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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가이야르, 이브 뀌에롱, 프랑수와 빌라르 

북부론 와인거장 3인방을 만나다 

오승일 포브스 차장 사진 김현동 기자
프랑스 북부론 지방의 최고 와인메이커들이 한국의 와인애호가들과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북부론을 대표하는 와인들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였다.

▎프랑스 북부론 와인의 중흥을 주도하고 있는 와인거장들. 왼쪽부터 피에르 가이야르, 이브 뀌에롱, 프랑수와 빌라르.
피에르 가이야르(Pierre Gaillard), 이브 뀌에롱(Yves Cuilleron), 프랑수아 빌라르(Fransois Villard). 북부론 와인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세 거장을 지난 12월 8일 서울 청담동 네이처포엠 JJ 중정 갤러리에서 만났다. 각자의 와인은 물론 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레 뱅 드 비엔(Les Vins de Vienne)을 한국의 와인애호가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북부론 와인거장 3인방이 빚어낸 와인들은 과연 어떤 매력을 담고 있을까. 그들의 와인에 대한 철학과 끊임없는 열정을 소개한다.


꼬뜨 로티(Cote Rotie), 꽁드리유(Condreu), 생조셉(Saint Joseph). 그 이름만으로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프랑스 북부론 최고의 와이너리들이다. 이들은 리옹부터 발랑스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론강을 따라 가파른 언덕들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이 지역 와인들이 명성을 회복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귀한 와인들을 생산하던 곳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오랜 전쟁으로 와인 산업은 점점 침체됐고, 가파른 경사면에서 일할 노동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포도밭도 황폐해졌다. 버려졌던 꼬뜨 로티, 꽁드리유, 생조셉을 다시 화려하게 부활시킨 주인공이 바로 북부론 3인방이다.

이들이 북부론 와인거장으로 불리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세씨엘(Seyssuel)의 부활이다. 19세기까지 명성이 이어졌던 곳이지만 필록세라(Phylloxera, 진드기의 일종)의 재앙에 휩쓸린 후 포도밭은 메말라갔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몇 번의 복원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오랫동안 이 땅은 잊혀졌다. 세씨엘이 다시 와인지도에 떠오른 건 1996년 북부론의 거장들이 뭉치면서부터다.

1996년 이브 뀌에롱은 리옹을 여행 중이었다. 어느 날 그는 리옹에서 25㎞ 떨어진 세씨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가파른 경사지역에 위치한 세씨엘은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뜨겁고 건조했으며 바람이 심해 병충해가 적었다. 포도밭 입지로는 최고였다. 그즈음 피에르 가이야르는 역사가들의 문헌을 탐구하던 중이었다. 그는 로마시대에 칭송받던 와인들의 역사를 공부하다 세씨엘이 유명한 고대 로마도시인 비엔(Vienne)으로 당대 최고의 와인을 빚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두 사람은 프랑수와 빌라르에게 토양 조사를 부탁했고 세씨엘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 이들 3명은 세씨엘을 재건하기로 의기투합했고, 이들의 열정으로 탄생한 와이너리가 바로 고대 로마도시의 이름을 딴 레 뱅 드 비엔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레 뱅 드 비엔은 어떤 와인일까.

피에르 가이야르는 “우리 셋은 각자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토론한다”며 “각기 다른 개성들을 대화를 통해 하나씩 맞춰가다 보면 어느 샌가 모두가 만족하는 와인이 탄생해 있다”고 말했다.

개성만점 3인3색 와인 스타일

이날 행사에서는 세 거장들이 각자의 특성을 살린 3개의 도멘(Domaine, 포도원)과 이들이 뭉쳐서 만든 레 뱅 드 비엔까지 모두 4개 도멘의 대표 와인들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특히 이들의 서로 다른 개성은 3개 도멘에서 만든 비오니에(Viognie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피에르 가이야르의 비오니에는 아로마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섬세하면서도 복잡한 꽃향과 과일향이 풍부하게 어우러진다. 이브 뀌에롱이 선보인 비오니에는 살구, 시트러스, 제비꽃의 아로마가 느껴지며 신선한 피니시가 돋보인다. 프랑수와 빌라르가 만드는 비오니에는 상큼한 산도가 인상적이다.

세 거장이 만들어낸 비오니에의 맛과 향이 모두 다르듯, 이들이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 또한 다르다. 피에르 가이야르는 100% 가정식 와인을 만들기 위해 가지치기, 포도나무 기르기, 포도 숙성, 배럴 에이징 등을 모두 직접 관리한다. 특히 그는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와인을 빚는다는 신조를 지녔다. 진한 색상, 섬세하고 순수한 아로마, 세련되고 우아한 타닌이 그가 빚어내는 와인 스타일이다.

그는 열두 살부터 포도 경작에 관심을 보였다. 부르고뉴 본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몽페리에(Montpellier)에서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말리발(Malleval) 지역의 끌로 드 뀌미나이유(Clos de Cuminailles) 포도밭을 구입해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7년 첫 빈티지를 출시했고, 2002년 바뉼 수르 메르(Banyuls-sur-Mer)의 포도밭, 2007년 남프랑스 포제르(Faugeres)의 포도밭을 구입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브 뀌에롱은 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클로드 뀌에롱(Claude Cuilleron)은 1920년에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삼촌 앙투안느 뀌에롱(Antoine Cuilleron)이 1960년 포도밭을 인수했다. 1987년 삼촌에게 꽁드리유, 생조셉의 포도밭을 물려받은 이브 뀌에롱은 1989년 꼬뜨 로티를 인수하고, 1992년 베를리유(Verlieu)에 와인 셀러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떼루아와 빈티지를 잘 표현하는 와인을 추구한다. 가급적 수확량을 적게 조절해 더 응집력 있고 균형감 있는 와인을 빚는다.

프랑수와 빌라르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부르고뉴 와인이다. 절제력 있는 숙성 기술과 제한된 오크 에이징을 통해 자신만의 와인 세계를 창조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있으며, 와인으로 높은 점수나 상을 받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3인의 거장이 빚어낸 명품 와인들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끈 와인은 무엇보다 3인방이 합작해 탄생시킨 레 뱅 드 비엔 와인이었다. 로마시대 기록에 따르면 세씨엘 지역에는 비티스 알로브로지카(Vitis Allobrogica)라는 포도가 재배되고 있었고 3개의 크뤼(Cru, 포도원)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 3개의 크뤼가 떼루아의 특성에 따라 소타넘(Sotanum), 타부르눔(Taburnum), 헬루이쿰(Heluicum)으로 불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마이 와인즈에서 수입하는 레 뱅 드 비엔 시라 소타넘 2012(Les Vins de Vienne IGP Syrah Sotanum 2012)가 소개됐다. 시라 100%인 소타넘은 풀보디 와인으로 프렌치 오크통에서 16개월간 숙성시킨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질감, 좋은 구조감을 보여준다.

샤프 트레이딩이 수입하는 피에르 가이야르 꼬뜨 로띠 2012는 시라 90%, 비오니에 10%다. 다양한 토양에 심어져 있는 포도들을 블렌딩해 풍미가 좋다. 시라 품종의 강인한 성격과 타닌을 최대한 표현하면서도 비오니에 품종을 약간 블렌딩해 부드러움을 더했다. 장기 병 숙성이 가능한 와인이다.

생조셉 루즈-끌로 드 뀌미나이유 2012(St. Joseph Rouge-Clos de Cuminaille 2012)는 시라 100%다. 피에르 가이야르가 1981년에 구입한 첫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경사가 심한 이 포도밭은 떼루아 성분을 100% 표현하고자 시라 품종만 재배한다. 농축된 과일향에 초콜릿과 커피, 오크향이 어우러지고 질감은 부드럽다. 단단한 느낌의 와인이라 디켄팅을 하면 그 성격이 더 잘 드러난다.

생조셉 블랑 2012(St. Joseph Blanc 2012)는 루산느(Roussanne) 100%의 화이트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생조셉 블랑은 루산느와 마르산느(Marsanne)를 블렌딩하지만 피에르 가이야르는 미네랄 느낌을 좀 더 표현하고자 루산느 품종 100%로 만들었다. 모과향과 미네랄 성분이 조화를 이뤄 질감이 튼실한 느낌을 준다.

비노쿠스에서 수입하는 이브 뀌에롱 생조셉 아마리벨르(Saint Joseph Amarybelle)는 시라 100% 와인이다. 18개월 오크 숙성해 산도 있는 과일향, 스파이시, 구운 향 등이 어우러지며 잘 숙성된 타닌을 느낄 수 있다. 피니시는 신선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는 와인을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을 레이블에 적용한 이브 뀌에롱의 스페셜 와인 뀌베 부라소(Cuvee Bourasseau)도 소개됐다. 레이블 작업을 하는 프랑스의 유명화가 로베르트 부라소(Robert Bourasseau)가 현장에서 직접 자신의 그림들을 설명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다.

-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201601호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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