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스타트업 대동여지도(6) 제주특별자치도 

육지 스타트업, 관광콘텐트 풍부한 제주도로 

제주=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제주도는 다른 어떤 지방보다 스타트업이 활동하는 데 부족한 게 많다.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이렇다할 투자사도 하나 없다. 그럼에도 제주도에는 희망이 넘친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관광 콘텐트가 많기 때문이다. 이 콘텐트를 활용하기 위해 육지에서 제주도로 넘어오는 창업가들이 늘고 있다.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제주벤처마루 3~4층에 있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모습. 제주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사진 : 최영진 기자
지난 6월22일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105개 창업 관련 기관 관계자 140여 명이 제주특별 자치도에 모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015년부터 매년 이어오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틀 동안 발표와 토론 위주의 행사지만, 참석자 모집은 일찌감치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렸을 때보다 참석자가 더 많았다. 서울에서 거리도 멀고 교통편 등 여러 측면에서 제주도가 찾아오기 더 불편하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심지어 “행사가 끝난 시간에 맞춰 서울에서 가족이 내려오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주말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갈 계획”이라고 밝힌 벤처캐피털 대표도 있었다. 일반 도시에서 행사가 열린다면 대부분 행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게 된다. 제주도에서 열린 ‘2017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행사가 끝난 후 따로 제주도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이들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설렘을 선사하는 땅이 제주도다.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 상징하는 ‘제주벤처마루’


이번 행사가 열린 곳은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제주 벤처마루다. 길 하나 건너면 제주시청이 있는 번화가다. 제주벤처마루에는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테크노파크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입주해 있다. 국내 최초 민간 차원의 스타트업 협회인 제주스타트업협회 윤형준 회장은 “제주벤처마루와 몇몇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외에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입주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2017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이유는 제주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통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중소기업청·지자체·창조경제혁신센터를 꼽을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 바로 중소기업청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어느 지역이건 대동소이하다. 창업보육센터(BI)·창업선도대학·창업맞춤형지원사업·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스마트벤처창업학교 등이 대표적인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다. 제주도에는 창업보육센터와 창업선도대학 그리고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만 운영된다. 지난해 말 제주대학교 창업선도대학 지원 사업은 종료됐다. 제주도에서 중소기업청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 제주도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담당했던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제주도의 중소기업 지원업무가 중소기업청에서 제주특별자치도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운영되는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사업은 창업보육센터가 유일하다. 창업보육센터로 지정된 제주대·제주국제대·제주관광대·제주한라대에는 129개의 보육실이 마련되어 있다.

대신 지자체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 문화와 관광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는 ‘스마트 관광 도시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30년까지 자동차의 100%를 전기차로, 전력의 100%를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는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제2첨단과학기술단지 사업도 준비 중이다. 2019년 12월까지 1385억원의 사업비가 예상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제주시 월평동 일원의 84만 8000㎡(26만평 정도)에 단지를 마련할 계획이다. IT·바이오·문화콘텐트·우주항공기술 등의 기업과 연구 기관을 유치하게 된다. 오는 9월에는 제주시 아라동 첨단과학기술단지 내에 있는 구 모뉴엘 사옥을 임대해 IT 기업과 연구소 40여 곳을 입주시키게 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제주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 벤처마루 3~4층에 자리를 잡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5년 6월 다음카카오(현 카카오)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열었다. 얼마 후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지원을 받아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을 중점 지원하는 제2센터도 개관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65개의 스타트업이 센터의 보육지원을 받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 운영 중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2015년 하반기부터 운영하고 있는 도외 인재들 체류지원 프로그램 ‘제주다움’에 참여한 이들이 협업공간에서 토론하고 있다. / 사진 : 최영진 기자
혁신센터는 10여 개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스타트업 입주지원 프로그램이다. 입주 6개월, 졸업 후 1년 동안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4기가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투자 설명회인 데모데이, 혁신센터의 대표적인 창업교육프로그램인 ‘J-Academy’, 예비·초기창업자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브런치를 즐기는 네트워킹 프로그램 ‘런치합시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코딩강사 양성과정’과 ‘IT 개발자 과정’이다.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은 긴 시간을 두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 센터장은 “제주도에서 개발자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면서 “이 때문에 긴 시간을 두고 개발자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딩강사 양성과정은 제주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해 취업과 연결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IT 개발자 과정은 전공·비전공자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교육 과정으로 마련했다.

제주 인구는 지난 10년 간 9만 명 정도가 증가했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이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다음’을 시작으로 넥슨 등 ICT 기업들이 제주도로 본사를 옮겼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1개월 살아보기’라는 게 유행할 만큼, 제주도는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닌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 됐다. 제주도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육성책을 선보이고 있다. ‘육지 스타트업, 제주도로 내려오게 하기’다. 지난 7월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지벨리컨벤션에서는 ‘제주와 동반 성장할 기업을 찾는다’는 제주도의 기업유치 마케팅 행사가 열렸다. 지난 4월에는 판교테크노밸리에서 ‘2017 국내 기업 유치 설명회’도 열었다. 제주도개정, 외부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건물 임차료, 시설장비구입비 지원 상시고용 인원 기준을 30명에서 10명 초과로 완화했다. 고용보조금이나 교육훈련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시고용인원 기준도 20명에서 10명 초과로 완화했다. 당시 제주자치도 이승찬 관광국장은 “조례 개정은 이전 가능한 ICT 기업을 위한 제도개선”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외부 스타트업 유치 카드 내민 제주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매달 제주도 밖의 인재들과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위한 체류지원 프로그램인 ‘제주다움’을 운영 중이다. 전정환 센터장은 “외부인이나 외부 스타트업이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상황이 별로 없었는데, 우리는 그게 가능하다고 봤다”며 제주다움을 시행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매월 15~20명의 참여자를 모집해 체류비와 협업 공간인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교류를 하면서 제주도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숙박 홍보 플랫폼을 만든 ‘여행상자’와 프리 에이전트 그룹을 활용한 IT 서비스 지원 및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시소’ 같은 스타트업은 체류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도에서 창업을 한 스타트업이다.

물론 약점도 있다. 제주도는 관광 도시라는 특성상 제조업 스타트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제주스타트업협회 윤형준 회장도 제주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ICT 융복합 시대이지만, 제주도는 아직 오프라인 관광 산업이 더 많이 활성화됐다는 게 약점”이라고 말했다. 좋은 개발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제주도에 뿌리를 내린 투자사도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 스타트업 대표는 “제주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머리 아프게 창업을 하느니 리어카 하나 사서 장사하는 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만큼 제주 젊은이들에게 창업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붐을 일으키고, 좋은 인재와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게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숙제인 셈이다.

[박스기사] 인터뷰 | 강명수 혼디모아 대표 - 농업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창업가


▎혼디모아 강명수 대표는 농약 수위조절장치로 지난해 11월 진행된 ‘농수산식품창업콘테스트 나는 농부다’에서 4등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 사진 : 강명수 대표 제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3기 입주기업 혼디모아 강명수(45)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의 전직은 사진작가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자, 2010년대 초반 제주도로 돌아와 감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감귤 농사를 짓다가 경험한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에 도전했다. 생활 밀착형 창업가인 셈이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제품은 농약 수위조절장치다. 지렛대와 코일 스프링·판 스프링 등의 원리를 이용해 농약을 담아놓는 농약 탱크를 자동으로 기울게 하는 장치다. 농사를 짓는 이들은 강 대표의 제품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농부들이 겪는 일상 속의 어려움을 해결해준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뭔가.

2013년 어느날 감귤 농장에 농약을 주고 있었다. 농약 탱크에 농약이 얼마 남지 않으면 농약이 나오지 않으니까, 탱크로 달려가 기울여야만 한다. 날씨도 덥고 지치는데, 70kg 정도 되는 탱크를 기울이려니 너무 힘들고 짜증 났다. 농약이 줄어들면 농약 탱크를 자동으로 기울여서 계속 나오게 하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원리를 이용했나.

지렛대 원리와 핀 스프링과 코일 스피링의 성질을 이용했다. 농약 탱크의 무게에 따라 스프링을 2개 혹은 4개 사용하게 된다 되돌아오는 스피링의 성질을 이용해 농약 수위 조절 장치를 완성했다. 이 기기를 사용하면 자동으로 최고 30센티미터까지 기울일 수 있다. 농민들은 이 기기에 대해 설명하면 바로 알아듣는데, 일반인들은 이 물건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야만 이해를 한다.(웃음)

2013년에 제품 아이디어를 냈는데, 혼디모아 창업은 3년 뒤인 2016년 7월이다.

공업센터에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더니 대량 생산이 아니면 만들어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2015년 10월에 첫 제품이 나왔다. 동네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나씩 팔았는데, 그 뒤에 카피 제품이 나오더라.(웃음) 그래서 특허 등록과 함께 사업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창업 관련된 정보와 지원 정책은 제주상공회의소에서 도움을 받았다. 2015년 말부터 2016년까지 여러 창업 대회에 출전했고, 법인의 필요성을 느껴서 지난해 7월 창업했다. 혼디모아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농수산식품 창업콘테스트 나는 농부다’에서 4등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이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3기로 사무실을 입주했고, 농림수산 식품기술기획평가위원회 기술사업화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3년 동안 8억원을 지원받았다. 공공기관의 각종 지원 사업으로 시제품과 어느 정도의 기계화를 이룰 수 있었다.

제주도의 제조업 스타트업 창업가로서 느끼는 어려운 점은.

제주도는 공업도시가 아니니까 부품 하나 사려고 해도 너무 힘들다. (웃음) 제주도청이 관광 관련 분야 스타트업에 지원을 많이 하니까, 창업가들도 그런 특성을 많이 따라간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제조업 스타트업 창업가가 거의 없어서 아쉽다.

목표가 뭔가

농업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창업가가 되고 싶다. 농업인구가 고령화가 되고 있고 감소하는 중이다. 국가산업의 근간인 농업에 치명타를 줄 것이다. 결국 농업에 필요한 것들을 기계화하고 자동화를 이뤄나가야만 한다. 혼디모아가 농업의 혁신을 이룰 것이다. 혼디모아는 ‘한데 모여’라는 뜻이다. 여럿이 모여서 함께 하자는 뜻으로 혼디모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 제주=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201708호 (2017.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