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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0) 

글로벌 노사관계 대세가 된 ‘경합전략’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해외 현지 생산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 측면에선 여전히 생산과 관련된 노사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느냐는 기업의 성장세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다.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까.

▎포드와 GM은 미국과 멕시코 생산기지를 경쟁시키는 방법으로 생산물량 관리와 취업규칙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 체결에 성공하기도 했다. 사진은 GM 미국 공장의 자동차 생산공장 라인.
필자는 지난 10월 24일자 중앙일보에 ‘꼬인 고용시장에 노벨 경제학상이 제시한 해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노사관계(IR·Industrial Relations)의 시대는 끝나고, 계약관계(CR·Contractual Relations)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했다. 노사관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막강한 노조의 힘과 기득권, 경영자의 결정권 가운데 어느 쪽이 힘이 센가에 따라 인력운용의 패턴은 완전히 달라진다. 양측의 힘을 어느 정도로 균형을 맞추느냐가 기업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셈이다. 인사정책의 상당부분이 집단적인 협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척되는 지금은 분명 CR의 시대다. 업무는 세분화되고, 온라인을 통한 업무수행이 증가한다. 일자리는 단기간 또는 프로젝트형으로 전환된다. 당연히 계약 중심이다. 따라서 내부인력에 업무를 맡기는 경우보다 외부공모를 통해 필요한 것을 얻으면 훨씬 효율적이다. 그 업무를 수행할 전문가를 찾아 맡기면 그만이다. 이는 개인의 업무스타일 변화를 동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은 동시에 여러 기업이나 사용자와 일할 수 있고, 근로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그저 계약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일 뿐이다. 정형화된 업무는 거의 자동화되기 때문에 대규모 생산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는 단체협상을 통해 근로조건에 대한 협약을 맺는 식의 집단적인 규율이 옅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사관계(IR)가 계약관계(CR)로 대체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당장 노사관계를 무시할 순 없다. 해외 현지 생산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 측면에선 여전히 생산과 관련된 노사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느냐는 기업의 성장세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다.

이와 관련,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까. 영국 그리니치대학 이안 그리어(Ian Greer)와 카디프대학 마르코 하우프트마이어(Marco Hauptmeier) 교수가 2016년 1월 발표한 논문에 그 전략이 소개됐다. ‘경영상 경합전략’이란 제목의 논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기업은 미국의 포드와 GM, 독일의 폴크스바겐이다. 모두 자동차산업으로 본사가 있는 자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현지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시장과 생산구조가 세계화되면서 예전의 산업별, 지역별 단체교섭을 기업별, 사업장별 교섭으로 변화시켰다. 이와 동시에 도입한 전략이 바로 경합전략(Whipsawing)이다. 원래 경합전략은 주로 노조가 특정 지역이나 기업에서 확보한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전 산업, 또는 전국 단위,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전략이었다. 이걸 경영계가 차용해 새로운 형태의 단체교섭 구조로 바꿨다. 각기 다른 생산기지 내 노조들을 서로 경쟁시켜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자동차사들은 외국의 여러 생산기지 내 경영상황을 제시하며 “인건비 감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품을 외부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다”며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는 결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변경에 동의해야 했다. 포드와 GM은 특히 미국과 멕시코 생산기지를 경쟁시키는 방법으로 생산물량 관리와 취업규칙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 체결에 성공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유럽의 다른 회사들도 이 방식을 속속 도입했다.

예컨대 이런 방식이다. 1980년대 후반 포드는 영국 다겐함 생산기지의 자동차 한 대 생산에 드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감축을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당시 포드가 제시한 자료는 영국 다겐함 59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35시간, 독일 쾰른 33시간이었다. 1993년에는 스페인 발렌시아 기지에서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당 516달러 저렴하다는 사실을 독일 노조에 제시하고, 인건비 절감을 이끌어냈다. 1999년 포드 유럽본부가 재정악화를 겪을 땐 구조조정에도 경합전략을 활용했다. 영국 다겐함과 폴란드, 포르투갈, 벨라루스 생산기지를 폐쇄하고, 폴크스바겐과의 합작 지분을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2006년엔 독일의 포드 노조가 생산직 근로자 2군 제도를 도입해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유연한 내부 근로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사업장 단위로 유연하게 단체교섭


▎폴크스바겐은 1990년대부터 경합전략을 썼다. 1999년부터는 외부 부품업체도 참여가 가능한 입찰경쟁을 통해 독일 내 인건비를 크게 떨어뜨렸다. 사진은 독일의 폴크스바겐 노동자. / 중앙포토
GM은 스페인 사라고사 생산기지와의 비교 등을 통해 독일 생산기지에서 산별협약으로 정했던 근로시간을 사업장 단위로 유연하게 정할 수 있도록 바꿨다. 또 벨기에 엔트워프, 영국 루턴, 독일 뤼셀스하임의 근로시간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근로 시간을 시장상황에 따라 31~38.75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유연근로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런 경합전략은 분규를 낳기도 했다. GM 유럽자동차평의회(EWC)주도로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내 GM 공장에서 4만 여명이 시위에 나섰다. 그러자 GM은 2003년 아예 생산물량 입찰제를 도입했다. 독일 뤼셀스하임과 폴란드 글리비체 생산기지를 경합시켜 대당 350유로의 생산비용이 저렴한 폴란드에 생산물량을 배치했다. 2005년에는 폴란드 글리비체와 스페인 사라고사 간의 입찰경쟁을 통해 스페인에 생산물량을 배정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은 1990년대부터 경합전략을 썼다. 1993년 외국 생산기지에 신차 배정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근로시간 축소와 유연화에 합의했다. 1999년부터는 외부 부품업체도 참여가 가능한 입찰경쟁을 통해 독일 내 인건비를 크게 떨어뜨렸다. 강성이던 스페인 공장 노조는 생산물량이 슬로바키아로 갈 지 모른다는 생각에 독일처럼 유연근로에 합의했다. 그렇다고 노조의 힘이 약하거나 교섭력이 취약했던 것도 아니다. 폴크스바겐의 조직률은 95%에 달한다. 생산기지 별로 파업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경쟁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 다만 폴크스바겐은 직장평의회와 수시로 회의를 하고, 손익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를 통해 경쟁력과 생산성 증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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