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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알래스카 크루즈 

빙하와 피오르드 포구를 추억하다 

알래스카(미국)=글·사진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알래스카는 기억보다는 ‘추억’하는 공간이다. 빙하, 크루즈, 고래, 곰, 원주민의 토템들… 여행자들의 상상 속에 간직된 오랜 로망들이 알래스카로 향하는 뱃길에서는 현실로 다가선다.

▎글레이셔베이 마조리 빙하와 맞닥뜨린 프린세스 크루즈. 빙하는 굉음으로 무너져 내리며 감동의 침묵을 깨기도 한다.
크루즈 갑판에 기대 별을 본다. 알래스카의 바다에서 마주하는 별은 아득하면서도 가깝다. 1만3000톤의 거대한 배는 베링해를 가르고, 낮게 다가선 북극성에서는 별똥별이 밤하늘에 궤적을 그린다. 알래스카의 추억은, 광활한 자연과 전설 속에 하루씩 무르익는다.

알래스카의 야생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그의 저서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에서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 인디언, 토템과의 조우를 그려낸다. “숲과 빙하에 휩싸인 태고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 이방인의 염원처럼 알래스카에서 머문다는 것, 또 잠시 가로지른다는 것 자체가 전율이고 설렘이다.

세계유산 빙하 글레이셔베이


▎옛 골드러시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는 스케그웨이. 마을 코앞까지 크루즈가 닿는다.
별빛 바다에서 시선을 옮기면 거슴푸레한 빙하의 윤곽이 들썩인다. 언뜻 보면 거대한 고래 같기도 하고 몸을 웅크린 곰 같기도 하다. 별, 빙하, 고래, 곰… 동화 속에나 등장할 듯한 흥분되는 단어는 알래스카의 뱃길에서 하나씩 벗겨지는 베일들이다. 알래스카 남동부 원주민인 클링깃족은 별과 바다는 토템 속 큰 까마귀가 만들어낸 피조물로 믿고 살아왔다.

밤새 달려온 배가 바다 위에 머무는 곳도 알래스카의 빙하다. 수억 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빙하는 햇살 아래 청아한 빛을 띤다.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은 파문을 만들어내고 감동은 뱃전까지 밀려든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의 7할은 빙하를 알현하는 것. 알래스카 남동부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의 빙하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부풀어 올랐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빙하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는 ‘신의 자식’으로 불리는 영험한 존재다. 빙하 뒤로는 페어웨더 산맥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곳 빙하의 진수인 마조리 빙하 앞에서 크루즈는 한 시간 가량 호흡을 멈춘다. 들뜬 음향을 닫은 채, 바람소리, 빙하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가른다. 존스 홉킨스 빙하, 퍼시픽 빙하, 피오르드 숲을 아우르는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돼 있다. 이곳 바다 위 만큼은 담배연기, 빵조각, 비닐봉지 등이 엄격하게 규제된다.

주노는 고래투어의 출발 포인트


▎주노 멘던홀 빙하 위에서 체험하는 개썰매.
‘인사이드 패시지.’ 남동 알래스카를 잇는 1600㎞ 뱃길을 일컫는 말이다. 1000여 개의 섬과 수천 개의 만은 피오르드 해안선으로 에워싸여 있다. 주노, 스케그웨이, 헤인즈, 케치칸 등은 인사이드 패키지에 매달린 마을이다. 주노는 알래스카의 주도지만 뭍으로 닿는 길이 없다. 야무진 언덕과 비좁은 계단길, 토템 폴 등은 주노가 보여주는 이채로운 단상들이다. 주노 뒤로 흐르는 멘던홀 빙하는 헬기를 타고 오르면 윤곽이 또렷하다. 주노 시청사 앞에는 이곳이 잠시 러시아의 땅이었음을 추억하듯 러시안 만두(팔메니) 가게가 위치했다. 해질 무렵, 해변가 만두 가게에서는 LP판을 돌려 아날로그 음악을 선사한다. 그 도시에 가을을 맞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고래구경은 신난다. 주노는 고래투어의 출발 포인트이기도 하다. 탐방선은 링컨 아일랜드까지 고래를 보러 나선다. 북극곰과 상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 속의 킬러 고래도 만날 수 있다.

피오르드 북쪽, 스케그웨이는 골드러시로 붐을 이뤘던 도시에 크루즈가 닿으면서 분주해진 곳이다. 가장 오래된 술집과 매춘부의 가옥도 관광코스로 보존돼 있다. 스케그웨이에서 뱃길로 연결되는 헤인즈에서는 곰을 본다. 알래스카 곰인 그리즐리다. 연어를 우적우적 뜯어먹는 곰들이 헤인즈의 칠캣 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살고 있다. 관광 가이드인 닉이 얘기한다. “이곳에서 곰 세 마리 가족을 본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거다.” 칠캣 주립공원 일대의 투어는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게 포인트다. 수달이 물길을 오르고, 흰머리 독수리가 날아오른다. 늘상 흐린날을 간직한 알래스카 최남단의 케치칸은 게잡이 투어와 옛 수상가옥인 크리크 거리가 인상적이다.


▎헤인즈의 칠캣강에는 알래스카 그리즐리 곰이 살고 있다.
협곡에 매달린 마을과 선상 파티


▎크라운 프린세스 크루즈의 환송 파티. 선내는 파티와 공연으로 온종일 들썩인다.
기항지 투어를 끝내고 돌아온 크루즈 안은 파티가 일상이 되는 요지경 세상이다. 알래스카 인디언들은 ‘포틀래치’라는 마을잔치를 위해 한 해 번 돈을 흔쾌히 털어 넣었다고 한다. 크루즈 안팎에서 펼쳐지는 일주일간의 융숭한 일과는 그들의 포틀래치 축제를 닮았다. 크루즈에서는 신작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고, 향수를 자극하는 콘서트가 리듬을 탄다. 야외 데크에 누워 별과 함께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선상에는 스파가 있고, 한 번쯤은 멋진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파티에도 참석해야 한다. 망망대해의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이방인과 혼욕을 즐기는 꿈같은 일들이 크루즈에서는 여유롭게 반복된다.

알래스카주를 상징하는 꽃이 물망초다.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꽃이다. 미국 본토와 동떨어진 애틋한 과거를 지닌 땅, 원주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외딴 마을들. 크루즈를 탄 황혼의 부부들의 얼굴이 내내 달뜬 것은 물망초의 사연과도 다르지 않다. 알래스카 여행에서 꼭 분주한 기억들을 담아갈 필요는 없다. 잊히지 않는 ‘추억’만 가슴에 남기면 그뿐이다.

- 알래스카(미국)=글·사진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박스기사] 여행메모

가는 길: 알래스카 크루즈의 주요 출항지는 미국 시애틀이다. 크라운 프린세스 크루즈(www.princess.com) 등이 운항 중이며 주노, 스케그웨이 케치칸 등의 마을과 글레이셔베이 빙하지대를 방문한다. 되돌아오는 길에는 캐나다의 빅토리아를 경유한다. 7박 8일 일정이 주를 이룬다.

음식: 크루즈 안에는 20여 개 식당에서 세계 각지 음식들이 호텔급 서비스로 대부분 무료 제공된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부터 24시간 문을 여는 샌드위치 코너까지 다채롭다. 알래스카향이 가득한 게, 연어 요리 등 특별 이벤트 음식을 놓치지 말것.

기항지 투어: 기항지마다 빙하 헬기투어와 개썰매, 게잡이, 고래와 곰 탐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알래스카의 마을 골목과 박물관 등을 둘 러볼 수도 있다. 쇼핑을 즐기거나 현지 펍에서 맥주 한 잔 기울이는 여유로운 시간도 주어진다.

기타 정보: 탑승객이 3000명인 크루즈 안은 빠르게 돌아간다. 아침마다 방으로 빼곡한 이벤트가 담긴 선상신문이 배달된다. 공연장, 영화관 외에도 스파, 카지노, 미술관, 디스코텍, 골프퍼팅코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모두 무료이며 면세점 쇼핑 등은 객실키로 결제 가능하다. 크루즈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각별하다.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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