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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3) 최훈 웹툰 작가 

내 작품은 신나게 논 나의 흔적... 주변엔 ‘놀 거 투성이’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진행, 정리 유부혁 기자
포브스코리아와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명품 셔츠 S.T.듀퐁 클래식이 한 가지 업에 매달려 온 업태의 장인을 만나 그들의 직업 철학을 들어보는 기획 세 번째. 지난 2월 웹툰 ‘삼국전투기’를 완결한 최훈 작가를 만났다. 2007년 1월에 시작해 꼬박 10년을 연재했다. S.T.듀퐁 셔츠에 ‘놀 거 투성이’라고 새긴 그는 “내 작품은 내가 논 흔적이다. 놀 게 너무 많다”며 웃었다.

송길영 부사장은 최훈 작가를 만나고 싶어했다. “10년 동안 빼놓지 않고 삼국전투기를 봤다”며 팬심도 드러냈다. 임시공휴일이었던 지난 5월 6일, 경기도 용인에 자리잡은 최훈 작가 작업실. 9평 남짓한 작업실에 최훈 작가, 송길영 부사장, 사진 작가, S.T.듀퐁 관계자, 기자 이렇게 5명의 남자가 옹기종기 모였다.

그가 수집한다는 건담 프라모델과 박스가 한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을 뿐 작업실은 단출했다. 책상 옆 찢어진 가죽 소파가 눈에 띄었다. 최훈 작가는 “침대를 가져다 놓으면 아예 푹 잘 것 같아 잠시 쉴 수 있는 불편한 소파를 가져다 놓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송길영(이하 송 ): 최훈 작가 웹툰을 처음 본 게 하대리다. 다른 웹툰 작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체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 같더라. 그런데 최 작가 그림체는 하대리부터 GM이나 삼국전투기까지 큰 변화 없이 일 정하던데.

최훈(이하 최 ): 어릴 적 만화를 많이 봤다. 어머니는 “고시생이었던 너희 아버지는 만화 보느라 고시에 떨어졌다”면서 만화를 싫어하셨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는 당신이 사온 만화를 보고는 “자, 읽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얼리어댑터’였다. 전자제품이면 뭐든 사오셨다. 칼라방송 전에 우리 집엔 이미 칼라TV가 있었다. 뭐든 많이 봤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만화가 될 생각은 못했다.

아버지는 고시생, 어머니는 얼리어댑터


송: 만화가 이전에 등단을 했던데?

최: 대학교 3학년 때 문학계간지를 통해서다. 시드니 샐던의 책, 무협지 등을 많이 읽었는데 당시 인터넷 통신 ‘천리안’에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이 계기였다. 내 글에 대한 평이 상당히 좋았다. 당시는 출판시장이 좋았다. 주변에 아는 선배들이 다니던 좋은 직장 그만두고 글을 썼는데 더 잘나가더라.

송: 그림은 어디서 배웠나?

최: 만화가를 찾아갔지만 공부나 하라고 하시더라. 허영만 선생님께도 찾아갔지만 배울 기회는 얻지 못했다.

송: 스승은 누구인가?

최: 일본으로 갔다. 일본 가면 그림을 예쁘게 잘 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일본 만화학교에선 그림을 배울 수 없었다.

송: 그럼 뭘 가르쳐 주나?

최: 그림은 개성이기 때문에 “네가 알아서 그려라”고 하시더라. 테크닉보단 만화가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웠다.

송: 뭘 배웠나?

최: 일본 출판사 찾아가서 많이 배웠다. 그들은 내 그림에 대해 자세한 평가와 함께 전략도 가르쳐 줬다. 일본은 전수 문화가 발달했다는 걸 느꼈다.

송: 일본이 최훈 작가에겐 아주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최: 일본 가려고 결혼했고 일본에서 자녀가 생겼다. 내 성격이 부끄럼이 많다. 당시 여자친구가 “나 일본가서 그림 배우고 올게”했더니 따라오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27살에 결혼하고 일본으로 갔다. 난 지금도 ‘결혼’이 날 만화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송: 한국에 들어와 바로 만화가 생활을 시작했나?

최: 생계를 위해 집사람은 화학강사, 난 영어강사를 했다. 그러다 6개월 만에 일간스포츠에 하대리를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무대리를 연재하시던 이상무 선생님이 일간스포츠에도 만화를 연재하기로 하고 한 달을 미루신 덕분이다. 만화잡지였다면 내 그림을 터치했겠지만 일간스포츠는 만화 전문지가 아니어선지 내 그림을 건드리지 않더라. 다행히 연재 일주일만에 지면도 늘려주고 한달이 지나니 칼라 지면에 넣어주더라. 그렇게 3년을 연재했다. 그래서 그림체가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송: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계속 무언가 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카톡’ 최훈 작가는 카카오톡 메신저 소리에 모니터 화면을 보더니 양해를 구하고 잠시 ‘마감’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카톡을 보낸 건 그의 어시스턴트라고 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그가 말했다. “됐습니다.” “그림을 빨리 그리는 편인가?”라고 묻자 “막히지 않으면 금방 그려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송: 하대리와 삼국전투기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시작했나?

최: 난 회사를 다녀 본 적이 없다. 하대리는 내가 좋아서 그렸다기 보단 상화(상화기획)에 떠밀려 그렸다. 그러니 이후엔 하대리 배경이 점점 회사와 관계 없는 곳이 됐다. 삼국지는 흔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주변 만화계 선후배가 다 말렸지만 난 정말 해 보고 싶었다. 실제로 재밌게 작업했다. 난 지금도 후배들이 “그림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나?”고 물어오면 “하고 싶은 걸 신나게 하라”고 말한다. GM역시 야구붐이 올 걸 예상하고 그린 작품이 아니다. (GM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네이버에 연재한 야구 웹툰이다. 지금은 GM2라고 할 수 있는 ‘클로저 이상용’을 스포츠동아에 연재중이다.)

송: 동의한다. 기업이 시장을 보고 들어가면 이미 늦다. 만화 이야길 더 해 보자. 오타쿠 시장은 팬이 전문가다. 만화 역시 숙성된, 완성도 있는 작품이 아니고선 오래가기 힘든 영역이다.

최: 맞다. 독자라는 지성 집단과 마주했을 때 이길 수 있을 만큼 내공을 길러야 한다.

송: 일본 야구 팬들은 25년 역사를 줄줄 외고 미국은 100년 치 데이터를 줄줄 외운다.

최: 삼국전투기는 댓글이 1만개 달린 적도 있다. 깊은 통찰력 있는 댓글이 참 많다. 내 경험으론 우리나라 덕후들은 일본보다 깊다.

송: 삼국전투기에서 제갈량을 여자로 해석했다. 해석이 역사가 될 수 있는데 부담스럽진 않나?

최: 독자 수준이 높다. 삼국지 원전 캐릭터를 모두 이해하고 삼국전투기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 아들에게 삼국지 서적 중 삼국전투기를 맨 먼저 권할 것”이라고 말하는 팬이 있는데 그건 말리고 싶다.

송: 최훈 작가의 웹툰을 해석하는 블로그가 있던데. 몇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송길영 부사장이 말한 블로그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블로그’로 삼국전투기를 재해석하고 오류를 짚어내는 등 대표적인 삼국전투기 관련 블로그다. 블로그 운영자는 2013년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나 역시 자주 찾는 사이트였다. 부음을 접했을 때 마치 가족이 곁을 떠난 것 같았다. 그 분의 해석을 모두 인정할 순 없지만… 지적사항에 대해 나 역시 다른 이름으로 댓글을 달며 그 분과 소통했다.

송: 만나보고 싶은 팬은?

최: 하대리때부터 댓글을 다는 분이 있다. 내 속을 꿰뚫고 계신 분이다. 하지만 만나고 싶진 않다. 좋아할 수록 먼발치에서 그냥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분은 기아팬이다.

송: 삼국전투기를 10년간 연재했다. 업로드가 늦어 원망도 많았다.

최: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손이 안 움직이더라. 해석하는 건 재밌지만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꼬박 9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서 고민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그림은 30분이면 다 그리는데… 결과적으로 재미난 일 하면 시간은 빨리 가고 싫어하는 일은 느려지더라.

송: 완결하니 어떤가?

최: 180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 컴퓨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는 점 외엔. 사람 외엔 다 발전한 것 같다. 권력, 질투, 욕망 등 사람 속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다. 그리고 싶은 게 많아선지 완결에 대한 감흥은 없다.

일본 전국시대 다룬 작품 준비 중


▎10년 동안 연재한 웹툰 ‘삼국전투기’를 완결한 최훈 작가가 그의 팬을 자처한 송길영 부사장에게 자신의 직업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송: 역사를 안다는 건 미리 살아본다는 거란 생각이 든다.

최: 그래서 다른 역사물을 준비하고 있다.

송: 뭔가?

최: 일본 전국시대다. 삼강오륜이 없는 시대다. 부하가 상사를,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역사. 최소한의 질서가 무너진 시대를 그리려고 한다. 공부하다보니 일본 전국시대와 지금이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송: 어떻게 준비했나? 전문가를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최: 자료를 상당히 많이 구하고 공부했다. 아마존으로 중고서적도 많이 구했다. 이어서 군주론도 준비하고 있다.

송: 사관에 대한 부담은 없나?

최: 편견없는 아내 덕분에 균형을 배웠다. 야구 만화를 연재하면서도 균형을 배웠다. 야구팬들은 지적이나 평가에 대해 아주 예민하다. 또 편견 때문에 크게 창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표현에 있어 균형 감각을 익혔다.

송: 셔츠에 ‘놀 거 투성이’라고 새긴 이유는 무엇인가?

최: 노는 게 내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내가 논 흔적이다. 삼국전투기로 10년 열심히 놀았다.

송: 삼국전투기 인물 중 누굴 좋아하나?

최: 장효를 좋아한다. 그보다 장비에 대한 캐릭터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장비는 스마트한 인물이다. 술 먹고 사고치는 인물이 아닌데 관운장과의 대비 때문에 그렇게들 알고 있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진행, 정리 유부혁 기자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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