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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조원경의 ‘미래 산업의 소울메이트(SOULMATE)’(1)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온다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 산업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격변하는 기술 발전의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고 생각할 가치를 소울메이트(SOULMATE)로 정의하고 하나하나 풀어본다. 예컨대 기술 발전이 어디까지 이를 것인가(Singularity), 누구를 위한 풍요로움인가(Opulence), 미래의 도시화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Urbanization),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Labour)를 탐구하는 기획이다. 그 첫번째는 기술 발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다.

▎컴퓨터가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작업을 해내자 하루하루 그와 주변 동료는 인공지능과 씨름하고 있다.
어느 한 신문에 나온 2045년 어느 날을 조금 각색해 보자.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가운데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고 지방도시는 쇠퇴한다.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는 35.6%로 노인 천국이다.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멍하니 앉은 한 사내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다. 뇌가 신호를 보내자 커피 머신이 작동한다.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몽골 출신의 40대 대한민국 공무원인 그는 간단한 식사 후 집 앞에서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탄다. 목적지는 인천공항본부세관 사무실이다. 도중에 음악을 들으며 서울 시내 건물을 구경한다. 주변에는 강철만큼 강하지만 탄소섬유만큼 가벼운 소재로 지은 건물이 즐비하다.

10년 전 대한민국과 몽골인민공화국은 사증면제협정에 이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두 나라의 인적·경제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자 한국 정부는 대몽골 관세업무를 담당할 몽골 출신 직원으로 그를 뽑았다. 그는 안경의 테두리를 슬쩍 문질러 증강현실(AR) 통역앱을 활성화시킨다. 동료 직원들의 한국어 인사가 몽골어로 실시간 통역된다. 한국어 서류들이 몽골어로 번역된 형태로 보인다. 그는 오전 회의를 주재하면서 몽골산 육류의 무관세 수입 혜택을 연장할지 여부를 직원들과 논의했다. 한국에서 몽골식 양고기 요리 체인점이 큰 인기를 끌면서 몽골산 육류의 수입량이 꾸준히 늘자 축산 농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인공지능 국정운용시스템인 ‘나우 4.0’은 지난주 몽골산 육류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의 필요성을 ‘권고’ 수준으로 관세청에 통고했다.

문제는 한국인 전임자가 인공지능 앱과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전임자는 몽골산 양고기 수입이 한국과 몽고 간 관계증진에 미치는 선순환 효과와 여타 한국산 제품의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권고보다 전임자의 의견을 따르고 싶어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양고기 무관세 수입을 막는 것이 이득보다도 손실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 누군가는 인공지능이 주장하는 관세부과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그가 반대 결정을 내리자 보고서는 30분 만에 깔끔하게 작성된다.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 앞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2045년경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추억에 젖어 본다. 지난 30년 동안 일자리의 80%가 사라졌다. 추억 속에 묻힌 일자리의 개수는 20억 개에 달했다. 컴퓨터가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작업을 해내자 하루하루 그와 주변 동료는 인공지능과 씨름하고 있다. 하긴 20여 년 전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다. 오래전 인천의 길병원은 IBM의 인공지능 왓슨의 처방을 제공했다. 의료진과 왓슨의 생각이 다를 경우 환자들은 대개 왓슨을 선택했다. 전문가보다 인공지능을 더 믿는 시대가 이미 그때부터 도래한 셈이다. 그는 당시 미국이 낳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말을 떠올렸다. 레이 커즈와일은 1999년 클린턴 미 대통령으로부터 기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과학기술 훈장을 받았다. 2001년 발명가의 노벨상 격인 레멜슨 MIT상으로 상금 50만 달러를 받았고, 명예박사 학위도 수십 개다.

“현재 컴퓨터는 계산 속도만 빠를 뿐 쥐의 뇌보다 못한 수준입니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2045년경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게 될 것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미래 산업의 소울 메이트의 첫 장을 장식한다.

미래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현재로 돌아와 보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사업에서 질적인 도약을 이뤘다. 기업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사업이 번창하는 특정 시점이 반드시 도래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기인 ‘특이점(Singularity)’은 과학기술의 빅뱅 시점이다. 특이점이란 말은 우주 물리학에서 차용한 용어로 일반 물리학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법칙인 블랙홀과 같은 우주 시간에서의 한 점을 일컫는다. 커즈와일은 2045년경 인류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출현하는 이 특이점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커즈와일은 2005년 출간한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를 주장했다. 그의 책을 보면 사실 과장이 많다. 그는 2020년이 되면 진단의학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해 기대수명이 150살로 늘어나고, 2030년에는 질병과 노화 과정을 예방하거나, 극도로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면 1000살 수명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는 현재로선 다소 황당한 주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래도 그의 주장을 한번 들어나 보자. “게놈 지도 완성으로 이미 생명공학은 예측 가능한 발전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의술은 기하급수적 발전의 문턱을 넘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처음 게놈 지도의 1%를 해독하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나머지 99%가 7년 만에 풀렸습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한 속도를 상상해 보세요. 허풍이 아닙니다.”

인간의 몸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기계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다 보니 부산물로 여기저기에 고장이 생긴다. 자동차처럼 관심을 가지고 DNA를 점검하면서 정기적으로 바꿔주고 필요한 영양을 채워주면 계속 정상적으로 기능을 한다. 불가피하게 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즈와일은 불멸의 시대가 열리는 날까지 생존하기 위해 코엔자임 큐텐(Q10), 포스파티딜 콜린, 비타민 D 등을 포함해 하루 150개의 알약을 오늘도 먹고 있다.

그는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200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을 설립했다.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 대학은 다양한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구글 같은 글로벌 기관과 기업이 후원하고 있다. 정식 학위를 주는 대학은 아니나 수업 일정은 대학원 과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이다. 커즈와일은 10가지 필수 전공 중 ‘미래학’을 직접 강의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Singularity Institute for Artificial Intelligence’도 해마다 싱귤래리티 서밋을 연다.

물론 특이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며 언제, 어떻게 도래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이 역사를 만든다고 굳게 믿는다. 인공지능의 혁명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음 세기에도 지금과 같이 소파에 앉아 TV나 보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은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누군가 자신들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특이점의 순간순간은 예전에도 존재했다

그들은 특이점의 순간순간은 예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1997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는 체스 세계 챔피언과 대결해 승리했다. 같은 해 오셀로 게임에서도 인공지능 ‘로지스텔로’가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2011년에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이 미국 인기 퀴즈 프로그램 역대 우승자에게 승리하면서 체스와 오셀로, 퀴즈 분야를 인공지능이 석권해 인간의 뇌를 초월했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결과에 따라 바둑 분야에서도 특이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이세돌은 연패를 하고 한번을 이겼을 뿐인데 세간에는 알파고가 일부러 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 알파고가 온라인 바둑 서비스 타이젬과 한큐바둑에서 정상급 바둑기사를 상대로 60연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알파고처럼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사고력이 뛰어나 사람이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특이점을 속도 측면에서 이해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마이크로칩 기술의 발전 속도에 관한 법칙이 있다. 마이크로칩의 성능이 매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경험적 예측으로 고든 무어가 주장했다. 어찌 됐든 그동안 컴퓨터 성능은 크게 개선됐고, 30년간 비교적 정확하게 무어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무어의 법칙은 인터넷에서 적은 노력으로도 커다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메트칼프의 법칙, ‘조직은 계속적으로 거래비용이 적게 드는 쪽으로 변화한다’라는 가치사슬의 법칙과 함께 인터넷 경제의 3원칙으로 불린다.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의 처리 속도와 메모리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고 비용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디지털 혁명은 1990년대 말 미국이 정보기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생산성에 대한 의문과 생산성 역설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양적인 성장에 더해 상상할 수 없는 질적인 변화가 가해지는 게 특이점이다. 기술의 발전은 1차 방정식이 아닌 지수 방정식으로 일어나고, 2020년대까지는 인간의 두뇌를 가진 엔지니어에 의해 컴퓨터가 발전한다. 하지만 2020년대가 끝날 때쯤이면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과 맞먹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 2045년에는 컴퓨터의 능력이 크게 늘어나는 한편 경비는 대폭 줄어 ‘만들어진 인위적인 지능의 양’이 오늘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능의 수억만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알파고가 승리한 원동력은 인간의 뇌와 신경회로를 그대로 재현한 ‘딥러닝’ 덕이 크다. 딥러닝은 인공지능의 최첨단 기술로 발전해 온 머신러닝(기계학습)의 새로운 기법이다. 그 전까지는 인간이 데이터 분석 방법을 미리 입력해 컴퓨터를 가르치는 방식이었으나, 딥러닝은 컴퓨터 스스로가 데이터를 분석해 특징을 찾아낸다. 알파고는 딥러닝 기술 개발에 협력한 프로 바둑기사들의 3000만 개 수(手)를 학습하면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57%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

딥러닝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전문 기술을 갖춘 인간의 능력과 직감까지 학습할 수 있게 되면 응용분야는 더욱 늘어난다. 의사 수준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는 자율주행차, 침입자를 막는 감시 카메라,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게 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학습이라는 과정을 거쳐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수준인 강(强)인공지능에 도달해 기술적 특이점에 이른다. 자기계발이 가능한 인공지능은 스스로의 기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인간을 대신해 많은 분야의 연구를 대체하게 된다. 그렇게 계속되는 개발의 말미에, 강(强)인공지능은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수준인 초인공지능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물과 기계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로


▎영화 ‘엑스마키나’ 포스터.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는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자유의지까지 지녀 진실을 호도한다. 인공지능 개발이 인류에게 비극적 미래를 가지고 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물론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윤리적·종교적·기술적·법률적으로 반론이 상당하다. 왜 그럴까?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커즈와일의 주장을 들어 보자. “인간은 절대로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신처럼 되어갈 것입니다. 내게 진화란 곧 점점 신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섭리를 끝없이 통찰하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진화를 가능케 하는 원리이지요. 우주는 우리에게 진화를 허락했습니다. 앞으로 인간은 기계와 항상 연결돼 있어 기계가 곧 인간이고 인간이 기계인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의 예측에 누군가는 강한 부정을 하고 싶을 수 있다. 인간이 기계라는 데 거부 반응이 들지 않겠나. 이에 대해 커즈와일은 말한다. “당신이 24시간 곁에서 떼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세요. 몸에 이식되지 않았을 뿐이지 깊이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이미 뇌의 연장이 아니고 뭐지요?”

그의 되물음이 두렵게 느껴져 몸이 떨릴지 모르겠다.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위험하고 무섭다고 멀리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문제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인류는 기술과 함께 보완책도 항상 같이 발전시켜왔기에 기술 발전을 두려움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중추신경과 핵심 프로세서가 클라우드에 저장되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저장 공간 덕분에 백업도 충실히 돼 있고 복제본도 수만, 수억 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처럼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몸통’인 인간이 아닌 시대지요. 그때는 ‘완전한 파괴나 죽음’이 아주 어렵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 몸을 서버에 연결해 뇌의 기억을 분산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 뇌와 연결해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어요.”

그는 마치 USB를 사용하듯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업로드하고, 우리는 생물학적 사고관의 한계를 넘어 점점 기계적 사고관의 영향을 받는 시대가 온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우리가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생물과 기계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가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생각’이란 프로세스의 대부분이 클라우드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듣자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육체가 기계로 대체된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의 경계선인지, 사고의 중추가 되는 육체가 기계로 대체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감각의 생산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말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정의 자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몸에 온갖 장치를 집어넣고 뇌마저 컴퓨터로 돌아가는 존재를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특이점을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판 ‘휴거’라고도 주장하고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버드대학의 인식 과학자 스티븐 핀커와 전산학자 미치 카포는 ‘로봇이 성공적으로 인간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보인다. 스티브 핀커의 주장을 들어 보자. 그는 무어의 법칙을 비롯한 기술 성장 그래프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속도를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는 통계학자들의 예측을 따른다. “특이점이 온다는 것을 믿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당신의 상상 속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반구형 도시, 수중 도시, 가장 높은 건물, 그리고 원자력을 이용한 자동차, 당신이 어렸을 때 상상했던 이 모든 초현실적 공상의 산물은 결코 도착점이 없습니다. 방향을 벗어난 처리 능력은 당신의 모든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주는 반도체가 아닙니다.”

인간의 두뇌엔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게 있다?


▎CES 2017에선 인공지능과 결합한 로봇의 진화도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다. 어린이와 놀아주거나, 노인을 돌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중국 로봇업체 아바타마인드의 로봇 ‘아이팔(iPal)’.
공중보건학자 제이 올샨스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역사상 영생을 추구했던 모든 이들은 다 죽었으며 수많은 과학자가 예전부터 노화 방지의 꿈이 이뤄진다고 말해왔다며 커즈와일의 주장을 깎아내린다. “과학을 만능으로 바라보고, 과학이 인간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갈 것으로 기대한다면 이것은 과학주의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계산이나 하고 작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이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두뇌에는 아무리 많은 정보를 입력해도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역설한다. 철학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인공지능이 가치판단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인간처럼 도덕적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싱귤래리티언들은 기회는 안 보고 부작용만 걱정하는 것이라며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똑똑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인공지능을 잘못 쓰는 인간의 우매함이라고 색다른 주장을 제기한다. 도덕적 판단을 떠나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컴퓨터가 나와 눈을 감고 들었을 때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가정할 경우 컴퓨터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지각력이나 감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것은 신비로운 의식이 없는 정교하지만 ‘영적 세계가 없는 기계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해답이 없는 의문도 계속 쌓이고 있다. 만약 나의 의식을 컴퓨터에 입력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계속 ‘나’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들이 불멸이나 전지전능에 가까워 졌을 때 우리 삶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마음의 모방할 수 없는 본질적 특성을 놓치고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일련의 싱귤래리티언들이 꿈꾸는 것만큼 과학 기술이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재 상상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게 빠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오래전 컴퓨터에 비교하면 크기도 100만 분의 1에 불과하고, 가격도 10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성능은 그 1000배가 넘는다.

세상이 발전해 2045년 불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데 의문을 품는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2045년 우리는 기계와 공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기술 제품은 1~2년 사이에 가격 대비 성능비가 두 배씩 좋아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겼다. 기술이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기술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기술이 절망이자 곧 희망이라고 말이다. 이 말을 떠올리며 미래 산업의 소울메이트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이어가 보자. (다음호에 계속)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 (파이낸스 석사) 를 졸업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 있다.

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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