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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자동차산업, 기타규슈가 답이다 

임금 낮추고 인프라 갖춰 기업 유치 성공 

일본 기타규슈 지역은 20년 전만 해도 더딘 공업화, 젊은 인력의 역외 유출 등 지금의 광주광역시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현재는 자동차 생산 150만대의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을 표방한 광주광역시가 벤치마킹에 나섰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전경. 광주광역시는 자동차산업을 강화해 광주형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 중앙포토
일본 규슈지역 최북단 후쿠오카 현에서도 가장 북동부에 위치한 기타규슈(北九州)는 20여 년 전만 해도 쇠락해가는 도시였다. 철강산업의 열악한 생산 환경은 기타 규슈 인근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고, 지역 산업화의 기틀이었던 탄광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가 사라졌다. 파나소닉이 그나마 공장을 운영했지만 이마저도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가전산업이 몰락하면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타규슈는 일본인들에게 기피하는 도시가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기타규슈는 완전히 변모했다. 완성차 생산능력 연간 154만대의 ‘자동차 왕국’이 됐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유치활동으로 닛산,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를 유치한 덕분이다. 지난 2011년 통계에 의하면 규슈지역의 공업생산 출하액의 약 20%가 자동차 관련 산업이다. 이를 통해 취업한 인구도 약 50만명(전체인구 130만)에 달한다. 향후 5년 안에 180만대 생산을 목표로 생산라인 증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으니 자동차산업이 죽어가던 기타규슈를 살린 셈이다.

자동차산업밸리를 성장 전략으로 정한 광주광역시에 기타규슈가 주는 시사점은 크다. 광주에는 연간 60만대를 생산하는 기아차 광주공장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생산규모로는 타 지역의 주요 부품회사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광주광역시는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을 표방하고 전방위로 뛰고 있다. 100만대 생산은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1·2·3차 부품회사들이 광주에 둥지를 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광주가 기타규슈에서 해답을 찾는 이유다.

다양한 지원으로 기업 유치한 기타규슈


기타규슈의 기적은 1992년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를 생산하는 일본 1위의 자동차업체 도요타를 유치하면서 시작됐다. 도요타가 규슈의 미야와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자 이미 1973년 들어와 있던 닛산도 제2차량 공장을 세웠고, 도요타의 소형 경자동차 자회사인 다이하츠도 이곳에 최대 규모의 공장을 건립했다. 이후 규슈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경쟁적으로 생산능력을 증설하며 신차종을 이곳에 투입했다. 도요타는 2005년 엔진공장과 2008년 하이브리드 부품공장을 세웠고, 다이하츠도 엔진과 고기능 부품제조를 시작했다. 각 메이커사의 1차 벤더, 2차 벤더, 3차 벤더 등 부품업체들이 몰려들면서 도시가 생긴 이래 최대 부흥기를 맞게 됐다.

기타규슈의 도요타 유치는 과감한 인프라 투자 덕분이다. 1960년대부터 일본 중앙정부는 석탄공업의 사양화로 인해 지역경제가 피폐해지자 산탄지역특별법을 만들어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촉진코자 했다.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타규슈는 대체 산업으로 선택한 자동차 산업에 지원금 전액을 쏟아 부었다. 완성차업체 수출용 전용부두를 만들고, 자동차 공장입지 조성과 자동차 관련 업체의 세금 인하를 단행했다. 또 규슈자동차도로와 규슈횡단 자동차도로 등 동서남북의 고속도로망을 건설해 물류의 인프라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한마디로 무수한 당근을 내민 것이다.

주목할 것은 완성차 메이커들이 규슈에 들어오면서 모두 독자법인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사나 도쿄, 나고야의 고임금 체계와는 별도로 이보다 15~20% 낮은 임금 체계를 실현했다. 닛산규슈의 경우 닛산본사 종업원보다 월 평균급여가 80만원 적다. 닛산규슈의 한 관계자는 “지역실정, 물가 등을 감안한 것으로 공장 내 구성원 모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며 “직원의 능력에 따라 더 받을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닛산 본사 보다 적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다. 다른 공장보다도 규슈 공장의 임금이 낮다. 이 같은 임금체계는 상대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높일 수 있어 새로운 투자 발생의 요인이 됐다. 투자-수익-고용창출-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완성차의 입성과 생산설비 증대는 규슈 바깥에 있던 자동차 부품회사들을 불러 모았다. 완성차 메이커는 운송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협력사들에게 규슈 공장 부근에 협력사 공장을 건설하도록 요청했다. 기타규슈 지자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역의 업체들을 자동차 부품 업체로 전환 시키는데 전 행정력을 투입했다. 그 결과 규슈 내 부품회사 수는 2013년 기준으로 989개사에 달한다. 68%에 달하는 지역 내 부품 조달율이 그대로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기타규슈의 자동차 생산은 닛산 53만대, 닛산차체 12만대, 도요타 43만대, 다이하츠 46만대로 일본 내 자동차 생산량의 15%를 차지한다. 일본 내 연간 자동차 생산은 약 1000만대인데, 나고야와 도쿄지역이 각각 300만대로 가장 크고, 다음으로 기타규슈와 시코쿠가 각각 150만대 등이다.

유영태 조선대 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이 전무했던 불모지에서 자동차산업의 꽃을 피워 올린 규슈지역 모델이 광주광역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자금지원과 정책지원,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지원, 지역 전자부품업체의 자동차부품업체로 업종전환 지원 등이 규슈의 자동차산업을 키웠다”고 말했다.

규슈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광주광역시와 유사점이 많다. 농업 등 1차 산업이 지역경제의 주류를 이뤘고, 공업화가 늦어진 지역이라는 점, 기존 전자부품산업이 활력을 잃었다는 것 등이 그렇다.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상용차 생산부터 시작했으며, 자동차산업의 집적화가 약하고, 역내 1차 부품회사 육성이 되지 못했다. 또 2·3차 부품회사가 적어 부품의 대부분을 역외에서 조달하며 연구개발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 자동차 100만대 생산계획을 세운 점 등이 비슷하다. 규슈는 이 단점을 극복하고 연간 150만대를 생산하는 자동차 산업지역으로 성공했다.

자동차산업은 광주의 중요한 경제축이다. 광주 전체 제조업 고용의 23.6%인 14만8000명(2013년)이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자동차산업의 매출 역시 11조9000억원으로 광주 전체 제조업 매출의 40.6%를 차지한다. 그 중심엔 연간 최대 생산량 62만대 수준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명준 박사는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량은 2000년 16만대에서 2013년 48만대까지 약 3배로 성장했고, 이 기간 자동차 부품업이 광주지역 부가가치에서 차지한 비중은 1.8%에서 10.6%로 크게 높아졌다”며 “고용규모 역시 같은 기간 동안 부품사 2.6배, 완성차 1.4배 증가하는 등 자동차산업의 낙수효과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자동차업체의 해외 공장 증설이 늘면서 광주 지역의 생산 기반 또한 불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2006년 384만대였던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의 국내 생산량은 2014년 453만대로 17.8%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해외 생산량은 101만대에서 441만대로 무려 337%나 늘었다. 자동차 제조 회사들이 생산 비용이 증가하자 소비지역에 공장을 건설하는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 64만대 생산 규모로는 타 지역의 부품업체를 끌어들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 인프라가 없는 광주가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을 외치는 이유다.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의 핵심은 자동차 집적화 산업 단지다.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전남 함평군에 건설되는 빛그린 산업단지 406만㎡에 전기차, 수소연료전지 차 등 친환경자동차 단지를 조성해 38만대를 추가로 생산하는 사업이다. 자동차 판매와 출고, 서비스를 한 곳으로 모아 국내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애프터 마켓을 열고, 인근엔 자동차 테마파크를 지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광주지역 정·관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123명은 지난해 11월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위원장 정찬용)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광주지역 자동차 생산이 2013년 기준 47만대에서 100만대로 늘어날 경우 생산유발효과는 11조800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2조6000억원, 수출유발효과는 56억3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광주시는 또 노동개혁이라고 일컫는 하르츠 개혁(아우토 5000)을 모델로 하는 ‘광주형 일자리 창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완성차와 협력업체 직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인 중간임금을 받자는 게 핵심이다. 박명준 박사는 “광주의 고용률은 전국 평균에 비해 낮은데 반해 전체 월평균 임금수준은 높은 편”이라며 “정규직 중심의 고용, 교육훈련 강화와 함께 이른바 ‘적정임금’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완성차업체의 임금이 과도한 수준이라는 문제의식을 전제로 신규 공장에서 개인별로 현재보다 낮은 임금(적은 근로시간)을 책정해 기업의 신규 투자를 유인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지역 내 해당 산업 전반의 임금 상향 평준화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박 박사는 “기존 완성차업체의 초임 수준(약 6000만원)을 지양하고 1차 협력 업체 초임 수준(약 3800만원)을 고려한 임금 모델링을 모색해야 한다”며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할 공장은 반드시 기존 노사협상이나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법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노사협의회 강화, 노동시간 단축, 고용 안정 등 책임과 권한은 키워야한다는 설명이다.


현대·기아차 증설은 정부 지원이 관건


▎도요타의 일본 기타규슈 트레이닝센터 전경.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닛산, 도요타 등 완성차업체의 투자를 유치해 지역발전을 이뤘다. / 중앙포토
광주의 자동차 100만대 생산 계획이 이뤄지려면 현대·기아차의 공장 증설, 외국 자동차업체 유치, 가솔린 이외의 자동차 생산 등의 해법이 거론된다. 그러나 전기차나 수소차는 장기 아이템이고, 외국 자동차업체들이 중국을 놔두고 광주로 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현대·기아차의 공장 증설뿐이다. 그러나 임금 상승과 극심한 노사 갈등에 시달려온 현대·기아차로선 해외에 관심이 크다.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는 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특혜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현대·기아차에 ‘올인’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한 어미닭을 입양해야 좋은 달걀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기업유치 인센티브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는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규슈 자동차산업을 연구한 일본 오사카시립대학 박태훈 교수는 “자동차산업은 일단 집적이 이뤄지기 시작하면 대규모 산업 활동으로 이어지므로 기업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 일단 투자하도록 하고 그 지역에 발을 들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완성차 메이커가 새로운 라인 증설을 결정할 때 중요한 요인은 공장부지의 매입과 인프라 시설의 구축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이러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곤란하다”며 “자동차 산업 유치라는 닭이 먼저냐, 부품업체 및 환경 조성이라는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기타규슈의 경우 달걀을 정부가 지원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비유했다. 연말 예산 정국에서 정부와 여의도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12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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