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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30년 사건과 인물들(5) 

벤처의 시련기 

최영진 기자
2000년대 초반은 ‘벤처의 시련기’였다. 2000년 10월부터 터지기 시작한 ‘4대 게이트’ 때문에 ‘벤처=사기꾼’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와 함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투자가 끊기면서 많은 벤처가 문을 닫았고, 스타 창업가로 주목받던 이들이 구속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렇게 2000년대 초반은 벤처인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02년 1월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이경수 대덕밸리벤처 연합회 회장, 장흥순 벤처기업협회 회장, 변대규 벤처리더스 클럽 회장, 강원 한국IT중소벤처기업 연합회 부회장, 한문희 한국바이오벤처 협회 회장, 이영남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이금룡 한국인터넷 기업협회 회장 (앞줄 왼쪽부터) 등 7개 벤처기업협회장들이 모임을 갖고 벤처기업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앞으로 ‘무늬만 벤처’, ‘사이비 벤처’인 기업들이 다시는 발붙일 수 없도록 확인할 뿐만 아니라 확인 후에도 철저한 사후관리로 벤처산업의 건전기반을 확립하고 옥석을 구분해 진정한 벤처기업이 발굴되어, 우리나라 벤처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계획이다.”

위 문구는 2002년 2월 당시 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에서 발표한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 보도자료 일부분이다. ‘사이비’, ‘발붙일 수 없도록’, ‘건전기반 확립’ 등 구체적인 단어를 보면 검찰청이나 경찰청에서 나온 보도자료라 해도 될 정도로 어투가 강하다. 벤처업계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그만큼 나빴다는 것을 반증하다.

90년대 후반 시작된 ‘벤처 열풍’은 2000년대 초반 맥없이 꺼졌다. 한때 ‘1등 신랑감’으로 꼽혔던 벤처 창업가들은 ‘사기꾼’이라는 시선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벤처 거품이 꺼진 후 벤처업계는 고요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정부는 벤처업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투자는 중단됐다.

1998년 코스닥 시가 총액은 8조원도 되지 않았다. 벤처 붐이 불면서 코스닥 지수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999년 말에는 코스닥 시가 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2000년 3월 10일에는 코스닥 지수가 2834.4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거기까지였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 26일 코스닥 지수는 52.58로 급락했다. 9개월 만에 코스닥 시장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벤처 붐이 이렇게 갑자기 꺼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IT 거품 붕괴가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도 “글로벌 시장의 영향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조성된 벤처금융 시장이 어느 순간 투기장으로 변했다”면서 “여기에 사이비 벤처와 작전세력이 출몰하면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는데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게 벤처 거품이 꺼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4대 게이트’, 벤처업계 향한 시선 냉담하게 만들어

김 전무의 설명대로 2000년대 초반 벤처업계의 악몽으로 꼽히는 ‘4대 게이트’가 터졌다. 2000년 10월 ‘정현준 게이트’를 시작으로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등은 ‘벤처=사기꾼’이라는 인식을 퍼지게 했다. 벤처업계에서는 “벤처인 행세를 했던 꾼들이 벌인 정관계 로비 사건”이라고 항변했지만 사회 분위기는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벤처업계에 조폭 자금까지 흘러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벤처기업 육성을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도 4대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닥으로 향했던 부동자금 일시에 빠져나가

당시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2002년 9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술과 원리만 생각하던 이들이 사업을 하다 보니 법과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많은 실수를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라 금융계나 정치권 출신들이었다. 이른바 현 정부의 4대 게이트에 벤처인은 한 명도 없다”고 항변할 정도였다. 김영수 벤처기업 협회 전무는 기자에게 “성실히 기술개발과 사업에 매진한 벤처 기업인과 관련 없는 기업 사냥꾼이 일으킨 투자 사건”이라며 “4대 게이트 때문에 한국 벤처는 재기의 원동력을 상실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벤처업계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투자 분위기도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도 “2000년대 초반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손해가 막심해지자 검찰이 개입해 수사를 하고 기재부가 여러 가지 규제방안을 내놓자 부동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로 인해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활동했던 창업가들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때의 아픈 기억을 다시 이야기하기 어렵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NHN이나 넷마블 같은 벤처는 벤처 시련기에도 꾸준하게 성장을 이어나가면서 현재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NHN도 검색엔진만으로는 수익모델이 없어서 초기에 고전했지만 한게임넷과 합병하면서 확실한 수익모델을 만들었다”면서 “넷마블과 함께 게임이라는 수익모델 덕분에 이를 재투자해서 역량을 강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패한 벤처와 성공한 벤처의 차이는 탄탄한 수익모델이 있으냐 없느냐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사전·사후 관리 강화한 ‘벤처건전화 방안’

벤처업계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정부도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0년 2월 정부가 발표한 ‘벤처건전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코스닥 등록심사 강화다. 코스닥 등록 기업의 경영정보를 공시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퇴출 기준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벤처 확인 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벤처 확인 대상 기업은 ‘혁신 능력 평가’에 합격한 기업으로 한정했다. 연구개발 기업의 경우 R&D 투자비용이 일정액 이상이어야 벤처기업으로 확인받을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벤처 평가기관 실명제’도 도입했다. 정부의 벤처건전화 방안은 쉽게 말해 벤처기업 확인 기준을 강화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데 방점을 둔 것이다.

벤처기업협회도 자구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2000년 2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장흥순 회장은 그해 12월 지구촌 한인 벤처기업가를 네트워크로 묶는 ‘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트워크(INKE)’ 창립총회를 열었다. 2000년 9월에는 ‘벤처기업헌장’을 발표했다. 이후에는 ‘벤처 윤리경영 확산사업’ 등을 벌이면서 이미지 개선에 적극 나섰다. 2002년 8월 협회 내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벤처업계에 윤리경영 시스템 도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당시 장흥순 회장은 윤리위원회 설치 이유에 대해 “벤처기업의 투명경영을 촉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벤처기업들의 윤리경영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벤처업계에 드리운 시련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기까지 이어졌다.

[박스기사] 벤처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4대 게이트’


▎2001년 1월 6일 국회 정무위 금감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답변 도중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오른쪽)을 쳐다보고 있다.
4대 게이트는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공통점은 벤처기업인 행세를 하던 이들이 불법 행위로 회사 규모를 키웠고,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현준 게이트: 2000년 10월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KDL) 사장과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 등이 수백억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고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과정에서 금감원과 정치인 등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건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벤처기업인이 연구에 몰두해 기술개발에 힘쓰지 않고 인수합병에 투자하거나 20여 개 기업을 사들여 재벌 흉내를 내는 등 완전한 타락상을 보여줬다”고 말할 정도였다. 30대 초반의 정 사장은 2300억원대 불법대출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진승현 게이트: 2000년 11월 터져 나온 사건으로 ‘제2의 정현준 게이트’라고 불린다. 20대 인수합병 전문가로 행사하던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은 열린상호신용금고 인수 후 300억원이 넘는 불법대출을 받았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진승현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열린금고와 한스종금, 리젠트종금 등에서 약 2300억원을 불법대출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진 부회장은 이 비자금으로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02년 대법원은 진 회장에게 징역 5년을 확정했다.

이용호 게이트: 2001년 9월 언론에서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주목을 받았던 이용호 G&G그룹 회장이 횡령과 주가 조작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자신의 계열사인 삼애인더스를 통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보물선 발굴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가를 조작해 150여억원의 차익을 얻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졌고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가 이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검찰 간부와 정관계 인사 1800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담긴 리스트를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5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윤태식 게이트: ‘수지 김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는 정관계 로비 사건이다. 1987년 홍콩에서 윤태식이 부인 수지 김을 살해했는데, 자신은 ‘밀입북 미수사건’의 피해자라고 조작했다. 당시 안기부가 진상을 은폐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1998년 9월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패스21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패스21의 고속성장에는 정관계 인사의 비호가 있었다. 2001년 12월 금감원이 회사 자금 2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윤태식을 고발하면서 사건이 본격화됐다.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6개월이 확정됐다.

[박스기사] 한정화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 “과거 벤처꾼들 이젠 발붙이기 어려워”


▎사진:연합뉴스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지원육성 프로그램이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다. 2013년 당시 중소기업청 주관으로 시작된 ‘민간투자주도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주인공은 2013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제13대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다. 교수 출신의 최장수 청장이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중소기업과 벤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교수에게 2000년대 초반 벤처 생태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중기청장으로 일할 때 팁스 제도를 도입했다.

고품질 기술창업을 위해서는 우수 전문인력이 시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술창업의 경우 3년이 지나면 데스밸리(창업 후 3~7년 차에 접어들면 자금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위기에 빠지는 현상)에 빠지고 재무 상태가 나빠지고 자금 조달이 어려운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패키지 지원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팁스는 지분투자와 R&D, 마케팅 지원을 한데 묶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 선별을 민간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다.

팁스를 도입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지원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기회비용이 높은 우수인력의 시장 참여를 이해서 좀 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팁스 덕분에 우수인력이 시장에 참여했고 후속 투자와 해외 투자가 정부 지원보다 많아지면서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됐다.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1990년대 후반 급속하게 확대된 벤처 생태계가 급속하게 힘을 잃어간 이유가 뭔가?

미국의 인터넷 버블이 꺼진 영향도 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IMF 금융위기 이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벤처로 몰려들었고, 이것이 벤처 거품을 만들었다. 코스닥이 투기판이 됐다. 2000년대 초반 버블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기업이 분식회계를 통한 IPO로 주식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기관들은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공급과잉과 수요기반 부족으로 코스닥 지수가 내려갔다. 많은 개인 투자자가 손실을 입으면서 벤처 거품이 꺼지게 됐다.

흔히 말하는 ‘4대 게이트’가 벤처 생태계에 악영향을 줬다는데.

4대 게이트를 일으킨 사람들은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 벤처기업가가 아니다. 머니게임을 하는 소위 ‘꾼’들이다. 이들이 정치권과 결탁하고 주가를 조작해 시장을 망친 장본인이다.

벤처 붐이 꺼지는 데 정부의 ‘퍼주기식 지원’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많다.

당시 정부는 30대 재벌의 절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일자리를 살리고 경제 활성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정부의 시그널에 의해 부동자금이 몰렸고 거품이 생기면서 개미가 몰려들었고 결국 거품이 꺼지게 됐다. 정부의 잘못이 있지만 한국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기 힘들다고 본다.

벤처의 시련기로부터 어떤 것을 배워야 하나?

지금은 한국의 금융 시장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쉽게 버블이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자금 공급을 확대하는 만큼 수요 확대를 위한 정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벤처는 돈을 많이 풀어서 성공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의 선별능력과 감시 기능이 작동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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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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