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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홍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부사장) 

“현대차는 변하고 있다” 

김영문 기자
2011년 현대차는 브랜드경영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13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사드 배치 등으로 숱한 부침을 겪었고, 이젠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그간의 가치와 철학을 송두리째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브랜드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최고마케팅책임자인 조원홍 부사장을 만나 미래의 현대차 얘기를 들어봤다.

▎2010년 현대차는 조원홍 부사장을 영입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강화하고, 그룹 브랜드 전략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인사였다. 조 부사장은 와튼스쿨 출신으로 글로벌 컨설팅업체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명재경각(命在頃刻). 숨이 곧 끊어질 지경이란 뜻이다. 한국 제조업 턱밑까지 차오른 위기가 그랬고, 현대차그룹도 최악의 실적 쇼크를 피할 수 없었다. 2018년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0% 가까이 줄어든 2889억원에 그쳤다. 4분기 연속 영업이익도 1조원을 밑돌았다. 2010년 IFRS(국제회계기준) 적용 이후 사상 최악의 분기 실적이다. 임원 승진 규모도 15% 안팎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브랜드 전략에선 ‘정주행’ 중이다.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은 LA 모터쇼를 비롯한 각종 공식 석상에서 신차 소개보다 브랜드 전략을 먼저 꺼냈다. 간판만 바꾼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철학과 정신까지 깡그리 바꾸는 일이다. 고되고 험난한 길이다. 기존 현대차 이미지에 프리미엄을 집어넣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기업이란 한계를 넘어 미래를 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그 일환으로 ‘브랜드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고,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고성능 브랜드 ‘N’을 차례로 시장에 안착시켰다.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높아졌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8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현대차는 종합 브랜드 순위 36위, 자동차 부문 6위를 달성했다. 브랜드 가치도 135억 달러(약 15조2000억원)로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페라리를 모두 제쳤다. 2005년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이후 올해까지 14년 연속 선정됐다. 그간 브랜드 순위는 48계단이나 뛰었고, 브랜드 가치는 100억 달러 이상 올랐다.

그 배경엔 2005년 현대차의 브랜드경영을 공식 선포하며 밑그림을 그린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이를 따라간 조원홍(54)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부사장)이 있었다. 현대차는 지난 11월 28일 시작된 미국 LA오토쇼에서 첫 대형 SUV ‘팰리세이드(PALISADE)’의 세계 최초 공개를 앞두고 ‘패션 마케팅’이라는 전례 없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색다르면서 임팩트를 주고자 한 조 부사장의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 덕분일까. 현대차는 세계 3대 디자인 상 중 하나인 ‘레드닷 어워드’에서 한국 자동차 기업 최초로 ‘올해의 브랜드(2018 Brand of the Year)’에 선정됐다. 글로벌 기관이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을 통으로 인정하기는 처음이다. ‘꾼’들의 경쟁에서 ‘뭔가’를 보여준 셈이다. 12월 18일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서 만난 조 부사장에게 ‘올해의 브랜드’ 얘기부터 꺼냈다.

‘레드닷 어워드’에서 현대차가 올해의 브랜드로 선정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이 기존 마케팅 전략보다 훨씬 큰 그림이라고 인정받은 결과다. 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은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에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타 부문과 협업, 브랜드 경험 제공을 이뤘고, 자동차 디자인뿐만 아니라 섬세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의 역할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본 현대차의 예측이 ‘꾼’들의 눈에 들었다는 뜻이다.

브랜드 전략이 기존의 마케팅 전략이란 말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르다.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은 사업 전략을 품고 있거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금 전 세계 모든 자동차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가 두 전략을 맞물리게 했다. 기존 자동차 밸류체인(먹이사슬)은 이제 이종산업이 뛰어드는 격전지로 변했다. 자동차 산업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지난 10년간 사실상 ‘고체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변화에 둔감했다. 자동차를 설계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 수많은 부품 협력사가 달라붙는다. 다시금 공장에서 조립하고 딜러에게 차를 공급해 마케팅 활동으로 차를 가장 많이 파는 사슬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밸류체인의 동력이 됐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그걸 깨버렸다. 우버와 같은 사업자가 나타났고 고객은 더 똑똑해졌다.

브랜드를 담당하는 고객경험본부의 크리에이티브웍스실은 어떤 곳인가?

해당 부서는 실무적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고객경험본부는 마케팅사업부와 해외영업본부를 통합한 부서다. 과거엔 전통 미디어를 통한 회사 이미지가 전부였지만, 이젠 고객 경험이 브랜드 이미지로 이어지는 경로가 무수히 많다. 그래서 디자인, 마케팅, 영업, 연구개발(R&D) 등을 한데 모은 크리에이티브웍스실이 탄생했다. 자동차를 포함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자동차 플랫폼 사업의 미래를 그리는 지향점을 브랜드에 투영하는 게 크리에이티브웍스실의 몫이다.

사실상 전략기획의 사령탑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18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브랜드 경험 설치물 및 사운드 디자인 분야에서 본상 2개를 거머쥔 수소전기에너지 체험관 ‘현대차 파빌리온’ 전경. / 사진:현대차
사령탑보단 가이드라고 보는 게 맞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업계에서도 최초다.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는 마케팅, 연구개발, 디자인, 영업이 따로 떨어져 있다. 물론 연구개발과 디자인 부서 등 각자 고유한 역할을 지닌 부서를 물리적으로 통폐합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 부서에 강압적인 지시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 전략이란 기치 아래 뜻을 모으자고 설득한다.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엮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브랜드관리체계(BMS)를 마련했다. 물론 해당 권역마다 의사결정은 어느 정도 분산돼 있다. 하지만 본사의 브랜드경영 전략이 수립되면 1년간 7000여 개에 달하는 현대차의 해외망을 모니터링해 권역별로 브랜드 관리체계하에서 평가한다. 점수가 낮다고 불이익은 없다. 그 시장을 좀 더 면밀하게 이해하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필요한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또 내연 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에 익숙한 임원들에게 미래차 산업을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상당하다.

알고 있다. 브랜드와 디자인에는 분명히 ‘호불호’가 존재한다. 만인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설계를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린 현대차 브랜드에 ‘신뢰’를 담는데 주력한다. 단순히 ‘이쁘다’, ‘멋있다’고 말하는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다. 타깃 마케팅도 아니다. 시장에선 고객의 니즈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기에 몇 가지 스토리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없다. 그보다 현대차가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같은 그림에 앞장선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브랜드에만 치중하다 보면 자칫 자동차의 성능과 품질, 기술 등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우리 브랜드 전략은 현대차 전략의 총아다. 브랜드 전략은 자동차의 품질개선 측면과 별개가 아니다. 단순히 이미지를 만들고, 고객들의 선택을 강요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그린 이미지는 현대차의 모든 구성원이 공감하는 하나의 철학이다. 자동차 회사가 초기 수준이라면 생산 효율과 품질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차는 새로운 생각을 꾀할 만큼 대다수의 능력이 완비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다.

현대차가 추구하고 있는 ‘모던 프리미엄’은 어떤 의미인가?

현대차 51년 역사에서 기술→가격→품질 경영에 이은 네 번째 경영전략이다. ‘가장 현대적인 현대차만의 프리미엄’이란 뜻을 담았다. 명품이 아니다. 이해를 돕자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은 아니지만,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애플 같은 브랜드가 주는 느낌이다. 우린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한 발 더 다가가고자 한다. 동시에 고객이 눈앞에, 내 옆에, 내 손에, 항상 우리 삶 주변에 두고자 하는 ‘현대차’가 되고 싶다. ‘모던 프리미엄’은 그런 뜻이다.

새로운 기술로 인해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다. 현대차는 경쟁력에서 우위에 설 자신이 있나?

물론이다. 앞서 말한 위기가 바로 기존 질서를 깰 기술들이다. 최근 현대차도 ▲차량 전동화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인공지능(AI) ▲미래 에너지 ▲스타트업 육성을 5대 성장 분야로 선정했다.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자동차 분야뿐만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열 거의 모든 유망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지분 투자, 인수합병(M&A)도 진행할 예정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미래 모빌리티 사회 혁신의 중심에 서게 될 수도 있다.

시장에선 현대차가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의 시각도 적지 않다.

과거나 현재의 눈으로 보면 미래가 없다. 미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게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뒤 자율주행차 덕분에 자가용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모빌리티·전기화·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4가지 새로운 기술이 가시화되면서 이 분야 리딩(선도) 그룹은 사실상 공석이다. 물론 과거 전통 자동차 제조사가 가진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내는 게 목표라면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 규칙이 만들어지면 새로운 리더가 될 기회는 분명 열린다. 2019년 브랜드 전략의 중심을 ‘체인지 더 룰(change the rule)’에 두는 이유다.

브랜드 전략이 현대차가 택한 ‘변화’라는 중심축이 되는 순간이다. 증권업계도 들썩였다. 12월 1일 수소차 분야에 8조원 가까이 투자하겠다는 발표 덕분이다. 사업 전략에서 통 큰 발표가 나왔으니 이번엔 브랜드 전략을 이끄는 조 부사장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는 정 수석부회장이 2015년 브랜드경영의 방향성을 고민하라며 직접 꾸린 ‘크리에이티브웍스실’도 맡고 있다. 이곳은 사내 여느 부서와 달리 칸막이도 없고, 복장도 자유로운 유일한 부서다. 개방형 혁신을 강조하는 조원홍 부사장은 “미래 기술로 달라진 자동차 사업, 우리 삶, 산업의 방향성에 대한 메시지를 그려보고, 실질적인 ‘파급력’으로 이어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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