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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가족의 상속권 

 

민경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난 8월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앞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첫걸음인 셈이다.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선 이산가족이 상시로 만날 수 있는 방법도 논의했다. 더불어 북한에 둔 이산가족에게 상속할 방법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올해 남북 정상이 잇달아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남북관계가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특히 북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이산가족들은 이러한 기대감이 남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산가족이 접촉하면 자연히 법적 분쟁이 따라올 것이다. 특히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는 상속 문제일 것이다.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할까. 상속인 지위에 해당하려면 대한민국 민법에 따른 혼인 관계, 친생자 관계 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헌법상 기본권이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여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하지만 남북 분단의 장기화·고착화로 인해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가 단절되고, 북한 사회에서 거주·이전 및 통신의 자유가 강하게 통제됨에 따라 별도의 법적인 조치가 없는 한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북한에서 이루어진 혼인 관계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남한에서 재혼한 경우 원칙적으로 중혼이 되어 취소사유에 해당하게 된다. 북한 주민인 배우자가 남한 배우자의 후혼을 문제 삼는 경우 남한에서 성립한 후혼이 보호받지 못하게 되어 수십 년간 함께 산 가족관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북한에서 혼인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아버지가 월남하여 남한에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가 사망하였다면 북한의 자녀들은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 친자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사망한 아버지의 상속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사망을 알았다고 하더라도(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생존 조회 등) 2년 안에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모가 혼인을 하지 않고 태어난 자녀가 제기할 수 있는 인지청구의 소송도 마찬가지다.

이에, 남북한의 장기간 단절로 북한 주민의 상속 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할 필요와 기존 남한 내의 법률관계의 안정을 도모할 목적으로 2012년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남북가족특례법’)이 제정되었다.

남북가족특례법은 남·북한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관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일정한 경우에는 제척기간을 연장하는 특례를 인정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그 권리 행사로 인하여 남한 주민 등에게 발생할 수 있는 법률관계의 불안정을 최소화하여, 남·북한 주민 사이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입법되었다.

남북가족특례법으로 북한 주민 상속권 보호

남북가족특례법은 크게 가족관계에 관한 특례와 상속 등에 대한 특례 규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먼저, 가족관계의 경우 중혼에 관한 특례 규정을 두어 6·25사변 종전 이전에 북한에서 혼인한 자가 남한에서 다시 혼인한 경우에는 중혼이 성립하나, 중혼을 취소할 수는 없도록 했다. 그리고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와 인지청구의 소에 관한 제척기간의 특례를 인정해 분단의 종료, 자유로운 왕래,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소의 제기에 장애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년 내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상속회복청구권은 해당 상속인들 사이뿐 아니라 그 상속재산을 다시 취득한 제3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상속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려는 취지에서 상속권의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하도록 제척기간을 두고 있다.

그런데 상속회복청구와 관련하여 남북가족특례법은 남북 이산으로 인하여 피상속인인 남한 주민으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북한 주민이었던 사람을 포함한다) 또는 그 법정대리인은 민법 제999조 제1항에 따라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나 인지청구의 소의 경우와 같이 민법에서 정한 제척기간에 관하여 특례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속이 발생한 이후 10년이 지나 북한의 상속인이 남한의 상속인들에 대하여 남북가족특례법을 근거로 상속회복청구권을 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됐다.

1심 판결에서는 북한 주민의 경우에는 상속회복청구권의 민법상 제척기간인 10년이 지났더라도 여전히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민법상 제척기간이 적용돼 북한 주민도 남한 주민처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권이 침해된 날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상속회복청구권이 소멸한다고 판시했다.

북한에 있는 상속인에게 상속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상속회복청구권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 때문에 북한 주민인 상속인 대부분이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없게 되어 사실상 상속권이 박탈됐다. 친생자확인청구 및 인지청구의 제소기간 연장의 특례가 인정되더라도, 판결이 있기 전에 상속이 개시돼 상속재산이 분배됐다면 판결에 의하여 상속인으로서의 신분관계가 확정되더라도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없다.

남북한이 분단되고 어느덧 70년이 넘었으니 혈육을 다시 상봉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인간이 사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상속이 발생하게 되는데, 피상속인의 혈육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게 상속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활발히 진행되는 남북 관계를 고려해 북한 주민의 가족관계와 상속권 문제도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민경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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