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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빅피쉬벤처스 대표 

유럽과 아시아 직구 시장의 고속도로 플랫폼 

박지현 기자
해외 직구 전성시대다. 글로벌 해외 직구 시장 규모는 65조원을 넘어섰고, 한국 내 시장 규모만 2조원이 넘는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미국 아마존, 이베이, 중국 알리바바, 징둥닷컴도 덩달아 몸집이 커지고 있다. 김영하 빅피쉬벤처스 대표는 이 공룡들 틈에서 금융 서비스를 가지고 자체 플랫폼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

▎김영하 빅피쉬벤처스 대표는 금융과 유통이 결합된 플랫폼을 개발해 유럽 직구 시장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 사진:빅피쉬벤처스 제공
사례 1. 서정금(38·서울시 강동구)씨는 매일같이 유럽 직구몰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쌍둥이에게 먹일 독일산 압타밀이란 분유를 사기 위해서다.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직구몰을 이용하면 3분의 1 가격에 살 수 있고, 일주일이면 집으로 배송 된다.

사례 2. 프랑스에서 영유아 의류를 판매하는 A업체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한 뒤 소비자 배송 완료 후 한 달 가까이 걸렸던 정산 입금이 3일로 줄었다.

모두 한 플랫폼인 ‘로로몰’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동시에 겪은 사례다. 이 몰은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빅피쉬벤처스’가 만든 직구 유통망이다. 말이 직구지 사실 직구 과정은 다섯 단계 이상으로 나뉠 정도로 복잡하다. 로로몰은 이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도록 묶었다. 특히 그들이 직구 대상 시장으로 타깃을 삼은 곳은 유럽이다. 덕분에 유럽과 한국 공급망을 잇는 첫 직구 유통망 사이트로 로로몰이 꼽히기도 한다.

로로몰을 운영하는 빅피쉬벤처스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소비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10월 8일 광화문에서 만난 김영하(39) 빅피쉬벤처스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미국 투자은행 JP모건과 국내 게임회사 네오위즈, 현대카드·현대캐피탈에서 기업 M&A(인수합병) 전문가로 뛰면서 글로벌 시장을 그리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덕분에 금융맨 시절부터 소비 트렌드를 잡아내는 훈련도 할 수 있었다.

빅피쉬벤처스를 차리기로 결심한 건 영국 사모펀드 운용사 사핀다에서 일할 때였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아시아는 변곡점에 놓여 있었다”며 “특히 중국이 대규모로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중위소득층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소비 욕구도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중국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2014년 약 1500만 명에 불과했던 중국 내 전자상거래 이용자는 올해 6배 늘어난 8800만 명을 넘어섰다. 알리바바와 징둥닷컴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단시간에 세계 최대 공룡기업으로 클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김 대표의 마음도 한층 급해졌다.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도 구매자와 판매자가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플랫폼을 꿈꿨기 때문이다. 2015년 빅피쉬벤처스를 차렸다. 그는 해외 직구 시장이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믿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뒤로한 채 창업의 길을 걸었다. 전자상거래 시장은 점차 커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맞닿을 수 있는 과정은 점점 더 쪼개졌다. 한 지역에서 이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은 대기업이 맡아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해외 간 거래는 여전히 비효율이 난무했다. 김 대표는 이 상황이 되레 기회라고 확신했다.

그가 이 분야에서 국경을 허문 첫 지역은 유럽이다. 한국 시장에서 유럽 제품에 대한 수요도 어마어마했다. 김 대표는 “유럽 브랜드엔 스토리가 있다. 뛰어난 디자인과 소규모 생산으로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에도 적합하다”며 “하지만 현지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은 유럽 브랜드를 한국 시장에 내다 파는 역할로만 50% 이상의 마진을 가져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언어장벽 ▲2주 이상 걸리던 늑장 배송 ▲길게는 몇 달이나 걸릴 수 있는 대금 정산 문제 등도 유럽 제품에 낀 가격거품을 만든 요인이었다.

당장 ‘거품 걷어내기’에 동참할 유럽 현지 파트너부터 찾아 나섰다. 김 대표는 그날로 각종 사업 기획과 아이템이 적힌 서류 뭉치를 가방에 담아 유럽 현지로 떠났다. 기존 다른 직구몰에서 인기 브랜드 위주로 50여 군데를 추려 미팅 일정을 잡아 관계자를 만났다. 미팅이 잦아질수록 우선 집중할 상품군도 뚜렷해졌다.

수요를 좇았기 때문이다. 바로 ‘유아용품’이었다. 시장 판로를 뚫기 위해 현지에 발걸음을 하면서 ‘타깃’ 물품이 정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펴낸, 영유아 시장은 저출산 시대에도 꾸준히 성장할 거란 보고서도 수없이 접한 터였다. “주변에서 출산 이후 라이프스타일이 ‘리셋’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당장 유아용 브랜드 전용 직구 플랫폼부터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로로몰이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영국 1위 유기농 이유식 ‘엘라스키친’과 독일 분유 ‘압타밀’을 다루면서부터다. 오픈 6개월 만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아마존보다 유럽 유아용품 구하기 쉬운 직구몰’로 알려졌고, 87%가 넘는 고객이 재구매에 나섰다. 엘라스키친 제품군의 경우 한 달 평균 3만 개 이상 팔려 나갔다.

이유식과 분유 외에도 영유아용 마사지 용품, 55개가 넘는 프리미엄 유아동 브랜드 제품 등 1300여 종에 달하는 유럽 브랜드를 취급하는 최대 유럽 직구몰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는 로로몰하면 ‘유럽 영유아 용품 전문몰’이란 인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유럽 인기 브랜드로 고객 유치에 성공한 김 대표는 차별화 전략에 집중했다. 그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추가로 할인되는 금액을 보여준다거나 일정 수량 이상을 사면 같은 제품을 더 할인해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 전략을 좀 더 정교하게 꾸려갔다. 최저가 보장제인 ‘로런티 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로런티 제도란 일부 제품의 경우 아예 사업자에게 공급하는 가격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도록 최저가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순전히 가격 때문에 다른 직구몰이나 쇼핑몰로 이탈하는 고객도 로로몰에 붙잡아둘 수 있었다.

최저가 보장 제도로 고객 잡아둬

‘최저가 전략’이 단순히 고객 유치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직구몰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구매자의 거래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봤다. 데이터를 분석한 덕에 최단 시간에 제품을 배송하거나 판매자에게 당당하게 박리다매 전략을 제안할 수 있었다. 가격경쟁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많은 소비자가 직구몰에 머물면서 판매자들도 더 큰 수익을 내며 서로 윈윈하는 상거래 생태계가 조성된 덕분이다.

판매자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책도 마련했다. 김 대표는 “기존 직구몰은 해외 상품을 주문하면 최단 3일에서 최장 7일이면 배송부터 환불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실상 모든 에너지가 소비자에게 집중됐다”며 “하지만 직구몰 입장에선 판매자도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고, 이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지급결제가 지연되는 문제부터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 역시 현금을 쌓아두진 않아 지급결제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럽과 한국 간 직구 거래 과정을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기보다 물류, 유통 과정 자체를 개선해 복잡하게 꼬인 대금결제 과정을 풀어보기로 했다.

빅피쉬벤처스가 IT와 핀테크 금융을 결합한 통합 시스템을 개발한 이유다. 직구 거래가 한눈에 정리되니 자체 물류 창고를 지을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집한 판매·물류·CS 데이터로 유럽 내에서 제품이 오가는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며 “상품 큐레이션과 판매, 품질관리 등 서비스 고도화에도 활용돼 많은 비용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빅피쉬벤처스는 국내·외 금융사들과 협업해 싱가포르에 100억원 규모의 매출채권유동화펀드를 조성했다. 상품 발송 후 평균 30일 이상 걸리는 유럽 판매자의 판매대금 정산 기간이 최대 3일까지 줄어들 수 있었다.

판매자를 배려한 조치는 되레 쓸데없는 비용을 확 줄이면서 ‘최저가’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로로몰은 단골 고객을 더 많이 확보했고, 판매자는 안정적인 매출을 거둘 수 있었다.

로로몰 상품군도 확대했다. 지난 8월 로로몰 사이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유아용품 외에도 뷰티 라이프 상품까지 노출한 것이다. 그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유아용품 압타밀(분유), 엘라스키친(이유식)에 이어 이제 로로몰에선 디트리쉬(가전), 다이슨(가전), 꼬달리(뷰티), 유리아주(뷰티) 등 다양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며 “갈대 같은 소비 트렌드가 언제 또 변심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품군을 늘려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거래 규모도 점차 늘고 있다. 올해 6월 이후 거래액이 매월 30%씩 증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로로몰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영하 빅피쉬벤처스 대표는 또 다른 구상을 들려줬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소비자·판매자 거래 데이터를 좀 더 능동적으로 분석해 한층 더 까다로워질 소비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역수출도 중요한 사업 목표입니다. 한국의 역직구 판매자까지 끌어들여 힘들게 닦아둔 유럽으로 가는 시장통로로 한국 제품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유럽 브랜드가 인기라지만, 유럽에서 한국 브랜드의 인기도 만만치 않거든요.”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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