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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8)]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내가 3년간 25만㎞를 달린 까닭은” 

정리=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 여덟 번째 주인공으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박 회장이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 회장은 ‘농가소득 5000만원’이 중요한 이유와, 불가능해 보였던 농협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을 상세히 밝혔다.

▎올해로 취임 3주년을 맞은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2020년까지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농가의 소득 증대야말로 농협 본연의 역할을 살릴 수 있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박혜린 회장이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7월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자문위원을 맡으면서다. 박 회장은 “공급자 마인드가 강할 것으로 짐작했던 농협 CEO가 민간 기업 CEO처럼 ‘농가소득 5000만원’이라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할뿐더러, 모든 혁신활동에 농민을 우선시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더구나 농협은 재계 자산순위 10위권의 거대한 조직인 데다, 오랜 기간 농민과 국민의 불신을 받아왔던 곳이다. 박 회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정적으로 현장을 다니며 농협 개혁에 몰두하는 김 회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포브스코리아 인터뷰를 위해 김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농가소득 5000만원’은 한국 농업이 가진 산업적 가능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대담한 목표였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도 “(농가소득 5000만원은) 농협에 발을 담그면서부터 해온 고민이자 농협의 본질적인 역할을 살리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응답했다. 둘은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농가소득 5000만원’이라는 목표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파종해서 수확한다는 농업을 숫자로 그렸다는 겁니다. 기존에는 대다수가 농업 자체의 가치에만 집중했지, 현실적 가이드라인은 없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부에서 곧 발표할 농가소득도 4000만원을 넘어설 겁니다(2019년 5월 12일 통계청 발표 농가소득 4207만원, 전년도 3824만원). 헛된 꿈이 아니죠. 시골에 가보면 둠벙(웅덩이의 방언, 충청)이라고 있습니다. 빗물을 모은 일종의 웅덩이로 가물 때를 대비한 농사꾼들의 지혜죠. 근데 이곳에 미꾸라지, 잉어 등 각종 민물고기가 들어와 살았습니다. 농촌에선 짭짤한 부수입이 됐죠. 이제 단순히 농산물을 내다 팔아 남기는 마진이 아니라 새로운 농외소득을 꾀해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신기술이 투입되는, 그야말로 신산업으로 가는 모멘텀을 다지는 과정입니다. ‘농가소득 5000만원’이 곧 이들에게 ‘둠벙’인 셈이죠.

취임 초기, 이 목표를 냉소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2016년 3월 농협중앙회 회장이 됐습니다. ‘농가소득 5000만원’은 농협에 몸담으며 항상 되뇌었던 목표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선 임기 4년 채우려 별짓을 다한다는 소리까지 했죠. 정부, 재계는 물론, 심지어 농업계조차 의심하더군요. ‘수십 년간 농가 부채로 힘들었고, 수년간 농가소득 3000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수로?’ 그럴수록 이를 더 악물었습니다. 농림수산부 장관을 만나 농협의 의지를 전했고, 농민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방법이 궁금합니다.

일단 농민들이 농가를 경영하는 데 쓰는 돈부터 따져봤습니다. 새나가는 돈부터 막아야 뭘 해볼 수 있으니까요. 농협도 같이 움직였습니다. 농협이 제공하는 사료 값이 적당한지, 농촌 지역 택배 등 물류비는 적당한지를 파악해서 최대한 비용을 낮췄습니다. 농기계 지원사업도 벌였습니다. NH농협은행, 농협상호금융 등을 중심으로 한 금융사업에서 얻은 이익을 여기에 썼죠. 무상으로 밭작물 농기계 등을 지원해온 것은 일손이 귀한 농촌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죠. 이 밖에 농촌인력 중개, 자재·사료 값 등에 거품이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을 하셨네요. 이 정도면 농가소득 평균치가 4000만원 초반 수준이어도 벌써 5000만원을 달성한 곳도 나왔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주도가 지난해 5000만원 목표를 달성했죠. 지난 3월에 제주 서귀포시를 찾았습니다. 지난해 말엔 제주도와 ‘농기계플랫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오는 2022년까지 제주도 100억원, 농협이 100억원을 내 총 200억원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값비싼 농기계를 빌려가고, 이 정보를 공유하는 거죠. 승용차만 공유하란 법 있습니까. 농가에서 큰돈 쓸 일이 줄어드니 소득도 늘어나겠죠. 이 같은 모범사례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경기도와 경남 지역에서도 이미 45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지역마다 소득을 올리고, 경영효율화를 꾀한 사례를 발굴해 전국에 공유하고 지원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공한 ‘혁신’이네요. 다른 사례는 없나요?

한우개량 사업 얘기를 빼놓을 수 없죠. 한국에서 상육하는 한우는 약 200만 두입니다. 한우의 우수성은 다들 아실 텐데요. 이게 농협 내 한우개량사업소에서 검증된 *보증씨수소의 정액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씨수소 정책 표본 중 75%는 농협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발군의 혈통을 가진 한우 수소가 있습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죠. 그래서 인기 보증수소의 생애 생산량을 늘리고, 인터넷 공급시스템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동시에 우수한 혈통의 씨수소를 유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우뿐 아니라 젖소도 마찬가지죠. 한우개량사업은 곧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기술농업’입니다.

* 보증씨수소: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에서 전국 한우육종농가 후보 씨수소 중에서 한우능력검정 결과에 따라 단계별로 엄선 확정하는 수소. 전국에 분포하는 보증씨수소가 되기까진 최소 5년 이상이 걸리고, 현재 전국에 70~80여 두 정도가 선발돼 관리 중이다.

정말 농협이 벌일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 농업의 발전 가능성도 크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김병원 회장은 취임 초부터 농협이 농업인과 국민에게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직에 뿌리내린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농협개혁과 체질개선을 위해 통합과 조직·인력 슬림화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해왔다.
네 맞습니다. ‘농가소득 5000만원’, ‘농협의 존재가치는 죽어도 농민’ 이라는 구호는 농민만을 위한 일이 아니죠. ‘농기계플랫폼’, ‘한우개량사업’ 등은 농업이 첨단기술과 결합해 한국 산업 발전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농가소득은 기본적으로 농업소득, 농외소득, 이전소득(연금 및 각종 지원금 등)으로 구성돼 있고, 이는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스마트팜 시설을 도입해 생산 작물 종류를 늘리고, 생산율을 높이면 농업소득이 오릅니다. 당연히 관련 기술제조 산업도 성장하겠죠.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계 농지는 태양광 시설로 활용하면 농외소득이 생깁니다. 오리온과 손잡고 콘플레이크, 그래놀라와 같은 쌀 가공식품군을 확대해 수백만 포대를 더 팔았습니다.

* 스마트팜: 비닐하우스나 논밭에 온·습도 센서와 CCTV, 무선인터넷 장비 등을 설치해 원격으로 재배 시설을 관리하는 시설.

말씀을 듣고 보니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이미 한국 산업 전반에 미치는 ‘농업’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계 농지를 태양광발전에 활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작물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 태양광발전 시설이 난립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농촌 현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정착하는 식이 되어야죠. 충남 금산 산지축산 현장 얘기가 좋은 예가 될 거 같습니다. 이곳은 종계 20만 마리를 키우는데 닭 냄새가 나질 않습니다. 케이지 없이 방목하는 곳으로 전체 5만 평 중 3만 평을 개간해 1만 평 부지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1층에선 닭을 키우고, 2층은 유리온실, 3층에선 태양광발전을 합니다. 태양광발전으로 월 8000만원 수익을 내고 있죠. 정부가 내놓은 ‘재생에너지 3020 계획’과 궁합이 잘 맞고, 한국전력도 농협이 추진하려는 태양광발전 사업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농촌은 도심지보다 심각한 고령화를 겪고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 복안이 퍼지려면 농촌에 젊고 똑똑한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요.

그렇죠. 박 회장 말씀대로 농가 고령화율은 50%에 육박하고, 40세 미만 농가경영주가 1% 미만이라는 점은 좀 충격이긴 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농사를 짓겠다는 젊은이가 있으면 그저 흐뭇하게 보는 분위기였죠. 정부와 농협이 무턱대고 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업으로 성공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경기 안성 농협의 미래농업지원센터가 청년농부사관학교를 세운 까닭이죠. 600억원을 들여 만든 이 시설은 벌써 3기 교육생을 맞았습니다. 농사짓는 방법은 물론 여기서 얻은 작물을 파는 방법,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후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는 훈련을 거칩니다. 농업에 종사하면 돈도 못 벌고, 은행에 손만 내밀어야 한다면 유능한 젊은이들이 농촌에 오겠습니까.

현장에서 보고 듣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정책 같습니다. 실제 항상 발로 뛰는 경영을 실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현장이 중요합니다. 민원이 들어오면 직접 현장에 가봐야 합니다. 지역 조합장부터 평생을 농협에서 일했습니다. 현장을 모르면 어떤 정책도 공허할 수밖에 없죠. 앞서 말씀드린 사례도 다 직접 가서 보고 듣고 한 일들입니다. 이번에 산불이 난 강원도에도 제일 먼저 달려갔죠.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들 역시 우리 농민이었을 테니까요. 전국을 누비다 보니 지난 3년간 차량으로 이동한 거리만 25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구를 7바퀴나 돌았다는데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현장도 중요하지만, 회장이란 직책으로선 거대한 농협을 꾸려가는 방향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합니다. 농협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일깨우는 게 중요했습니다. 농협도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임직원들 사이에서 농협의 역할과 정체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은행에 들어왔는데 왜 농업 교육을 받아야 하냐며 항의하는 직원도 있었죠. 농협이 매년 국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만 금액으로 따지면 30조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과 농민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봤죠. 주인인 농민이 춥고 배고픈데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난도 상당했습니다. 우리부터 농협이란 조직을 잘 이해하고, 초심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3년간 농협의 구조개혁은 사실상 의식구조를 바꾸는 일이었죠.

임직원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일은 참 보통 일이 아닙니다. 농협은 임직원만 10만여 명이 넘지 않습니까. 교육부터 인선까지 엄두가 나질 않네요.


▎김병원 회장은 취임 후 경기도 안성에 미래농업지원센터를 열었다. 농업·농촌 융·복합화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은 김 회장은 이곳 자문위원으로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을 위촉했다. 사진은 김병원 회장과 박혜린 회장이 악수하는 모습.
그렇다고 모든 직원을 만나 잔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또 너무 세세하게 지시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켜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지키자는 식이지요. 농협 조직이 워낙 크고, 투표로 조합장을 선출하는 구조이기에 ‘탈법’, ‘투명’ 크게 두 가지 단어를 늘 강조하지요. 3월 있었던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도 조합원들이 금품이나 감언이설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농협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선 각종 비리와 ‘갑질’ 행위 등을 청산하는 게 그 어떤 유망사업이나 신기술 도입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회장님의 노력이 외국에서 재평가받는 농협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 협동조합이지 사실상 세계 유일의 단일화된 농업 플랫폼이란 부러움 섞인 시선도 있습니다.

출범한 지 58년 만에 주요국 농업협동조합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비결을 꼽자면 농축산물 판로를 넓히면서 유통구조를 품은 경제 사업과 금융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결과라고 봅니다. 70~80년대만 해도 일본 농협을 롤 모델로 삼았지만, 경제·금융 사업을 떼어내며 별다른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반대로 1961년 8월에 농협은행을 품었습니다. 덕분에 단순히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업에서 기술집약적인 미래성장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나름 ‘홀로’였던 농업을 ‘주요 산업’ 반열에 올려놓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양광발전, 식품사업, 화장품 등 제대로 된 농업이란 기반 없이는 힘들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농협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듯합니다.

농협의 존재가치는 죽어도 ‘농민’이라고 했습니다. ‘농민’이 곧 국민이죠.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했더니 농협이 존재함으로써 1년간 국민경제에 약 30조원에 가치를 안겨준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한국이 산업 고도화를 겪으며 홀대해왔던 농업과 농민을 챙기는 건 곧 국가 경제의 중추를 챙기는 것과 진배없다는 얘기죠. 취임 후 3년간 거창한 논리보다 농협이 지닌 존재가치의 ‘본질’을 살리는 데 주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 회장은 인터뷰 내내 농협의 ‘존재가치’를 강조했다. 그 가치의 정의를 단정 짓기보단 취임 이후 겪었던 변화상을 하나하나 되짚는 식으로 설명해나갔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취임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달라진 직원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는 얘기로 답을 대신했다.

“지난 4월 화마가 고성, 속초, 강릉, 동해 등 강원도 일대를 덮쳤습니다. 부산에 출장차 나와 있던 터라 소식을 듣자마자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강원도 농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보지 않았겠나 싶었습니다. 관련 조치를 지시하려 잰걸음을 했는데. 이거 웬걸. 이미 지역농협 직원들이 농민을 도울 방안을 10가지 이상 들고 나왔더군요. 수십 년간 농협에 몸담았던지라 방안이 형식적인지 실질적인지는 딱 보면 압니다. 그들은 정말 농민을 돕고 싶어 했습니다. 여러 말 하지 않고 격려만 했습니다. ‘존재가치’를 강조한 지 3년, 각자 맡은 바 소명은 더 뚜렷해지고 있었습니다.”

※ 박혜린은… 신용카드·전자화폐시스템 업체 바이오스마트, 스마트전력계량플랫폼 기업 옴니시스템, 라미화장품 등 10개 회사의 매출 총합은 3000억원을 넘었다. 2018년 5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했다. ‘영업이익의 10%를 무조건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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