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진짜 가을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11월은 심리적으로 만추(晩秋)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 2악장을 들으며 가을을 떠나보내는 달이다.

호되게 무더웠던 여름은 사라졌다. 이제는 노랗게 물든 거리의 가로수 잎이 언제쯤 흙과 입맞춤할까를 상상한다. 아직 첫눈은 멀리 있지만 가을의 낭만은 늘 우리를 외로운 철학자로 바꿔놓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을이 언제 왔는지 언제 도망갈지 아리송하다.

가을의 시작과 끝은 글이나 과학으로 풀 수 없다. 천지인, 3가지 방식으로 가을을 정의하기도 한다. 천(天)의 의지로 해석될 수 있는 천문학에서는 가을을 9월 23일부터 12월 22일까지로 정의한다. 언뜻 봐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부터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까지다. 그런데 지(地)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절기로는 8월 8일 부근부터 11월 7일 부근을 가을로 본다. 입추부터 입동까지다. 단어로 깔끔하게 알 수 있다. 가을 시작부터 겨울 직전까지다. 인(人)은 중용(?)을 지켜 천문학과 절기의 해석에서 딱 중간을 가을이라고 푼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9월부터 11월까지가 가을이라고 말한다. 8월은 무더웠던 지난여름 어느 해변가에 두고 온 추억을 마무리하는 달이고 12월은 첫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거리를 깡총깡총 뛸 준비를 하는 달이다.

12지(支)에서 가을을 뜻하는 단어는 신유술이지만 이 중 신유는 가을의 성질을 나타내는 단어이고 본질을 가르키는 단어는 술(戌)이다. 단단함을 상징하는 신유는 가을이 결실을 이루는 걸 알려준다. 그러나 술은 불(火)을 아궁이 불처럼 아래로 품고 여름 내내 거만했던 만물을 억지로 겸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묘하게 우리말 ‘술’과 발음이 같다. 마치 가을에는 사람들도 한잔하며 여름날 치열했던 자연과의 싸움을 끝내라는 신의 지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렵 막걸리를 주로 마셨을 테고 서양에서는 포도주를 담그는 계절이기도 하다. 술(戌)은 12지신에서 개에 해당된다. 쥐(子)나 토끼(卯)도 그렇겠지만 가을이 되면 개는 특히 겨울대비용 털갈이를 심하게 한다. 먼 옛날 추운 겨울을 단단히 대비하라는 의미에서 성현들이 술(戌)을 개에게 할당해줬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 특히 북위 38도선상에 사는 한국인의 가슴속 가을은 9월부터 11월까지다. 한국인은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열리는 내장산 축제에서 단풍이 완전히 떨어져야 가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아마 한반도 남쪽 끝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동산의 가을 단풍은 11월 말 끝날 게 틀림없다. 11월은 심리적으로 만추(晩秋)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 2악장을 들으며 가을을 떠나보내는 달이다. ‘브람스의 눈물’로 불리는 10분 남짓한 이 음악은 왜 가을, 그것도 늦가을 늦은 밤에 들어야만 눈가가 촉촉해지는지 참 모를 일이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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