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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 (9)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경쟁하면 남는 건 질병 뿐 나만 잘살고자 하면 삶이 무거워 진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우리나라 유전자학의 대부로 불리는 서정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그는 유전자 조작 쥐를 연구하는 마크로젠(Macrogen) 창업자겸 회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De novo 합성방법에 의한 한국인 표준 게놈 분석’을 통해 사실상 아시아인 표준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유전체 지도로 홍익인간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서 교수를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학관 실험실에서 만났다.

▎S.T.듀퐁 클래식 제공
송길영(이하 송 ): 보건복지부가 유전자 검사법을 올해 말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정밀의료를 추진하고 있다.

서정선(이하 서 ): 아쉽게도 정밀하지가 않다. 정밀의학 계획은 무엇보다 정밀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의료집단지성이 주도한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료한다는 의학의 개념에 변화가 올 것이다. 환자가 힘을 갖게 되는 거다. 환자 자신의 정보를 의사에게 제공하고 의사는 이를 해석해야 하니 환자도 힘을 갖게 되는 거다. 이런 참여의학도 함께 발맞춰 성장해야 한다.

오래 살기 위해선 힘을 빼야 한다


송: 4차 산업혁명과 연결되는 말씀 같다. 기업간 경쟁이나 기술간 경쟁을 통해 새로운 혁신기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뭘 원하는 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말씀 같다.

서: 그렇다. 빅데이터로 고객이 원하는 걸 알아 맞추듯 질병도 예측 가능한 영역이 되고 있으니까. 이를 예측의학이라 하는데 지금의 고비용·저효율의 의료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21세기는 의료비가 정부나 각 가정에 엄청난 과제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개도국, 선진국 모두 의료보험으로 인해 재정곤란을 겪는다는 분석이 나오지 않나. 미국만 하더라도 2025년 의료보험 적자가 시작된다고 하고. 과거처럼 대충 시작하고 망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방식은 곤란하지 않겠나. 우리나라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의료산업도 패스트 팔로워다. 이젠 퍼스트 무버로 가려면 사회적 변화를 잘 예측할 수 있도록 참여의학, 예측의학과 같은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

송: 복지가 보편화되면서 수명이 늘고 지출이 늘어나니 의료보험 역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한가지 직업을 평생 가지는 게 가능할까? 지난해 초 타임지에선 새로 태어난 아기가 142년까지 살 수 있다는 내용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회장께서는 교수와 회장이라는 직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신다. 중견기업을 일구면서 네이처지에만 10편의 논문을 실었다. 어떻게 가능한가?

서: 인기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면 거기에 출연하는 달인 중 ‘연습했다’는 사람은 없다.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뭔가 중요한 걸 이루어 내겠다고 잔뜩 힘주고 하기 보다 내려놓고 하다 보면 실현되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생각의 힘이다. 생각하는 대로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흔한 예로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80살 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번아웃된다. 귀도 잘 안 들리고 시력도 나빠진다. 관절도 나빠 바깥활동을 하기 힘들어 진다. 오래 살기 위해선 오래 살기 위해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힘을 빼야 한다는 뜻이다. 나만 잘살고자 하면 삶이 무거워 진다. 결국 질병만 남는다.


▎S.T.듀퐁 클래식 제공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 번아웃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어딘가에 사람들이 줄 서있으면 그게 어떤 줄인지도 모르고 일단 줄 서고 게임한다. 자신에게 적당한 지,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이기려고 한다. 방법이 있다. 매 순간 주인공처럼 사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인생의 감독처럼 살면 된다. 가끔은 조연의 시각, 가끔은 멀리서 떨어져 볼 줄 알아야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거 아니겠나. 결국 에너지를 적게 써야 한다.

나도 잘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의학은 많이 배우고 외워야 하는 힘든 학문이다. 과목도 많다. 하지만 난 임상을 안거쳤으니 그 쪽을 생각하면 뒤지는 것 같아 두렵다. 또 통계를 하다보면 컴퓨터 통계부문에서 뒤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경쟁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인데...

송: 기초의학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인가?

서: 내가 70학번인데 당시 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그 책 서문에 보면 ‘우리는 찬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라는 글귀가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무언가 확인하러 그 광장으로 떠나는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당시 나는 ‘생화학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광장으로 향했다.

송: 마크로젠 설립 이야기도 들려달라.

서: 마크로젠은 실험용 쥐로 성장한 회사다. 우리나라가 G7을 목표로 연구비를 지원했는데 당시 관련 부처 실무국장이 “생물은 논문만 쓰고 성과가 없으니 회사를 설립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당시 나는 95년 실험용 쥐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84년부터 88년까지 미국에서 동료 교수들과 사업을 해 실패한 경험도 있었다. 사업은 정말 될 듯하면서 안되더라. 그래서 망설였다. 국장은 “회사를 설립해야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면서 계속 권유하더라. 결국 1997년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송: 성장한 계기는?

서: 2000년대 접어들면서 게놈연구에 대한 열풍이 일었다. 당시는 마크로젠이 상장을 통해 500억 정도의 돈이 있었다. 덕분에 게놈 연구를 위한 기계를 구매했다. 2002년 한국인 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어느정도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활용해 2009년 네이처지에 논문을 냈더니 상당히 감탄을 하더라. 이 논문을 기반으로 더 깊이 연구해 2015년 네이처지에 다시 개제했다.

송: 회장은 교수지만 탁월한 승부사다. 때를 탁월하게 결정하는 것 같다. 혹시 그런 타이밍은 타고난 건가?

서: 바이오 기업을 해 보니 제일 중요한 건 ‘뜻’이다. 어떤 기업보다 좋은 뜻을 품어야 한다. 게다가 개인 정보를 가지고 참여의학을 추진하다 보니 더 명확해 졌다. 구글과 애플이 예가 될 수 있겠다. 구글이 기술의학에 관심을 가진 이후 병원도 사들이고 환자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다. 반대로 애플은 전자동의서를 개발해 ‘절대 이 정보로 돈을 벌지 않겠다’거나 ‘알고리즘을 공개하겠다’며 자신들의 의도를 정확히 밝혔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애플에 정보를 제공했다. 사실 그 정보는 한 사람당 30분을 넘게 대면 질의를 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인데 말이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면 타이밍은 저절로 유리하게 정해진다.

송: 의사가 좋은 뜻을 품었다고 해서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

서: 의사는 약한 것 같지만 질병에 대해 알고 있다. 환자를 위해 무엇을 도와야 할 지 알고 있는거다. 전통적인 의사 외에도 새로운 기회가 많다. 커지는 헬스바이오산업에서 어떤 면에선 의사가 제일 유리하다. 충분히 창업도 할 수 있다.

송: 약점도 많다.

서: 어른들이 가로막는 게 제일 문제다. 지난주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강의를 했다. 의과대학 학생들이니 소위 정말 잘 빚어진 인재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는 “너희는 너희 의지로 너희의 삶을 주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엄마로부터 어떻게 탈출하냐?”고 묻더라. 엄마의 아상(我相)이 자녀를 지배하면 안된다. 최근에는 과학고 출신이 의대에 지원하면 패널티를 물리겠다고 하더라. 틀린 생각이다. 공대로 세계에 나가 싸우기엔 늦었다. 자꾸 공대에 대한 환상만 이야기 할 필요 없다. 이미 확보된 10만 의사 전력으로 세계로 나가야 한다. IT 기술도 우린 세계 최고다. 이를 합한다면 어느 나라든 우릴 반길 것이다. 그게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길이다.

송: 우리 사회가 훌륭한 연구자를 키우려면 어떻게 인프라를 관리해야 할까?

서: 브라운대 교수로 있는 친구와 몇 해전 나눈 이야기다. 그 친구는”내 연구실에 속해있는 대학원생들 중 중국, 인도 개발도상국과 영국 등 선진국 애들이 확연히 다르다“고 하더라. 가령 개발도상국 친구들은 ‘어느 분야가 잘 될까?’라는 생각을 가진다고 한다. 전망을 보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게 아니라 성공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영국, 독일 등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학과의 전망에 별 관심없다가 재미를 느끼는 학과를 선택해 집중한다고 한다. 훌륭한 연구자가 나오려면 우리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그들이 편히 좋아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성공 확률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라


▎S.T.듀퐁 클래식 제공
송: 네이처에만 10편의 논문을 실어 유전자학의 대부가 됐고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래서 셔츠에 홍익인간이라 새겼나?

서: 난 한국에서 태어났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북방계 아시아인으로서 5000년 전 먹고 살기 힘든 때 이미 홍익인간이란 이념이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교육이념도 홍익인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사에 홍익인간의 역사는 없다. 침탈과 전쟁의 비극이 있었고 한강의 기적으로 이제 상당한 국가의 경쟁력을 갖췄다. 이제는 선언만 하지말고 홍익인간을 실천해야 할 때이며 유전자 연구로 이를 실천할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송: 회장님만의 홍익인간의 실천 방법은 무엇인가?

서: 마크로젠은 신데렐라 컴퍼니다. 신데렐라가 왕궁을 소망하고 마차를 소망했을 때 그 소망이 쥐가 되고 말이 돼 신데렐라를 왕궁으로 데려간 것처럼 ‘If you wish(소망하면)’로 만들어지고 성장한 회사다. 반도체가 190조, 자동차가 290조 시장이다. 헬스케어는 490조 시장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합친 규모보다 시장이 큰 셈이다. 마크로젠은 아시아 표준 게놈을 위해 ‘인간 게놈여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더욱 정확한 개인 유전체 검사도 가능해 진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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