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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3)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정리=최영진 기자
삼구아이앤씨는 인력 아웃소싱 전문기업으로 2018년 매출 1조1000억원을 올려 재계를 놀라게 했다. 1968년 구자관 대표는 하이타이 한 봉지와 걸레를 들고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해주면서 삼구아이앤씨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3명이 시작해 2만8000여 명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구 대표를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이 세 번째 경영 구루로 초대했다.

▎2018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구자관 대표는 또 다른 성장을 위해 해외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인도 등에 해외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놀라기 마련이다. 나이 70이 넘은 기업가가 청소를 하는 아줌마건 국무총리건 간에 어느 누구를 만나도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50여 년 동안 몸에 밴 덕분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그를 다시 만나는 사람도 허리를 깊이 구부려 인사하게 된다. 50여 년 전 자본금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주머니 2명과 함께 건물 화장실 청소로 시작했던 삼구아이앤씨. 이제 매출 1조원을 넘어선 인력 아웃소싱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건물 청소를 하는 여성을 ‘여사님’으로, 남성은 ‘선생님’으로 부른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을 만나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그를 두고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딛고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고, 배움에 열정을 잃지 않고,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박 회장이 세 번째 경영 구루로 초대한 구자관(75)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이다. 대표라는 직함과 함께 ‘사원을 대표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직함을 사용한다. 그의 경영철학이 여타 기업가와 다른 것이다. 그가 기업을 경영하는 철학과 노하우는 다른 기업인에게 많은 화두를 줄 것이다.

인력 아웃소싱 기업 최초로 매출 1조원 돌파


▎삼구아이앤씨 본사는 서울 중구 수표동 시그니쳐타워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원래 대표와 임원 사무실 자리였지만 구 대표의 의지로 직원을 위한 카페테리아로 만들었다. 대표 및 임원 방은 창문도 거의 없는 사무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12월 13일 삼구아이앤씨 본사에서 만난 구자관 대표가 카페테리아를 자랑하고 있다.
(본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구자관 대표를 보면서) 구 대표님, 안녕하세요. 제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 회장 오랜만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전경련 IMI국제경영원의 조찬 경연을 맡는 조찬회장이 됐어요. 매월 한 번 조찬 강연을 하는데 500여 명이나 참석하는 큰 강연회입니다. 부담되는 일인데 맡게 돼서 어깨가 무겁습니다.(웃음)

제가 구 대표님을 우리 회사에 모셔서 강의를 부탁드렸던 적이 있잖아요. 그때 우리 직원들이 대표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조찬회장이 되셨으니 그런 강연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삼구아이앤씨가 지난해 창업 50주년이라고 하던데요.

1968년 5월 15일이 창립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창립 기념일이 언제인지 솔직히 잘 모릅니다.(웃음) 당시 납세를 한 기록도 없고, 법인 설립을 언제 했다는 기억도 없습니다. 1968년은 제가 제대한 해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남의 건물에 하이타이 한 봉지와 걸레를 들고 가서 ‘화장실 청소를 깨끗하게 해줄 테니 돈을 줄 수 있느냐’라며 일을 시작한 게 삼구의 출발입니다. 자본금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청소밖에 없거든요. 창립 기념일을 챙기기 시작한 것도 30여 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던 제가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을 창립 기념일로 정했어요.

그럼 ‘삼구’는 어떤 의미입니까?

회사 이름은 제가 지은 게 아닙니다.(웃음) 제가 여사님 두 분과 함께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회사 이름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큰 건물이나 회사 화장실 청소를 맡으려면 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발기인과 주주 명부, 비용 100만원을 마련했어요. 대법원 앞에 대서소가 있는데, 법인 설립을 하러 왔다고 했죠. 그곳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서류를 보더니 ‘법인 이름이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회사 이름을 정하지 않았거든요. 저에게 ‘어떤 구 자를 쓰냐’고 물어봐서 ‘갖출 구입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분이 사업을 하려면 신용, 신뢰, 사람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면서 ‘삼구’라고 정해줬어요.(웃음)

인력 아웃소싱 전문 기업으로 2018년 1조원 매출을 돌파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삼구의 기록을 깨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2010년에 우리가 처음으로 매출 1000억 원을 넘겼는데 그때 2020년에 매출 1조원을 올릴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목표를 2년 앞당겨서 이뤄낸 거죠. 박 회장 말대로 남의 화장실 청소로 1조원을 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웃음) 1조원 매출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한번 조사해봤어요.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실질적인 영리법인이 400만 개 정도 됩니다. 이 중 매출 1조원을 넘기는 회사가 130여 개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좌판보다 못한 행상으로 시작해서 현재 2만8000여 명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삼구아이앤씨는 한국 130대 기업입니다.

1조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건물 종합관리에서 대단위 생산 및 제조 아웃소싱 서비스까지 업무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습니다. 현재는 부동산의 예산 수립 및 관리, 전문적인 종합 보안 서비스, 골프장의 총괄 관리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이 다양합니다. 2015년에는 미국 뉴저지 센터와 미국 델라웨이 센터 두 곳에서 ‘고배송’이라는 배송대행 서비스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업무영역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적극적인 M&A 덕분입니다.

현재 삼구아이앤씨를 포함해 관계사가 22개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50년 동안 삼구를 이끌어 오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은 것입니다. 박 회장도 사업을 하니까 알겠지만 많은 사람이 저에게 ‘이쪽이 유망하니 투자를 해봐라’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유혹이 있지만 저는 인력도급 분야에만 집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오래전부터 해외 진출을 시도해오셨죠. 대표님의 도전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웃음) 2010년 카타르에 처음으로 해외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아쉽게도 노하우가 없었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수억원의 손해를 보고 카타르 법인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의 반면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실패를 교훈 삼아 2016년 4월 중국 장쑤성 우시에 중국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2019년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현재 하노이에 있는 업체 중 한 곳을 대상으로 M&A를 하려고 합니다. 인도 진출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인도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해외 진출에 따른 성과는 미약하지만, 올해부터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얼마 전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가 임직원에게 한 말은 ‘일등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일은 일등이 아니라 일류다’입니다. 일류가 되려면 기업문화를 일류 문화로 바꿔야 합니다. 문화를 임직원에게 강제하면 튕겨나가기 마련입니다. 문화는 기업과 임직원에게 녹아들어야 합니다. 삼구아이앤씨가 일류가 되려면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합니다.

퇴임 후 장학재단 만들 계획


▎구 대표 집무실은 여느 기업 대표 집무실에 비해 작다. 책상과 의자 몇 개만 있는 단촐한 사무실이지만, 구 대표는 “일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며 웃었다.
인력 아웃소싱 분야에 6만여 개 회사가 활동하고 있지만 삼구아이앤씨만큼 성장을 이어가고, 성공 스토리를 쓰는 곳은 없다. 2018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상장하나’다. 구 대표는 “현재 삼구의 순이익률이 1%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상장을 못 하고 있다”면서 “10여 년 전부터 상장을 준비했는데, 2~3년 후면 이익률이 높아지고 상장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구 대표는 삼구아이앤씨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여타 기업이라면 창업주의 가족이 그 뒤를 잇겠지만 삼구아이앤씨는 다르다. 지분 47%를 임직원이 보유하고 있다. 2003년 구 대표가 자신의 지분을 임직원에게 나눠 준 덕분이다. 구 대표는 “우리 임직원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1996년 빚을 내서 신대방동 사옥을 샀다고 한다. 그런데 1년 후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일감이 끊기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이 되면 보통 구조조정을 해 위기를 넘겼을 것이다. 구 대표는 “한 사람도 자르지 않고 버텼다”며 웃었다. 임직원들도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섰다. 심지어 대표 비서도 거리에 나가 전단지를 배포했다고 한다.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다”면서 “우리 회사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공헌한 사람들이 임직원이기 때문에 주식을 배분했다”며 웃었다.

구 대표의 명함에는 CEO라는 직책 옆에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독특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원을 대표해 책임지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구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서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모두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다짐”이라며 “현장에서 일하는 여사님과 선생님을 회사가 먼저 존중해줘야 부담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의 말대로 현장에서 삼구아이앤씨 임직원이 일하면서 생긴 사고 등은 모두 회사가 책임진다.

“승계는 준비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아들에게 삼구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 삼구아이앤씨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움직일 것이고, 만일 아들에게 경영 능력이 있다면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내 지분은 나중에 장학재단을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이다. 아들이나 딸에게 지분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삼구아이앤씨는 여타 기업과 다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저도 기업을 운영하지만 일류 기업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생각’입니다.(웃음) 예전에 임직원에게 ‘가장 빠른 게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빛이다, 소리다 같은 답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생각’입니다. 제가 토성을 다녀왔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빛보다 훨씬 빠릅니다. 제가 10년 후를 계획하고 생각한다면 10년 후를 다녀온 것이 됩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일류가 되려면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생각의 힘은 무서운 것 같습니다. 다만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데요.

2010년 1000억원 매출을 달성한 후 1조원 매출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임직원에게 ‘10년 후 1조원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화장실 청소하는 기업이 1조원 매출을 올릴 거라고 누가 믿었겠습니까.(웃음) 다만 1조원 매출을 상상했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룬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게 있다고 해도 생각을 하면 해답을 찾아가게 됩니다. 생각을 해야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표님의 생활을 보면 생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배움을 놓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회장님도 알다시피 저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 때문에 배우질 못했죠. 월사금을 내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36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고, 겨우 용문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한 게 제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벽을 뚫어야 하는 게 필요한데, 그게 문학이나 철학 등입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님께 철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제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철학을 공부하러 학교에 가는 일이 귀찮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을 하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계속 움직여야 무한정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가난’했던 그에게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이다. 1944년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8살부터 외갓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가난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것. 월사금을 내지 못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4살 때 서울에 올라와 책가방 대신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운 좋게도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었던 용문고등학교 야간학교를 다녔다. 낮에는 걸레와 빗자루, 솔 같은 청소용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 1968년 제대 후 그는 청소용품을 제조하며 두 여사님과 함께 건물 화장실 청소 일을 시작했다. 삼구아이앤씨의 시작이다. 결혼 후 얻은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이 없어서 아들과 딸을 친척 집에 보낸 적도 있다. 심지어 돈이 없어서 다른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산 경험도 있다. 구자관 대표는 “1981년에는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살았다”며 웃었다. 드라마 제목처럼 그는 35평형 아파트에 세 가족, 총 14명이 함께 산 적이 있다. 남자들은 부엌에 이불을 깔고 잤다.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이 일어날 정도.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그가 목숨을 버릴 시도까지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그는 청소에 필요한 왁스를 공장에서 직접 만들었는데, 1980년 대 초 화재가 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고. 당시 화재로 그는 온몸 3분의 1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의 손과 몸에는 여전히 그때 입은 상처가 남아 있다. 화재로 인해 8700만원 정도 되는 빚에 시달렸고, 자살 시도까지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던 그를 미국에 살던 형님이 그의 가족을 미국으로 불렀다. 1982년 아내,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들어갔다가 1989년 구 대표만 한국에 돌아왔다. 구 대표는 “아내와 아이들은 이민 신청 허가를 받고 미국에서 생활했고, 나는 영주권을 반납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 일을 계속했다”면서 “아내가 미국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애들을 키웠기 때문에 미국에 돈을 보내주지 않아도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46살이 될 때까지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가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구 대표는 “지금도 몇몇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데, 가난해서 공부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이다”면서 “생활비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웃었다.

최고령 석사학위 취득 기록 가지고 있어


▎구자관 대표와 박혜린 회장은 2013년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 최고지도자 과정 1기로 처음 만난 후 선후배 기업가로서 꾸준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구자관 대표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키워드는 ‘열정’이다. 가난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와 취미생활 등을 50세가 넘어선 이후에 도전하고 있다. 56세에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고, 61세에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5세에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66세에 대학원에 들어갔고, 68세에 국내 최고령 석사학위 취득자가 됐다. 그가 대학원에서 쓴 논문 주제가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구 대표는 여전히, 쉼 없이 배우고 있다. 새벽 5~6시에 하루를 시작해 밤 10~11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한 달에 18번 조찬행사가 있고, 매주 2번 저녁에 철학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이 없는 날은 외부 미팅으로 대부분 저녁이 채워져 있다. 심지어 미국에 있는 아내가 한국에 와서 3개월 동안 머물렀을 때 함께 저녁을 먹은 게 2번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 구 대표는 “가끔 약속이 취소되어 계획에도 없는 개인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이런 자유 시간이 두렵다”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는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가치가 없다”고 웃었다.

삼구이앤씨가 계속 성장하면 겸손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훈처럼 쓰는 제 좌우명이 있습니다. 『명심보감』 교우 편에 ‘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이라는 문구입니다. 천리마인지 만리마인지를 알려면 길이 멀어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세월이 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생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자관이라는 사람은 처음이나 끝이나 같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대표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깍듯하게 인사를 하시는데요. 심지어 행사장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을 봐도 그렇고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대표님의 인품을 느낍니다.

과분한 칭찬입니다.(웃음) 제가 기업문화는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인품도 그렇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겸손한 척은 할 수 있지만, 겸허한 척은 못합니다. 저는 겸허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임직원들에게도 항상 진정성 있게 인사를 하라고 강조합니다. 머리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니까요. 외부 사람들이 삼구 임직원을 보면 편안하다고 느낀다고 하니까,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기업문화는 어느 정도 안착된 것 같습니다.

제가 대표님을 처음 만난 게 2013년 9월이었습니다.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의 최고지도자 과정을 함께 들으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 회장을 처음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성 기업가로서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평상시에는 맑고 투명한 순수한 모습인데, 기업가로서 뭔가를 결정할 때는 과감하다고 느꼈습니다. 속에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투명한 기업가라는 점 때문에 인연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대표님을 만날 때마다 배우는 게 많습니다. 2018년에 매출 1조원 달성이라는 큰 목표를 이뤘는데요, 2019년 목표는 무엇입니까?

1조5000억원 매출이 목표입니다. 이제 우리 임직원수가 곧 3만여 명이 되는데 모두 아무 사고 없이 건강하게 1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임원들에게도 강조하는 게 ‘산재를 막을 수 있는 조치라면 얼마가 들든지 무조건 시행해라’입니다. 회사가 커지고 업계 1등 기업이 됐지만, 일류 회사가 되려면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어야 합니다. 제가 화상을 입어 고생한 것도 큰 경험이 됐습니다.

2시간 가까이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대표님께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됐습니다.

박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도 배우는 게 많습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 정리=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 박혜린은…신용카드· 전자화폐시스템 업체 바이오스마트, 스마트전력계량플랫폼 기업 옴니시스템, 라미화장품 등 10개 회사의 매출 총합은 지난해 3000억원을 넘었다. 지난 5월에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영업이익의 10%를 무조건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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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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