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수호천사 같은 사람이
있기도 하고, 자신도 생각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를 보호해준 수호천사가
되어 있기도 한다. 노숙은 유비에게 있어서 이런 수호천사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다.
▎노숙(魯肅, 172~217) :자 자경(子敬) / 소속 동오 손권 / 출신 양주 임회군 동성현(臨淮郡 東城縣).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부유하여 일찍이 재산을 풀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주위에 베풀어 칭송을 받는다. / 출사 주유의 소개로 동오의 손권에게 출사. 주유 사후 동오의 대도독에 오른다. / 사망 217년 병사(病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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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이후 삼국시대가 정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고의 전략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노숙을 제일 앞자리에 세우고 싶다.조조가 형주를 아우르고, 동오의 목전에서 군사시위를 할 때 유비에게 찾아가서 제갈량을 데리고 동오로 온 것이 노숙이었다. 당시 동오의 명사(名士·지식인) 우두머리인 장소를 비롯해 대부분의 모사들이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손권을 조르고 있는 판국에 그 홀로 조조와 항전을 우기면서 조조의 허실을 알려 손권에게 항전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런 항전을 위한 노숙의 동분서주 덕분에 다 죽게 생겼던 유비가 회생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개성 강한 수하들과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 있었던 손권은 유비 집안과 서로 협력하여 조조를 견제하며 삼국의 캐스팅 보트를 쥔 중간자로 나서면서 무난히 삼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라를 정착시킨다. 그 뒤에는 노숙의 배려와 온화한 중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리고 그가 죽고 난 뒤 동오에서 유비 진영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자 관우를 토벌하고, 유비와 전쟁을 벌이는 등 곧바로 촉과 오가 가장 큰 원수지간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유·관·장 삼형제가 모두 죽음에 이르렀고, 손권은 위 황제 조비에게 머리를 숙이고 신하를 자처하는 일이 벌어진다. 실로 수호천사 노숙이 사라지자 유비와 손권은 점입가경으로 달려간다.
『삼국지』 인물 중 가장 안정되고 성공적인 모사
▎노숙의 흉상. 필자에게 어떤 신하의 삶을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단연 노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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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뛰어난 모사(謀士)들 중에서 가장 안정되고, 성공적인 모사였다. 그는 비록 45세의 젊은 나이로 병을 얻어 죽었지만, 죽는 순간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했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난세의 국제적 역학관계와 유비·관우·제갈량 같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방과 손권·주유처럼 쉽지 않은 아군 사이에서 양자가 빚어내는 역학관계들을 부드럽고 순조롭게 풀어나갔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속의 노숙은 제갈량에게 속아 넘어가고, 유비와 손권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소설 속에서도 그가 한 역할과 행적을 쫓아가보고 그 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노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군인 손권조차 선뜻 나서지 못하는 조조와의 전쟁을 밀어붙여 적벽대전으로 대승리를 거두기까지,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나라의 막대한 자금과 군사를 기울여 조조를 물리쳐 놓으니 얄밉게 형주를 차지한 유비 진영과 평화를 유지하며 조조를 견제해 동오를 지킨 것도 실은 노숙의 공로였다.노숙의 경쟁력은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주군인 손권보다 꿈이 더 컸던 ‘통 큰’ 참모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제갈량이 융중의 초려로 찾아온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건의한 것은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노숙이 손권에게 이 비슷한 전략을 제안하는 장면이 『삼국지』에 나온다.노숙이 손권을 처음 만나게 되는 사연은 이렇다. 노숙은 원래 친구 유자양과 함께 다른 제후의 초청을 받아 가려고 하던 중이었다. 이때 적벽대전의 영웅이 되는 동오의 큰 신하 주유가 노숙에게 와서 손권에게 출사하라고 권한다. 주유와 노숙은 두텁게 사귀었던 친구였고, 주유는 죽을 때 자신의 후임으로 노숙을 추천할 만큼 믿는 사이였다.주유는 “군주가 신하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신하도 임금을 골라 섬겨야 한다”며 손권을 섬기는 이로움에 대해 설득한다. 노숙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손권에게로 간다. 손권은 첫눈에 노숙을 좋아하고 각별하게 대하면서 하루 종일 노숙과 담론을 하면서도 지루한 줄을 모른다.손권은 하루 업무가 끝나고 문무관원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노숙만을 남겨두고 함께 술을 마시고 밤이 깊도록 얘기하며, 함께 나란히 누워 잠을 잔다. 손권이 말한다.
“나는 부형의 가업을 이어받아 강동을 경륜할 것이나 이왕에 이 자리에 오른 이상 춘추오패인 제환공이나 진문공처럼 황실을 떠받들어 패업을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소. 공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나를 가르쳐 주셨으면 하오.”이에 노숙은 다른 처방을 준다.
“한고조께오서 의제(義帝)를 받들어 섬기려 했으나 항우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조조가 마치 항우와 같사옵고, 자기가 마치 제환공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사온데 무슨 수로 춘추오패의 뜻을 잇겠습니까? 지금이 시국을 관망하건데 한실의 부흥은 물 건너 간 이야기입니다. 그보다는 지금은 오직 강동에서 세를 확립하고 천하의 틈을 관망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방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서 황조와 유표를 쳐서 형주 일대를 장악하여 장강 전역을 차지하고 지키다가, 황제로 오르면 이는 곧 한고조가 대업을 이룬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그는 손권에게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제갈량의 삼분지계도 조조를 항우의 위치에 두고, 유비에게 유방이 되라고 한 것이었다. 노숙의 대업과 제갈량의 삼분지계는 모두 유방의 건국을 롤모델로 하고 있었다. 유방이 되어 대업을 이룬다면, 반드시 얻어야 할 인물이 바로 한신이다. 당시 노숙에게는 ‘한신’의 존재가 미미했고, 다만 기회를 보아 유표의 땅을 빼앗고 익주를 아울러 초한의 대립처럼 양국이 대립하는 형세로 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제갈량의 삼분지계에서는 조조가 항우, 유비가 유방, 손권이 한신이라는 틀을 갖춰 설명했으므로 훨씬 구도가 안정적이었고 분명했다.그런데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노숙이 유비를 향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때부터 노숙은 유비를 손권의 대업을 위한 ‘한신’으로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그는 눈앞의 이익만 따지던 다른 손권의 모사들이나 심지어 주유와도 달리 심려원모(深慮遠謨·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본다)의 혜안을 가지고 움직였다.이를 알아봐준 것이 주군인 손권이었다. 노숙은 주군을 제대로 고른 것이다. 손권은 욕심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으나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있었다. 이에 노숙이 방향을 알려주고 청사진을 그려 내놓자 그는 단박에 알아차리고 이를 접수한다. 뜻이 통하는 주군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노숙은 행복한 신하였다.조조가 형주를 아우른 뒤 강동과 마주 보이는 강변에 300리에 걸쳐 83만 대군을 집결시키며 시위하는 것은 강동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중원을 거의 다 먹은 패자(覇者)와 더불어 싸우고자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조조는 황제의 칙명을 앞세우고 있으니 명분상 우세하고, 이들 군대에 대적한다는 것은 황제의 칙명을 어기는 것이니 신하의 나라 강동으로서는 만일 패한다면 갈 곳이 없는 역모의 땅이 되는 것이었다. 승리할 자신이 없다면 항복하는 것이 이치상 맞았다.
“패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조를 넘어야”손권의 모사들은 모두 항복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노숙만 홀로 부지런히 제갈량을 모셔오고, 손권을 붙들고 “저 수구 꼴통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왜 항전해야 하느냐고 묻는 손권에게 말한다.
“주군과 신하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신하들이야 조조에게 항복한다 하더라도 돌아갈 고향 땅이 있고 그곳에서 미관말직이나마 할 수 있고, 잘 하면 황제의 직인이 담긴 임명장을 받아 계속해서 한실의 신하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군께서 항복하신다면 대체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물론 후(侯)에 봉해지고, 수레 한 대에 말 한 필, 종자 두어 사람은 붙여주겠지만, 모든 야망과 힘을 내려놓고 그저 세월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야 하실 것입니다. 남면(南面, 임금의 자리)하시어 천하를 내려다보고 패업을 달성할 꿈을 어찌 꿀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야 항복하는 것이 환란을 피하고 처자식과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키며 자기 신상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니 모두 제 한 몸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 뿐입니다. 결코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노숙의 야망은 다른 문신들과 애당초 크기도 방향도 달랐다. 패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조를 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손권은 영명한 지도자였다. 말귀를 알아들었을 뿐 아니라 욕심도 그만큼 큰 리더였다. 그는 노숙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문관들의 의견이 내 뜻과 벗어나고 실망스럽더니만, 오로지 자경만이 나와 뜻이 같구려. 자경은 내게 하늘이 내린 사람이오.”그래도 강동 백성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 군주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고민을 거듭하는 손권에게 노숙은 제갈량과 주유를 들이대며 항전 쪽으로 밀어붙인다. 그리고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조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노숙은 대업을 향한 한 걸음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내딛는다.그러나 손권을 위한 ‘한신’으로 영접한 유비라는 인물이 정말 만만치가 않다. 승리를 얻어 손권에게 바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오가 얻은 승리의 이익을 몽땅 자기가 털어먹어버린다.주유가 독화살까지 맞고, 피를 토하며 자기가 죽은 것처럼 위장해 겨우겨우 승리의 기틀을 마련한 남군성을 제갈량이 손가락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조자룡이 말을 달려 들어간 것만으로 냉큼 집어삼킨다. 그리고 연이어 남군성의 병부를 이용해 형주와 양양에서 위나라의 군대를 밖으로 불러내 역시 전광석화로 먹어버린다.토인비 선생이 말했다. 과거에 성공했던 전략이 오늘 비슷한 상황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오히려 사건의 구도가 비슷해도 상황은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 성공의 경험이 발목을 잡아 실패를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이다.구도는 과거 항우와 유방이 맞섰던 때와 비슷하지만, 조조는 항우가 아니었고, 유비는 한신이 될 생각이 없었다. 이미 후한 말을 전개한 인물들 중에는 항우·유방·한신으로 분류할 만한 비슷한 점이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상황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사건 구도가 비슷해도 전개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노숙은 여기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점은 뒤통수를 얻어맞고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주유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원한에 사무쳐 유비와 일전을 치르려고 한다. 실제로 주유 성격에 그러고도 남았다. 만일 이때 주유와 유비가 부딪쳐 싸웠다면, 승리는 조조가 챙겼을 것이다.그러나 노숙이 있어서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았다. 노숙은 주유를 말리며 말한다.
“지금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적은 조조입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조조와 승패가 가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군인 유비 측과 싸우면 조조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양쪽의 적을 맞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쳐서 사태가 급하게 돌아갈 경우 유비가 형주 땅을 모두 조조에게 바치고 합세하여 동오를 치려고 하면 어찌할 것입니까?”동오와 유비 진영을 오가며 양쪽을 진정시키고 협력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에 등장한 노숙. 뜻이 통하는 주군 손권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노숙은 행복한 신하였다. / 중국 바이두 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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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유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유비는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어디에라도 붙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처음엔 공손찬을 도와 원소와 싸우고, 나중엔 도겸을 도와 조조와 싸우고, 그러더니 또 조조와 더불어 여포와 싸운 다음엔 원소를 도와 조조와 싸우고, 유표를 도와 조조를 막는 등 필요에 따라 순식간에 적도 됐다 아군도 됐다 하며 정신없이 파트너를 바꿔치우는 데 이골이 난 인물이었다.그래도 노숙은 유비가 정족지세(鼎足之勢)의 한쪽을 차지해 동오의 협력 상대가 되어야 조조를 견제할 수 있다는 현실을 결코 놓치지 않고 실리적인 외교를 펼친다. 손권조차도 형주를 냉큼 삼켜버린 유비를 향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수시로 출병하려고 하는 마당에 이성을 잃지 않고 세력이 약한 동오와 유비 진영이 협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강한 세력인 조조에 맞서는 길임을 잊지 않는다. 그는 분주히 동오와 유비 진영을 오가며 양쪽을 진정시키고 협력의 끈을 이어가는, 참으로 욕먹을 일은 많고 빛도 나지 않는 고단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당시 정국 구도를 안정시키는 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이렇게 빛도 나지 않고 욕이나 얻어먹는 일을 군소리 없이 자청해 해낸 것은 그의 욕심과 야망이 끝도 없이 컸기 때문이다. 노숙의 욕심과 야망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적벽대전 이후 합비를 공격하던 손권에게 노숙이 찾아간다. 이때 손권은 친히 군영 밖으로 나와 노숙이 오자 말에서 내려 노숙을 맞이한다. 이 모습에 모든 장졸들이 놀라고 노숙도 황망하게 말에서 내려 절을 한다. 손권은 노숙과 함께 말을 타고 군영으로 들어가면서 말한다.
“내가 말에서 내려 공을 영접하여 빛나게 하려 하였소. 흡족하시오?”노숙이 대답한다.“아닙니다.”“어찌해야 그대의 마음이 흡족하겠소?”“주공의 위엄과 덕망이 사해에 떨치고, 중원 9주를 통솔하고, 능히 제업(帝業)을 이루어, 이 노숙의 이름이 죽백(사서)에 오르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 마음이 흡족함을 알 듯 합니다.”이는 단순히 아부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킹메이커’ 외길을 선택했고, 실제로 천하의 제갈량과 유비를 상대로 주군인 손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고단한 여정을 계속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그런데 어쨌든 노숙이야말로 참으로 부러운 행복한 신하였다. 뛰어난 제갈량도 워낙 기반 없는 주군을 모시다보니 온갖 양심 없는 짓을 수시로 저질러야 했고, 청아한 순욱도 마지막엔 주군에게서 버림받는다. 그러나 노숙은 자기를 알아봐주고, 자기 욕심의 크기만큼 따라오는 영명한 주군을 모셨고, 주군의 기반이 튼튼하니 양심에 꺼리길 것 없이 유비 진영을 상대로 갑(甲)의 입장에 설 수 있었다.내게 어떤 신하의 삶을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노숙이다.
부유하면서도 지연·혈연·학연에서 자유로워이렇게 젊은 손권의 튀는 모사, 노숙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노숙은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부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집안내력은 알 길이 없다. 다만 부자였던 것이다. 나중에 위나라 황제 조비가 오나라 사신 조자(趙咨)에게 손권에 대해 묻자 “저의 주공은 지위가 낮은 집안의 노숙을 발탁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손권의 모사 주류를 이루고 있던 호족 명사들과는 다른 신분이었던 것이다.지연·혈연·학연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그는 남다른 생각을 하고, 남다른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탯줄을 끊으면서부터 엘리트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틀에 박힌 사고와 안정성 추구에 진력하는 반면, 시대의 창의성을 개척하는 사람들은 ‘변방’에서 많이 나온다. 그들은 기존 세력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다.『삼국지』에서도 남다른 성취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타고난 귀공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소위 명사로 불린 호족 출신 지식인들 중엔 순욱·순유 등과 같이 관료 사회의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많으나 그다지 튀는 업적을 보인 사람은 많지 않다. 제갈량도 호족 출신이었지만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를 지으며 귀공자의 삶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본 인생의 쓴맛을 아는 지식인이었다.출신 성분과 인맥·학맥의 불리함은 꿈을 꾸고 대업을 성취하는 데 불리한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탄탄한 지연·혈연·학연은 돌아볼 곳만 많게 만들어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다. 외인부대의 경쟁력은 더 큰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후한 말 난세에 손권을 앞세워 새로운 패업을 달성하고자 했던 노숙은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훗날 손권이 제위에 올라 단에 올라갔을 때, 공경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자경(노숙)이 일찍이 내가 제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형세 변화에 밝았다 할 것이오.”노숙은 오직 주군인 손권이 그를 알아봐 주었지만 살아서도 동오의 부중에서 칭찬받는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염치라고는 없는 유비 진영과 평화를 유지하며 삼국시대를 정립하는 일에 고단하고 분주하기만 했다. 그런 궂은 인생을 버티게 해준 힘은 바로 손권이라는 탁월한 주군을 만나 자신도 ‘킹 메이커’가 될 수 있으리라는 원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조직에선 욕먹고 빛나지 않는 일 중에 진짜 큰 성취를 이룰 만한 일이 많다. 꿈과 희망이 있다면 ‘조직의 쓴맛’과 궂은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법이다.
양선희 -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 ‘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연재하는 중이다. 2011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여류(余流)삼국지』(메디치 미디어), 『카페 만우절』(나남), 『5월의 파리를 사랑해』(문예중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