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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3) 

기업이 하던 인사에서 시장(市場)이 하는 인사로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도입문제로 촉발된 노사정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오른쪽)은 최근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연되는 기관에는 인건비 등을 동결 또는 삭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요즘처럼 임금체계가 화두가 된 적이 없다.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도입문제로 촉발된 노사정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한다. 한 일본 학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말했다. “위험한 발상이다. 성과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아니라 제도 도입에 인센티브를 준다니….” 임금에 대한 기본 인식이 정부나 경영계, 근로자 모두 잘못돼 있다는 뜻이다. 이걸 뜯어고쳐야 한다. ‘임금은 주는 게 아니라 지불하는 것이고, 받는 게 아니라 버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래야 임금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잡을 수 있고, 개편 방안도 떠올릴 수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소속 연구위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리로 치면 한국노동 연구원과 같다. 다만 한국처럼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아니라 독립기구라는 점이 다르다. 문답 중간에 임금 관련 세계적인 석학인 도시샤(同志社)대학 이시다 미쓰오(石田光男) 교수와 일본 렌고(連合, 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총국 관계자의 생각을 담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인건비 관리 방식이 많이 변한 걸로 안다.

예전엔 법이나 제도에 맞춰 임금을 주면 됐지만 정년이 연장되고, 성과와 생산성이 중시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총액인건비 관리기법을 도입했다. 학자나 정부, 컨설턴트의 권유에 따른 게 아니다. 기업 스스로 인건비를 더 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관리를 타이트하게 한다. 적자를 낸 기업은 더하다. 기업이 자금조달을 할 때 예전엔 은행을 통해 조달했지만 부동산 버블붕괴로 (담보능력이 떨어져)은행을 통한 조달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주식이나 채권으로 조달한다. 그러려면 배당을 많이 해야 한다. 주식구매자는 배당이나 주가를 보기 때문이다. 배당을 많이 하기 위해 인건비를 더 철저히 관리하게 된다. 배당율은 올라가는데 인건비가 안 오른 이유다.

시장에서 전해지는 사인(sign)이 인사로 연결돼

일본 기업이 인사와 임금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한 게 뭔가.

기업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인사를 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자연스럽게 ‘사람 관리’에서 ‘일 관리’로 바뀌었다. 이게 인사와 임금관리 체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시장에서 전해지는 사인(sign)을 조직 내부로 연결시킨 것이다.

일본 기업에서 직무급은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장치산업 일부에서 직무급이라고 하는 제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무에선 직무급이 아니다. 일본기업에선 개인의 직무능력에 따른 인사이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회사의 인사이동명령에 따라 배치되기 때문에 사실상 회사가 직무를 정해준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직무 급을 ‘운명급’이라고 한다. 회사의 인사에 따라 임금이 높은 직무로 갈 수도, 낮은 직무로 옮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걸 근로자는 납득하지 못한다. 회사도 인사에 애로를 겪는다. 그래서 일본에서 직무급은 사라지고 있다.

이시다 교수는 “일본 기업에서 무엇을 하라는 것은 있어도 ‘당신의 JOB(직무)은 이거다’라는 게 없다. 따라서 일본에는 직무의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TASK(업무과제)가 모여서 JOB이 되는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임금제도는 회사마다 각각 달라

그래서 도입한 게 일본만의 독특한 역할급인가.(이시다 교수는 “역할급과 직책급은 같다”고 했다.)

예전엔 과장이나 과장보가 임금이 비슷했다. 역할이나 책임의 무게가 다른데도 말이다. 역할급은 역할에 따른 책임의 무게값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둔다. 성과나 역할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근속연수가 긴 부장급이라도 책임값이 낮은 차장이나 과장급으로 역할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역할에 따라 임금이 낮아진다. 굳이 총액인건비 관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나이에 따라 임금을 깎거나 퇴직시킬 이유가 없어진다. 사실상 역할급은 직능급에서 연공급(호봉제)의 거품을 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역할급에서도 성과를 반영한다. 즉 같은 과장이라도 성과에 따라 임금이 다르다.

이와 관련 렌고 관계자는 “같은 직급이라고 해도 임금 차이가 나는 걸 나쁘다고 하면 안 된다. 근거있는 차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근속이 같아도 근태가 나쁘면 차이를 둘 수 밖에 없다. 장년층의 경우 재고용된 뒤 일이 예전과 같다면 같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은 갖고 있다. 그러나 역할이 달라지거나 하면 다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은 기업마다 임금제도가 모두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컨설팅 회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찍어낸 듯 비슷한 임금체계를 가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내 회사 문제를 왜 컨설팅회사에 맡기느냐는 자율기조가 강하다.

일본 경영계나 학자 중에는 제도를 많이 바꾸지만 실제는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나이에 따른 생계비를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수십년 간 크게 변하지 않아서다. 예컨대 55세 이후로 가면 자녀가 성인이 되니까 생활비가 줄어든다. 그래서 임금이 준다. 대체로 55세부터는 정기승급이 멈추든지, 떨어지도록 임금체계가 설계돼 있다.

신입사원 초임이 대·중소기업 간에 차이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선가.

그렇다. 특히 일본은 직접 써보고 그에 따라 급여를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예컨대 덴키렌고(電氣聯合)와 사용자측(6개사, 히타치·파나소닉·호지쓰·미쓰미시·NEC·샤프) 인사노무담당이 춘투 때 노사교섭을 하면, 사전에 서로 임금액을 교환하지 않았는데도 초임이 1엔도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일본제철의 경우 인사채용 담당자가 “면접 때 돈 이야기를 꺼내면 절대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렌고 관계자는 “대졸 초임이 거의 같을 정도로 비슷한 건 사회적 수준에서 동의 가능한 임금을 기업이 지급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시다 교수는 이와 관련 “나쁜 기업일수록 초임이 높다. 파친코나 카바레 같은 게 그런 곳이다. 초임이 기업마다 같아도 사람은 미래를 보고 입사하기 때문에 좋은 기업일수록 인재는 계속 오게 마련이다. 한국을 몇 번가서 재벌기업들을 돌아봤는데, 임금체계나 수준을 보고 ‘여기에 예전 일본기업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김기찬 -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인력경영 전공)을 수료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며, 고용노동 분야 선임기자로 일한다.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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