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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1) 

5G 세계 최초 상용화의 겉과 속 

이기준 객원기자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둘러싼 국가별 각축전이 한창이다. 9월 초 KT, S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가 12월 1일부터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개시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10월 1일부터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며 선수를 치고 나섰다. 버라이즌이 출시한다는 5G 서비스는 휴대용이 아니라 고정형 기기인 데다 휴스턴, 인디애나폴리스, 로스앤젤레스, 새크라멘토 등 미국 4개 도시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하지만 실제 효율성에 논란이 적지 않다.
인류는 누구나 돈만 내면 5G망에 접근하는 ‘5G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버라이즌 측에 따르면 이 신규 5G 서비스의 속도는 평균 300Mbps, 최고 1Gbps다. 국내 이통사의 기가급 4G LTE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지난해 SKT가 내놓은 5밴드 주파수묶음(CA) LTE는 최고 속도 900Mbps를 기록했으며, 올해 초엔 최고 속도를 1Gbps까지 높였다. 서울 등 10개 도시에서 특정 최신형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때만 이용 가능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아예 단 4개 도시에서만 가능하며 휴대조차 불가능한 버라이즌의 5G 서비스에 비하면 나은 형편이다. SKT는 기가급 LTE망을 올해 말까지 85개 시, 82개 군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LTE 서비스와 비교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지난해 말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도 통신서비스 품질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LTE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133.43Mbps였다. 버라이즌의 5G 서비스 평균 속도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다. 농어촌과 등산로 등 취약지역이 50%나 포함된 평균이므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측정하면 평균 속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선 와이파이로 비교할 경우 차이는 더 적어진다. 같은 자료에서 와이파이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상용 264.86Mbps, 공공 286.73Mbps로 나타났다. 심지어 해외에선 LTE가 더 빠른 속도를 보이기도 한다. 미국 통신업체 T모바일은 뉴욕 맨해튼에서 LTE망을 통해 평균 500Mbps의 속도를 구현하고 있다. LTE망 대역에 사용하지 않는 와이파이 주파수 대역까지 포함시키는 LAA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5G가 4G보다 20배 더 빠르다는 통신사 측 주장이나 여러 언론 보도와 확연히 다른 사례들이다.

두 얼굴의 5G

5G가 20배 더 빠르다는 계산은 이동통신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5G 표준에 따른 결과다. 이 표준에 따르면 최고 다운로드 속도가 20Gbps여야 5G망으로 규정된다. 4G LTE의 최고 속도가 1Gbps이니 20Gbps인 5G가 20배 더 빠른 것이 맞다.

문제는 당분간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로는 20Gbps 속도를 도저히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버라이즌의 5G 서비스는 휴대가 불가능하고 4개 도시에서만 쓸 수 있다는 한계를 가졌음에도 평균 속도 300Mbps에 그친다. 12월 1일 상용화가 예정된 국내 이통 3사의 5G 서비스도 같은 기술을 채택한 만큼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향후 수년간 5G는 4G의 20배는커녕 현 4G만큼의 속도를 광범위한 지역에 구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표준은 표준일 뿐이다. 4G가 막 등장했을 당시의 표준 속도는 휴대 시 100Mbps, 정지 시 1Gbps였지만 이 표준이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렸으며, 세계 대다수 지역에선 아직도 이 표준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5G 기술은 굉장히 폭넓게 정의돼 있다. 지난해 12월 5G 표준이 확정된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5G를 이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현재 표준에서 5G는 6GHz 이하 주파수 대역과 그 이상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망으로 구분돼 있다. 6GHz 이하 주파수 대역은 현재 LTE망과 같은 대역으로, 현재는 주로 3.5GHz 대역을 쓴다.

그보다 높은 대역, 보통 30GHz 이상의 주파수 대역을 밀리미터 대역이라고 부르는데, 밀리미터 대역을 이용할 경우 같은 5G임에도 3.5GHz 주파수 대역을 쓰는 망보다 압도적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홍원빈 포스텍 교수는 “밀리미터 대역을 이용하면 지금 우리가 통신에 사용하는 유선 광케이블의 속도를 무선으로도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구현이 어렵다. 밀리미터 대역 주파수를 송수신하는 데 필요한 기기는 비싸고 만들기 어렵다. 또 신호 손실이 크고 직진성이 높아 장애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상용화하려면 기지국 개수도 크게 늘려야 한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주파수가 10배 높아지면 기술적 난도와 경제성은 약 100배는 어려워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3.5GHz 주파수 대역은 어떨까. 의견이 갈리는 것은 이 지점이다. 4G와 같은 대역을 사용해도 충분한 속도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쪽과 밀리미터 대역이 아니면 진짜 5G라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측으로 나뉜다. 홍 교수는 “국가별로 밀리미터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국, 미국, 일본이 밀리미터파 개발에 적극적인 반면 중국이나 유럽 같은 국가에선 3.5GHz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3.5GHz로도 5G 규격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거든요. 밀리미터 대역 논리의 약점이기도 한데, 쟁점은 3.5GHz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충분하다는 생각은 주관적이죠. 어느 정도여야 충분한지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처음엔 4.5G라고 불렀다”


▎올해 2월 국제전기 통신연합(ITU)의 글로벌 통신전문가들이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SK텔레콤의 ICT 이글루를 찾아 무안경 가상현실 오로라 등 다양한 5G 시범서비스를 체험하고 있다. / 사진:SKT 제공=연합뉴스
홍 교수는 3.5GHz 대역에 성능상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홍 교수는 “3.5GHz 대역을 사용해도 일정 선까지는 5G가 가능하다. 그러나 응답성이나 속도에 임계점은 있다”며 “밀리미터파를 이용하면 지금 우리가 통신에 사용하는 유선 광케이블의 속도를 무선으로도 실현할 수 있게 되지만, 3.5GHz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제조사 퀄컴의 예측값에 따르면 3.5GHz를 이용한 5G 기술의 평균 속도는 490Mbps, 밀리미터 대역은 1.4Gbps였다.

홍 교수는 3.5GHz와 밀리미터 대역을 “기존 5층 건물 리모델링과 60층 고층 건물 신축”과 비교했다. 4G LTE도 처음 서비스 됐을 때에 비해 최근의 광대역 LTE의 성능이 월등하다. 5G도 그렇게 볼 수 있을지 묻자 홍 교수는 “3.5GHz 대역과 밀리미터 대역의 차이는 초기 LTE와 현 LTE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고 답했다. 그렇게 차이가 크다면 같은 5G로 부르기 힘든 것 아닐까? “그래서 처음 개발할 때 3.5GHz 대역을 이용한 5G는 4.5G라고 불렀다. 그러나 규격은 동일한데 속도로 이렇게 구분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를 5G라 불러야 할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묶어서 5G로 분류한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에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T모바일의 캐리 쿠오파마키 부사장은 미국 이동통신 전문 웹진 와이어리스원 인터뷰에서 “하청업체 말로는 5G가 LTE보다 25%에서 50% 정도 빠를 거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와이어리스원은 “또 다른 익명의 취재원은 20% 정도 성능 향상을 예측했다”며 “둘 다 실제 테스트 결과는 없는 예측 값이다. 하청업체 영업사원은 보통 예측을 부풀리는데도(25%밖에 부르지 않은 것)”라고 지적했다. “25% 성능 향상으로 차세대 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데이브 버스틴 와이어리스원 편집장은 “5G가 LTE보다 5배에서 10배 이상 빠르다는 주장은 노후화된 LTE 기기와 미래의 5G 기기를 비교한 데서 나온다”며 “그러나 이 모든 개선은 밀리미터 대역을 제외하면 4G 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으며, 그 경우 4G와 5G의 성능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5G 장비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중국 화웨이도 5G의 앞날이 장밋빛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에릭 쉬 화웨이 순환회장은 지난 4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회담에서 “5G 통신망이 (4G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이긴 하다”면서도 “대다수 소비자는 4G와 5G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혁신적인 변화를 이뤄낼 정도는 아니라고 평했다. 쉬는 “지난 수년간 통신업계와 각국 정부가 마치 5G가 세상 만물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라도 되는 양 5G를 너무 부풀려놨다”며 “5G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만큼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화웨이의 포트폴리오에서 5G는 그저 하나의 제품일 뿐”이라고 밝혔다.

쉬는 통신업체들이 5G를 강조하는 데는 마케팅적인 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쉬는 “통신업계나 소비자 모두 1위 기업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이 5G를 잘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심지어 4G 제품조차도 그 기업에서 구매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위해서라도 5G를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G를 어디에 쓸 것인가

익명을 요청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현재 5G는 안 하자니 불안하고, 하자니 찜찜한 기술”이라며 “5G에 관여하지 않으면 IT기업들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미지를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5G의 또 한 가지 문제는 당장 어디에도 쓸 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5G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면 5G는 4K UHD 동영상,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의 활성화에 필수적이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것처럼 나온다. 그러나 4K UHD 영상을 끊김 없이 보려면 약 20Mbps면 충분하다. VR이나 자율주행차 기술은 향후 5년 내에라도 널리 상용화될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이 없다.

사물인터넷 분야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홍 교수는 “5G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지연성(latency)이 낮은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며 “수많은 공장 설비를 동시에 빠르게 조작하기 위해선 낮은 지연성이 필수다. 최근 중국, 베트남 시장도 인건비가 올라가고 해서 공장자동화 등 B2B 쪽에서는 (5G 설비의) 거래 검토가 많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버스틴은 “AT&T는 5G 서비스의 지연성을 9에서 11ms로 추정하고 있는데 에릭슨은 LTE의 지연성을 9ms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며 “지연성 측면에서도 4G와 5G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선 5G는 일단 만들어 놓고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주기를 바라는 정도에 그치는 형국이다. 홍 교수는 “5G를 언제 쓸 건지 업계나 학계에서 똑부러지게 답하기는 어렵다. 5G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업에선 영업기밀이기 때문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며 “또 요즘 기술 트렌드는 소비자가 요구해서 개발되는 게 아니라 기술이 개발되고 나서 생각하지 못했던 신기술이 나오는 형태다”라고 설명했다.

5G 망이 빠르게 상용화를 향해 가는 데 비해 이와 관련된 서비스 개발이나 정책적 뒷받침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김유향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한 보고서에서 “5G 융합서비스 발전을 위한 정부부처 간 협력체계 구축과 관련 법제도 개선이 선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5G 망 구축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킬러 서비스 개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 조사관은 이어 “다양한 5G 융합서비스 발굴과 성장을 위해 민간의 투자 리스크를 경감하고 규제 개선사항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한 시범사업 등은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호진 포스텍 교수는 국가적 준비나 고민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현재 4G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서비스는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 서비스다. 5G에서도 고유의 성질에 적합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가 발생할 텐데 이런 미래 인터넷 서비스에 정책적 준비가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5G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꽃피우는 시기는 202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송호진 포스텍 교수는 “재미있게도 2020년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 최신 기술이 주목받을 주요 이벤트가 중요 5G 기술 보유국에서 열리게 된다. 여기에서 5G의 큰 진화가 예상된다”며 “실제 해당 국가들은 그런 목표를 가지고 기술개발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이기준 객원기자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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