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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 (8) 

자전거 시장, 꼬부랑길이냐 전용도로냐 

정영재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정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레저 수단’이다. 그렇다면 국내 자전거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뻥 뚫린 4대강 자전거 전용도로를 질주하고 있을까, 아니면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까.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수록, 교통 체증이 심각할수록, 건강과 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자전거는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 중앙포토
국내 자전거 메이커들은 금년 5월을 잔뜩 기대했다. 1년 중 자전거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는 봄, 그 중에서도 어린이날이 끼어 있는 5월이기 때문이다. 업계 1위인 삼천리자전거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히어로 류준열이 모델로 나선 중고가(中高價) 제품 ‘아팔란치아’의 선전을 기원했다. 업계 2위 알톤도 ‘국민 모델’ 박신혜를 앞세워 공세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 시장의 올해 5월 실적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연일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효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야외활동을 꺼렸다. 심지어 지방 중소도시에서 열린 자전거 축제에 대해 그 지역 언론이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데 자전거 축제가 왠말이냐’는 비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정 에너지원이 필요하고, 그래서 자전거가 ‘친환경 교통·레저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자전거의 매출이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자전거는 앞으로도 더 사랑받을 것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수록, 교통 체증이 심각할수록, 건강과 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국내 자전거 시장 규모(2015년 기준)는 약 200만 대, 매출액 기준 약 55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2010년 이후 자전거 대수로는 매년 2.3% 정도, 매출액으로는 매년 7.2% 정도 성장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량’보다는 ‘가격’이 올라가면서 국내 자전거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전세계 자전거 시장 규모는 약 1억2천만 대다.

자전거 보급률 29%로 일본 67%에 뒤져


▎국내 생활자전거 시장은 삼천리자전거 계열(자회사인 참좋은레져 포함)이 점유율 약 60%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자전거 보급률은 약 29%로 추정되며 이는 네덜란드(98%), 독일(87%)은 물론 일본(67%)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국내 보급률 확대와 함께 수출까지 본격화 된다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자전거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주요 이용 연령층이 10대 중심에서 구매력 있는 30대 이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주요 제품군이 저가 생활자전거에서 고가의 고급형, 레저형 자전거로 바뀌고 있다.

또한 국내 자전거 업체들이 기존의 일반 자전거 시장에 머물지 않고 유아용 자전거, 전기자전거 등으로 영역을 다변화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또 교통 및 레저의 수단으로 자전거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자전거 용품 및 액서서리 쪽 시장도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자전거 시장의 성장과 트렌드 변화에 따라 정부의 자전거 산업 정책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각종 법령 정비와 인프라 확장도 자전거 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전거 제조업체는 크게 완성차를 공급하는 기업과 부품을 만드는 업체로 나뉜다. 자전거는 간단해 보이지만 3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 업체들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 자전거를 생산한다. 제조 공정상 부품의 비중이 높고 완성차의 품질도 어떤 부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핵심 부품 업체들이 ‘갑’으로 군림한다. 주요 부품인 변속기·핸들·기어·프레임 등은 대부분 표준화 돼 있고, 부품마다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따로 있다. 따라서 완성차 업체들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가 얼마나 뛰어난 품질의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느냐다.

완성차 업체는 크게 제조형과 유통형으로 나뉜다. 제조형 업체는 자체 판매망을 보유한 형태로 주요 부품을 설계해서 생산까지 한다. 또 일반 자전거부터 산악용·레저용·경주용까지 다양한 모델을 생산한다. 유통형 업체는 수입한 부품들을 조립해 판매하거나 완성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형태로, 제조형 업체에 비해 규모가 작고 중저가의 생활자전거를 주로 유통·판매한다.

현재 국내의 자전거 업체들은 유통형이 대부분이다. 생산비용 부담으로 중국 등 해외에서 OEM 방식으로 부품을 생산한 후 국내에서 부품을 조립해 주로 내수 시장에 판매한다.

2014년 기준 완성차 업체별 시장점유율은 삼천리자전거 31%, 참좋은레져(첼로) 11%, 알톤스포츠 10%로 국내 3사가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 외 대만의 자이언트와 메리다, 미국의 스페셜라이즈드 등이 4~5%씩 나눠 갖고 있다.

자전거 시장은 중저가 생활자전거와 고가의 고급자전거로 나뉜다. 국내 생활자전거 시장만 놓고 보면 삼천리자전거 계열(자회사인 참좋은레져 포함)이 약 60%, 알톤스포츠가 25%로 이 두 업체가 시장의 80% 이상을 과점하고 있다.

삼천리자전거는 1944년 창립해 72년의 역사를 이어 온 장수 기업이다. 1952년 기아산업(기아자동차 전신)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그해 국내 최초로 완성형 자전거 ‘3000리호’를 생산했다. 2007년 자사의 핵심 브랜드였던 첼로의 유통망 확대를 위해 (주)첼로스포츠를 분리시켰고, 코스닥에 상장된 첼로스포츠는 이듬해 (주)참좋은여행과 합병, 참좋은레져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의 세계적 부품업체 '시마노'가 슈퍼갑


1994년 설립한 알톤스포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체 공장(중국 톈진)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국내 대표 자전거 브랜드였던 코렉스를 인수했고, 2011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지난해 IT 소재 생산업체인 이녹스에 인수돼 차별화된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두 국내 업체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 ‘안정적인 부품 공급’이다. 현재 전세계 부품 시장은 일본의 시마노가 쥐고 흔들고 있다. 1921년 ‘시마노철공소’란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변속기·체인·브레이크·크랭크·페달 등 자전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생산한다. 26개국에 5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시마노의 2014년 매출은 3조3천억원이 넘는다. 이정호 삼천리자전거 홍보팀장은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해도 시마노에서 부품을 제때 공급해 주지 않으면 생산 자체가 안 된다. 시마노는 세계 자전거 시장의 갑중갑(甲中甲)”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비즈니스에서 안정적인 부품 조달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안정적인 유통망이다. 국내 자전거 시장의 유통망은 2014년 기준 전체 2400여 개 중 삼천리+첼로가 약 1400개(58.3%), 알톤이 약 500개(20.8%)를 차지하고 있다. 삼천리 계열이 절대강자의 위치를 가지다 보니 자전거 유통업계에서는 “삼천리가 대리점주를 상대로 ‘A 모델은 받고 B 제품은 받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 등 갑질을 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반면 삼천리 측에서는 “대리점주도 개인사업자다. 그들이 원하는 좋은 조건으로 제품을 공급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박한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삼성 제품도 팔고 LG 제품도 파는 전자랜드나 하이마트처럼 자전거도 공급 업체나 브랜드 상관없이 모두 취급하는 ‘자전거 백화점’을 만들 수는 없나. 다양한 제품과 부품을 공급할 수 있고, A/S도 좋아질텐데…’ 이에 대해 삼천리와 알톤 홍보 담당자의 대답은 같았다. “현재 여건상 쉽지 않다. 이미 유통망이 이런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없다.”

고가 자전거 시장 뛰어든 국산 ‘위아위스’


▎위아위스(WIAWIS)는 레저용 고가 자전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 velo paper
국내 자전거 시장의 트렌드는 중저가 생활자전거에서 레저형 고급자전거로 옮겨가고 있다. 고급자전거의 수요가 급증한 것은 2012년 ‘4대강 자전거길’이 완공된 시점과 일치한다. 시원하고 탁 트인 강변을 자전거로 안전하게 달리는 것은 새로운 레저로 각광받았다. 이와 함께 건강과 레저, 여행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산악자전거 열풍도 불어닥쳤다.

레저로서의 자전거를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이후의 중산층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스타일이다. 한 대 수백만원 하는 고급자전거의 성능과 스타일에 빠진 매니아들은 몇 차례 자전거를 바꾸면서 한 대 수천만원짜리 수입 자전거에 서슴없이 카드를 긁었다. 하지만 국내 메이커들은 그같은 고가 자전거를 생산할 처지가 못 됐다.

이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당찬 다윗’ 같은 업체가 있다. 박경래 대표가 운영하는 ‘위아위스(WIAWIS)’다. 양궁 국가대표 출신인 박 대표는 1988 서울 올림픽 남자양궁 대표팀 코치로 단체전 금메달을 일궜다. 그는 은퇴 후 숱한 시행착오 끝에 탄소(카본) 소재 활 ‘윈앤윈(WIN&WIN)’을 개발했다. 윈앤윈은 세계 최고 명품 활로 이름이 높다. 리우 올림픽 한국 여자팀 전원, 남자 개인·단체전을 석권한 구본찬 선수가 이 활을 썼다.

2013년 박 대표는 윈앤윈에 쓰인 나노카본 소재를 자전거 프레임에 접목해 위아위스를 개발했다. 가볍고 가속력이 좋은 위아위스는 최고 800만원을 넘는데도 지난해 30억원어치가 팔렸다. 올해 1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주니어 사이클 대회에서 위아위스를 탄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16개 중 11개를 휩쓸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사비네 스피츠(독일)도 위아위스를 타고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

박 대표는 “스포츠 용품은 최고 엘리트 선수들이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사용했을 때 막강한 제품 파워를 얻게 된다. 올림픽 사이클 경기나 투르 드 프랑스에서 위아위스를 탄 선수가 입상한다면 윈앤윈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시장에서 또 하나의 핫 이슈가 ‘전기자전거’다. 전기자전거는 PAS방식과 스로틀 방식으로 나뉜다. PAS 방식은 사람이 페달을 밟는 힘과 모터의 전동력이 합쳐진 것이고, 스로틀 방식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오토바이처럼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2만 대 정도다. 전 세계 시장(약 3700만 대)의 0.1%에도 못 미친다.

유아용 세발자전거도 판매·수출 호조


▎유모차를 겸한 유아용 세발자전거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전기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로 분류되어 운전면허가 없으면 탈 수 없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할 수도 없다. 전기자전거의 앞길을 막는 이같은 불합리한 법이 개정된다면 우리도 세계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

전기자전거는 일반자전거보다 친환경 교통 대체수단으로 적합하다. 힘을 덜 들이고 장거리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우수한 IT 기술과 접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미래 먹거리인 셈이다.

자전거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우선 시장이 커질 거라는 건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전거길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대체 교통 수단으로 자전거를 활용하기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계속 확충하고, 대중교통과 연계하기 위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주변에 자전거 주차장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따릉이’ 창원시의 ‘누비자’ 등 각 지자체별 공공자전거 사업도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전기자전거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자전거 관련 제품군이 넓어지는 것도 긍정적인 흐름이다. 유모차를 겸한 유아용 세발자전거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삼천리에서 생산하는 샘트라이크와 모디 등 유아용 세발자전거는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중국 수출 전망도 긍정적이다. 삼천리자전거는 지난 1월 국산 유모차 제조업체 쁘레베베의 지분 37.97%를 사들여 유모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자전거 용품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에서 한 해 자전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300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중앙일보 2015년 4월 21일자) 안전모 착용 등 자전거 안전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되면서 헬멧, 무릎/팔꿈치 보호대, 기능성 의류와 신발, 물통, 스마트폰 거치대 등 안전 용품과 액서서리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자전거 산업은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은 영역이 아니다.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연관 분야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관련 업계가 지혜를 모으고 파이를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정영재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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