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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경매 한국사무소 대표 윤유선 

“경기 불황에도 세계 미술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 

유주현 기자
아시아 미술시장이 뜨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경제 개방과 함께 중국 미술은 물론 일본, 한국 미술까지 주목받게 됐다. 아시아 신흥 부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컬렉터들이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 중이다. 소더비, 크리스티에 이어 세계 3대 경매사인 필립스가 최근 아시아에 진출한 이유다. 필립스는 2016년 홍콩에서 첫 현대미술 & 디자인 경매를 진행한 이래 일본, 대만, 싱가포르, 상하이까지 시장을 넓히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한국사무소도 오픈했다. 11월 다섯 번째 홍콩 정기 경매를 위한 서울 프리뷰를 앞두고 윤유선 필립스 한국 대표를 만나 미술시장에 대해 물었다.

▎11월 홍콩 정기 경매 서울 프리뷰 전시장에서 만난 윤유선 대표. 윤대표 왼쪽에 걸린 작품이 뱅크시의 ‘Abe Lincoln’이다.
필립스는 2016년 11월 홍콩에서 첫 경매를 진행했다. 아시아 진출이 늦은 편이지만 지난 3년 동안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 올해 5월 홍콩 경매 총매출은 5600만 달러를 기록해 2017년 동기에 비해 41% 증가했고, 2015년 이후 필립스 전 세계 경매에서도 아시아 고객수가 1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시장도 중국, 일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윤유선 대표는 “한국 사무소를 오픈한 지 6개월째인데, 필립스의 한국 매출이 작년 이맘때보다 59% 늘었다”면서 “새로운 마켓이라 앞으로도 성장세는 지속될 거다. 한국 컬렉터들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컬렉션 수준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윤 대표는 크리스티 홍콩 출신이다.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아라리오 갤러리 뉴욕을 맡아 외국 컬렉션에 집중하다 2011년 크리스티 홍콩으로 옮겨 아시아 시장의 급성장을 목격해 왔다. “필립스는 미술 경매에선 현대미술 쪽만 다루니 소더비, 크리스티보다 사이즈는 작아요. 하지만 상품 가치보다 미술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과 고객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올 들어 한국 경제가 많이 어려운데, 미술시장에 영향은 없나요?

미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도는 경제 상황과 별개인 것 같아요. 한국에 오랜만에 돌아오니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확 높아진 걸 알겠더군요. 미술을 공부하는 고객도 많고, 여행 다니면서 제가 모르던 작품을 보고 거꾸로 정보를 주는 고객도 있어요. 애호가들의 지식 수준도 높아졌지만 홈쇼핑 채널에 미술작품 렌탈 상품이 생길 정도로 대중적 수요도 커진 것 같아요. 요즘은 꼭 부자들만 미술작품을 사는 게 아니니 시장이 많이 넓어졌죠.

금리인상 영향도 받을 것 같은데 세계적인 분위기는 어떤지요?

미술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어요. 세계적인 경제 위기도 있었지만 그런 시기에도 좋은 작품은 팔리죠. 미술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습니다. 누구에겐 자산이 될 수도 있고, 한 작가에 꽂힐 수도 있죠. 컬렉션을 하려면 돈보다 작가와 작가의 배경을 이해해야 해요. 역사 속에서 미술에 대한 전체적인 열정은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라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홍콩 미술시장이 엄청 성장세인 것에 비해 지난해 한국 작품 매출은 다소 하락했는데.

홍콩은 아시아의 미술 허브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죠. 국제적인 화랑들이 거의 다 들어와 자리 잡았고, 그만큼 사람들이 다양한 미술을 접하니 초이스가 많아진 거죠. 한국은 단색화가 2016년까지 2~3년 만이란 굉장히 짧은 시간에 완전 톱으로 성장했어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국 모던 원로 작가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졌어요. 그때에 비하면 좀 낮아졌지만 여전히 이우환·박서보 등 좋은 작품은 좋은 결과를 내고 있어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아지는 추세니 아직 탄탄하다고 볼 수 있죠.

중국 작품들이 낙찰액이 크다죠.

중국 시장은 현대미술뿐 아니라 고가구, 도자기 등 분야가 워낙 다양해요. 인구와 경제력도 인정해야 하죠. 아시아 시장이 커진 것도 중국이 오픈하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성장한 거니까요.

올해 미술 경매 최고가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누드


▎박서보 ‘Ecriture no.96-75’
올해 세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누드 ‘Nu couche’(1917)다. 소더비 뉴욕에서 1억5715만9000달러에 낙찰됐다. 그 뒤는 피카소, 말레비치, 모네, 마티스 순이었고, 필립스 런던에서 거래된 피카소 ‘La Dormeuse’(1932)도 5782만9046달러로 올해 낙찰액 8위에 올랐다. “인상주의나 모딜리아니 같은 모던 작품들은 미술관이 좋은 작품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어요. 질 좋은 작품이 시장에 나오기가 쉽지 않으니 어쩌다 좋은 작품이 나오면 그만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피카소의 ‘La Dormeuse’는 종이 작품이지만 100호 크기의 희귀작이라 경쟁이 치열했어요.”

이번 프리뷰 작품 중에서는 쿠사마 야요이가 가장 비싸던데.

일본 작가 중에 쿠사마가 제일 비싸요. 뉴욕에서 활동해서 서양에서 먼저 인정받았고, 동서양에서 다 각광을 받으니 그만큼 가치가 더 올라가는 거죠. 서양에서만 잘되는 작가도 있고 아시아 취향인 작가도 있는데 쿠사마는 둘 다 되니까요. 최근에 미술관 전시도 많이 하면서 재발견되는 추세라 아시아 컬렉터들의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이번에 런던에 있는 소속 화랑에서 큰 전시를 해서 더하죠. 그녀의 소속 화랑엔 신작 구매 웨이팅 리스트가 있을 정도예요. 그 상황이 되면 경매에서도 관심이 집중되죠. 갤러리에서는 살 수 없으니까요.

한국 작품으로는 이우환, 박서보의 70년대 작품이 가장 비싸게 나와 단색화의 인기가 여전함을 증명했다. 박서보 화백이 최근 데미언 허스트가 소속된 런던의 화이트큐브 갤러리에 소속되는 등 서양 갤러리들의 단색화 사랑이 계속되고 있고, 한국 작가들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윤 대표는 단색화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이우환 ‘With Winds’
단색화의 인기 비결은 뭘까요?

한국 현대미술에서 상징적인 위치에 있으니까요. 중국에서는 자오키가 현대미술에 새로운 개념을 만든 작가죠. 그는 수채풍경 일색이던 중국에서 파리에 처음 가서 오일페인팅으로 추상화를 그려보겠다고 한 사람이고, 그게 다시 아시아에서 흡수되고 있는 거죠. 단색화는 철학적인 면도 높이 평가받아요. 단순해 보이지만 내 마음을 다스리고 비운다는 동양철학이 담겨 있죠. 이우환의 라인 하나에 엄청난 수행이 필요하고, 페인트가 점차 없어지는 스트로크에 시간을 담고 있잖아요. 그래선지 크기가 작아도 벽 하나를 꽉 채우는 느낌이죠. 말로 쉽게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미술은 신기하게도 전 세계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뱅크시 작품도 있던데, 지난 소더비 경매 같은 해프닝을 어떻게 보나요?

그런 일이 종종 있으면 좋겠지만 예측할 수 없기에 특별한 거겠죠. 우리는 작가와 컬렉터의 열정을 맞춰주는 곳이고, 뱅크시는 그게 작품의 연장이라고 봐요. 저도 그때 런던에 있었는데, 현장에 계셨던 분들도 ‘뱅크시됐다’면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게 미술이구나’를 느꼈달까요.

1796년 런던에서 설립된 필립스는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3대 경매회사로, 현재 뉴욕과 런던을 비롯해 홍콩, 제네바, 모스크바, 파리 등 총 9개 도시에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고미술을 포함해 미술 전반을 다룬다면, 필립스는 현대미술과 시계, 가구, 보석, 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인상주의나 고전 거장들보다 싸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이에게 접근할 수 있고 젊은 에너지가 있죠. 다른 회사들보다 더 많은 컬렉터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장점 같아요.”


▎아니쉬 카푸어 ‘Untitled’
한국 컬렉터들은 주로 어떤 작품을 선호하나요?

한국분들은 1945년 전후 서양 작품, ‘포스트워 컨템퍼러리 아트’에 관심이 많아요. 바스키아, 앤디 워홀을 비롯해 현대미술에 기반을 만들어준 작가들을 선호하죠. 한국 작품 중에서도 컨템퍼러리보다는 단색화를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경매사는 고객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요?


▎쿠사마 야요이 ‘Pumpkin’(three works) Photos curtesy of Phillips
미술시장이라고 하면 사는 사람만 생각하지만 경매가 이뤄지려면 파는 사람도 있어야 하죠. 만남을 주선하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지식을 바탕으로 확실한 작품을 선별하고 작품의 중요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리 일이예요. 우리가 글로벌 회사이다보니 한국에서 홍콩·뉴욕·런던 시장의 담을 낮추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작가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좋은 작품을 고르려 노력해요. 한국 작가들이 경매시장에서 좋은 작품을 선보여서 꾸준히 잘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거든요. 필립스는 프라이빗 세일도 하는데, 홍콩·런던·뉴욕 전시와 교류하면서 한국 작가를 알리는 플랫폼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브닝세일에 한국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네요.

우리는 고객의 관심사와 열정에 대응하는 거니까 차차 관심도가 높아지면 이브닝세일에 많이 나오겠죠. 그래서 전시를 이용하려는 겁니다. 뉴욕에서 미니멀 전시를 기획하면 우리 단색화도 끼워 넣어서 서양, 중국, 한국을 크로스컬처로 같이 알릴 수 있죠. 사람은 자기가 아는 미술의 기준으로 해석하니까요. 특히 다른 나라 작품은 그 나라에 대해 지식이 많으면 컬렉터들도 쉽게 결정하는데, 지식이 부족하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그래서 많은 전시와 교육을 진행해 고객에게 많이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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