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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더캉 보스덩그룹 회장 

한류 타고 온 중국 ‘의류왕’ 

창수(중국)=최은경 기자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기회의 땅’ 중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올해 초 포브스에 따르면 중국 부자 상위 50명 가운데 자수성가형 부자는 49명, 상속자는 단 한 명이었다. 중국의 창업자들은 어떤 유전자(DNA)를 지니고 있을까. 중국 최대 패딩 기업 보스덩그룹의 가오더캉 회장을 중국 현지에서 만나 중국 경제의 역사, 중국 패션시장 트렌드, 한국 기업과의 제휴, 부(富)를 일군 창업스토리를 들어봤다.

▎가오더캉 회장은 “한 기업의 성공은 출발점이 아니라 전환점에서 찾을 수 있다”며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중국 경제를 되짚었다
4월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장쑤성(江蘇省) 창수시(常熟市)에 도착했다. 창수에서도 가장 동쪽 지역에 패션기업 보스덩그룹의 본사가 있다. 도시는 한적했다.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다. 보스덩그룹은 이 지역의 자랑거리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보스덩 공장에서 일한다. 시정부에 낸 세금이 많게는 연 10억 위안(약 1700억원)을 넘는다. 가오더캉(64·高德康) 보스덩그룹 회장은 이곳 창수시 구리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상하이에 사무소를 두고 대도시에서 먼 곳에 본사를 세운 것은 고향을 개발하려는 그의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본사로 들어서자 20만㎡(약 6만평) 부지 한가운데 높게 솟은 현대식 빌딩과 양쪽으로 공장, 보스덩 매장, 내빈을 위한 보스덩호텔이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다.

보스덩그룹은 중국 최대 다운재킷(패딩) 회사로 중국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 전역에 6600개 매장이 있고 연 매출 규모는 1조5000억원 정도다. 정규직원만 2만 명을 넘는다. 2012년에는 영국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어 유럽에 진출했다. 2007년에는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부지 면적이 30만㎡에 달하는 장쑤성 쓰홍현 공장을 비롯해 항저우·산둥성 등 6개 지역에 대규모 공장이 있다.

14일 오후에 방문한 본사 공장은 보스덩그룹의 패딩 브랜드 스노우플라잉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이었다. 10만㎡ 규모에서 1100명가량의 직원이 연 80만 장의 패딩을 생산한다. 비수기인 봄·여름에는 노스페이스·콜롬비아·토미힐피거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는데, 노스페이스와 콜롬비아 방한복의 80~90%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공장 안내를 맡은 보스덩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싼 동남아시아 노동비 때문에 부담되지만 품질과 기술 면에서 더 나아 걱정 없다”고 말했다.

보스덩은 중국의 ‘국민 패딩’


‘이얼싼(하나 둘 셋)! 찰칵!’ 다음날 오전 본사 21층 회장실에서 만난 가오더캉 회장은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기자를 촬영한 뒤 곧장 그 자리에서 기자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러더니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번호를 저장하라고 손짓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중국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을 사용하는지도 물었다. 비서인 닛코 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치는 ‘필수 코스’”라며 웃었다.

사진 찍고 번호를 저장하는 이유가 뭔가.

교류하려면 기억해야 하지 않나. 전화번호가 너무 많아 사진을 찍어놓아야 누군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그룹 회장들은 휴대전화 번호를 잘 공개하지 않는다.

연락처를 공개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 정보를 공개해야 상대방이 나를 믿는다. 어차피 정보화시대라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지 않나. 남색 정장에 독특한 스타일의 구두를 신고 나타난 가오더캉 회장은 시종일관 당당한 풍모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는 4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중국 패션업계의 유명인사다. 보스덩은 20년 동안 패딩 분야에서 1위를 지켜 ‘국민 패딩’으로 불린다. 가오더캉 회장은 거침없이 생각을 피력하다가 갑자기 기자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자수성가형 기업가답게 시원시원하고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나.

1976년 자전거 한 대, 재봉틀 8대가 사업 밑천이었다. 처음 재봉일을 시작한 구리진 마을은 사람들이 매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재봉사인 아버지에게 일을 배워 친척과 지인들의 옷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있어 일을 곧잘 했다. 재봉일을 한지 1년이 지나자 일감을 아버지와 둘이서 감당하기 벅찼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구해 마을 사람 11명을 모았다. 나는 팀원 중 가장 어렸지만 사람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사람들을 모아 팀을 꾸리자는 의견을 누가 냈나.

내 아이디어였다. 아버지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다. 항상 기본을 강조하셨다. 그런 장인정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또 마을에 일이 없는 사람이 많아 사계절 동안 일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

1978년 가오더캉 회장은 ‘산징(山涇)의료공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가공 대행, 즉 OEM을 시작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게 된 역사적 계기가 있었다. 당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내놓으면서 개인이 자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고 시장 경제로 변화가 시작됐다. 가오더캉 회장의 공장은 변화의 물결을 타고 규모를 키워갔다. 1980년부터는 상하이의 공장에서 일을 받아왔다.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타고 창수에서 상하이까지 200㎞를 달려 원단을 날랐다. 왕복하는데 무려 15시간이 걸렸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업그레이드’됐다. 속도가 빨라져 매일 두세 번씩 상하이를 오갔다. 5년 동안 오토바이를 6대나 교체할 만큼 열심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가.

타고난 성격인 것 같다. 항상 1등을 추구한다. 스스로 잘해야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내 생각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두 사람 몫의 일을 했다. 남자 바지는 17분, 셔츠는 25분, 여성 블라우스는 20분이면 만들었다. 이런 시간관념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가오더캉 회장이 이렇게 일군 재산은 1조3000억원가량이다. 포브스 중국 부자 256위, 세계 억만장자 순위로 1694위다. 그는 전국인민대표를 맡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의 부인 메이둥(梅冬) 보스덩그룹 부회장은 2014년 중국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중국 여성 부호 리스트에서 16위에 올랐다. 당시 재산이 105억 위안(약 1조8000억원)이었다. 가오더캉 회장은 부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본사 22층 옥상에 작은 가옥을 지어놓고 이곳에서 가정식 반찬에 소박한 식사를 즐긴다.

맨손으로 부를 일굴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는 대규모 자산을 축적했고 일반인들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중요한 건 기회를 잡는 것이다.

그 기회를 패딩에서 찾은 건가.

OEM을 하면서 기본 기술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공장이 꽤 잘 됐다. 그때쯤 상하이에서 사람들이 패딩을 입고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패딩은 부피가 크고 원단과 색상이 단조로운데다 생산 공정이 복잡해 의류업체들이 꺼리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 개쯤 갖고 있는 기능성 옷이기 때문에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가오더캉 회장은 기술력을 쌓기 위해 1984년부터 ‘슈스덩’이라는 패딩 브랜드의 OEM을 맡았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한 것은 1992년이다. 이 해 1~2월에 일어난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또 한번의 계기가 됐다. 남순강화는 덩샤오핑이 상하이, 선전 등 남쪽 지역을 다니며 개방 확대를 주장한 것으로 가오더캉 회장은 이 때 기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이름 따 보스덩으로


▎중국 장쑤성 창수시에 있는 보스덩그룹 본사.
왜 그렇게 생각했나.

개혁개방 이후 많은 브랜드가 쏟아져 나왔다. 상하이의 유명 브랜드를 보며 브랜드 파워를 느꼈다. 미국 보스턴에서 이름을 따 보스덩이라고 지었다. 도시가 깨끗하고 하버드 대학 같은 명문대가 있지 않나. 국제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를 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인연인지 2005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주제가 뭐였나.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보스덩그룹의 부상(浮上)’이었다. 한 기업의 성공은 출발점이 아니라 전환점에서 찾을 수 있다. 보스덩이 발전한 것은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중요한 시점에 맞춰 기업 성장과 시대적 진보를 함께 실현했기 때문이다. 강연 첫 문구가 “보스덩이 세계를 따뜻하게 하 겠다”였다. 강연 이전 10년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보스덩은 중국에서 패딩의 대명사로 불린다. 보스덩 외에 스노우플라잉, 콤보(사계절 패딩, 캐주얼), 삥지에(패딩), 보스덩옴므(남성복) 등의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보스덩 패딩이 오랫동안 중국 1위를 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혁신이다. 창업 첫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어떻게 혁신할까’ 고민한다. 디자인·기술·브랜드부터 경영관리까지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해왔다. 많은 경쟁에서 실패를 겪었지만 일찍 선두 주자가 된 것이 비결이다.

보스덩그룹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가오더캉 회장은 “1990년대의 부피가 크고 뚱뚱해 보이는 빵 모양 패딩을 가볍고 아름다운 패션으로 바꿨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40년 동안 위기도 많았겠다.

1994년에 처음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경험 부족이었다. 23만장을 생산해 8만 장밖에 못 팔았다. 800만 위안에 달하는 은행 대출금 만기도 다가왔다. 잠이 들어도 땀 범벅이 돼 금방 깨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보스덩은 끝’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도 포기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

그때 베이징 왕푸징백화점에서 이월상품을 싼값에 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행사에 참가해 2만 여장을 팔아 대출금 800만 위안을 벌었다.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거다. 위기를 겪으며 자체 브랜드를 가지려면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기존 보스덩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유행 요소 부족, 색감 부족, 낮은 원단 품질, 큰 부피, 조잡한 마감 처리를 해결하기 위해 매달렸다. 60%였던 오리털 함량을 90%로 늘리고 품질이 우수한 털만 사용했다. 특히 디자인 역량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현재도 수석디자이너는 부회장급 대우를 한다. 그 이듬해 연간 판매량이 62만장으로 늘면서 1995년부터 죽 패딩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뿌듯한 일은 뭔가.

2007년 ‘월드 브랜드(World Brand)’로 선정된 것이다. 중국 정부에서 선정하는 것인데 그 이후로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에서 보스덩 패딩이 판매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은 10~15%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에 보스덩 브랜드로 진출할 것”


▎보스덩그룹의 자체 브랜드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 (OEM) 매출 비중은 8대 2 정도다. 장쑤성 공장에서 노스페이스· 콜롬비아 같은 글로벌 브랜드 방한복의 80~90%를 생산한다.
제일 주력하는 국가는 어디인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으면 일본, 러시아를 거쳐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한국에 진출할 계획도 있나.

물론이다. 한국이 인구는 많지 않지만 유행에 굉장히 민감하다. 중국에서도 한국 제품이 인기가 높다. 지난해 8월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매장과 디자인을 현지화해 보스덩 제품을 판매하려고 한다. 한국의 젊은 층이 타깃이다. 온·오프라인 사업을 모두 살피고 있다. 5월에 한국에 직접 가서 시장을 돌아볼 참이다. 한국에 디자인 사무실, 연구개발센터를 만들 생각도 있다.

이미 한국에 패딩 브랜드가 포화상태다. 경쟁력이 있을까.

보스덩은 30년 넘게 패딩을 개발·생산해왔다. 다른 브랜드들과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 보스덩은 중저가의 대중적인 브랜드지만 고품질을 자랑한다. 친환경 충전재를 사용하고 기능이 뛰어난 제품이다.

눈 여겨 보는 한국기업이 있나.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삼성·LG·현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삼성은 중국에서 ‘삼성 제국’이라고 불린다. 삼성의 글로벌 마케팅, 연구개발(R&D) 기술에서 중국기업이 배울 점이 많다. 이랜드, 락앤락도 중국에서 인기다. 패션 기업, 온라인 기업 등 많은 한국 기업과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

보스덩 제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훌륭하다고 하더라.

가격과 품질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가격은 기술력으로 더 낮출 수 있다. 같은 가격으로 고품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기술과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보스덩 그룹은 최근 사업을 확장하며 교복업계에 진출했다. 한국의 교복업체 스마트에프앤디와 4월 합자회사를 설립해 9월부터 중국에서 총판 사업을 할 계획이다. 스마트는 디자인과 기획을, 보스덩은 생산과 유통을 담당한다. 형지엘리트 역시 4월 초 중국 패션기업 ‘빠우시냐우’와 손잡고 중국 교복시장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교복시장을 6조원으로 추산한다.

왜 교복시장인가.

중국에서 교복은 운동복이라고 불린다. 사이즈가 크고 품질이 떨어진다. 지난해 6월 정부가 교복 구매, 디자인 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발표하면서 브랜드 경쟁 시대로 진입했다. 두 자녀 가정이 는 것 역시 호재다. 스마트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훌륭하고 보스덩은 판매 활로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모델은 한·중 기업의 좋은 협력 사례가 될 것이다.

중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에게 성공 팁을 준다면.

중국은 지역마다 문화 차이가 커서 사전에 엄격하고 철저하게 시장조사를 해야 한다. 또 중국은 한국처럼 정(情)으로 통하는 사회다. 반대로 말하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사업을 하기 쉽지 않다. 중국 기업과 합자방식으로 진출하면 장벽이 낮아질 것이다. T몰, JD닷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점차적으로 현지화를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국 패션계의 최근 화두는 무엇인가.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달하면서 네티즌의 영향력이 커졌다. 패션 파워블로거가 유명 연예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인물에 집중하면 유행을 읽을 수 있다. 1990년대생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단순함을 추구하고 자기 취향이 확실하다. 중국 패션기업들은 이런 점에 주목한다. 보스덩의 주요 고객층은 30·40대지만 더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어떤 변화인가.

가령 온라인 사업 비중이 현재 10~15%인데 점점 늘릴 계획이다. 오프라인에서 얻은 이익을 온라인에 투자하고 있다. 또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 맞춰 2012년 1만 3000개이던 매장을 6600여 개로 줄였다. 작은 매장들을 줄이고 베이징 왕푸징 거리, 상하이 난징 거리 같은 번화가에 매장을 크게 열어 이미지를 바꿨다.

사업을 하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나.

보스덩은‘국민 브랜드’, ‘국민 패딩’으로 불린다. 그런 만큼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와 나누려고 한다.

태어난 마을에 280억원 기부


▎가오더캉 회장이 태어나고 사업을 시작한 ‘콤보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별장을 새로 짓고 주변환경을 가꿨다.
보스덩 본사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콤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가오더캉 회장이 태어나고 처음 재봉실을 만든 곳이다. 보스덩 브랜드 ‘콤보’에서 마을 이름을 따 왔다. 52㎡부지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323개 별장이 있었다.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마을을 신식으로 꾸민 주인공이 가오더캉 회장이다.

‘콤보촌’을 만든 이유는.

1996년 어느 정도 성공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해 나누고 싶었다. 중국에서는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이런 식으로 마을을 후원한다. 당시는 마을이 가난했다. 공기 정화를 위해 산도 인공으로 만들었다. 1억6000만 위안(약 280억원) 정도의 개인자금을 들였다.

가오더캉 회장에게 한국에 눈에 띄게 상속형 부자가 많은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한국은 가족제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기업이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강조했다. “능력은 부족한데 눈만 높아서 한번에 출세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혁신을 강조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핵심은 항상 패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전통적인 패딩에서 벗어나 가을 패팅, 컬러 패딩 같은 혁신 아이템으로 패딩은 겨울에만 입는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최근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몽클레어에서 수석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캐주얼·아동복·여성복·남성복으로 라인을 확장하고 패딩은 50% 비중을 유지해 종합패션기업으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또 패딩의 회수, 분해, 재활용 분야도 연구하고 있다. 몇 년 안에 보스덩연구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김장윤 보스덩 한국지사장은 “중국 내 한류 열풍을 이용해 한국의 인기 패션·뷰티 제품을 중국 보스덩 매장에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몇몇 매장에서 한국의 네일 용품을 판매하며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이에 가오더캉 회장은 “머잖아 한국 브랜드들과 협상이 마무리되면 도입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상품 판매를 넘어 한·중 문화교류에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창수(중국)=최은경 기자

201605호 (201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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