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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뮤지컬컴퍼니 엄홍현 대표 

쌀 배달하던 빈털터리 ‘촌놈’, 뮤지컬로 우뚝 서다 

유주현 기자
2009년 빈손으로 뮤지컬 제작사를 차렸다. 첫 작품 ‘모차르트!’부터 동방신기 출신 김준수를 캐스팅해 대박을 치더니 ‘엘리자벳’, ‘레베카’ 등 품격있는 유럽 뮤지컬로 틈새시장을 개척해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2018년 지금, 그를 공연계 최고의 ‘뜨거운 남자’로 만든 건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다. EMK뮤지컬컴퍼니 엄홍현(45) 대표 얘기다. 2006년 처음 뮤지컬에 투자해 쫄딱 망한 지 12년 만에 ‘한국 뮤지컬의 세계 진출’을 외치며 뮤지컬 산업을 견인하는 위치로 성장한 뮤지컬계 이단아 엄홍현 프로듀서를 만났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는 초연부터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11월 4일 폐막을 앞둔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번째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는 지난 7월부터 국내 최고 공연장인 예술의전당과 블루스퀘어를 누비며 ‘올해의 뮤지컬’로 떴다. 10월 14일 기준 총 117회 공연에 누적 관객 20만 명, 평균 객석 점유율 93% 등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우며 초연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버렸다. 개막도 하기 전에 내년 4월 일본 라이선스 공연까지 결정됐고, 11월 5일 열리는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예그린대상을 비롯해 무려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지난 3월 제작발표회 당시 제작기간 5년, 제작비 175억원이라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탄생을 알리며 “누가 봐도 최고 프로덕션으로 만들어 전 세계 풀라이선스로 수출하겠다”던 엄홍현 대표의 야심이 공연한 게 아니었던 셈이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원작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음악과 로버트 요한슨 연출의 탄탄한 스토리 전개, 요즘 공연계 ‘섭외 1순위’로 뜬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의 마법 같은 무대미술이 완성도를 높였지만, ‘175억 대작’의 위엄을 과시한 건 이 모든 걸 밀어부친 엄 대표의 불도저 정신이다. 그가 지금 손대고 있는 일은 ‘웃는 남자’뿐만이 아니다. ‘뮤지컬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지금, 1년 내내 4개 작품을 돌리면서 개발이 진행 중인 신작도 3개 이상이다. 2주 동안의 미국·일본 출장에서 막 돌아왔다는 그는 “세계 진출을 제대로 하려면 뉴욕과 런던에 본거지를 둬야겠기에 시동을 걸어 놓고 왔다. 곧 현지법인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다.

“뮤지컬 시장? 정체가 아니라 끝까지 온 것”


▎엄홍현 대표는 창작 뮤지컬 세계화를 위해 곧 뉴욕과 런던에 현지법인을 오픈할 계획이다.
‘웃는 남자’가 첫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에 비해 훨씬 성공했는데요.

저는 둘 다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마타하리’도 두 번째 시즌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니 다음 시즌부턴 수익을 낼 건데요, ‘웃는 남자’는 초연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니 월등히 잘된 건 맞죠. ‘마타하리’ 스태프가 그대로 넘어온 거라 호흡이 잘 맞고 디테일이 강화돼 더 발전적인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유럽 뮤지컬에서 창작으로 전향한 이유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니까요. 라이선스란 작업은 남의 걸 빌려서 하다 보니 스태프들이 임하는 자세가 좀 달라요. 그동안 스몰 라이선스로 실력을 키웠으니 창작을 할 때가 된 거죠. 전 세계 프로듀서들이 다 똑같을 거예요. 실력만 갖춰지면 자기 걸 하고 싶은 게 기본이죠.

주요 창작진은 외국인을 기용했잖아요.

우리 창작진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해요. 저는 한국이나 아시아 시장만 대상으로 삼지 않아요. 한국 제작자가 외국 나가서 우리에게 실력 있단 걸 보여주려면 남의 도움도 필요하죠. 10년 전부터 문화 세계화를 외치고 있잖아요. BTS도 한국 시장보다 해외 시장에서 벌어오는 수익이 어마어마할 거예요. 아이돌들이 외국곡 많이 받아오는 것과 똑같은 원리죠. 일단 세계로 나가려면 외국인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선택했고, 이걸 바탕으로 진출하게 되면 내가 아니더라도 나가기 쉬워질 겁니다. 2022년쯤에는 한국 스태프로만 창작하려고 벌써 팀을 꾸렸어요. 한국 연출가가 만들고 바로 영화 제작까지 들어가는 계약이 조만간 마무리됩니다.

엄 대표는 ‘한국 뮤지컬 시장 정체기’라는 진단에 대해 “국내 시장의 케파가 끝까지 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 흐름 면에서나 인구감소 면에서나 국내 시장의 뮤지컬 매출은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매출은 멈출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나 영국은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느냐는 싸움이지만, 우리는 인구대비로 따지면 여기가 정점인 거죠. 여기서 10% 안에서 움직이겠지만, 3천억~4천억 시장이 5천억~6천억으로 가지 못할 걸요. 그러니 외국에 나가야 돼요. 지금 국내는 대관료, 광고, 홍보, 급여, 개런티가 10년 전보다 40% 올랐는데, 매출이 그대로라면 제작자가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티켓값을 올리자니 흥행도 안 된 걸 값부터 올릴 순 없잖아요.”

아시아 시장이 쉬울 텐데 왜 굳이 영미에서 승부하려 하나요.

아시아 시장은 EMK에 너무 당연하죠. ‘웃는 남자’는 개막 전에 일본 토호와 계약했고, 중국의 오퍼도 엄청납니다. 아시아는 얼마든지 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한국과 큰 차이가 없어요. 수익도 얼마 안 남죠. 외국인이 일본에 와서 뮤지컬 안보잖아요. 뉴욕, 런던에 가야 ‘뮤지컬 한 번 볼까’하는거죠. 이 시장은 전 세계 공통으로 싸우는 공간이기에 의미가 있어요. 하루도 안 쉬고 공연하는 뉴욕·런던 본거지에서 ‘라이온킹’, ‘마틸다’와 대등하게 승부하는 게 의미 있다 생각해요.

과연 영미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뭔가요?

찾고 있는 중이에요. 벌써 찾았으면 여기 안 있겠죠. 일단 그 시장에 흡수되는 게 우선이에요. 지금 엄홍현이 미국에 왔다고 보러 오라고 하면 누가 오나요. 우리가 너네 이상 만들 수준이라는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고 일단 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이번에 미국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아시아를 누가 인정하냐’는 뉘앙스가 그들과 나눈 대화 속에 있더군요. 끊임없이 노크하면 답이 오지 않을까요. 내년 안에 영미 현지법인을 구축해서 부딪치면서 시작할 거예요.

‘올해의 명장면’은 천 한 장으로


▎뮤지컬 ‘웃는 남자’의 엔딩은 바람에 예술적으로 날리는 천 한장으로 ‘올해의 명장면’이 됐다.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웃는 남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숨막히게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남녀 주인공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수중 장면을 영상이나 특수효과 없이 아날로그로 정직하게 구현했다. 바람에 예술적으로 날리는 천한 장으로 만들어낸 ‘올해의 명장면’이다. “둘이 안고 바다로 들어가는 장면을 우주인지 바다인지 우리가 모르는 세계로 떠나는 느낌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몽환적인 바닷속을 표현하기 위해 작년부터 계속 테스트했죠. 1년 동안 전 세계를 뒤져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천을 천만원 넘게 주고 직수입했어요. 비행기 소재로 쓰이는 천이라더군요. 그걸 찾기까지 천을 60장 정도 끊었으니, 버리는 돈도 엄청 많았죠.”

뭐든 ‘올인’하는 스타일인가요?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관객도 만족하지 못하니까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관객이 더 많이 상상할 수 있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걸 보여줘야 관객도 만족한다 생각해요. 디자이너들에게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걸 가져와달라고 요구하죠. 뻔히 예상대로 간다면 누가 만족할까요.

스케일 승부가 공연계 슬림화 추세와 역행하는 걸로 보여요.

미국도 원세트에 단출하게 영상으로 만드는 추세더군요. 제작비가 올라가 수익이 안 나니까 10년 전부터 축소하고 있죠. 그런데 안 그런 것도 있어요. 이번에 뮤지컬 ‘킹콩’에서 기술의 최절정이자 예술의 극대화를 목격했죠. 10m쯤 되는 킹콩이 나오는데, 얼굴에 웃음·슬픔·분노가 다 보이는 거예요. 저는 이걸 추구하겠다는 거죠. 어차피 다 아는 콘텐트로 승부하는데, 원세트로 하는 것과 다 쏟아붓고 하는 것 중 관객이 어디에 만족할까요. 예전 외환위기 시절에도 경제는 안 좋았지만, 결국 한두 군데는 돈을 더 많이 벌더군요. 경제가 힘들면 두 번 즐길걸 한 번만 즐길 텐데, 이왕이면 만족도가 가장 높은 걸 보지 않을까요. 미국에서도 왜 그렇게 돈을 쓰냐고 다들 묻길래 이렇게 답했어요. 요즘 브로드웨이 공연들이 돈 아낀 티가 팍팍 나는데, 그런 건 내가 관객에게 창피해서 보여줄 수 없다고요.

“뮤지컬은 자본 아닌 의지로 하는 것”

엄 대표는 전형적인 뮤지컬 제작자들과 결이 다르다. 강원도 영월, 충북 제천에서 자란 ‘촌놈’으로 스무 살까지 뮤지컬은커녕 연극 한 편 본 적 없다. 스무 살에 빈손으로 상경해 1999년 배우 류정한이 출연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처음 봤지만, 그냥 관객이었다. “뮤지컬을 왜 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운명이란 내가 정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요. 여기까지 올 줄 상상도 못 했죠.”

다만 그에겐 ‘정주영 같은 사람이 되자’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빈손으로 상경해 최고 부자가 된 그분이 어릴 때부터 너무 멋져 보였어요. 제천에 살 때 둑이 무너졌는데 당시 현대그룹에서 쌀과 국수, 라면을 집집마다 나눠주더군요. 전두환 대통령은 달랑 밀가루 한 포대씩 주는데. 대통령보다 돈 많은 사람이 최고구나. 그때부터 존경하게 됐어요.”

그래서 상경하자마자 쌀 배달부터 한 건가요?

아뇨.(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농민총연맹에서 일을 하다가 상경했는데, 제천농협 조합장 추천으로 양재동 우성아파트에 있던 아산군 농민총연맹에 취업을 했어요. 거기서 무역센터 현대백화점에 아산 간척지 쌀을 납품하다 아예 판매사원이 됐죠.

그러다 어떻게 큰돈을 만지게 됐나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선배, 친구가 많아요. 인터넷 도입 초기에 선배 한 분이 인터넷 약정 가입 사업을 하라고 소개해줬죠. 하다 보니 컴퓨터 설치 기사분들과 친해졌어요. 아침에 박카스 따주며 제 전화번호를 드리면, 그분들이 영업을 다 해줬어요. 6개월 만에 업계를 다 잡아먹었죠. 당시 수십억원을 벌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벤트 기획에 눈을 돌렸다. 무주에서 2년간 연예인들과 함께 스키를 타는 ‘스타스키캠프’ 사업을 벌였다 쫄딱 망했지만 연예인 인맥은 남았다. 연예인 인맥을 활용해 우연히 뮤지컬에 투자했다가, 돈 받으러 간 곳에서 뮤지컬 ‘드라큘라’ 비디오를 보고 ‘뿅 가버려’ 아예 제작자로 나섰다. 섣불리 덤벼든 입봉작은 20억 적자를 내고 또다시 ‘쫄딱 망했다’. 뮤지컬이 쉽사리 돈을 버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3년 동안 제작사에서 일을 배우고 2009년 우리 회사를 차렸어요. 그동안 사업이 많이 망했는데, 그래도 늘 돈이 생기면 빚부터 갚으니 주변에서 도와주더군요. ‘너처럼 열심히 하는데 실패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도와주신 형님들 덕에 첫 작품 ‘모차르트!’를 올릴 수 있었어요.”

당시 ‘동방신기’ 김준수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지만, 남자 배우들 개런티 거품으로 욕도 먹었죠.

우리 회사 제작감독이 김준수와 인맥이 닿길래 만나서 오디션을 제안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죠. 지금 같으면 ‘무조건 해주세요’ 했을 텐데. 근데 불러보라고 하니 부르더군요. 계약서에 도장 찍기까지 과정이 굉장히 험난했지만, 정말 잘해줘서 감사해요. ‘개런티 거품’이라는 비난에 제가 욕을 엄청 먹지만, 분명한 건 준수가 처음엔 엄청 싸게 계약했다는 거예요. 하다 보니 워낙 다 잘돼서 개런티가 올라간 거죠. 고액 개런티와 관련해서는 지금은 배우와 제작사 간에 타협점을 찾는 단계인 것 같아요. 이제는 끝까지 왔다고 서로 인식하는데, 스태프와 배우 모두 뮤지컬인으로 다 같이 살 수 있는 선을 찾겠죠.

업계에서 ‘이단아’로 통했는데, 이제 산업을 견인하는 입장이 됐어요.

처음엔 전공자가 아니라서 너무 힘들었어요. 연기·음악·세트·대본 아무것도 몰랐죠. 그저 ‘내 눈이 바로 대중의 눈’이라고 마법을 걸었어요. ‘내가 대중이다’라는 생각으로 겁 없이 덤볐죠. 2006년 ‘드라큘라’가 망할 때 신춘수 선배가 ‘최소한 10년은 넘어야 뮤지컬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고, 박명성 선배도 늘 ‘너 의지 있어 임마? 뮤지컬은 예술이 아니라 의지로 하는 거다’라고 하시는데, 이제 그 말씀이 이해가 되요. 뮤지컬은 130명 스태프가 에너지를 0.5%씩 모아 100%를 만드는 것이더군요. 사람의 끈끈함으로 치고받으며 에너지를 생산해야지, 돈으로 되는 게 아니였어요. 저도 업계에서 희생도 봉사도 하면서 요즘에야 좀 인정받는 것 같네요.

EMK는 내년부터 공연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카카오와 합작회사를 계약해 올해 공연계에서 또다시 화제가 됐다. 그간 쌓아온 입지로 카카오의 공연사업 진출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든든한 자금원을 확보해 창작 뮤지컬 제작과 세계 진출에도 더욱 힘을 받게 된 것이다. 내년 6월 신작 ‘엑스칼리버’를 시작으로 2021년 빈뮤지컬 창작진을 기용한 ‘베토벤’, 2022년 온전히 한국 창작진의 힘으로 만들 신작까지 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이유다.

“창작 뮤지컬 세계화를 위해 달릴 것이고,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수익을 얻는 구조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신작들이 얼마나 잘 나올지 확신은 못 하지만, 모든 창작진에게 우리 일은 작품 하나를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세계에 통할 작품을 만드는 것이란 걸 잊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내가 아니라도 한국에서 누구 하나는 세계 진출을 꼭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세계 진출을 위해 직원을 왕창 보충할 계획인데,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가 나타나 세계로 끌고 가길 바라는 겁니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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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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