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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 응용경영연구소 소장 

독일 중소·중견 기업은 왜 강한가? 

박지현 기자 centepark@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현재 독일 경제는 세계 4위다. 높은 전문성과 혁신 기술, 사람 중심의 중소·중견기업(미텔슈탄트·Mittelstand)은 수많은 ‘챔피언’을 낳은 독일의 롤 모델로 꼽히며 한국에서도 꾸준한 연구 대상이다. 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 응용경영연구소 소장은 중소·중견기업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빈프리트 베버 소장은 독일 미텔슈탄트의 공통점은 ‘틈새시장’ 전략에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중소·중견 기업이다”(Deutschland ist Mittelstand)

독일 시내에 붙어 있는 전광판 광고 문구다. 견고한 중산층을 형성하고 경제를 견인한 주축은 독일의 정체성이 됐다. 한편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과제는 여전히 많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역설적으로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제조업, 건설업이 가장 많다. 청년층이 중소 기업 직장을 그만두거나 채용을 거절한 사유는 ‘임금수준과 근로여건 불만족’이다. 독일의 모델 사례를 과연 한국에 적용 할 수 있을까. 독일의 중소·중견기업 전문가 빈프리트 베버(Winfried Weber) 만하임응용과학대 응용경영연구소장은 경영자가 변하면 많은 게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베버 소장은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 독일의 산업생태계 전문가로도 꼽힌다. 수많은 중견기업 경영자에게 기업 경영전략 컨설팅을 했다. 지난 4월 한국 피터 드러커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한 워크숍 강연을 위해 방한한 베버 교수를 서울 중구 세종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두 시간 반가량 이어졌다.

지금도 중소·중견기업이 독일 경제의 주축인가?

맞다. 지난해 독일 저축은행 협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고객의 영업이익이 7.3%였는데 110개 대기업은 6.3%였다. 협회에 등록된 30만 개 기업이 13년간 2배 이상 영업이익을 내며 업계 경쟁자들을 앞질렀다.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을 정의하자면.

독일에서 수출 기반의 미텔슈탄트는 약 34만 개다. 가족기업으로 5000만 유로 이상의 매출 기업은 4400개, 히든챔피언 기업은 1307개다. 이들은 아주 높은 전문성을 갖고, 종종 가족기업으로 내수 경제를 이끈다. 이 회사들은 격동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독일 경제의 특징은 소수의 큰 기업이 아니라 작고 강한 기업들이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위기나 충격에 강한 건 고루 분포된 기업들의 균형 발전에 기인한다.

중소·중견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틈새(Niche)시장 전략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이 제조한 생산품은 예를 들면 휴대폰 접착제, 장식용 생선, 세상에서 가장 비싼 헤드폰 등이다. 세포 재배 회사인 사토리우스(Sartorius) 대표는 “우리는 인기가 많은 금수저 사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금수저에게 삽을 판다”고 했다.

사실 틈새시장 전략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실패도 따를 수 있는 도전이다.

대부분 독일 기업이 “난 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잡는다. 직원이 겨우 10명 이하로 지진 진동측정기를 만드는 회사는 고객이 전 세계 300개에 불과하다. 기술력과 데이터베이스로 철저한 시장조사 후에 새 시장을 개척했다. 플리(flea) 챔피언이라고도 한다.

많은 CEO가 높은 목표를 갖지 않았을까?

장기적인 안목이 중요하다. 틈새시장의 정의를 다시 보자. 다른 기업이 초기에 별로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아 관심이 없던 분야다. 수십 년간 한 우물만 파니까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원천기술까지 갖는다. 특히 조상들의 가업을 잇는 장인정신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인쇄기계 세계 1위인 하이델베르거 드룩마쉬넨은 100년된 부품도 주문 생산 가능하다. 대부분 히든챔피언 경영 형태다.

선택과 집중이 비결이라는 건가?

독일 미텔슈탄트 중 소수만 상장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당수 미텔슈탄트는 규모가 빨리 커져서 통제가 안 되는 것을 피한다. 다각화도 피한다.

자칫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몸을 사리는 것과 다르다. B2B 기업은 특히 혁신과 연구개발 투자에 집착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직원 한 명당 특허가 대기업보다 5배 더 많지만 특허당 비용은 대기업의 5분의 1이다.

독일 청년들이 중소·중견기업 입사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독일에도 큰 기업이 얼마나 많나. 성향 차이다. 프로세스,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을 선호할 수도 있고, 개인 성장을 원하면 의사결정이 빠를 중소·중견기업을 찾는다. 또 독일 청년들이 중소·중견기업을 택하는 이유는 지리적인 이점도 있다.

지방분권화를 말하는 건가?

맞다. 독일은 13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일찍이 지방분권화가 이뤄졌다. 자연스럽게 지역별 산업과 가내수공업이 발달했다. 학업을 뮌헨에서 한다고 해도 졸업 후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업을 물려받기도 하고 지역 내 좋은 기업에 갈 수 있어서다. 한국은 서울에 다 몰려 있지 않나. 독일은 반세기간 공산화됐던 베를린을 제외하고는 산업이 고루 분포돼 있다. 균형화된 사회에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청년이 대기업을 가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시스템, 혁신 기술, 급여 면에서 더 앞서지 않나. 중소·중견기업이 그 이점을 따라갈 수 있을까?

독일의 미텔슈탄트 톰프(Trumph)는 보쉬그룹 옆에 있다. 독일에서도 거의 최고의 근무지로 꼽히는 보쉬와 인재채용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톰프가 인력난을 어떻게 해소했는지 아나. 젊은 세대의 요구를 반영했다. 급여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확실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별다른 사정이 없어도 6개월부터 2년까지 쉴 수 있다. 타 기업에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 복지 조건이다. 문제가 안 되냐고 물었더니 직원의 최대 2% 정도가 이 제도를 실제 사용한다고 하더라. 생산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일터와 직원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데 있다.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장치가 복지에만 있진 않을 것 같다.

조직문화는 아주 많은 것을 바꾼다. 사실 모든 세대는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상사에 대한 참을성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적어진다. 큰 변화다. 사회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들의 목표를 이해해야 한다. 이들의 직장에 대한 태도가 조직을 변화시킨다. 경영자들은 기업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트렌드에 개방적이고 어떻게 적응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 좋은 근로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중소·중견기업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직원 중심 문화다. 고객의 불만사항이 들어와도 직원이 일하고 있으면 매니저는 ‘직원을 방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난 이 기업들을 깊이 이해하고자 제조업 공장도 돌아다녔다. 경영자도 매니저도 직원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것을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여긴다. 그 척도는 인재 보유다. 최고의 미텔슈탄트는 이직률이 2% 미만이다. 일반 독일 회사의 평균 이직률은 7%, 미국 회사의 평균 이직률은 30%다. 회사 경영진은 근로자의 방향을 정하고 독특한 협력 정신을 부채질하는 데 목표를 둔다.

새로운 조직모델을 만드는 건가?

맞다. 역시 보쉬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이 됐지만 여전히 이전의 ‘미텔슈탄트 정신’을 유지한다. 1906년에 이미 하루 8시간 근로체제를 도입했고, 평생교육과 의료·복지에도 앞장섰다. 최근 보쉬는 WOL(working out loud)라는 피어코칭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직원이 대상이다. 18개월간 50개국에서 550개 그룹 4300명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동료나 상사와 일하며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보쉬그룹은 기업 차원에서도 ‘배우는 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조직 내에서 키워 수평적인 문화를 극대화했다.

독일기업이 해고를 하지 않는 이유


▎4월 4일 서울 강남 수서동 풀무원 회의실에서 열린 3차 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 워크숍. 베버 소장은 ‘독일의 직업훈련 모형-이원화 교육’을 강연했다.
중소·중견기업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회적 지원이 뒷받침된다. 독일 기업은 해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에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이뤄졌지만 독일에서는 당시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었다. ‘단기 근로자 프로그램(Short Labor Program)’을 시행해서다. 정부, 노조연합회, CEO들이 라운드 테이블에 앉았다. 직원은 본급여의 10~15% 감봉조치에 동의했고, 나머지 20%는 경영자가, 60%는 정부에서 지원했다. 대량 해고 사태를 피했을 뿐 아니라 실제 위기도 18개월을 넘기지 않았다. 신뢰의 문제다. 특히 독일은 CEO와 직원이 같은 지역민인 경우가 많아 교회나 같은 커뮤니티에서 마주친다. 노조와 신뢰를 잘 쌓은 기업도 있다. 독일의 화학기업 바스프는 42년간 단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

가족경영에서는 승계도 중요한 문제다.

제도가 중요하다. 재단이 기업을 소유해서 회사 법이나 상속 제도 등 기업이 시스템 안에서 장기적으로 유지되도록 지배권을 확보한다. 성공과 실패 사례를 하나씩 들자면, 8대째 운영 중인 프로이트엔베르크(Freudenberg)는 350명 이상인 가족 구성원 가치와 문화, 상속제도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담은 헌장을 별도로 만들었다. 분쟁을 줄이고, 기업 이익 배분과 사회 환원 지분 등을 기재했다. 반면 곰 젤리 업체로 잘 알려진 하리보(Haribo)는 67년간 창업자 혼자 이끌었다. 2013년 죽기 몇 개월 전에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성장은 차츰 둔화됐다. 리더십 교체 시기에 기업역사상 가장 위축됐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가족 간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나?

가족 간 불화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일 것 같다.(웃음) 가족 기업은 형제 간 경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한 이유다. OECD 국가 중 독일은 법조인이 가장 많다.

한국에 독일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렇다고 본다. 풀무원, 한솔 등 좋은 중소·중견기업도 늘고 있다. 대기업 의존·중심으로는 한계가 있다. 핀란드 경제는 노키아의 몰락으로 타격을 입지 않았나. 균형 경제의 답은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전문 인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성장시켜야 한다.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를 만들고 낡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역할은 경영자의 몫이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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