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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 희성그룹의 빅딜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LG그룹에서 분가한 희성그룹이 완전 홀로서기에 나섰다. 형식은 LG·희성그룹 간 상호 보유 주식의 처분이고, 내용은 오너가의 경영권 강화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친자인 구광모 LG 상무의 지분 강화에,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자사의 완전한 독립에 역점을 두고 있다.

LG그룹과 희성그룹 등 범LG가(家) 4세들이 후계 구도 정리에 나섰다. 각 계열사의 주식을 교차해서 갖고 있던 이들은 최근 해당하는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지난 9월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의 세 자녀는 보유하던 LG와 LG상사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이에 앞서 구광모 LG 상무도 보유하던 희성금속 지분을 전부 정리했다. 구 상무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자로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2004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입적됐다.

경영 전면에 서 있는 3세들도 회사 지분을 정리 중이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희성금속 지분 28%와 희성정밀 지분 43.32%를 9월 6일 삼보E&C에 매각했다. 삼보E&C는 동생인 구본식 부회장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회사로, 구 회장이 구 부회장 일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희성그룹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2남 구본능 회장과 4남 구본식 부회장이, LG그룹은 장남 구본무 회장과 3남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그동안 LG그룹과 희성그룹의 자제들은 서로 주식을 교차 소유해왔다.

재계에서는 일련의 과정을 LG그룹과 희성그룹이 서로 거리를 두면서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본식 부회장과 자녀들은 LG 지분을 매각한 돈으로 희성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강화하고, 구본능 회장은 희성그룹 계열사 주식 매각 자금으로 친자인 구광모 상무의 LG 경영권 강화를 지원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범LG가 4세들이 일감 몰아주기 등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면서 자사의 지분을 더 매입하기 위해 상호 회사의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4남2녀를 두었다. 이들 중 구본능 회장과 구본식 부회장은 1996년 1월 희성전자 등 6개 계열사를 가지고 일찌감치 분가했다. 이후 LG에서 안정적으로 일감을 수주한 덕분에 승승장구하며 희성화학·희성정밀·삼보E&C 등 10개 계열사를 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계열사는 모두 비상장기업이다.

상호 보유 주식 처분하며 ‘교통정리’


현재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희성전자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용 백라이트유닛(BLU), 액정표시장치모듈(LCM), 터치스크린모듈(TSP)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LG디스플레이에 60% 이상 공급된다. 9월 기준으로 희성전자의 최대주주는 42.1%를 보유한 구본능 회장이다. 2대 주주는 구본식 부회장(29.4%), 3대주주는 구 부회장의 아들인 구웅모(13.5%)이다. 또 허정수 GS네오텍 회장과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각각 10%와 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등 LG·GS그룹과 끈끈하게 얽혀 있다.

구 회장과 구 부회장은 올해 4월 포브스코리아가 조사·선정한 ‘2017년 한국 50대 부자’에 나란히 올랐다. 구본능 회장은 주식과 배당금 등 금융자산이 지난해보다 23.08% 늘면서 1조3362억원으로 31위에 올랐다. 전 년 대비 순위가 4계단 올랐다. 구본식 부회장은 1조689억원으로 40위다. 역시 재산이 지난해보다 17.07% 늘면서 5계단 상승했다.

주식이 오르자 이를 발판으로 ‘경영권 강화’에 나서고 있다. 구본식 부회장 자녀인 구연승·연진·웅모 세 남매가 7월부터 9월까지 LG·LG상사의 지분을 전량 처분해 마련한 돈은 832억원이다. 재계에선 이들이 희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추가 확보해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주식 전량 매각을 보면 승계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을 사기 위한 현금 확보의 목적이 커 보인다”며 “우선 희성전자와 삼보E&C 주식 매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희성전자의 최대주주는 구 회장(42.1%)이지만 구 부회장과 아들 웅모씨의 지분을 합치면 42.9%로 사실상 최대 지분이다.

최근 단행된 계열사 간 지분 매매를 통해 구본식 부회장은 사실상 그룹의 최고 실세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의 외아들 웅모씨에 대한 경영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4세 경영 승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웅모씨는 1989년 생(28세)으로 아직 특별한 직책을 맡기에는 어리기 때문이다. 그는 병역을 마친 후 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주식 처분해 친자 지원 나선 회장


그룹 계열사 주식 처분에 나선 구본능 회장의 로드맵은 ‘투 트랙’으로 예상된다. 동생인 구본식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여 희성그룹을 맡기고, 확보한 현금으로는 친자인 구광모 상무의 LG그룹 내 지분 확보를 도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동생 구 부회장 일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신의 희성금속과 희성정밀 지분을 판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구 회장의 희성금속·희성정밀 지분 처분으로 복잡하던 희성그룹 지분 구조는 ‘구본능 회장·구본식 부회장 일가→희성전자→삼보E&C→희성금속’으로 단순하게 바뀌었다. 구 회장의 영향력은 약해진 반면 삼보E&C 상근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구본식 부회장은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보E&C가 구본능 회장 지분을 매입한 덕분에 희성금속에서 최대주주로서의 구 부회장 입지가 강화됐다”며 “구 부회장이 희성촉매·희성화학 등 자신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열사 주식을 삼보E&C를 통해 매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보E&C는 연간 5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건설사다.

구 회장이 확보한 현금은 1329억원. 재계에서는 이 돈이 구광모 상무 지원에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구 상무는 LG가의 장손이다. 구본능 회장의 친아들이지만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2004년 딸만 둘인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2014년부터 LG에서 신사업 발굴을 총괄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구 회장이 남은 희성그룹 계열사 주식도 매각해 그 자금으로 LG 지분을 늘려 구 상무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2014년에도 구 회장은 구 상무에게 LG 주식 190만 주를 증여한 바 있다. 2012년 LG의 지분율이 4.7%에 불과했던 구 상무는 이에 힘입어 올해 9월 기준 6.12%로 3대주주에 올랐다. 그는 그룹 내 ‘캐시 카우’로 불리는 종합물류 계열사 판토스의 지분도 7.5% 소유하면서 LG그룹 내 지분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친부인 구본능 회장은 LG 주식 3.45%를 갖고 있다. LG그룹은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를 구축해놔 LG 지분율만 높이면 경영권 승계 작업이 타 그룹사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증권가 관계자는 “지난여름부터 시작된 방계 가족의 주식 처분이 9월에 매듭지어진 모양새”라며 “구광모 상무 중심 후계 구도의 준비 과정으로 보이며 그래서 연말 인사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희성그룹 4세들의 지분 처분이 있던 9월, 구 상무의 오촌인 이선용 베어트리파크 대표와 작은할머니인 구자영씨도 LG 지분을 정리했다. 구 상무 위주로 지분구조를 정리하기 위해 친척들이 지주회사 주식을 처분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업 분야 홀로 서야 ‘완전 독립’


▎희성전자의 과도한 LG그룹 의존도는 약점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의 사업 전략이 바뀌자 희성전자의 매출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희성그룹이 사업 분야에서도 LG그룹의 우산을 벗어나야 진정한 독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희성전자는 LG디스플레이에 과하게 의존하는 취약한 사업포트폴리오가 약점으로 지목돼왔다.

희성전자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의 광원 역할을 하는 백라이트유닛(BLU)을 LG디스플레이에 단독 공급하고 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LG디스플레이에서 나온다. 그러나 높은 LG디스플레이 의존도는 지난해 희성전자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LG디스플레이가 패널 사업 전략을 LCD에서 BLU를 쓰지 않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패널로 바꾸기 시작하자 희성전자 매출이 급감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희성전자 매출은 2조5094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0% 줄었다. LG디스플레이가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OLED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희성전자는 더 큰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

희성전자도 신사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4월엔 전기차 등 미래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에 나서기도 했다. 5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실탄도 장전해 즉각 투자에 나설 준비도 마쳤다. 우선 본업인 전기전자 외에도 전기차 분야에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이 전사적으로 전장부품 사업을 일구고 있기 때문이다. LG는 차체만 빼고 거의 모든 차량 부품을 취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희성전자는 아직 LG그룹 손이 닿지 않은 틈새시장을 발굴해 주요 협력사 자리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지분 정리가 아닌, 독립적 사업 영역을 확보하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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