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MODERN BLUE BLOOD] 멕시코 슬림 가문 

레바논 상인의 후예
세계 최고 갑부 오르다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사진 중앙포토

사람들은 그를 몹시 궁금해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라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을 누르고 세계 1위의 부호로 군림하고 있는 카를로스 슬림(72) 말이다. 부자 나라도 아닌 멕시코의 기업인인 슬림은 보유 재산 740억 달러(가족 명의 포함)로 2011년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 1위에 올랐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멕시코인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1위 부자로 선정된 첫 인물이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건 16년 만이다.

처음 1위에 올랐을 때 그의 재산은 535억 달러로 530억 달러의 게이츠를 아슬아슬하게 제쳤다. 3위인 버핏의 재산은 470억 달러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2011년 그의 재산은 무려 205억 달러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60억 달러의 게이츠와 500억 달러의 버핏을 한참 앞섰다. 도대체 한 해에 200억 달러가 넘게 재산을 늘리는 슬림은 누구인가.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 명단을 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텔멕스, 아메리카 모빌, 카르소 그룹(스페인어로 그루포 카르소) 등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낯익은 거대 글로벌 기업은 하나도 없다. 텔멕스와 아메리카 모빌은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영업하는 휴대전화 회사다. 카르소 그룹은 건설부터 소매, 금융까지 온갖 업종의 기업을 다 포함하고 있다.

슬림은 이런 식의 문어발 사업 확장으로 재산을 모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기업과 비슷하다. 특히 인수·합병으로 기업의 몸집을 불렸다. 게이츠나 버핏처럼 하나의 사업에만 파고들어 재산을 불리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세계 최고 갑부에 오른 첫 인물이다. 멕시코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슬림 가문을 모르고는 사업 파트너는 물론 고객과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장사하는 법 배워

슬림은 1940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스페인계도, 인디언도, 혼혈도 아니다. 부모가 모두 레바논에서 이민 온 아랍계다. 슬림은 아랍계 멕시코인인 것이다. 아버지의 훌리안 슬림이란 원래 이름은 아랍 느낌이 물씬 나는 할리드 슬림이다. 14세인 1902년 당시 오스만튀르크 영토였던 레바논에서 남미 대륙으로 이민 오면서 이름을 스페인 식으로 바꿨다. 그의 형제들은 이미 멕시코에 도착해 있었다.

슬림의 어머니 린다는 19세기 후반에 멕시코로 이민한 레바논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슬림의 외조부가 출판업자라는 점이다. 인쇄 시설을 소유하고 멕시코의 레바논계 커뮤니티를 겨냥한 아랍어 잡지를 창간하고 발행했다. 슬림이 나중에 미국 유력지 뉴욕 타임스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외가의 영향과 관련 있어 보인다.

1911년 훌리안은 ‘오리엔트의 별’이라는 이름의 포목점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적 부자 가문으로 성장한 슬림가는 멕시코에서 소상인으로 소박하게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1921년 멕시코시티 번화가의 부동산을 사들였는데 이것이 후에 엄청나게 값이 올라 슬림 가문이 막대한 부를 이루는 원천이 됐다.

1921년 훌리안 슬림은 린다 엘루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이 부부는 여섯 자녀를 뒀는데 카를로스는 다섯째이자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형인 훌리안 주니어는 레바논계 멕시코인 가운데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성장했지만 1953년 세상을 떠났다.

카를로스는 형 훌리안 주니어, 호세와 함께 레바논 상인의 후손인 아버지에게 장사의 기초를 배웠다. 고객을 대하고 물건을 팔면서 신용을 지켜야 한다는 상인의 기본 원칙부터, 자금을 운용하는 요령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까지 도제식으로 배웠다.

레바논 상인은 일반적으로 성실과 신용, 그리고 합리적인 투자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런 교육을 받아서인지 슬림은 어려서부터 돈 버는 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2살 때 이미 멕시코은행의 주식을 샀을 정도다. 수학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멕시코 국립 자치대에 들어가 공학을 공부했다.

학교를 마친 그는 1965년 투자회사인 인베르소라 부르사틸을 창업했고 이듬해 인모빌리아리아 카르소라는 부동산 회사를 설립했다. 카르소라는 그룹 이름은 자신의 이름인 카를로스에 약혼녀 이름인 소유마야 도미트의 앞 글자를 붙인 것이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99년 소우마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순탄한 결혼생활을 했다. 회사 이름을 지으면서 부부 이름을 나란히 딴 데서 보듯 그는 가정을 중시했고, 여성의 권리를 존중한 ‘개념 있는’ 기업인이다.

사업가 슬림은 초기에는 건설과 부동산, 그리고 광산업에 주력했다. 1972년 건설장비 임대업체를 비롯한 7개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합병 했다. 76년에는 한 인쇄업체의 지분을 60% 취득했다. 80년에는 갈라스 그룹을 세워 제조업·건설·광업·소매업·식품업과 담배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를 하나의 그룹 아래 통합 관리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보통 잘 되는 기업인 수준의 발전이다. 잘 되는 업종에 즉각 투자하고 관리를 잘 하는 정도였다. 그의 능력을 보여준 것은 그 다음부터다.

불황에 기업을 사고 합치고 또 합쳐라

이미 성공한 기업인이 된 슬림은 82년 세계적인 기업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불황기에 기업을 다량 매입한 것이다. 원유 수출에 상당 부분을 의존해오던 멕시코 경제는 당시 국제적인 유가 하락으로 타격을 입게 됐다.

그 여파로 멕시코 화폐인 페소화 가치가 폭락했으며 은행과 주요 산업이 국유화되거나 문을 닫거나 휘청거리게 됐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업이 헐값에 매물로 나왔는데 슬림은 싼 이자의 자금으로 투자를 대폭 늘려 이들 기업을 다량 사들였다. 알루미늄 회사인 레이놀즈 알루미니오, 타이어 업체인 헤네랄 포포(제네럴 타이어의 멕시코 투자업체), 체인호텔인 바이멕스와 유통업체인인 산보른스를 비롯한 알짜배기 기업을 손에 넣었다.

다국적 담배 제조업체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의 멕시코 현지 투자업체의 지분 40%와 다국적 제과사인 허쉬 멕시코의 지분 50%도 확보했다. 그러면서 금융업체에도 투자해 1개 금융사를 인수하고 3개 금융사를 새로 세웠다. 그 뒤 구리와 알루미늄, 그리고 화학제품 판매업체를 사들였다. 이 모든 기업의 인수와 창업 자금은 이미 매입해둔 거대 담배업체 시가탐의 신용을 바탕으로 마련했다. 잘나가는 하나의 기업이 또 다른 우량 기업을 손에 넣는 방식이었다. 1990년 카르소 그룹은 기업을 공개해 멕시코와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투자를 받았다.

그는 1990년대에 들어와 다시 비약적인 성장 기회를 잡는다. 당시 막 고속성장을 시작한 통신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90년 프랑스의 프랑스 텔레콤, 미국의 사우스웨스턴 벨과 손잡고 멕시코의 국영 전화업체인 텔멕스를 멕시코 정부로부터 공동 인수했다. 국영 전화회사의 민영화라는 엄청난 기회가 슬림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성장산업인 통신업에 뛰어든 것은 슬림이 세계적인 갑부가 되는 기틀이 됐다. 그는 친하게 지냈던 미국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충고로 통신이 미래 성장산업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대규모 투자를 했다. 토플러의 충고도 충고지만 이를 듣고 잽싸게 돈 냄새를 맡고 투자를 감행한 슬림의 결단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신규 성장 산업에서는 먼저 보고 먼저 뛰어든 사람이 가장 큰 몫을 얻는 법이다.


토플러의 예견과 슬림의 투자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2006년까지 이 회사는 멕시코 유선전화의 90%를 장악했다. 슬림에게 날개를 달아준 또 다른 성장 기회가 무선통신 사업이다. 그는 라디오모빌 딥사라는 통신업체를 인수해 이를 텔셀이라는 거대 무선전화 회사로 길러냈다. 이 회사는 멕시코 전체 이동통신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그의 인수 합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1년 칼린다 호텔 그룹을, 1993년 헤네랄 타이어와 그루포 알루미니오의 지분을 늘렸다. 회사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슬림은 96년 그루포 카르소를 통신·금융·일반 등 세 개로 나눴다.

슬림은 타고난 사업 감각으로 될만한 사업을 떡잎부터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재주가 있다. 아이맥이 나오기도 전인 97년 애플 주식의 3%를 매입한 것도 한 사례다.

2007년 50.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멕시코 거대 담배 회사인 시가탐의 지분 상당 부분을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에 팔고 11억 달러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같은 해 타일회사인 포르셀라니테의 지분 전체를 팔아 8억 달러의 현찰을 추가로 거머쥐었다. 그는 이 돈을 통신사업과 자선사업에 추가로 투자하는 한편 이듬해 뉴욕 타임스 지분 6.4%를 취득했다. 레바논 출판업자의 외손자가 미국 최고 언론사인 뉴욕 타임스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흔히 슬림을 내수산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착각하는데 사실 그는 99년부터 해외 진출에 나섰다. 그 해 그는 미국에 텔멕스USA를 설립했으며 현지 휴대전화 업체인 트라크폰을 인수했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심장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시련을 자신에게 인생 후반이 온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들에게 비즈니스 제국을 조금씩 물려주고 자신은 일을 서서히 줄여나가기로 한 것이다.

2000년에는 아메리카 모빌의 지주회사인 아메리카 텔레콤을 설립하고 남미를 향해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이 회사는 브라질·아르헨티나·에콰도르 등 해외에서 무선통신사업을 벌였다. 이듬해에는 콜롬비아·니카라과·페루·칠레·온두라스·엘살바도르의 무선통신 업체에 투자했다.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스페인어 포털 서비스 업체를 설립해 현재도 ProdigyMSN이라는 이름으로 가동하고 있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최대 기부자

슬림이 미래를 보는 눈이 있는 것은 일찌감치 기부활동을 시작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미 8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카를로스 슬림 재단을 세웠으며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을 시작했다. 부자 나라가 아닌 멕시코에서 사업을 하려면 투자와 자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 일각에서는 슬림의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압박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아무튼 이 재단은 2008년 2억5000만 달러를 멕시코 스포츠 진흥에 내놨다.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과 고용 촉진이라는 말의 스페인어 머리글자를 딴 IDEAL이라는 비영리기구도 설립해 사회 인프라를 개발하고 청년들에게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95년엔 텔멕스 재단을 세우고 보건·스포츠·교육 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기부에 들어갔다. 2007년 40억 달러를 들여 카르소 보건스포츠교육 연구소를 설립했다. 라틴 아메리카에 맞는, 현지 주민이 원하는 기부 사업에 주력하는 게 특징이다. 슬림은 2011년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 및 기부자로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그 해 그는 40억 달러를 자신의 재단에 기부했다. 투자 감각은 물론 개념까지 있는 부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그의 제국은 아들인 카를로스 주니어(45)에게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 67년 결혼해 99년 사별한 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 중 첫째다. 텔멕스와 아메리카 모빌, 아메리카 텔레콤, 카르소 글로벌 텔레콤 등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나후악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2010년 오랜 여자 친구 마리아와 결혼했다. 마르코 안토니오, 파트리크, 소우마야, 바네사, 호안나 등 다른 자녀도 경영 수업이 한창이다.

아랍 지역에서 이민 온 슬림가는 멕시코 이민 110년 만에 세계 최고 갑부 가문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성실·신용·합리를 바탕으로 하는 레바논 상인의 정신을 강조하는 현대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이런 슬림가가 이제 3대 승계를 앞두고 있다. 이 가문은 앞으로 얼마나 세계 최고 갑부 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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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호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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