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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예술 명소 떠오른 F1963 

쇳가루 날리던 철강 공장이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나권일 기자 na.kwonil@joongang.co.kr
2016 부산비엔날레가 50여 년간 고려제강 수영공장이었던 3200평의 공장터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F1963’과 부산시립미술관 두 곳에서 열리고 있다. 단연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프로젝트 2가 열리는 F1963이다.

▎폴란드 작가 조아나 라이코프스카의 작품 이 걸려있는 F1963 내부. /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피아트 자동차회사의 옛 토리노 공장은 63년 동안 80여 종의 자동차를 생산해낸 산업 현장이었지만 현재는 토리노 시민들이 자주 찾는 다목적 문화단지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79)가 공장에 중정(中廷) 연못을 만들고 그 지하에 2000석의 링고토 콘서트홀로 개조한 것. 독일의 보쿰 100주년 홀, 영국의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 홀도 공장을 개조해 만든 유럽의 대표적인 예술공간으로 꼽힌다. 격년제로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 전람회인 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있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개최지 아르세날레는 원래 조선소 자리였다. 런던의 유명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도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들었다.

오래된 공장이나 산업 유산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건 이처럼 해외에선 흔한 일이다. 아시아의 문화강국을 꿈꾸는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 2016 부산비엔날레 현장을 다녀온 이들이 ‘F1963’(고려제강 수영공장)을 그 희망으로 꼽기 시작했다. 예술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 개최 장소로서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는 평이 잇따른다.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에 자리한 F1963은 미국 건축가 협회상과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한 한국의 유명 건축가 조병수(57)씨가 고려제강 수영공장(3천200평)을 리모델링해 만든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이 공장은 세계 최대 특수 선재(線材) 회사인 고려제강이 1963년부터 2008년까지 현수교, 자동차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와이어로프 생산 기지로 사용했다. F1963이라는 전시장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전시장 F는 공장(Factory)의 첫 글자이고, 1963은 공장을 설립한 해를 의미한다.

부산을 대표할 문화예술 공간 F1963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F1963’의 중정 개조 모습
F1963의 내부 구조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이 여러 개 겹쳐진 형상이다. 공장건물의 한 가운데에 마당인 중정을 만들었는데, 천장을 뚫어서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닥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채워 넣었다. 덕분에 제강공장의 한 가운데에 건물의 마당 격인 뜰이 생겼고, 학술회의, 파티, 공연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탄생했다. 중정이 가장 안쪽에 있는 사각형 배치라면 중정을 둘러싼 내부 겹공간도 사각형 배치다. 중정을 둘러싸고 맥주 바와 커피숍 등 상업공간을 배치해 쉼터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상업공간 바깥의 너른 겹공간이 바로 작품 전시장이다. 쇳가루 날리던 제강공장이 건축가와 기능공들의 손길에 힘입어 멋들어진 건축예술로 탈바꿈한 것이다. F1963은 비엔날레가 끝나면 전시관,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으로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F1963이라는 이 걸작은 ‘버려진 공장을 예술적인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의 제안을 접수한 서병수 부산시장이 홍영철(68) 고려제강 회장을 만나 성사시켰다. 창사 71년 역사에 빛나는 고려제강이 문화도시로 성장하고자 하는 부산시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맡은 윤재갑(48)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은 “이번 비엔날레가 F1963을 부산의 핵심 문화예술지대로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F1963’에서 전시 중인 부산비엔날레 ‘프로젝트2’는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전통과 현대,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아날로그와 디지털, 자본과 기술의 혼혈로 만들어진 현시대를 성찰하고, 모든 가능성을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중국의 팡뤼쥔 등 23개국 작가 56명(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화이트큐브(4각의 흰색공간)를 벗어난 영상, 설치, 회화 작품들이 많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작품들을 만나보자.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 작가 조아나 라이코프스카의 영상 작품 은 작품 제목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만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과 아버지 사이의 무너진 관계와 회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로 수송되던 중 탈출한 아픈 과거가 있다. 아버지는 그때의 상처 때문인지 가정을 꾸린 뒤에도 평생 가족으로부터, 심지어 아내를 떠나보내는 순간까지도 늘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한 번도 어린 자식의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패혈증으로 그녀가 입원을 했을 때조차도 곁에 없었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실제로는 자신과 아버지의 화해와 치유를 위해) 아버지가 그녀의 얼굴을 만져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을지 모른다. 10분여의 비디오 영상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눈을 감고 서로의 얼굴을 손으로 터치하다가 어루만지고 교감한다. 아우슈비츠로부터의 도피가 평생의 상처가 되어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던 아버지가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얼굴의 표정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보고 지나치면 연인으로 오해될 수 있는 실험적 영상작품으로 보이지만 작가의 이같은 스토리를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관객도 함께 힐링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맨 위 사진)

중국 작가 리우신이의 <세계의 중심>은 현대예술의 핵심적 요소인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영상 작품이다. 처음엔 관객들에겐 이 작품이 지도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컬러풀한 세계 지도가 아주 천천히 눈 앞에서 움직인다. 움직이는 지도에 눈길이 가는 순간 지도의 배경이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피부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지도의 배경은 당혹스럽겠지만 사람의 갈라진 엉덩이다.

증강현실 앱을 활용한 신체 예술 작품도


▎오를랑, <베이징오페라 가면 n°10>, 오를랑, 증강현실, 베이징 오페라, 150x150㎝, 2014
리우신이는 이 작품을 통해 국제적 문화 충돌과 해소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작가는 동서양의 여러 국가들이 자신의 국가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지도를 출판하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작품의 제목이 <세계의 중심>인 이유다.

작가는 세계 지도가 자전(自轉)하는 형식을 인체의 엉덩이에 투영함으로써 세계의 중심을 인간 배설물의 출구가 되도록 표현한다. 결국 절대적인 세계의 중심은 없다는 것을 작가는 해학적으로 나타낸다.

프랑스 작가 오를랑은 신체를 작업의 재료이자 시각적 지지대로 만든다. 자신의 신체 자체를 토론장으로 사용하고 전시한다. 오를랑은 데이터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관습과 ‘레디메이드’ 사고를 무너뜨린다. 사회적 통념은 물론 자연적 결정론, 남성 우월주의, 종교, 문화적 분리, 인종차별 등의 지배적인 유형에 반대한다. 오를랑 작가의 작품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여성의 신체 묘사,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인도, 중국의 문화 탐색 등 가상적인 현실을 가장 현대적인 과학, 생물학 그리고 컴퓨터 기술로 살피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최신 연작 (2014)에서 오를랑은 베이징오페라의 가면을 인터랙티브 기술에 접목하여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증강현실 앱 ‘오그먼트(Augument)’를 활용해 자기 교배(selfhybridization) 와 모든 소스들이 QR코드로 변한다. 전시 현장에서는 관람객의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오를랑의 아바타가 출연해 여성에게는 금지되었던 베이징오페라에서 곡예를 선보인다. 관람객들은 이 3D 아바타와 함께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쟝샤오강 <혈연:대가족3>, 캔버스에 유채, 190X150㎝, 1996년 작품 /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F1963 전시와 별도로 부산시립미술관에선 1990년대 이전의 한·중·일 아방가르드 미술을 소개하는 부산비엔날레 ‘프로젝트 1’이 열리고 있다. 김찬동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이 기획한 프로젝트 1은 역사기획전 성격으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샤오강의 <대가족> 시리즈를 포함해 중국작가 27명과 한국작가 23명, 일본작가 14명 등 총 64명(팀)이 전위예술 성격이 가득한 137점을 출품했다.

특히 중국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장샤오강의 <대가족>시리즈는 회색빛의 어두운 화면에 억압된 개인과 역사를, 혁명 시기의 도식화된 초상화같은 가족 이미지로 구성한 작품으로 국내 미술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작이다. 부산비엔날레의 프로젝트 1과 2는 전시 장소도 다르고 전시 성격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부산비엔날레를 즐길 수 있다.

- 나권일 기자 na.kwonil@joongang.co.kr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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