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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톨레도 -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톨레도(스페인) = 글·사진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톨레도(Toledo)는 유대인, 로마인, 무슬림의 손을 거치면서 약 160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의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로 위세를 떨쳤다. 정처 없이 무작정 걸어도 수백 년 된 문화유산이 어디서나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의 보고다.

▎톨레도 구시가지로 올라가는 언덕길에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톨레도 여행은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타구스 강이 구시가지를 활처럼 둘러 싸고 있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모습을 드러내는 알칸타라 다리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톨레도 안과 밖을 연결하던 두 다리 중 하나다. 먼 옛날 순례자들이 오고 갔을 이 다리는 이제 여행객을 위한 관문이 됐다.

알칸타라는 아랍어 ‘다리(al-qantara)’에서 유래했다.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ántara)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리 다리’라는 묘한 이름이 된다. 로마인들의 손에 지어졌지만 아랍어 이름이 붙은 알칸타라 다리는 여러 문명이 복잡하게 뒤섞인 톨레도 고유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톨레도의 주인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유대인, 로마인, 서고트족, 무슬림이 잇따라 이 지역을 점령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전개했다. 그럼에도 톨레도는 항상 문화의 중심지였다. 로마제국 카펜티아주, 서고트 왕국, 무슬림이 세운 타이파 왕국의 수도였다. 1519년부터 약 100년간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으니 최소한 1600여 년 동안 수도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 문화적·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도를 접고 무작정 걸어라


▎1_ 알칸타라 다리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톨레도 안과 밖을 연결하던 두 다리 중 하나다. / 2_ 성 일데폰소 예수회 성당 첨탑에서 바라본 톨레도 정경.
다리를 건너 관문을 지나면 눈앞에 알카사르 요새가 위용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중세로 시간여행을 한 듯하다. 톨레도 구시가지로 들어가려면 완만한 성채를 따라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요새 안으로 진입해 계단을 걸어 올라도 좋고, 요새 옆 언덕길을 걸으며 아래로 펼쳐지는 마을 풍경을 만끽해도 좋다.

성채 위에 올라서면 이제 본격적인 톨레도 탐방이다. 이곳 길은 제멋대로다. 물결치듯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법한 골목길은 끊임없이 여러 갈래로 쪼개진다. 눈썰미가 여간 좋지 않고서야 그 굽이치는 미로 속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을 테다. 지도는 접어놓고 내키는 대로 골목을 헤메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권하고 싶은 톨레도 여행법이다.

톨레도는 작다. 걸어서 반나절이면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다. 톨레도 일정에 넉넉히 하루만 시간을 준다면 길을 잃었다한들 볼거리를 못 보고 지나칠 염려는 없다. 돌고 돌면 결국 원하던 곳이 나타나는 마법 같은 도시가 바로 톨레도다. 톨레도 대성당, 알카사르 요새 같은 주요 문화유산은 멀리서도 잘 보여서 찾아가기 쉽다. 끝자락에는 늘 타구스 강이 있어 저도 모르게 구시가지 밖으로 나가려는 여행객을 붙들어 준다.

무작정 걷기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톨레도엔 골목 하나마다 문화유산이 하나씩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톨레도의 자랑인 톨레도 대성당이나 알카사르 요새에 비하면 볼품없이 작아 보이는 골목길 성당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1180년 세워진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 유대교 회당, 999년 준공된 크리스토 델 라 루스 모스크 등 다양한 문화권의 건물들은 수백 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겸허히 그 자리를 지킨다. 성 일데폰소 예수회 성당의 첨탑에서 내려다 본 톨레도 정경, 타구스 강변을 따라 걸으며 만끽하는 햇살과 녹음은 웬만한 가이드북에도 실려 있지 않은 숨은 보물이다.

톨레도를 빛낸 그리스인


▎1_ 엘 그레코의 작품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드’. 그레코 박물관 소장. / 2_ 톨레도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타구스 강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걷기 좋다. / 3_ 스페인산 매운 파프리카로 맛을 낸 카스티야 전통 스프는 얼큰한 맛이 육개장을 연상케 한다.
그리스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는 단연 톨레도가 낳은 최고의 위인이다. 그리스에서 태어났지만 전성기를 톨레도에서 보냈다. 유행과 전혀 다른 화풍 탓에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은 300여 년이 지난 20세기에야 비로소 평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던 것이다. 스페인이 낳은 또 하나의 천재 파블로 피카소 역시 그의 작품을 모사했던 걸로 유명하다.


엘 그레코의 흔적은 톨레도 곳곳에 남아 있다. 톨레도 대성당의 ‘예수의 옷을 벗김’, 산토 토메 성당에 걸려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모두 엘 그레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그레코 박물관이다. 한 미술 애호가가 사비로 주택을 구입하고, 그 내부를 엘 그레코의 작품과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소품들로 채워 넣었다.

그레코 박물관엔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그레코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특히 대표 소장품인 ‘예수와 사도 연작’은 엘 그레코만의 독특한 화풍이 그대로 담긴 걸작이다. 타 미술관과 달리 아무런 저지선이 없기 때문에 이런 걸작들을 말 그대로 코앞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톨레도 전경과 계획’은 16세기 당시 톨레도의 모습과 함께 상세한 도시 계획이 담겨 있어 사적 가치도 높다. 이 독특한 작품은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톨레도의 풍경이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톨레도(스페인) = 글·사진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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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호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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