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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4) 4차 산업혁명 이후 억대 연봉자의 조건 

 

김동호 중앙일보 기자
누가 억대 연봉을 받을까. 의사·변호사 같은 월급쟁이 전문직, 금융회사와 대기업 고참 부장이 억대 연봉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과연 억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 조건은 무엇일까.

▎중앙포토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십중팔구 퇴직할 때까지 1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연봉을 받다가 퇴직하기 십상이다. 억대 연봉을 손에 쥐어 보더라도 시기가 50세가 다 됐거나 퇴직 무렵이다.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억대 연봉자는 의사·변호사 같은 월급쟁이 전문직, 금융회사와 대기업 고참 부장이들이다. 이들은 과연 억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 조건은 무엇일까.

국내 억대 연봉자가 최근 50만명을 넘어섰다.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소득에 대한 연말정산 대상 근로자 1668만7000명 중 연봉 1억원이 넘는 근로자는 52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2010년 28만명이었으니 급격한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증가율은 2010년 42.3%에서 2014년 11.4%로 뚝 떨어졌다. 억대 연봉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3.1%였다. 신입사원이든 경력사원이든 회사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을 확률은 3%라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전통적 임금체계 흔들려

그런데 여기에 포함될 확률은 이미 입사할 때 어느 정도 결정된다. 중소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으로 입사해 국장급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트랙이라면 애초 억대 연봉과 거리가 멀다.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은 금융회사와 공기업, 대기업으로 좁아진다. 이들 업계는 최고의 인재를 선발해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연봉을 많이 주는 곳에 우수한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대 연봉’의 공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오랫동안 급여 체계의 근간이 됐던 호봉제 기반의 임금체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제껏 은행원의 평균 연봉이 높은 이유는 호봉제 때문이었다. 한국 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대졸 신입 정규직 초임은 4074만원이다. 민간 금융기관의 대졸 초임은 4092만원이다. 군대 경력을 인정해주는 대다수 은행에선 대졸 남성 직원의 초임이 4432만원에 달한다.

이같이 일단 은행에 들어오면 처음부터 초임 수준이 높게 출발한다. 이후에도 정년까지 성과에 상관없이 거의 해마다 연봉이 오른다. 임금이 동결돼도 호봉에 따른 상승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은행과 증권사에는 이런 호봉제가 더 이상 쓸모없어지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뱅킹으로 소비자가 이동하면서 인원과 지점 감축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인력이 넘치면 임금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이런 변화는 모두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되고 있다. 올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는 앞으로 5년 내 일자리 700만 개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새로 등장해 결과적으로 500만 개가 사라진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근로에 대한 보수체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이르면서 과거의 연공서열에 기반한 종신고용과 호봉제는 그 근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호봉제는 기본적으로 경험과 숙련을 반영하는 보상 시스템이다. 조직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업무 지식과 기술이 앞설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작동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극단적으로 보면 과거의 지식이 불필요하다. 심지어 어제의 지식도 오늘에는 필요 없는 시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종이로 만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사라진 지 오래됐고, 아무리 콘텐트가 좋아도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세상이 된 건 이런 변화의 흐름을 반영한다.

호봉제의 한계는 노동시장에서 확인된다. 호봉제는 국내 임금체계의 기본 틀이었지만 갈수록 노동시장에 심대한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있어서다. 단기 성과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해 왔다. 1900만명이 넘는 임금근로자 가운데 32.5%에 달하는 627만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로 채워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봉제 체제에서는 기업이 과도한 인건비로 경영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보완장치로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해왔다. 고용의 외부화는 내부 인력의 호봉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급속도로 약화시킨다. 최근 국내 기업이 주요 분야에서 급격히 경쟁우위를 잃고 있는 것도 이같이 정규직 중심의 호봉제가 가져온 폐단과 무관치 않다. 호봉제는 과거 고도성장할 때는 제값을 했다. 누구나 열심히 일했고 사내 구성원 간에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파이가 커질 때마다 나누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 호봉제가 강화되면서 부작용이 쌓여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보호가 필요한 중소기업은 오히려 노조의 도움을 못받고 대기업은 빠른 속도로 노조를 결성해 나갔다. 노조의 관심은 생산성보다는 직원의 임금과 복지 향상에 맞춰져 왔다. 이로써 호봉제는 오히려 연공성이 강화됐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줬다. 기업이 외부 경영 환영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호봉제를 완화하고 연봉제와 성과배분제 도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규직 중심의 호봉제가 가져온 폐단


하지만 그 결과 노동시장은 내부에는 정규직, 외부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중구조가 형성됐다. 정규직의 연공성이 강화되면서 부담이 커진 기업이 비정규직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다. 비정규직에 대한 승진과 보수 차별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은 48.4%에 그치고 있다. 정규직이 굳건하게 호봉제를 지키고 있는 건 이같이 비정규직의 희생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이런 비합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임금체제는 개편돼야 한다. 그 해법은 호봉제를 점진적으로 성과연봉제로 전환하는 임금체계의 개편이다.

성과주의(meritocracy)는 과거 한국 사회에는 잘 맞지 않는 제도였다. 서양처럼 처음부터 주식회사 제도가 번창하고 직무와 직능에 따라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도 직무를 기준으로 임금체계를 짜야 할 때가 됐다. 예컨대 삼성전자 내부에 연구직, 개발직, 생산직, 마케팅직, 관리직으로 나누어 임금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단순직에 불과했던 운전기사가 고액의 연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직무와 성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고 누구나 운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고액연봉 운전기사가 없어졌다. 바로 여기에 힌트가 있다. 고액연봉 운전기사가 없어진 것처럼 성과연봉제를 하려면 전면적인 직무분석을 실시해야 한다.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작업은 아니다. 어느 기업이나 여러 직무에 대한 기본 분석은 돼 있다.

이를 토대로 기본급을 책정하고 나머지는 성과에 연동하는 방향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큰 충격없이 임금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호봉제가 최근 근로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에드워드 러지어(Edward Lazear)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정년과 임금 곡선을 통해 설명된다. 호봉제는 전체 근무연한 중 받는 급여가 일정한 비율로 상승한다는 전제로 작동한다. 신입사원보다 과장이 더 받고 부장은 이보다 더 받는 방식이다. 이 체제에서는 40대를 중심으로 한 경력중기에는 성과 대비 보수가 적다. 하지만 이 때 덜 받은 보수는 55세를 초과해 진입하는 경력 후기에 받게 되면서 보상 받는다는 얘기다.전면적 직무분석 뒤 성과연봉제 도입해야.

전면적 직무분석 뒤 성과연봉제 도입해야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공공기관부터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반대하는 등 논란이 뜨겁다. 왼쪽 사진은 5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지방공기업 CEO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하는 김성렬 행정자치부 1차관.
그러나 극단적으로 보면 어제의 지식도 오늘이 되면 필요없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험과 숙련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획기적 혁신이 있어야만 성과를 내고 적어도 현상유지가 가능한 시대에 입사 연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연봉을 많이 주는 호봉제는 작동하기 어렵다. 호봉제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사실상 종신고용이 막을 내리면서 성과주의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호봉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직무와 능력에 맞춰 보상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환경 변화에 맞춰 정부와 경영자총연합회는 적극적으로 성과 연봉제 도입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앞장선다는 자세다. 성과연봉제가 확산되면 공공부문은 ‘신의 직장’이라는 별명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321개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예탁결제원의 평균 연봉이 1억491만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1억469만원인 한국투자공사(KIC)였다. 이는 연봉이 높다는 시중은행들의 평균 연봉 9000만원 선이나 자동차ㆍITㆍ전자 등 대기업의 8000만원 선을 웃돈다.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공공기관이 사기업보다 급여가 많은 건 정상이 아니다. 이는 올해 1월 28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내놓은 배경이 되고 있다. 영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PRP, performance-relatedpay, 성과별 지급)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교육, 의료부문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 전체적으로 업무 효율 향상이라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현재 공공기관에서 실시 중인 호봉제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2010년 6월에 ‘간부직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간부직에 해당하는 1~2급 직원들에 한해 연봉 제도를 성과제로 전환했다. 이번에 발표된 권고안에 따라 적용 대상은 대폭 확대된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바뀐 점을 분석하면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적용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현행 방안은 간부직(2급 이상)을 대상으로 했지만, 개선안은 4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전체 인원의 70% 수준이다. 기본연봉의 차등 폭도 넓어졌다. 기존 호봉제에선 직급과 호봉이 동일할 때, 직원간 급여의 차이가 없었다. 이번 개선안은 1~3급에 대해 평균 3%(±1.5%)가 나도록 했다. 다만 이번 개선안은 4급에 한해 성과연봉 비중을 축소함으로써 정책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한 업무성과 평가가 중요할 텐데, 성과연봉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업무성과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가 필수다. 이에 대해 ‘평가지표 설정시 직원의 참여’, ‘외부 전문가의 평가단 참여’등의 방안을 세워 정부, 기관, 노사가 모두 협력해 공정한 업무 성과 평가 절차를 확립하기로 했다. 정기준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공기업은 6월 말, 준정부기관은 12월 말까지 관례법령과 지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한다는 정부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가 필수


▎지난 5월 1일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성과연봉제 저지를 주장하는 노조원들.
공공기관은 공공성이라는 특성뿐만 아니라 기업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340개 공공기관 중 성과연봉제 시행 대상으로 지정된 120곳 가운데 일부 기관의 노조는 업무의 특성상 개인성과 평가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기업도 기업이므로 기본적으로 측정과 평가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정부 차원에서도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 역시 2017년부터 성과연봉을 사무관까지 확대하면서 성과연봉제의 확대를 추진 중이다. 사회 시스템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무관 이상 공무원은 그동안 행정고시 한 번으로 평생을 보장받았다. 성과에 대한 객관적 측정이 이뤄지지 않는 구조에서 낙하산을 통해 인생이모작까지 보장받는 인사보상체계에선 정책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 성과연봉제가 널리 확산되면 노동시장 유연화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정규직 중심의 임금 인상에 제동이 걸리고 인적자원의 내부화가 강화될수 있다. 하지만 연봉을 많이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연봉을 많이 주면 근로자가 만족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근로자는 연봉 이외에도 자아실현이나 직무와의 적합도를 고려해 직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시장 평균보다 임금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우수인재 유출이 시작된다. 증권사에서는 100만원만 더 줘도 직장을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다. 완전 성과연봉제가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직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근로자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이 전제돼야 한다. 또 성과평가에 대한 체계적인 세부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직원의 참여와 동의는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부 때 워크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신입사원 임금 차등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패한 이유는 이런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직무급 체계도 강화돼야 한다. 개발연대에나 통용됐던 순환보직 체계는 첨단시대에 부적합하다. 호봉제는 근로자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 동기부여를 부족하게 만들고 경직성 비용 증가로 경기 변동에 대한 기업의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는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지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임금인상을 생산성과 연계하고 임금체계를 유연화하는 성과주의 강화가 산업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고용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국내 근로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동호 -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연세대를 나와 KDI(한국개발연구원) MBA와 동국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쓴 책으로『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등이 있다.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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