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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매 영웅의 컬렉션이 쏟아진다 

 

JONATHON KEATS 포브스 기자
20여 년간 소더비를 지배하며 미술 시장을 영원히 변화시킨 알프레드 토브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 가는 지금, 그의 컬렉션이 경매로 세상과 만난다. 시작 전 평가가치만 해도 5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다. 자기 자신의 최고 고객이었던 한 억만장자의 초상화를 그려본다.
2015년 1월, A. 알프레드 토브만(A. alfred Taubman)이 사망하기 3개월 전이다. 그는 팜비치에서 점심을 함께 하자고 가족들을 초대했다. 손님 대부분은 혈연 관계로 엮여 있었지만, 1983년 토브만이 소더비 홀딩스(Sotheby’s Holdings)를 1억 2480만 달러에 인수하며 생긴 ‘새로운 가족’도 눈에 띄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당시 90세였던 부동산 재벌 토브만은 소더비에서 ‘거장 화가(Old Masters)’ 사업부를 총괄하는 조지 워크터(George Wachter)을 한 쪽으로 불러냈다. “조지, 논의할 게 있네.”

놀랍게도 토브만은 그 달 열리는 거장 화가 경매 카탈로그에 대해 말을 꺼냈다. 토브만은 자신이 사고 싶은 작품을 표시한 카탈로그를 내밀었다. 꼼꼼히 검토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워크터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믿을 수 있는 자문을 해줬다. 그는 구에르치노(Guercino)의 17세기 작품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Penitent Magdalene)>와 암브로시우스 벤슨(Ambrosius Benson)의 16세기 작품 <성모자(Madonna and Child)>를 사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토브만은 두 작품 모두 낙찰 받았고, 크기가 작은 벤슨의 그림은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4월 토브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벤슨의 그림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두 작품이 다시 경매로 나온다. 올해 1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토브만의 ‘거장’ 시리즈 경매다. 다양한 사조와 시대를 아우르는 토브만 컬렉션이 워낙 방대해서 주제를 나눠 4회에 걸쳐 경매가 진행된다. 이번에는 라파엘과 토마스 게인즈버러, 에드가 드가, 에곤 쉴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크 로스코처럼 다양한 거장 예술가의 주요 작품을 포괄한다. 총 500점에 달하는 거장 컬렉션은 경매에서 판매되는 개인 컬렉션 중 최고 수준인 5억 달러의 가치를 소더비에서 인정 받았다. “알프레드는 예술을 향한 놀라운 열정으로 소더비를 인수했다”고 워크터가 말했다. 토브만은 소더비의 거의 모든 부서에서 작품을 구매했고, 자기가 자신의 최고 고객이 됐다.

토브만 컬렉션 중 11월 18일 경매된 ‘미국 미술’ 부문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미국 루미니즘 미술가 마틴 존슨 히드(Martin Johnson Heade)의 풍경화 <플로리다의 위대한 석양(The Great Florida Sunset)> 또한 같은 경로로 구매한 것이다. 1988년 토브만이 소더비에서 150만 달러에 낙찰 받은 이 작품은 경매 전 700만~1000만 달러의 가치를 평가 받았다.

토브만 컬렉션이 거장과 미국 클래식 작품으로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그는 소더비를 통해 모던 미술과 현대 미술 또한 구매했다. 이 중에선 피카소 1938년 작 <의자에 앉은 여인(Femme assise sur une chaise)>이 가장 유명하다. 피카소가 연인 도라 마르(Dora Maar)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1999년 지안니 베르사체의 소장 컬렉션이 소더비 경매에 나왔을 때 토브만이 손에 넣은 작품이다. 토브만은 1995년 경매에서 존 체임벌린의 1988년 금속 조각품 <캡틴 쿡크(Captain Cooke)> 또한 낙찰 받았다.

소더비에서만 작품을 구매한 것도 아니다. 다양한 예술가, 갤러리, 동료 수집가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토브만은 특급 작품이 개인간 거래 시장에 나오기라도 하면 빠짐 없이 보고를 받았다. 윈슬로우 호머 수채화 중 가장 가치가 높은 1881년작 <썸머 클라우드(Summer Cloud)>는 화가에게 그림을 직접 구매한 가문에서 그가 바로 인수 받았다. 그의 컬렉션에 포함된 모딜리아니의 <폴레트 주르뎅의 초상(Portrait de Paulette Jourdain, 1919년)> 또한 경매로 나오지 않고 계속 개인 소장품으로 있던 작품이다.

쇼핑몰 사업으로 번 돈으로 예술품 수집

“그는 대담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작품을 수집했다”고 말한 워크터는 모든 시대와 장르를 망라한 작품이 곳곳에 전시된 토브만의 저택을 설명했다. (팜비치에 있는 토브만 저택에는 거장의 작품이 주로 전시됐고, 인상파 그림은 뉴욕 저택에, 눈에 확 띄는 독특한 현대 미술은 디트로이트에 있는 모던한 저택에 전시되어 분위기를 완성시켜 줬다.) “모든 작품이 아름다웠고, 또 아름답게 전시됐다”고 워크터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샀다.”

알프레드 토버만이 생애 첫 예술 작품을 손에 넣은 때는 미시건 대학을 다니던 학생 시절이다. 골프를 친다고 자꾸 수업을 빠진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회화과 교수로부터 C학점을 받았다. 대신 교수는 미술에 대한 토브만의 열정을 격려하고자 자신이 잉크로 직접 그린 그림을 함께 선물했다. 토브만은 그 그림을 곧장 집 벽에 걸었고, 평생 간직했다. 그러나 토브만은 교수가 바라던 대로 예술가가 되진 않았다. 대신 건축에 대한 재능을 살려 부동산 개발자가 되었고, 미국 전역의 교외에 쇼핑몰을 세웠다. 1950년대 토브만 센터 개점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그는 예술에 대한 흥미를 수집에 대한 열정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뉴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현대 미술 갤러리를 통해 대부분의 작품을 구입했다. 그는 리처드 벨라미, 레오 카스텔리 등의 여러 딜러를 통해 아직 캔버스가 마르지도 않은 로버트 라우셴버그와 프랭크 스텔라의 그림을 구매했다. 컬렉션이 갖춰지면서 토브만은 경매로도 눈을 돌렸다. 꽤 괜찮은 가격에 인상주의 작품과 중국 도자기를 구매한 그는 사업가의 감으로 경매 시장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걸 감지했다.

기회는 1980년대 초 모습을 드러냈다. 재정난에 처한 소더비는 토브만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토브만은 간단한 계산을 했다. 당시 전세계 미술 시장의 연 매출액은 250억 달러에 달했지만,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연매출 총액은 10억 달러도 되지 않았다. 2007년 출간한 회고록 <문턱에서의 저항(Threshold Resistance)>에서 토브만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예술 시장의 상당한 지분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소더비를 인수하면 덤으로 언제라도 미술품 구매 자문을 얻을 수 있었다.

토브만은 경매 사업을 변혁시킬 간단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소더비는 투자상품이나 부동산 시장에서의 소매 유통업체와 달랐다. 소매 유통 쪽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바로 거기에 기회가 있었다”고 그는 회고록에서 말했다. 198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강연에서는 같은 말을 좀더 거칠게 표현해 “예술을 판다는 건 루트비어를 파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토브만은 예술을 하나의 (소비)명품으로 봐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그가 소유한 A&W 레스토랑의 탄산음료나 고급 쇼핑몰에서의 소비재와 비슷하게 본 것이다.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하려면 일반 소비자가 접근하기 힘든 도매상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럭셔리 부티크로 거듭나야 했다.

토브만은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움직였다. “그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경매 절차를 만들었다”고 <예술 예언가(The Art Prophets)>의 저자 리처드 폴스키는 말했다. “사용자 친화적인 경매를 선보인 것이다.” 카탈로그는 고급스럽고 풍부해졌다. 앤디 워홀 컬렉션이나 윈저 공작부인 보석 컬렉션(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경매에서 62만 5000달러에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낙찰 받았다) 등 블록버스터급 경매를 하게 되면 새로운 수집가에게 정보를 보내 초청했다. 런던 사무소 안에는 카페를 열었고, 화려한 뉴욕 본사를 지을 때에는 토브만 몰에서 볼 수 있던 에스컬레이터나 유리 벽을 넣어 디자인했다. 소비자를 직접 대하는 소매 유통사업의 또 다른 필수 요소, 고객 서비스의 기본 사항에 대해서도 직원에게 교육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지식이 좀 있다고 무례하게 굴어선 안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수집가를 위한 현대적인 경매 체제 구축

파급력은 대단했다. 현재 소더비 CEO인 태드 스미스는 토브만이 “미술 수집가를 위해 현대적인 경매 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워크터는 옛 거장의 작품 구매 중 80% 이상을 차지하던 딜러 비중이 개인 수집가에게 밀려 10% 미만으로 뚝 떨어지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다. 과거의 전통적 딜러들은 변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토브만이 소더비를 블루밍데일 백화점으로 변질시켰다고 비난했다. “나한테나 동료들한테나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리처드 페이겐은 주장했다. “경매소가 아트 갤러리처럼 컬렉터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 구조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토브만은 2000년 소더비가 숙적 크리스티(Christie’s)와 함께 가격 담합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급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토브만과 크리스티 회장 안소니 텐넌트 경(Sir Anthony Tennant)은 런던에서 만나 판매자와 매수자가 지불하는 수수료를 조작해서 고객에게 1억 달러 이상을 갈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토브만은 크리스티와 담합한 혐의로 9개월 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내 인생의 일부와 명성을 잃었고, 체중은 27파운드가 빠졌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2005년 그는 소더비의 지배지분을 매도했다. 그러나 지분 4.9%는 남겨두었고, 계속해서 소더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 예술 시장을 경매장으로 끌어내고 소더비를 럭셔리 매장으로 변모시킨 토브만은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구축한 새로운 예술 세계에 매료되어 그 곳에서 계속 쇼핑을 했다.

그런 만큼 그의 컬렉션 경매를 소더비가 맡은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크리스티 또한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두 회사는 팜비치와 뉴욕, 디트로이트, 런던에 있는 토브만 저택으로 각자 전문가를 파견하고 모의 카탈로그를 제출했다. 경쟁에서 이긴 건 소더비였다. 낙찰 여부에 상관 없이 5억 달러를 보장한다는 유례 없는 혜택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워크터를 비롯한 베테랑 전문가 입장에서는 ‘이제서야 왔냐!’는 거장 작품이 참으로 많다. 라파엘 작품은 소더비에서 1987년 경매로 팔렸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시 경매로 나왔다.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둥근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은 라파엘이 1517년 친구와 동료 화가 발레리오 벨리에게 선물로 준 작품이다. 토브만은 30만 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에 그림을 구매했다. “요즘 라파엘의 작품을 구매할 기회는 결코 흔치 않다”고 워크터가 강조했다.

라파엘 등 거장들의 작품 경매에 내놓아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전신 초상화 <블루 페이지(The Blue Page)>는 가치를 더 높게 평가 받았다. 1989년 소더비 경매에서 처음 판매된 가격은 160만 달러였지만, 현재 높게는 400만 달러로 가격이 형성됐다. 그림이 시장에 나오지 않은 수십 년간 학계의 평가가 변화한 덕분이다. 처음에는 게인즈버러가 대표작 <블루 보이(Blue Boy)>를 그리기 전 연습용으로 그렸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지금은 <블루 보이>를 완성한 후 자신의 걸작을 소장하기 위해 다시 그린 것으로 의견이 수정됐기 때문이다.

토브만 컬렉션에는 누구나 아는 화가의 작품과 유명세가 덜한 다른 화가의 작품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전세계에 있는 소더비 전문가를 만난 토브만은 이들에게 영향과 영감을 받았고, 그 결과 취향이 확대됐다”고 워크터는 말했다. 거장 컬렉션 중에서도 그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와 북부 유럽 작품, 그 중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화가의 그림에 끌렸다.

1996년 소더비 경매로 컬렉션에 들어온 프랑스 화가 발랭탱 드 볼로냐(Valentin de Boulogne)의 그림이 그 중 하나다. 카라바지오의 극적인 스타일 뿐 아니라 상징물과 구성 면에서도 비슷해서 발랭탱의 <가시 면류관(Crowning with Thorns, 1615년경>은 카라바지오의 <가시 면류관(1604년경)>을 아예 직접적 모티브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평가 가격은 15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다.

토브만이 침대 맡에 두었던 암브로시우스 벤슨의 평가 가격(30만~50만 달러)은 원래 낙찰가(42만 5000 달러)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토브만이 경매에서 낙찰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크터는 50만 달러가 되어도 저렴한 것이라고 말했다. 옛 거장의 작품 중 대중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수준이 높은 그림들은 모두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그는 믿는다. “경매에 나온 가격과 일반 시장 가격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벤슨의 그림은 이제 훨씬 높은 가격을 인정받을 것이다. 내가 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 JONATHON KEATS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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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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