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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원 회장의 성공 법칙 

“농협의 존재 이유는 ‘죽어도’ 농민이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농협이 달라졌다. 최초 민선으로 선출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협을 완전히 바꿀 작정으로 선거에 나섰다. 2016년 3월 취임 후 4년 임기의 8할을 넘긴 최근엔 농협이 확 달라졌다는 평가와 함께 김병원의 ‘신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8일 농협중앙회가 서울 중구 중앙회 본관에서 범농협의 유통과 금융을 아우르는 농협 멤버십 플랫폼 ‘NH멤버스’ 출범식을 개최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살아남을 확률 20%’, ‘82억 달러 적자’, ‘서로 다른 266개 회계 시스템’….

1993년 미국 IBM을 표현한 수식어다. 당시 이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갔고, 이는 전 세계 최대 경제 이슈였다. IBM은 1964년 50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초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스템360’을 내놓으며 세계 컴퓨터 메인프레임 시장을 장악했다. 1987년 시가총액 787억 달러, 원화로 94조원이다. 30년도 더 된 얘기니까 지금 가치로 따지면 수백조원이 훌쩍 넘는다. 이런 회사가 망할뻔 하다가 살아남았다. 외부에서 영입한 CEO 루이스 거스너 덕분이었다. 거스너 CEO가 IBM을 살린 과정은 경영학계 교본으로 남았다. 당시 언론도 ‘IBM을 바꾸느니 차라리 코끼리를 춤추게 하는 편이 빠르겠다’며 거스너 CEO를 조롱했다.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구성원의 행동 규칙’을 바꾸는 것이었다. 고객이 누구이고, 조직원은 왜 일을 하는지 비전을 묻는 일부터 시작했다. 수만 통의 메일을 주고받고, 회의를 했다. 조직 효율화보다 조직의 ‘존재가치’에 더 집중했다.

IBM과 농협중앙회의 단순 비교는 무리다. 하지만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의 혁신 성공은 거스너 CEO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경영철학이 그렇다. 거스너 CEO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의 비전 묻기 ▶임원에겐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센티브 ▶회의를 위한 회의 없애기 ▶업무 대부분을 고객과 함께하기 등 굵직한 4가지 원칙을 직원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했다. 김 회장은 ▶농심(農心) 찾기, 정체성 회복 ▶조직과 사업 재편(잘못된 관행 바로잡기), 조합장과 임직원에게 권한 이양 ▶회의를 위한 회의를 없애기 위한 임직원 대상 무박 강연, 토론 ▶주말마다 농촌 현장을 돌며 농업인과 소통하기 등으로 주요 원칙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래서일까. ‘농협이 달라졌다’는 소리가 농협 안팎에서 들린다. 지난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Gallup)과 농협미래경영연구소가 실시한 ‘농협 변화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농업인 70.7%, 도시민 50.0%가 “농협이 농업인과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농협이 농업·농촌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와 “농협이 농촌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도 각각 농업인 80%, 도시민 60%를 넘어섰다. 농협에 대한 호감도가 이렇게 높은 적은 없었다. ‘농민은 없고 농협 직원만 있다’는 비판이 더 많았는데 김 회장 취임 전후의 농협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임직원 10만여 명, 계열사 30여 개, 자산 490조원,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자산 순위 10위), 조합원 240만 명인 거대 조직이다. 이 거구를 달라지게 한 그 비결은 뭘까.

1. 신경영 - 농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세우다

“농협의 존재 이유는 농민입니다.” 김 회장이 인터뷰 내내 한 말이다. 최근 열린 직원 대상 행사에서도 “결론은 ‘죽어도’ 농협의 존재 목적은 농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협이 목적과 목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자”며 “수익만 잘 내면 잘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시절은 뼈아프게 반성하자”고 호소했다.

농협의 존재 이유가 농민이라면, 농민의 존재 근거는 농가소득이다. 김 회장이 목표로 정한 ‘농가소득 5000만원’이 나온 철학적 기반이다. 농가소득이야말로 농민의 기본 문제이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판단이다. 3년 전 김 회장 취임 이후 농가소득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4206만원을 넘어서며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김 회장은 ▶농업 생산성 향상(벼 직파재배 확대, 종자·가축 개량, 소득 대체작목 육성사업 등) ▶농산물 제값 받기(로컬푸드 직매장 확대, 농식품 수출 확대) ▶농업 경영비 절감(자재·사료 가격 인하, 농기계 은행사업) ▶농식품 부가가치 확대(가공산업) ▶농외소득원 발굴·지원(태양광, 팜스테이 등)을 ‘제대로’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편으로 삼고 밀고 나갔다.

농산물 제값 받기와 농업 경영비 절감에도 주력했다. 농협은 2018년 쌀 매입자금 2조원을 투입, 농가희망 물량인 169만 톤을 전량 매입했다. 농가소득에 약 9조2000억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전국 농협 지점 네트워크를 활용해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체계를 마련하고, 특정 농산물 ‘쏠림현상’도 막았다. 농협은 산지 모니터링 체계 확립, 생산과잉 농산물 매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농자재와 사료 구입비도 대폭 낮췄다. 2016년부터 3년간 농가가 줄인 경영비가 약 1조2000억원이다. 올해도 농약 가격은 약 10% 인상하되 농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비료·농약·상토·농기계 등 10가지 품목은 가격을 20% 가격을 낮추도록 했다. 사료비도 마찬가지다. 국제곡물가격이 20% 이상 오른 상황에서 유통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되레 가격을 낮췄다. 김 회장 취임 후 농협비료 가격은 40% 정도 내렸고, 농약(15%)·비닐(10%)·농기계(5%)·종자(8%) 가격도 떨어졌다.

2. 신경영 - 일하는 조직, 효율적 조직을 만들다

농협 개혁도 신경영의 핵심 키워드다. 김 회장은 ‘일하는 조직, 효율적 조직’을 지향했다. 계열사 본사를 서울에서 공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했다. 비료 회사인 남해화학 본사는 여수로, 농협홍삼은 증평, 농협케미컬은 익산으로 옮겼다. 농협목우촌(음성·김제)도 생산 현장 인근으로 옮길 예정이다.

조직 슬림화와 비효율 제거도 그가 내건 기치 중 하나다. 3개 계열사를 지역으로 이전한 후 계열사마다 흩어져 있는 교육과 홍보부문 부서를 통합했다. 사업구조를 분리·개편하는 과정에서 중복 기능에 종사하는 직원 1032명 중 413명을 감축하고 상당수를 통합부서에 재배치했다. 해외사무소 4곳(미국·일본·중국·EU)은 폐쇄하고, 쌀 판매는 농협양곡이 맡고, ‘NH-Farm’은 수출 통합브랜드로 삼아 관련 창구를 일원화했다. 불필요한 조직을 없앤 후 회원경영컨설팅부와 농가소득지원부를 신설했고, ‘창조농업지원센터’와 ‘도농협동연수원’을 설립해 농가소득 증대에 힘을 보탰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남해화학 등 자회사들의 서울 본사를 과감히 없애고 공장 인근으로 내려가게 했는데, 그렇게 절감한 비용을 농자재·비료 가격을 내리는 데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3. 신경영 - 답은 현장에 있다


김 회장이 추진한 변화의 시작은 ‘소통’이었다. 김 회장 개혁이 농민과 농협 임직원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소통 방법은 수십 차례 열었던 ‘무박 2일 토론’이다. 밤새워 직원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거리감을 좁혔다. 김 회장이 직접 진행해온 ‘농심회복·경영공감 무박 2일 컨퍼런스’에 참여한 임직원만 1만5000명에 달한다. 현장경영은 김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다. 현장을 오간 거리만 25만㎞를 넘어섰다.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 전략은 농가에서, ‘조직개혁’ 추진 전략은 임직원과의 ‘소통’에서 찾겠다는 게 그의 의도였다.

과감하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권한을 이양했다. 이를 위해 관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고, 전국 조합장들이 자신의 사무실 모니터에서 농가소득 변화를 수치로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10분만 보면 농협의 경영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4. 신경영 - 교육으로 새로운 미래를 연다


김 회장은 교육을 중시한다. 농협개혁과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이념교육과 청년농업인 육성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2016년 농협이념중앙교육원을 열고 중앙회를 비롯해 계열사 임직원을 상대로 협동조합 이념교육을 진행했다. 교육받은 임직원이 1만 명을 넘어섰다. 김 회장은 “왜 농협이 국민과 농민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하는가, 근원적인 질문을 계속하게 됐고, 그래서 이념교육원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청년농업인 육성에도 매달렸다. 심각한 농촌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안에 청년농부사관학교 과정을 개설하고 6개월간 청년농업인 육성에 나섰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전통적인 파종법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드론 국가자격 취득 과정 등 첨단농업의 산실이다. 올해 1기생 22명을 배출했고, 현재 2기생 모집을 마쳤다. 김 회장은 “2023년부터 연간 청년농업인 500여 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농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영농자금 마련, 제품 디자인 개발, 농산물·가공품 수출, 창업 등도 이곳에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농협’을 만드는 것도 김 회장의 경영 키워드다. 취임 직후부터 김 회장은 기회만 되면 도덕적 해이, 갑질, 비리 등 ‘3대 청산대상’을 강조해 왔다. 문제가 적발된 농협중앙회와 계열사, 지역농축협에는 특별검사, 지원제한 등의 조치를 한다. 사고가 확인되면 바로 특별검사에 나선다. 무관용 원칙도 세웠다. 성(性)과 관련된 사고는 감경사유를 적용하지 않고 예외 없이 중징계 처분을 한다. 해당 농·축협에서 문제가 생기면 농협중앙회의 모든 지원을 중단할 정도다. 아무리 조직 효율화를 꾀하고 돈을 잘 벌어도 그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면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라는 게 김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지금까지 김 회장이 벌인 신경영으로 농협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일례로 올해 1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5대 그룹 총수와 김 회장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신동빈 롯데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경제인 130여 명이 참석했다. 보통 대기업집단의 총수와 주요 단체 기관장이 참석하는 자리여서 김 회장의 참석에 이목이 쏠렸다. 행사 관계자는 “농협이 비상장기업이지만 국내 기업 자산규모로만 9위를 차지하고 농협의 역할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 김 회장을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평가는 ‘농협’밖에서 나오는 법이다. ‘경제 규모’나 각종 수치보다 농업인과 국민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김 회장의 ‘신경영’은 통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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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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