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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코칭중심 새 인사평가 마련하는 글로벌기업들] 상대평가에서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으로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글로벌 기업들마다 구성원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의 74%가 매년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긴다.

▎GE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MS)·어도비· 골드먼삭스 등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이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다양한 성과 평가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사진은 GE의 회장 겸 CEO인 제프리 이멜트.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로 시장은 ‘규모(노동·자본)’가 아닌 ‘머리(창의적 직관력)’로 하는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바뀌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다. 과거엔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구성원간 경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목했다면 요즘은 구성원간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리처드 도보스는 저서『범상치 않은 변화』에서 “기업 경쟁에서 자본이나 노동의 중요성은 점점 퇴색하고, 지적 능력이 핵심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며 “기존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창의적 직관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GE, 10% 룰 대신 ‘PD 시스템’으로


글로벌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구성원의 창의력을 키우는 조직 문화로 바꾸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2015년 8월 글로벌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30년 넘게 고수하던 ‘10% 룰’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10% 룰은 20세기 경영의 귀재로 불린 잭 웰치가 1981년 GE를 맡으면서 도입한 3등급 상대평가다. 전체 구성원의 상위 20%에겐 성과급과 승진 기회를 제공하고, 중위 70%는 상위 등급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나머지 10%에겐 퇴출을 권고하는 다소 과격한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구성원 간 치열한 경쟁으로 GE가 급격하게 성장하자 1990년대 각국의 수많은 기업이 GE의 10% 룰을 벤치마킹한 상대평가를 도입했었다. 변화의 물결은 GE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어도비·골드먼삭스 등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이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다양한 성과 평가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현재 상대평가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은 14%(201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한국은 대기업의 74%(2015년 노동연구원 501개 기업 설문자료)가 매년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긴다.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는 상대평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해서다. 세계적인 품질 경영 전문가인 에드워드 데밍은 이미 2004년 저서『경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상대평가 중심의 성과관리는 단기적 성과주의, 숫자에 집착한 목표 수립 등으로 장기적으로 조직 내 두려움을 촉발하고, 사내정치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GE가 10% 룰 대신 선택한 게 ‘PD(Performance Development) 시스템’으로 연간 한 번 하던 평가를 수시 피드백으로 바꿨다. 이를 위해 PD@GE 앱을 도입해 직원 8만 명이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전세계 170여 개국 약 30만 명이 이용할 예정이다. 앱에는 직원들이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올라오고, 관리자는 구성원들이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조언하거나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제니스 셈퍼 GE 조직문화혁신팀 총괄부사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피드백 시스템으로 바뀌자 자연스럽게 협업이 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면서 “통상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고 평가하던 관리자의 의미도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MS는 2013년 말 10년간 유지해온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관리자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커넥트 미팅’을 만들었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업무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전 회의에서 약속한 성과를 달성했는지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는 당시 스티브 발머 전 MS CEO가 추진한 ‘원 마이크로소프트(ONE Microsoft)’ 운동의 연장선으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혁신하는 데 ‘구성원 간의 협업’ 을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체인 어도비는 2012년 새롭게 ‘체크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고민거리를 해결했다. 해마다 연초에 직원들의 성과를 발표하면 평가 결과에 불만을 가진 많은 구성원들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해 타격이 컸다. 상대평가를 과감하게 없애고 연중 수시로 관리자와 구성원이 의견을 주고 받는 피드백 구조로 바꾸자 연초에 치솟았던 이직률이 약 30%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과 관리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관리자의 코칭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LG경제연구원의 황인경 연구원은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역시 “평가 방식보다 구성원들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관리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면서 “글로벌 여행사인 익스피디아는 전 세계 20개국 매니저를 대상으로 코칭과 피드백 하는 방법을 의무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보다 ‘일하는 즐거움’이 중요

세계 석학들은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선 기존의 보상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기부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 두 가지다. 석학들은 돈·명예·칭찬·인정 등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심리적·물적 보상보다 일 할 때 얻는 즐거움, 열정, 성취감 같은 내적 보상에 주목한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불리는 다니엘 핑크는 저서 『드라이브』에서 “당근과 채찍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는 유용하지만 결과에 집착하게 하기 때문에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대신 내적 보상에 집중할 때 새로운 미래를 여는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MS가 유명 필진을 뽑아 16년간 만든 백과사전 ‘MSN 엔카르타’를 누른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가 세계적인 백과사전으로 성장한 데는 아무런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네티즌의 힘이 컸다. 핑크는 이를 두고 “이제 사람들이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보상으로 여기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사물인터넷(IoT) 개념의 창시자인 케빈 애슈턴은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는 저서『창조의 탄생』에서 “앨런이 지금껏 세 차례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17번 후보에 올랐지만 시상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상이 자기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업이 구성원의 내적 보상을 높여줄 방법은 뭘까. 핑크는 자율성, 숙련, 목적의식 3가지를 꼽았다. 그는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적절한 목표를 부여해 일에 몰입할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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