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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3) 

어린이는 열광, 어른은 불편 로알드 달의 '마틸다'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20세기 최고의 어린이 소설 작가로 꼽히는 이가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알드 달이다. 어린이의 다면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영국 시인 윌리엄 워드워스(1770~1850)는 [무지개(A Rainbow)]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the father of the man)”라고 읊었다.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어린이가 아니었던 어른은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된 다음에는 어린아이의 마음, 즉 동심(童心)을 잃는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여러 모습이 숨어 있다. 동심은 순수하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다’는 말은 유치하다(childish)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때 어른들은 어린이보다 훨씬 유치하다. 또 어떤 때 어린이들은 어른들 못지 않게 잔인하다. 어린이에게는 폭력성도 발견된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틸다]의 초고에서는 주인공인 어린이는 부모를 고문하는 사악한 존재로 그려졌다. 편집자의 의견이 반영돼 대폭 수정됐다. 어린이는 어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 부러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어른이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그러한 어린이의 다면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20세기 최고의 어린이 소설 작가 중 한 명이 된 인물이 있다. 영국 소설가·시인 로알드 달(1916~1990)이다.

로알드 달은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 소설을 써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로알드는 19편의 어린이 소설과 9편의 단편집을 출간했다. 60개 언어로 번역돼 2억5000만 부가 팔렸다. 그는 전쟁 영웅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다. 2016년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로알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옥스퍼드 로알드 달 사전]을 출간했다.

선과 악의 다툼은 주요 문학적 주제다. 로알드 달의 작품에서는 어린이가 선, 어른이 악이다. 어린이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마틸다](1988)에서도 같은 구도가 발견된다. [마틸다]의 타깃 독자층은 9~11세 어린이다. 영문판으로 240페이지, 한글판으로 310페이지다. 특히 독서를 좋아하고 생각이 깊은 애어른 같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설이다. 1996년 [마틸다]가 영화로 나왔다. 1990년과 2010년에는 뮤지컬로 상연됐다. [마틸다]는 어른들에게 어린이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선물한다.

어린이 눈으로 어린이 소설을 쓴 작가


무대는 영국의 한 작은 마을, 전교생이 250명인 작은 학교, 그리고 엄마·아빠·아들·딸로 구성되는 4인 가족이다. 주인공 마틸다는 4살이다. 똑똑하고 조숙하고 예의 바르다. 하지만 그는 강한 아이다. 성질이 불같은 구석도 있다. 수학 천재다. 14곱하기 19를 단 1초에 머리 속으로 풀 수 있다. 마틸다의 뛰어남에 대해 [마틸다]는 이렇게 그리고 있다. “마틸다는 한 살 반이 되었을 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어른들이 알고 있는 만큼의 어휘력을 갖추었다.” “마틸다가 세 살이 되었을 때는 집 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신문이나 잡지들을 보면서 스스로 읽기를 터득했다.”

부모는 마틸다에게 무관심하다. 태만하다(neglectful). 아빠는 속임수로 중고차를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가다. 엄마는 빙고 놀이에 몰두하느라 마틸다에게는 통 관심이 없다. 아빠·엄마·오빠는 TV가 주요 여가 활동이다. 오빠 마이클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마틸다는 상냥(sweet)하고 겸손한 아이다. 의리도 있다. 친구를 위해 잘못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누구나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부당한 일에는 참지 못한다. 마틸다는 아빠도 응징의 대상이다. 아빠의 구박을 묵인하지 않는다. 속임수(trick)와 장난(prank)으로 아빠에 복수한다. 초강력 접착제 소동, 유령 소동, 머리 염색 소동이 한바탕 벌어진다.

로알드 달의 작품에 나오는 어린이 주인공들은 결코 지고지순(至高至順)하지 않다. 작가는 ‘어른은 어린이보다 지혜롭고 합리적이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또한 어른들 중 일부는 좋은 사람, 일부는 나쁜 사람이다. 마틸다의 아빠만 해도 “정직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없다(No one ever got rich being honest)”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기꾼이다. ‘어린이는 억압적(oppressive)이고 잔인한(cruel) 어른들에게 저항(resistance)의 권리가 있다’는 게 로알드 달 작품에 나오는 단골 테마다.

마틸다에게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마을 도서관이 탈출구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같은 것을 다 읽어 치우고 어른들 책을 읽는다. 처음으로 읽은 어른 책은 찰스 디킨스의 [Great Expectations]이다. 제인 오스틴, 토머스 하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조지 오웰도 읽는다.

마틸다는 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친절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드디어 엄마 역할까지 할 친구가 나타났다. “어여쁜 성모 마리아 같은 얼굴”을 한 23살의 하니 선생님이다. 마틸다의 첫 담임인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가능성을 첫눈에 알아봤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월반시키려고 하지만 트런치불 교장이 반대한다. 트런치불은 악녀다. “나만큼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을 해 본다면 애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서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을 거야”라며 학생들을 괴롭힌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마틸다를 그가 사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으로 초대한다. 선생님의 불행한 인생 얘기를 듣는다. 알고 보니 트런치불은 하니 선생님의 이모다. 하니 선생님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하니 선생님이 받을 유산을 이모가 빼앗았다. 트런치불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크고 너는 작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I’m right and you’re wrong, I’m big and you’re small, and there’s nothing you can do about it)”라고 말한다. 현실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에서는 다르다. 마탈다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물컵을 넘어뜨리거나 분필을 허공에 띄워 칠판에 글을 쓸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마틸다가 염력(Telekinesis)으로 트런치불을 혼내준다. 트런치불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친다. 마틸다의 부모들 역시 훔친 차를 팔다가 적발돼 스페인으로 도망간다. 마틸다에 대한 친권을 마치 앓던 이 빼는 것처럼 포기한다.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과 행복하게 살게 된다.

생전 마지막 작품 '마틸다'


▎[마틸다]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 두 차례나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동화는 어느 정도 교육적이다. [마틸다]도 교육적일까. 그렇다. [마틸다]를 통해 로알드 달은 똑똑함·공부·교육의 가치를 강조한다. “마틸다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했고, 아주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대목을 읽고 어린이 독자들은 책의 가치에 대해 궁금하게 될 것이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니 선생님은 이렇게 일갈한다. “만약 당신에게 이 순간에 심장마비가 왔다면 의사를 불러야 할 겁니다. 그 의사는 대학을 졸업했겠지요. 또 당신이 못 쓰는 중고차를 누군가에게 팔았다는 것으로 고소를 당했다면, 당신은 변호사를 구해야 할 겁니다. 그 변호사 역시 대학교를 졸업했을 테지요. 웜우드씨, 머리 좋은 사람들을 싫어하지 마세요.(If you had a heart attack this minute and had to call a doctor, that doctor would be a university graduate. If you got sued for selling someone a rotten second-hand car, you’d have to get a lawyer and he’d be a university graduate, too. Do not despise clever people, Mr. Wormwood.)”

동화는 영감의 보고다. [마틸다]의 내용 중에서 생각거리를 던지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뽑는다면 다음과 같다. “큰 일을 하려면 어중간하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돼. 그러니까 철저하게 해버리는 거야. 너무나 미친 짓이라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Never do anything by halves if you want to get away with it. Be outrageous. Go the whole hog. Make sure everything you do is so completely crazy it’s unbelievable.)”

로알드 달(Roald Dahl)의 이름에서 ‘로알드’는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에서 따왔다.(‘Roald’를 우리말로 표기할 때 노르웨이 인명은 ‘로알’, 영미권 인명은 ‘로알드’이다.) 로알드 달의 부모는 노르웨이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 로알드는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로알드는 9살 때부터 기숙학교에 다녔다. 선생님이 피가 나도록 매질을 했다. 루터교 소속 크리스천이었던 로알드는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됐다. 학교 다닐 때 특출한 학생은 아니었다. 크리켓·축구·골프 등 스포츠는 잘했다. 로알드는 중등교육을 마친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934년 쉘 석유 회사에 입사해 탄자니아 지사에서 5년간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1939년 영국왕립공군(RAF)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서 리비아·그리스·시리아에서 싸웠다. 그는 격추왕(flying ace)이 된다. 이집트에서 격추당한 후에는 스파이로 활동했다. 로알드의 다른 작품으로는 [제임스와 슈퍼복숭아(James and the Giant Peach)],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등이 있다.

키가 198㎝에 달했다. 바람둥이였다. 배우 퍼트리샤닐(1926~2010)과 1953년 결혼했으며 30년 뒤인 1983년 이혼했다. 퍼트리샤 닐은 196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로알드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어린이 환자를 돕는 활동을 했다. 하지만 로알드는 일면 불쾌하고 무례한 인물이었다.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그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반사회적 내용을 비판했다. 199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여성혐오(misogyny)가 발견된다고 공격했다. 1983년에는 한 인터뷰에서 “유대인 기질에는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있다(There is a trait in the Jewish character that does provoke animosity)”고 말해 구설수를 초래했다.

로알드의 작품에서는 어둡고 섬뜩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어린이들은 산더미 같은 팬레터를 보냈다. 어른들은 왠지 불편했다. [마틸다]에 대해서도 비평가들은 호평은 보냈으나 극찬은 없었다.

영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작업 시간표를 정해놓고 충실히 따른다. 로알드의 경우에는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동물들을 돌보았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다시 글을 썼다. 로알드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다음 같은 말을 남겼다. “비즈니스맨의 인생과 비교한다면 작가의 인생은 절대적인 지옥이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일을 강요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준수해야 한다. 책상에 앉지 않더라도 그를 꾸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가가 되는 사람은 바보다. 작가에게 주어진 유일한 보상은 절대적인 자유다. 작가에게는 그 자신의 영혼 이외에 그 어떤 주인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로알드 달이 남긴 좋은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 “인생의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그곳이 어느 곳이건 그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If you are going to get anywhere in life you have to read a lot of books.)”

- “마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술을 발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Those who don’t believe in magic will never find it.)”

※ 김환영은…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에세이]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2호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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