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 (1)] 연재를 시작하며 

윌리엄 유리의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 

고전은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오늘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단 한 권의 책이 회사의 생존과 번영에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은 항상 스케줄이 꽉 차 있는 CEO와 언젠가 CEO가 될 비즈니스피플의 서재에 꽂혀야 할 필독서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달에 나온 책이지만, 미래에 고전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개할 것이다. 또 얼핏 보면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없는 책처럼 보여도,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책이라면 포함시킬 것이다. 예컨대 명상이나 영성, 부부싸움 해결법에 도움이 되는 책 말이다.
협상은 필요악인 것 같다. 가능하면 협상할 필요도 없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정·회사·사회·국가가 운영되는 게 좋은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모두 협상가다. 협상은 인간의 조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협상학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혀


▎사진:카를 스터드나
노사협상이나 임금협상,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북미 협상만 협상인 것은 아니다. 학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학교 가게 만드는 법은? 남편을 금주·금연으로 이끄는 법은? 협상이다. 미국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는 로드맵이 없다. 항상 힘겨운 협상이 필요하다.”

높은 연봉을 받고 고속 승진을 하는 것도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협상도 필요하다. “비즈니스에서는 여러분의 값어치만큼 얻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협상한 만큼 얻는다(In business, you don’t get what you deserve, you get what you negotiate).” 협상 전문가 체스터 L 캐러스가 한 말이다.

알고 보면 수십 가지에 달하는 협상 전략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구사된다. ‘싫으면 말고’라는 것도 협상적 표현이다. ‘가져가든지 말든지(take it or leave it)’는 전략에 해당한다.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으로 덤비는 것도 ‘확실한 공멸(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 협상 기법이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생의 상당 부분을 협상으로 허비한다. 법률가들도 사실은 법정보다는 협상하는 자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따라서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Getting to Yes』(이하 『YES』, 1981, 1991, 2011)이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이 아니라 로스쿨의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Harvard Negotiation Project, 1979년 창립)’의 산물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협상술에 대해서는 수많은 책이 나와 있다. 기법을 중심으로 협상을 정리한 책도 있고, 학술 이론을 중심으로 정리한 책도 있다. 그중 딱 한 권 읽는다면 단연 협상학의 고전 중 고전인 『YES』가 최고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YES』는 혁명적인 책이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윈윈(win-win)’ 협상 전략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YES』로 협상의 전과 후(before and after)가 달라졌다.

『YES』의 대전제는, 어떤 경우에도 당사자들이 모두 만족하는 ‘윈윈(win-win)’ 협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협상 세계의 현실주의에서 이상주의를 솜씨 있게 첨가했다. “이상으로 시작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합의로 마무리하라(Start out with an ideal and end up with a deal).” 독일 기업인 카를 알브레히트가 한 말이다. 『YES』는 이 말에 충실하다.

『YES』 이전에 협상의 목표는 호혜성(reciprocity)에 따라 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특히 가능한 최대한 조금 주고,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중요했다.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조파(ZOPA)’를 파악해야 한다. 리 톰프슨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ZOPA를 정의한다. “ZOPA, 즉 ‘합의 가능 영역’은 사는 사람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고치와 파는 사람이 수용할 의사가 있는 최저치 사이의 겹치는 부분을 표현한다(The zone of possible agreement, or ZOPA, represents the overlap between the most the buyer is willing to pay and the least the seller is willing to accept).” ZOPA는 『YES』가 뛰어넘으려고 하는 입장(position) 중심의 구식 협상 원칙이다.

BATNA 정립한 책으로 유명


『YES』에 따르면 협상의 본질을 잘 모르고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상대편이나 당면 문제에 대해 딱딱하거나(hard) 부드러운(soft) 입장 쪽으로 편향돼 있다.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아니면 반대로 ‘웬만하면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식이다. 잘못된 접근이다. 『YES』는 상대편 사람에는 ‘소프트’하게, 협상 사안에는 ‘하드’하게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상대편이 아무리 극악무도하다고 해도 그들을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상대편이 천사라고 해도 문제에 대해서는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 이처럼 사람과 협상의 목표를 분리하는 것을 『YES』는 ‘원칙 있는 협상(principled negotiation)’이라고 부른다.

『YES』에 따르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당사자들의 입장(position)이 아니라 이익(interest)이다. (이익에 대해 『YES』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강력한 이익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The most powerful interests are basic human needs).” 입장과 이익을 분리해야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3의 솔루션을 창의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입장에는 아무래도 감정이 개입돼 있을 수 있다. 상대편에 대한 편견·감정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객관적인 기준을 함께 세워야 한다.

협상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상대편에 비해 이쪽의 힘이나 물질적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그런 경우 상대편에 휘둘리기 쉽다. 끌려가지 않으려면 협상 중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배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측의 ‘협상에 대한 최선의 대안’, 즉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ing an agreement)’를 설정해야 한다. 협상을 안 해도 될만한 뭔가 있을지 모른다. 대안이 없으면 배짱은 허세다. 『YES』는 BATNA를 정립한 책으로 유명하다.

좋은 협상이란 무엇일까. 『YES』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모든 협상법은 세 가지 기준으로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다. 합의가 가능하다면, 협상은 현명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협상법은 효율적이어야 한다. 또 협상법은 양자 간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적어도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Any method of negotiation may be fairly judged by three criteria: It should produce a wise agreement if agreement is possible. It should be efficient. And it should improve or at least not damag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rties).”

유교나 불교 전통과 상통하는 책


▎2017년 4월 한 환경운동 집회에서 한 여성이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Nature does not negotiate)’는 팻말을 들고 있다.
『YES』는 ‘원칙 있는 협상’의 방법으로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Separate the people from the problem)’, ‘입장이 아니라 이익에 집중하라(Focus on interests, not positions)’, ‘공동 이득을 위한 옵션을 창출하라(Invent options for mutual gain)’, ‘객관적인 기준의 사용을 고집하라(Insist on using objective criteria)’, ‘여러분의 BATNA(Know your BATNA)’를 제시한다. 하지만 『YE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understanding)에 대한 강조다.

『YES』는 이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상황을 상대편의 관점에서 보는 능력은 어렵지만, 협상가에게 가장 중요한 스킬(skill) 중 하나다(The ability to see the situation as the other side sees it, as difficult as it may b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skills a negotiator can possess).” “사람들은 여러분이 그들을 이해한다고 느낄 때 여러분의 말을 더 경청한다. 그들은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똑똑하고 공감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공감력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편이 여러분의 이익을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여러분이 그들의 이익을 존중한다는 것을 입증하라(People listen better if they feel that you have understood them. They tend to think that those who understand them are intelligent and sympathetic people whose own opinions may be worth listening to. So if you want the other side to appreciate your interests, begin by demonstrating that you appreciate theirs).”

협상 대상이 극단적으로 터프(tough)한 협상형 인간인 경우 온갖 꼼수(dirty tricks)를 다 부릴지 모른다. 자기가 아는 모든 협상 기법을 하나하나 다 써먹으려 할지 모른다. 힘으로 누르려고 할지 모른다. “상냥한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냥한 말에 총칼이 덧붙여졌을 때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 미국의 조폭 우두머리 알 카포네(1899~1947)가 한 말이다. 짐짓 화난 척할지도 모른다. “분노는 효과적인 협상 도구가 될 수 있다. 분노가 나를 화나게 하는 상대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계산된 행동일 때에만 그렇다.” 미국 작가 기업인 마크 매코맥(1930~2003)이 한 말이다.

꼼수에는 꼼수로 맞서야 할까. 하지만 『YES』가 표방하는 꼼수 대처법은 좀 다르다. 우선 상대편 꼼수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다음 상대편에 이쪽이 꼼수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YES』는 유교나 불교 전통과 상통하는 책이기도 하다. 마음 공부와 극기를 중시한다. 『YES』는 이렇게 말한다. “협상은 영향력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우리가 우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협상은 오직 극기로 시작한다(Negotiation is about influence. We’re trying to change someone else’s mind. How can we possibly expect to influence someone else if we can’t first influence ourselves? It all begins with selfmastery).”

『YES』의 저자는 로저 피셔(1922~2012), 윌리엄 유리, 브루스 패튼이다. 이 세 사람은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의 공동 설립자다. 피셔는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1958~1992)였다. 일리노이주에서 자란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으로 참전했다. 1981년에는 미국·이란 정부의 조언자로서 이란에 인질로 잡힌 미국인들의 석방에 기여했다. 역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유리는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했다. 유리 교수는 『고집불통의 NO를 YES로 바꾸는 협상 전략(Getting Past No: Negotiating with Difficult People)』(1993)에서 『YES』에 대한 비판에 응답했다.

피셔 교수는 1981년 3월 ‘핵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황당한’ 주장을 펼친 논문을 실었다. 미국 대통령의 핵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것이었다. 발사에 필요한 코드를 캡슐에 넣어 자원봉사자의 심장 부근에 심는다. 자원봉사자는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칼을 항상 소지해야 한다. 미사일을 발사하려면 우선 그 자원봉사자를 대통령이 칼로 직접 죽여야 한다. 아무런 죄가 없는 한 인간을 죽임으로써 핵무기가 초래할 수많은 무고한 인명의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제안이다.

처음 접했을 때는 이상한 주장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공감이 간다. 『YES』가 중시하는 기본 욕구 중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협상은 생존과 번영이라는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이익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YES』는 협상 당사자들이 적수(adversary)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트너는 ‘같은 편’이다. 『YES』는 양쪽 협상가들이 같은 편으로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브레인스토밍의 원칙 중 하나는 모든 아이디어를 비판하지 않고 일단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피셔 교수가 제시한 ‘황당한’ 주장 같은 것까지 말이다.

※ 김환영은…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03호 (2019.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