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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전시 <백남준쇼>기획한 김방은 예화랑 대표 

‘백남준 스타일’로 백남준을 말하다 

양미선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38년 전통의 예화랑이 <백남준쇼>를 통해 미디어 아트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화랑계의 ‘작은 거인’ 김방은 대표가 마련한 대형 기획전 <백남준쇼>를 즐기러 떠나보자.

▎김방은 예화랑 대표. 백남준의 ‘자화상’과 ‘꼭두각시’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녀에겐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백남준이 타계한 지 1년이 흐른 2007년, 서울 여의도 KBS신관 특별전시관에서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갑작스럽게 타계했던 만큼 그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작품들을 모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한 추모전이었다. 김방은(44) 예화랑 대표는 그 전시회장 한 쪽에서 문제의 초대형 작품 ‘거북’을 만났다. 그리고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꽂혔다’. 100개는 족히 넘을듯한 TV 모니터를 장착한 거북 모양의 초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에서는 다채로운 영상이 쉴새 없이 흘러나왔다.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전시회장을 떠난 뒤에도 이 초대형 전자거북의 이미지는 한동안 김 대표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순간 작가의 작품을 오롯이 즐기기에는 뭔가 연출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9년 뒤에 초대형 기획전 <백남준쇼>의 탄생으로 이어질 줄은 김 대표 자신도 정말 몰랐다.

그리고 2016년 8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김방은 대표는 밝고 활기에 넘쳤다. 같이 있는 사람의 기분도 들뜨게 만드는 활력과 미소였다. 백남준의 ‘자화상’과 ‘꼭두각시’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녀에겐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음~ 올해가 백남준 10주기죠. 하지만 10주기 기념으로 전시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맞아떨어진 거죠.” 김 대표가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2006년 백남준 타계 이후 10년이 지났고, 그가 살아 있었다면 84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7월 20일의 다음날에 김 대표가 9년 동안 숙제처럼 준비한 <백남준쇼>의 막이 올랐다. 단순히 추모전 성격의 전시회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백남준이 살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어떤 전시를 했을까?’ 라는 질문의 답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김 대표가 보는 백남준은 어떤 예술가였을지? 또 궁금했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회에 담아냈을지가.

김 대표에 따르면, 백남준은 늘 시대를 앞서갔다. 항상 첨단을 달렸다. 그리고 백남준은 TV, 비디오 레코더 등 당시의 첨단 기술을 사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백남준의 이런 성향을 전시회에 반영하고 싶었다. 김대표는 작정하고 삼성전자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열정으로 백남준의 작품 ‘TV 뷰작’(1985)을 삼성전자의 최신 TV인 ‘삼성 SERIF TV’로 리메이크할 수 있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이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작품인 ‘Hommage to Paik Nam June’이 ‘삼성 퀀텀닷 SUHD TV’로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작품은 현재 DDP 배움터 <백남준쇼> 전시장 입구에 전시돼 있다.

생전의 백남준은 많은 이들과 콜라보하는 것을 즐겼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첼리스트이자 행위예술가 샬럿 무어맨이다. 그래서 <백남준쇼>에서도 두 번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졌다. 앞서 말했던 최종범 작가가 ‘TV 첼로’ 위 천정에 낭만적인 미디어 아트를 선사했다. 길게 늘어뜨려진 천 조각에 하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 다른 미디어 아트팀 디스트릭트(D’STRICT)는 ‘거북’이 전시된 곳 바닥을 화면으로 삼아 자연을 형상화한 그래픽으로 채웠다. 새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등이 포함된 3분짜리 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거북 등껍질에 앉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백남준식 콜라보레이션도 현대적으로 재현


▎‘TV 샹들리에’를 본적이 있는가? 김방은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느껴보길 바라고 있다.
이처럼 <백남준쇼>는 그동안 개최된 백남준 전시회와는 차별화된 즐거움을 선사한다. 국내 화랑계의 대표주자인 예화랑과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YG PLUS가 공동 개최한 이번 전시회의 작품은 대부분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인 그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HOPE(희망), NOSTALGIA(향수), LOVE(사랑), INFINITY(영원·무한), IDEA(이데아) 등 5개 섹션으로 나눠 배치됐다. HOPE 섹션에선 전세계가 TV로 소통하는 세상을 원했던 백남준이, NOSTALGIA 섹션에선 독특한 예술 세계를 가졌던 백남준이 보인다. INFINITY 섹션에선 자신과 동료 예술가들의 육신은 떠나더라도 작품만큼은 세상에 영원히 남기를 소망하는 백남준이 있다. 백남준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주력한다는 것이 다른 백남준 전시회와 차별되는 포인트다. 러닝 타임이 1시간이 넘는 ‘M200’을 느긋하게 볼 수 있도록 의자를 설치하고, ‘TV 샹들리에’ 밑에 앉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백남준 작품은 예술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워요.” 김 대표는 솔직히 인정했다. 대중에게 백남준의 예술은 파격적이라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어 거리를 두게 된다.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타블로의 목소리로 한국어와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해 제공하고 오전 11시부터 2시간마다 약 30분간 도슨트 투어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화랑의 큐레이터들이 기계음과 배경음악으로 약간 시끄러운 전시장에서 휴대용 마이크와 스피커를 들고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한다. 김 대표가 직접 도슨트로 나설 때도 있다.

‘거북’에 반한 건 2007년이었지만 본격적인 전시회 준비는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2014년에 ‘거북’의 개인 소장자를 우연히 알게 된 후 또 ‘거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했다. 결국 6개월 후 그 소장자에게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대여를 부탁했다. 이후 1년간 백남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다. 그렇게 준비한 결과물이 초대형 기획전 <백남준쇼>다. 오로지 김 대표의 의욕과 열정으로 시작한 <백남준쇼>는 그 진정성 때문인지 관람객들에게 상당히 어필하고 있다.

백남준의 부인이자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2015년 타계)와 <백남준쇼>에 대해 의견을 나눠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쓴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통해 백남준의 인간적인 모습, 작업 방식, 작품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 책이 참 재미있다”며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남준쇼> 기념품 가게에도 판매용으로 비치해 두었다. 김방은 대표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을 찾기 어려웠다.

명가 예화랑의 2세 경영인이자 갤러리스트

예화랑은 1978년부터 운영된 한국의 중견 화랑이다. 작가의 개인전 또는 그룹전 외에도 10년 넘게 코엑스에서 매년 5월 아트페어를 주관해 오고 있다. 김방은 대표는 국내 화랑의 명가인 예화랑의 2세 경영인이자 갤러리스트로 27살 때부터 20년간 일해오고 있다. 백남준은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에서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 김 대표는 ‘거북’을 만나기 전부터 백남준 전시회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DDP에서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단지 갤러리가 좁아 ‘거북’을 전시할 만한 공간을 찾다 보니 DDP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했다. 아트페어 외에 <백남준쇼>처럼 큰 기획은 예화랑 전시회 역사상 처음이다.

<백남준쇼>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백남준의 행위예술가적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등 공연 영상만을 가지고 전시회를 해보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생전의 백남준이 <백남준쇼>를 봤다면 과연 만족했을까. 김방은 대표는 “정말 모르겠다. 상상이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지만 김 대표는 100% 만족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아쉽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부족해요.” 그럼에도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느껴보길 바라고 있다. 전시회는 오는 10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에서 열린다.

- 양미선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박스기사] <백남준쇼> 하이라이트


다비드와 마라: 1989년 프랑스 정부는 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작품 전시를 의뢰했다. 그는 마라, 다비드, 볼테르 등 혁명과 관련된 8명의 인물을 선정해 TV로봇으로 재탄생시켰고, ‘전자 요정(La Fee Electronique)’이라는 제목으로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중 ‘다비드와 마라’가 전시돼 있다.

다비드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혁명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를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졌다. <마라의 죽음>(1793)이 가운데에 콜라주돼 있는데,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혁명 동지였던 마라의 죽음을 기리는 그림이다. 정면에서 보면 오른손에 돋보기를 들고 있고 왼손엔 물감이 묻은 붓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돋보기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심장 부분에 있는 지구본이다. 민주주의가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M200: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86개의 TV 모니터로 비디오 월(Video Wall)을 만들었다. 이른바 ‘움직이는 벽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 진혼곡)과 함께 화면이 순간순간 다채롭게 변화한다. 사운드와 영상은 백남준이 직접 골랐다. 그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예견하며 언어의 장벽 없이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 즉 ‘소통’을 추구했던 것이다.


모차르트를 추모하기 위해 ‘M200’을 제작하긴 했지만 그 외에 숨겨진 의미가 또 있다.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백남준 자신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M200’을 통해 자신과 이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영원히 기록하고 남기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거북: 백남준의 최고 전성기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상 격인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제작했던 작품이 ‘동서양을 오가는 영웅 시리즈’였는데, 주요 인물은 알렉산더나 칭기즈칸 등이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영웅 중 하나인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거북’이다.


‘거북’은 166개의 TV 모니터를 사용한 가로 10미터, 세로 6미터, 높이 1.5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작품의 크기를 감안해 2.5미터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구성했다. 미디어 아트팀 디스트릭트(D’STRICT)와 협업하여 사운드와 영상도 첨가했다. 3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마치 TV 채널을 돌리듯 장면을 전환하고 거북이 있을 법한 장소를 넘나들며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진다. 김 대표가 백남준의 대표작으로 삼을 만하다.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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