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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5)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기술’보다 ‘관점’이 더 비싼 이유 

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스스로 대한민국 1호 ‘관점디자이너’라 칭하는 박용후 PYH 대표. 그는 26개 회사에 ‘돈이 되는 관점’을 파는 프리랜서다. 그의 유일한 자산은 소위 ‘생각하는 힘’이다. 기업이 찾아오게 만드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가 ‘인사이더’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아웃사이더’ 박용후 대표를 만났다.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피와이에이치(PYH) 대표. 그는 현재 26개 기업에서 마케팅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디자인을 안 배운 디자이너.” 박용후 피와이에이치(PYH) 대표를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말에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가 웃으며 답했다. “시장과 고객, 경쟁사가 계속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배민’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죠. 박 이사님은 ‘배민이라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라며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주세요. 본질을 파악해서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는 사람이죠.” 김 대표가 덧붙였다.

직원이 스무 명이 채 안 됐던 시절, 배달의민족에는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만 있었다. 당시 IT 전문 기자로 오래 활동해온 박 대표는 김 대표에게 배달의민족이 시장에 어떻게 포지셔닝하면 좋을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고, 마침 서비스를 어떻게 홍보할까 고민하던 김 대표는 그에게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겼다. 이후 박 대표는 8년 동안 배달의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소위 ‘훈수’를 두고 있다.

관점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무엇인가?

사물을 보이는 대로 볼까, 보여주는 대로 볼까?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가 보여주는 대로 본다. 나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패션은 문화다’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패션은 소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해석 체계가 바뀐다. 역사적으로 발명가나 혁명가로 불리는 인물은 그 대상의 정의를 바꾼 사람이다. 난 숨겨진 가치를 찾아 대중과 공감하는 코드로 바꿔주는 역할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대중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기업을 꼽는다면?

마케팅은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어떻게 느끼게 만들지 해석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내 기준에서 잘하고 있는 회사는 배달의민족이다.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는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게 있다. 깨달음을 주는 농담 따먹기랄까. 가볍게 툭 던지는데 울림이 있다. 고객들을 참여시켜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대중의 습관을 바꾼 회사들은 대부분 성공했다. 아마존은 물건을 사고파는 습관을 바꿨고, 배달의민족은 음식을 주문하는 습관을 변화시켰다. 이런 회사들의 공통점은 대중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즉,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이득을 볼수록 회사도 발전하는 구조다. 물건을 팔게 해주는 회사, 택시를 부르게 해주는 회사,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회사 등 전 세계 시가총액 1~10위가 다 그런 회사다. 누구든 자신과 관련된 일(relevance)일수록 가치를 둔다. 기업은 고객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돈을 쓰고, 고객은 자기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돈을 쓴다. 즉 시간에 대한 가치가 일치할 때 마케팅이 완성된다.

성공하는 기업들에는 공통된 방정식이 있는 것 같다.


▎박용후 PYH 대표(왼쪽)와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맞다. 이런 기업들은 ‘CVID 공식’을 갖고 있다. 문화(culture), 비전(vision), 독자성(identity), 다름(difference)이다. 구성원들이 ‘내 일’처럼 자율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문화, 어디로 가는지 명확한 미래 비전, 그 회사만의 ‘자기다움’, 이 모든 게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그 회사만의 정체성이 있다.

20곳이 넘는 기업에서 월급을 받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업무량이 너무 많진 않나?

어떤 기업이든 중요한 일이 매번 일어나진 않는다. 나는 변곡점에만 걸려 있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밖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안 보이는 게 외부에서는 의외로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과 실패하는 기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일단 오너 혼자 ‘우리 바뀌자’라고 외쳐봤자 의미가 없다. 무엇을 위해 왜 바뀌어야 하는지 구성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즉 ‘What for new? New for what?’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온 다음에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여기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상명하복식의 혁신을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들은 ‘그래 동의는 못하겠지만 월급 받으니까 말은 들을게’라는 심정이 된다. 지시를 받고 수동적으로 머슴처럼 일하게 된다. 결국 리더와 구성원 간에 불협화음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배달의민족을 예로 들면, 김봉진 대표는 구성원들에게 ‘좋은 회사가 뭘까?’라고 묻고 답변을 정리해 비전을 공유했다. ‘다들 이게 좋은 거죠?’ ‘동의하시죠?’라고 물어봤다는 게 핵심이다. 나는 이걸 ‘비전 커넥티드 싱킹’이라고 부른다. 비전과 현실이 연결되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래 특정 시점까지 우리는 이렇게 되겠다는 비전이 또렷하면 현실에서 해야 할 일도 또렷해진다. 미래를 함께 그리고, 그곳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회사가 최고의 회사다. 그래서 나는 자문하는 기업들에게 회의할 때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불러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회의를 하라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인가?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진 기술은 없지만 만들고자 하는 기술에 대한 상상력과 비전이 분명했다. 원하는 기술을 먼저 상상한 다음에 기술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키우고 줄이는 게 당연해졌지만, 당시엔 불가능했다. 시작은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버튼 대신 손가락으로 모든 기능을 가능하게 만든 ‘멀티 터치’ 기술이었다. 원하는 스마트폰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해놓고 기술이 나오자 바로 현실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즉 잡스는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된다.(웃음)

가치를 알아보는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달라.

회사의 성패 여부는 사람들의 욕구를 얼마나 잘 파고드는지, 그 욕구를 얼마나 쉽고 간편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달렸다. ‘야놀자’는 수면욕과 색욕을 접목해 성공했다. 다시 아날로그가 주목 받고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LP판을 찾는 이유는 음질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행복과 관련돼 있는 욕구에 사업 기회가 숨어 있다.

욕구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을까?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해보면 본질이 보인다. 인간의 욕망은 갈수록 세분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 식품 매장에 소금을 사러 가면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 짜다고 해서 다 같은 소금이 아니다. 마늘소금, 허브솔트, 핑크솔트 등 취향과 용도에 따라 쪼개진다. 어떤 산업이든 고도화될수록 잘개 쪼개진다. 언론사가 KBS, MBC, SBS에서 수천 개로 다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디테일해지는 욕망에 맞춰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7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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