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 

좋은 슈트가 좋은 남자를 만든다 

글 오승일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클래식 맞춤슈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CEO를 만났다. 남자들의 옷차림에 품격을 더하는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 그의 성공 비결과 슈트 철학을 소개한다.

서울 한남동의 고즈넉한 주택가 골목. 파란색 지붕이 인상적인 아담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쇼윈도에 걸려 있는 슈트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이곳은 곽호빈 대표가 국내 남성들에게 올바른 멋내기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문을 연 테일러블이다. 2007년 오픈한 이래 남다른 감각의 스타일을 선보여온 테일러블의 맞춤슈트는 대기업 오너를 비롯해 수많은 셀러브리티와 전문직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명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곽 대표는 “테일러블은 서울이란 도시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라며 “서울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낸 슈트가 바로 테일러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슈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을 텐테.

어린 시절부터 멋내기를 좋아했다. 아버지 옷장에 있는 재킷을 몰래 꺼내 입기도 했고, 멋지게 슈트를 차려 입은 고전영화 속 주인공들을 흉내 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잘 만든 슈트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이 옷에 레이블이 없어도 정말 좋은 옷일까. 열심히 파고들다보니 맞춤슈트가 그 해답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슈트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어서 10대 후반에 영국으로 건너가 유명한 테일러들을 따라다니며 슈트를 공부했다. 지금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옷을 입고 디자인을 한다.

설립 초기 어려움은 없었나.

지금 매장이 있는 이 건물은 원래 지어진 지 60년 된 방앗간이었다. 2층은 주인 내외가 살던 집이었고 테라스는 주인 할머니가 가꾸던 화단이었다. 방앗간 한 편의 8평 공간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정말 많이 찾아왔다. 그만큼 맞춤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중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회사의 오너도 있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주로 어떤 고객들이 매장을 찾는가.

고급 라인인 와인 라벨은 젊은 CEO나 연예인들이 대부분이고, 매스티지 라인인 블루 라벨은 고객층이 더 다양하다. 연령대로 보자면 30~50대가 가장 많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해 배우 송중기·조승우·장근석, 가수 서인국, 야구선수 류현진 등이 자주 오는 단골들이다. 영화 <도둑들>이나 MBC <무한도전> 같은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최근 맞춤숍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곳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훌륭한 재단사를 찾는 것은 훌륭한 이발사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이발사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듯 우리 가게에서도 그런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올바른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장점이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맞춤 서비스를 하고 있다. 어떤 점이 다른가?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고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진정한 맞춤슈트라면 고객이 주문한 자리와 옷이 완성되는 거리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비스포크는 ‘Be Spoken For’에서 유래됐다. 18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의 성으로 재단사를 불러 원하는 옷을 주문했다. 글로벌 브랜드도 대부분 처음에는 작은 공방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버린 지금은 그런 긴밀함이 부족하다. 고객들과 장인이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옷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테일러블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테일러블 슈트의 매력이라면.

우리는 서울이란 도시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탈리아나 영국에서 들여온 스타일을 그대로 입는 건 우리 문화와 정서에 맞지 않는다. 사실 한국은 슈트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다. 우리 가게를 찾는 고객들 중에도 더블 슈트를 부담스러워 하는 분이 있다. 회사에서 아무도 입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더블 슈트는 역사가 오래된 복식의 하나고 외국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의상이다. 여기에 우리만의 정서를 담아낸다면 충분히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울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낸 슈트. 이것이 테일러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 맞춤슈트의 가치를 높이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테일러블 본점. 클래식 슈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맞춤슈트 전문점 테일러블에선 모든 공정이 핸드메이드로 이뤄진다.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마스터 테일러를 비롯해 재단·피팅·바느질 등 각 파트별로 22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정성껏 옷을 만든다. 슈트 원단에서부터 버튼까지 모든 소재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공수한다. 사소한 부분까지도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완성되는 테일러블의 맞춤슈트는 바느질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패턴은 물론 단추 컬러, 안감의 원단, 포켓 위치까지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맞춤이 가능하다. 고급 라인인 와인 라벨의 경우 슈트 한 벌을 만드는 데 보통 5~6주 정도 걸리며 한 달에 25벌만 한정 제작된다.

옷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

입는 사람이 돋보일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고객에게 감사 전화를 받았다. 우리 슈트 덕분에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은 계약을 따냈다는 것이다. 미팅 때마다 고객이 입고 있던 슈트에 상대방이 호감을 느꼈고 그래서 믿음이 갔다고 하더라. 이런 인사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슈트를 멋스럽게 입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사이즈를 알아야 한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으면 10년은 젊어 보일 수 있다. 특히 슈트를 매일 입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재단과 소재로 만든 옷이 필요하다. 슈트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려면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봄에는 어떤 슈트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나.

슈트는 패션이 아니다. 정해진 공식이나 약속된 룰대로 입어야 하는 옷이다. 유행을 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대신 올봄에는 다양한 컬러에 주목해 볼 것을 권한다. 포브스 독자라면 미술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 거기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색채를 옷 입는 데 써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전시회에서 본 마크 로스코 그림의 빨간색이 인상적이었다면 빨간색 양말이나 행커치프를 포인트로 매치해보는 거다. 이렇게 매일매일 자기 나름대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며 옷을 입는다면 삶이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다.

옷을 대하는 관점이 확실히 남다른 것 같다. 당신에게 슈트는 어떤 의미인가?

좋은 슈트가 좋은 남자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좋은 슈트를 입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사도가 사라진 요즘 시대에 좋은 슈트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사들이 대를 이어 입을 수 있는 좋은 슈트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테일러블만의 스타일과 기술력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특히 오는 6월에는 슈트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트렁크쇼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만의 섬세함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글 오승일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201604호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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