꽃중년들이 마초맨다운 포즈를 취했다. 할리를 통해 변신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살짝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려 보니 ‘우두둥’ 소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10여 대씩 떼를 지어 할리 동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주차장에는 수백대의 할리가 줄을 맞춰 서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번 정기 투어에는 500여 대의 모터사이클과 800여명의 가족이 참가했다.

“올해 81세로 서울에서 내과의사를 하는 분을 만났는 데 70대에 할리를 시작하셨어요. 이번에는 비가 와서 차를 타고 오셨는데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노인을 규정하는 건 나이가 아니라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상관관계 아닐까요.” 김 대표는 이런 다양한 만남 속에 꽃중년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요즘 50대 건강을 1960년대로 따져보면 30대 중반일 거에요. 체력은 자신이 있거든요. 앞으로 30년을 즐겁게 보내야 하는 데 할리를 타보니 ‘이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앞으로 바빠질지 모르지만 모터사이클 만큼은 손에서 놓고 싶지 않네요. 할리를 정복하고 다른 브랜드로 도전을 하고 싶거든요.”

그는 할리를 타는 즐거움으로 Look·Feel·Sound 세 가지를 꼽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할리는 제게 세 가지 행복을 줍니다. 우선 디자인이 멋지잖아요(look). 쳐다보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집니다. 시동을 걸면 기분 좋은 진동이 온몸을 파고들죠(feel), 바람을 맞고 달리면 ‘두둥두둥’ 배기음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sound).”

할리는 제품을 넘어 문화를 만든다. 특히 개성을 찾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이다. 주변의 시선은 덤이다. 하드락 사운드 같은 엔진음과 육중한 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초적 느낌은 꽃중년의 로망으로 충분하다. 평소 모터사이클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은 ‘나도 타볼까’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이런 재미도 중요하지만 안전운행이 최고라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모터사이클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거에요. 사방이 막혀있는 자동차와는 다르지요. 쭉 뻗은 도로를 달려나갈 때 느끼는 기분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꽃중년에게 모터사이클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날 할리 행사에 참가한 3년차 주부 라이더 이인경(53)씨는 “아이 대학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내 인생은 다 갔어요. 50줄에 들어선 순간 허탈감이 몰려 오더군요. 그때 친구의 권유로 할리를 알게 됐어요. ‘부릉’ 시동을 걸고 바람을 쐬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한다.

할리 모터사이클은 대부분 무게가 300㎏ 전후다. “처음엔 ‘나이 50에 작은 체구로 이 무거운 걸 탈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잖아요. 오히려 지금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더 좋아요.”

꽃중년이 대부분인 할리 동호회 투어는 때로는 부정적인 여론을 낳기도 한다. 지난해 전라북도 무주 정기 투어에서는 지역민의 집단 민원이 쏟아졌다. 불법으로 배기관을 튜닝해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를 낸 할리족들이 몰려 들고 야간에도 주행을 하면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할리코리아가 자사 제품 판매를 위해 불법 튜닝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수천만원짜리 할리를 떼로 타면서 도로를 가로막아 지역 주민에게 위화감을 준 것도 문제였다. 올해는 이런 이유에다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500여 대가 함께 랠리를 하는 ‘단체 투어’는 생략됐다.

제품을 넘어서 사랑까지…호그 동호회

미국과 일본에서 유독 인기인 할리는 탈것이라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자유와 개성’이라는 문화 아이콘으로 통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신에 새기는 단어가 ‘Harley-Davidson’ 영문이다. 미국 본사에서 할리 동호회 호그(Harley Owners Group, H.O.G)를 담당하는 브루스 모타(53) 매니저는 “할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루이뷔통 가방과 같은 럭셔리 아이템 중 하나다. ‘자유와 개성’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를 파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어 “최고의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구입해도 할리처럼 동호회원이 모여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호그는 어떤 상품에도 찾아 볼 수 없는 할리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호그 회원들이 주변 친지들에게 할리를 구매하도록 하는 영업사원과 홍보인 역할을 한다.

할리는 모터사이클 이외에도 군대식 복장이나 독특한 액세서리(소품) 판매가 전체 매출의 20%가 넘는다. 액세서리는 예비 고객이 할리 브랜드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할리코리아 마케팅 김은석 차장은 할리의 엔진 소리가 말을 달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역삼각형 형태로 생긴 프레임에 V형 쌍둥이 엔진을 얹다 보니 서로 엇박자로 소리를 내면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엔진음이 ‘포테이토’ 발음과 비슷해 그렇게 부른다.”




201407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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