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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12)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인도 출신의 경영인 락시미 미탈은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고, 가장 활발한 네트워크를 하는 아시아 출신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락시미 미탈(68)은 인도 출신의 경영인이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의 회장이다. 이 회사 주식 37.4%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포브스는 ‘세계 부자 순위’에서 미탈을 세계 56위의 부자로 올렸다. 재산은 164억 달러로 추산했다. 뿐만 아니라 72명만 뽑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미탈은 2008년부터 골드만삭스의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탈은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 있으며, 가장 활발한 네트워크를 하는 아시아 출신 경영인으로 통한다.

세계 최대 철강기업 오너 경영인


▎아르셀로미탈이 폴란드에 문을 연 철근 압연공장 내부 모습.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둔 다국적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은 2016년 기준으로 조강생산량이 9550만t에 이르러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상하이에 본부를 둔 중국 국영기업 바오강(寶鋼)그룹이 6380만t을 생산해 2위에 올랐다.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에 위치한 허베이(河北)철강그룹이 조강생산량 4620만t으로 뒤를 이었다. 2012년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이 합병해 탄생한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3위와 거의 차이 없는 생산량으로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포스코는 4160만t으로 5위에 올랐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아르셀로미탈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생산량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철강 공룡기업이다.

이러한 아르셀로미탈은 미탈 회장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200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뒀던 미탈 회장의 미탈사가 스페인, 프랑스, 룩셈부르크에서 철강을 생산하는 서유럽 철강업체 아르셀로를 330억 달러를 주고 인수하면서 탄생했다. 미탈 회장은 인수합병 직후 본사를 룩셈부르크로 옮겼다. 이렇게 탄생한 아르셀로미탈은 2016년 매출이 567억9100만 달러에 세전 이익 62억5500만 달러, 순이익 41억6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총자산이 751억4000만 달러, 시가총액이 301억 3000만 달러에 이른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직원 2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메가 고용주다. 현재 미국, 프랑스, 스페인, 룩셈부르크, 벨기에, 이탈리아. 캐나다, 브라질, 우크라이나,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에서 철강을 생산한다. 미탈의 제철소는 해가 지지 않는다.

미탈은 아시아 출신이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다. 인도 국적이면서 아르셀로미탈의 본사는 조세와 비즈니스에 유리한 룩셈부르크에 두고 있다. 자신과 가족은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중의 하나인 사우스켄싱턴 지역의 저택에 거주한다. 1997년까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살았던 켄싱턴궁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미탈은 국적이 아닌 거주자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영국 부호 랭킹에도 10년 넘게 1위에 오르고 있다. 인도 부자 순위에선 인도 최대 복합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2세 경영자 무케시 암바니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암바니는 재산이 28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암바니는 가족 간 재산분쟁에 휘말려 영향력에선 미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다.

미탈의 영향력은 글로벌적이다. 인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의 해외 투자 관련 이사와 고문직도 맡았다. 세계철강협회와 세계경제포럼의 이사직도 맡았으며 미국의 켈로그 경영대학원, 인도 경영대학원의 이사도 지냈다. 재산이 상당히 줄었음에도 미탈은 여전히 성공의 상징으로서 부와 명예, 그리고 영향력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기업인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그래도 미탈 회장의 본업은 철강이다. 그의 혈관에는 쇳물이 흐른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모든 업적을 철강업으로 이뤘기 때문이다.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에서 태어나 서부 대도시 캘커타로 이주한 그는 어려서부터 철강에 익숙했다. 상인 집안 출신의 부친 모한 랄 미탈이 강철 산업이 미래가 있다고 보고 철강 산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모한은 두 아들인 프라모드와 비노드를 데리고 철강 산업을 계속 키워나갔다. 락시미는 여기에 끼지 못했다.

인도의 철강가문에서 독자로 창업해 ‘마이 웨이’

미탈 가문의 락시미는 부친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돕는 대신 1976년 가족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철강회사를 창업했다. 그것도 인도가 아닌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이스파트 인디아’라는 이름의 철강회사를 설립하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그가 직접 세운 유일한 제철소다. 지금 소유한 나머지 철강회사는 모두 인수합병을 통해 손에 넣었다.

1989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그는 신규 제철소를 더 짓기보다 기존 철강회사와의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M&A는 미탈이 세계적인 철강왕으로 오르게 된 힘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신규 제철소를 짓느니 기존 기업을 합병해 경영 효율을 꾀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미탈이 글로벌 철강왕에 오르는 비법이었다.

미탈이 주도한 이후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는 글로벌 철강업계의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를 신호탄으로 국경을 넘는 인수합병이 글로벌 철강업계에선 일상적인 일이 됐다.

제철소 설립보다 M&A로 글로벌 철강네트워크 완성

해외에 직접 공장을 세우는 ‘그린필드 방식’이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도 작용했다. 방대한 부지와 거대한 시설이 드는 제철소 건설은 부지 확보를 위한 주민 설득과 환경평가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도 지루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포스코도 10년 이상 인도 동부 오리사주에 제철소 건설을 타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끝 모르고 연기되고 있다. 미탈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피할 수 있는 M&A로 몸집을 키우고 시너지를 얻는 길을 택했다. 인도 출신의 아시아 경영인 미탈이 글로벌 철강왕에 오른 핵심적인 비결이다.

미탈이 글로벌 철강왕에 오른 것은 2004년이다. 자신이 소유하던 LMN그룹과 미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인터내셔널 스틸그룹을 합쳐 ‘미탈철강’을 세운 바로 그해다. 45억 달러가 투입된 이 M&A를 통해 그는 마침내 세계 1위 철강기업의 소유주가 됐다.

그의 야망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2005년 경쟁기업이던 아르셀로와 치열한 인수 경쟁을 거쳐 우크라이나의 크리보리즈스탈을 합병했다. 인수가는 당시 시장 가격의 2배인 48억 달러였다. 치열한 승부사 기질이 보이는 합병이었다.

아르셀로는 룩셈부르크의 아르베드와 프랑스의 우시노르, 스페인의 아세랄리아가 2002년 합병하면서 생긴 회사다. 이 회사는 2005년 캐나다의 도파스코를 합병하면서 이듬해 세계 2위의 철강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듬해 미탈은 신일본제철, 포스코와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침내 이 회사를 합병해 아르셀로미탈을 세웠다. 100억 달러의 부채를 포함한 380억 달러가 들어간 엄청난 M&A였다. 세계 1위와 2위의 결합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1위 철강그룹을 세웠다.

미탈은 영국의 부동산 역사도 새로 썼다. 2004년 영국 런던의 쾌적한 부자 동네인 사우스켄싱턴의 켄싱턴 가든 18~19번지에 있는 저택을 5700만 파운드(약 7902만 달러)에 구입했다. 당시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이었다. 런던 한복판의 초대형 녹지대인 하이드 파크의 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가 신혼 때 살던 켄싱턴 궁전을 지척에 두고 있다. 주변에 대사관과 공연시설, 명문 사립학교가 즐비한 쾌적한 부촌이다. 같은 거리 6번지와 9번지의 저택도 1억 1700만 파운드(약 1억8200만 달러)와 7000만 파운드(약1억900만 달러)에 각각 구입해 아들 아디티야(36)과 딸 바니샤(33)에게 주었다. 6번지의 저택도 구입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의 기록을 깼다. 이 집에서 미탈 가족은 인도인의 ‘브리티시 드림(성공해서 세계적 부호와 나란히 영국에서 사는 꿈)’을 이뤘다. 미탈 덕분에 그와 자식들의 집이 있는 켄싱턴 가든은 ‘억만장자의 가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특한 것은 미탈 회장이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2부 리그인 EFL 챔피언십 소속 퀸스파크 레인저스(QPR) 지분 11%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QPL은 바로 박지성이 마지막으로 뛰었던 그 팀이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의 튠스그룹이 지분의 55%를 확보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말레이시아 국적이지만 뿌리는 인도의 타밀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QPL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도계 글로벌 경영인 간의 유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탈은 영국에 살면서도 본국인 인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인도 스포츠 진흥에 기부하면서 인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도가 2000년 하계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 2004년에는 은메달 하나에 그치는 등 스포츠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하자 900만 달러의 진흥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자신과 조상의 고향인 라자스탄 등에서 교육사업도 벌인다. 미탈은 마르와리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에 속한다. 이 종족은 상인으로 유명하다. 인도와 네팔에 거주하는 마르와리족은 중세부터 영국 지배 시절까지 교역으로 부를 쌓은 상인이 많았다. 1947년 인도 독립 뒤에는 뛰어난 경영 감각으로 현대 산업에 투자하거나 직접 창업하는 모험적인 기업인을 많이 배출했다. 현대 인도 억만장자의 4분의 1이 마르와리족 출신이다. 상당수가 고향을 떠나 대도시인 콜카타(과거 캘커타로 불림) 등 대도시에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왔다. 새롭게 등장한 산업에서 미래 가치를 발견하고 누구보다 먼저, 열성적으로 투자한 것이 마르와리족의 투자 기법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기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과감한 상인 정신은 부를 낳은 원천이었다.

이러한 마르와리족 출신의 미탈은 타고난 상인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도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탈의 자식 경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경영에 참여시켰다. 가족 전체가 나서서 경영에 참가하는 전통을 아르셀로미탈에 정착시켰다. 아들 아디티야에겐 그룹의 핵심인 아르셀로미탈의 CFO를 거쳐 현재 공동 CEO를 맡기고 있다. M&A와 전략커뮤니케이션도 담당한다.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워턴스쿨을 1996년 우등 졸업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딸 이방카가 나온 학교다.

그는 M&A 전문가다. 대학을 마치고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이라는 은행에서 M&A를 담당하다 1997년 아르셀로미탈에 합류했다. 1999년 미탈그룹의 성장엔진에 해당하는 M&A를 맡으면서 M&A를 통해 그룹을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2006년 380억 달러를 들여 이룬 미탈과 아르셀로 간의 세계적인 합병을 성사시킨 주인공이 바로 그다. 이 합병은 그의 협상력과 아버지 미탈 회장의 판단력이 더해져 시너지를 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가족 합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인도계 글로벌 기업인의 대부 역할도

그는 이 일로 아버지의 결정적인 신임을 얻었다. 지금 아르셀로미탈은 사실상 부자가 공동 경영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창업했지만 그룹 성장에는 어린 아들이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경영승계도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 2009년 포천지는 아디티야를 ‘주목해야 할 40세 이하 경영인 40명’의 4번째에 넣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젊은 글로벌 리더 포럼 활동에 열심이다.

아디티야는 독일 패션그룹 에스카다 오너의 딸인 메가와 결혼했다. 부부가 기부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2008년 런던의 한 병원에 1500만 파운드(약 2330만 달러)를 기부해 ‘미탈 어린이 병원’을 세우도록 했다. 미탈 가문이 비즈니스 성공과 축구팀 지분 소유라는 개인적인 호사에 이어 기부까지 손을 뻗었다.

미탈의 딸 바니샤는 유럽경영대학원 출신이다. 2007년 포브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상속녀로 꼽았다. 바니샤는 2004년부터 경영에 참가, 현재 미탈 그룹의 지주회사인 LNM 홀딩스의 이사를 맡았다. 그룹의 주력 기업인 아르셀로미탈과 미탈 철강의 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2004년 투자은행가인 아미트 바히아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결혼’으로 보도됐다.

미탈 회장은 자식들에게 원대한 목표 설정과 끈기,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을 강조한다. 자신이 이 세 가지를 앞세워 사업 확장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미탈 가문의 경영 지침이다.

※ 채인택은…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201802호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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