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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래 한국도키멕 대표 

대기업 임원 우산을 버리고 광야에서 성공한 유압기기 글로벌 강자 

글 최영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이노비즈협회의 추천을 받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강소기업 시리즈 두 번째는 유압기기 분야의 강자 한국도키멕이다. 수입품이 전부였던 유압기기 분야에서 국산화에 성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것은 R&D에 집중한 결과다.

▎대기업 임원 대신 창업에 도전했던 조홍래 대표. 수입품 일색이던 유압기 분야에서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면, 그 선택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자동화기기의 핵심인 유공압(유압과 공압)기기 분야의 강소기업 한국도키멕 조홍래 대표(60)는 선택의 기로에서 ‘직장’이 아닌 ‘업’을 선택했다. 대기업 임원이라는 우산을 버렸기에,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유공압 제조 기업 한국도키멕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79년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곳은 대기업 한화였다. 입사 교육을 마치고 부서를 배치하는 과정에서 조 대표를 포함해 3명만이 마지막까지 배치를 받지 못했다. 속으로 ‘지방대 출신이라서 그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이 됐다. 마침내 그가 배치받은 부서는 그룹 기획조정실. “기조실이 뭐하는 곳인지 몰랐다”고 조 대표는 회고했다. 나중에 그룹 회장을 보좌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기조실에서 일하는 이들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들이었다. 기조실 직원들은 그에게 “어떻게 여기에 배치됐느냐,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입사시험에서 2등을 해서 기조실에 배치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입사 18년 만에 임원에 올랐지만 창업 선택

조 대표는 기조실 배치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졸업한 대학이나 출신 성분이 어디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직장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동기들과 일하다 보니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직장 생활이 새로운 시작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일하는 게 좋기만 했다. 흔히 말하는 일 잘하는 신입사원으로 인정받았다.

기조실 신사업팀에서 처음으로 유압기기 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선배가 유압 분야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고, 함께 스터디를 했다. 미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1980년 한화기계는 도쿄게이키와 손잡고 유압기기 사업을 시작했다. 입사 1년 만에 조 대표는 한화기계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 유압기기 분야는 걸음마 단계였다. 기술력이 부족해 직접 제조를 하지도 못했고,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한화기계 유압기기 분야도 일본에서 기기를 들여와 한국에 파는 영업 역할에 그쳤다. 유압기를 팔기 위해 구두 밑창이 다 떨어지도록 현장을 돌아다녔다.

조 대표가 속했던 유공압사업부는 5명으로 시작했던 볼품 없는 조직이었다. 나중에는 직원이 100명이나 되는 큰 조직이 됐다. 성장을 견인했던 조 대표는 42살에 대기업 임원이 됐다. 1997년 입사 18년 만에 유압과 시스템사업부가 통합된 정밀시스템사업부 이사가 된 것. “당시 그룹 내에서 40대 초반에 임원이 되는 것은 처음 있던 일이다”며 웃었다.

기쁨도 잠시, 1997년 IMF가 한국의 대기업을 덮쳤다. 한화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베어링 사업 부문을 독일 기업에 매각했고, 회사는 그에게 2개의 사업부를 맡겼다. 총괄영업상무로 승진을 했다. 대신 조직원의 30%를 구조조정해야 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한화기계와 손을 잡고 유압기기 사업을 했던 일본의 도쿄게이키도 독립을 선언했다. “일본에서 한국 지사를 맡아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조건은 저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있어야 했고, 지사 설립 자본금의 50%를 가져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쉽게 말해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 30%의 직원을 구조조정하고 임원으로 살아가는 것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업을 선택하기로 하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했다. 고맙게도 30여 명의 직원들이 나를 지지했고 나와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한국도키멕이라는 한일 합자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퇴직금 5억원과 은행에서 대출한 5억원, 총 10억원을 투자해 한국도키멕을 설립했다. 이때 대기업의 우산을 버리고 함께 광야로 나온 이들은 여전히 한국도키멕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30여 명으로 시작했던 회사는 현재 130여 명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도키멕은 ‘도쿄 메카트로닉 & 일렉트로닉’의 줄임말이다. “현재 일본에서 도키멕은 도쿄계기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브랜드를 살려야 한다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매출액의 4~5% 연구개발에 투자


B2B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도키멕은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이다. 유압기기 분야도 일반인에게 낯설기는 마찬가지. 유압기기는 자동화기기에서 근육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다. “유압기기는 사람으로 치면 근육에 해당한다. 팔다리를 움직이려면 근육을 움직여야만 하고, 자동화기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유압기라는 근육이 필수적이다”고 설명했다. 근육을 움직이는 매개체가 기름이면 유압, 공기면 공압이다. “유압은 힘이 세고, 공압은 스피드가 빠르다”고 덧붙였다.

한국도키멕 설립 이후 조 대표가 집중한 것은 국산화였다. 당시 한국 시장에서 유압기기는 대부분 수입이었다. 파카, 이튼, 보쉬 등 글로벌 기업 제품만이 한국에서 사용됐다. 전세계적으로 유압기 시장은 1조6000억원, 하지만 국내 시장은 2000억원도 되지 않는다. 어떤 대기업도 이 조그마한 시장을 위해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았던 것. “국산화가 가장 시급했다. 그래야만 조그마한 한국시장을 넘어 해외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방법은 R&D에 집중하는 것. 매년 매출액의 4~5%는 R&D에 투자했다. 2001년 평택공장에서 처음으로 국산 제품 출시에 성공했다. 일본 본사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직접 만드느냐, 우리 것을 수입해서 팔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조 대표는 “나도 엔지니어다.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2003년에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매출액은 200억원에 불과했지만 밀어붙였다. 현재 연구소에는 14명의 인원이 한국도키멕의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R&D에 집중한 결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유압식 사출성형기다. 조 대표는 “회전수 제어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유압 동력이 필요 없을 경우 모터를 정지시키는 시스템이다.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를 줄일 수 있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차별화’는 조 대표가 임직원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다. 과거 제품을 누가 빨리 만들고 가격 경쟁력을 가지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제는 경쟁사의 제품과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줘야 하는 때다. 차별화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키멕의 제품은 두산·LS엠트론·포스코·현대중공업·대우건설 같은 한국의 대기업과 아토스·CKD·이탈그룹 등의 해외 기업과 파트너를 맺고 있다. 국내외 300여 개 기업이 한국도키멕의 제품을 쓰고 있다.

임직원 자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학자금 지원

조 대표는 글로벌 진출도 서둘렀다. 2006년 중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중국 시장에 바로 내다팔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11년이 됐는데 중국에서 개발된 제품은 LS그룹과 일본기업에 납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70억원의 투자를 했지만, 아직까지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고 있는 상황. “어떻게 중국 공장에서 이익을 만들까를 고민 중”이라며 조 대표는 웃었다.

한국도키멕은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꼽힌다. 자산만 400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번듯한 사옥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잘하는 분야만 해야지, 괜히 이상한 데 투자하면 금방 쓰러진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 대표는 ‘3정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정도 경영, 정밀 경영, 정성 경영을 말한다.

정도 경영은 한국도키멕의 경쟁력이다. 경영성과는 모든 직원과 공유한다. 심지어 조 대표의 하루 일과도 모든 직원이 알도록 공개하고 있다. 매월 이사회에서 감사를 받고 있고, 일본 본사도 정기적으로 감사를 나온다.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적은 편이다. 경영에 대한 것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직원이 자기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직원을 뽑을 때도 이른바 스펙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좋은 인재를 뽑아서 그곳에 맞는 일을 주지만, 우리는 일에 맞는 인재를 뽑는다. 직원 선발 기준은 적재적소가 아니라, 적소적재다”라고 강조했다.

10여 년 전부터 모든 임직원 자녀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자금을 받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 두 명을 둔 임직원은 1년에 1000만원의 학자금을 받게 된다. 각종 동호회 지원도 기본이다. “임직원의 주택융자금 이자는 회사가 대신 내주는 것도 고려 중이다”고 조 대표는 자랑했다. 신입사원 연봉은 3000만원 정도, 여타 중소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투자다. 한국도키멕이 2년 연속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선정된 이유다.

2016년 조 대표의 목표는 700억원 매출과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직원이 행복해야 기업이 성장한다. 돈도 돈이지만, 직원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

- 글 최영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605호 (201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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