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2019 대한민국 50대 부자] 혁신 주도하는 ‘자수성가형’ 젊은 부자들 

 

한국 자수성가 부자 4인방이 주목을 받았다. 이 중에는 포브스코리아와 포브스가 선정한 ‘2019년 한국 50대 부자’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린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30·40대 젊은 나이라는 점, 한국이 게임과 화장품 강국이라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시선을 끌었다.

‘김정웅 GP클럽 대표, 김대일 펄어비스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

포브스가 주목한 자수성가 4인방이다. 이들은 모두 30·40대로 젊은 창업가란 특징과 ‘자산 1조 클럽’에 들어섰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선 다소 ‘뒷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물론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서도 자수성가 부자는 꽤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비롯해 김정주 넥슨 회장,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20명가량이 자수성가형 부자다. 하지만 한국 제조업 성장기를 함께한 기업인이나 IT 산업이 태동하면서 큰 기업인들이 수년간 한국 50대 부자 순위를 지키고 있다. 실제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올해 초 한국 경제에 대해 재벌이 산업 전반을 장악하고 있어 후발 주자들이 침투하기 힘든 시장이라는 표현을 한 바 있다.

‘자수성가 부자’ 탄생한 게임·화장품 분야


그래서 자수성가 4인방의 등장이 더 반갑다. 단순히 새로운 부자가 나타났다는 가십 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들의 등장과 활동을 살펴보면 한국 산업계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신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등 경제 흐름과 맥을 잡을 수 있다. 젊은 창업가 4인이 한국 IT(게임)와 화장품 분야를 대표한다는 점도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두 분야가 기존 산업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와 개념을 가지고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특히 마스크팩 신화의 주인공인 김정웅 GP클럽 대표는 포브스를 비롯한 각종 외신에 대서특필됐다. 포브스가 추산한 그의 재산가치는 11억5000만 달러(약 1조35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 ‘JM솔루션’은 지금까지 중국 시장에서 스킨케어 마스크만 10억 개 넘게 팔았다. 매출과 순이익도 동반 상승 중이다. 2016년 483억원이었던 GP클럽의 매출은 지난해 5140억원으로 2년 새 10배 넘게 뛰었고, 지난해 1700억원이었던 순이익은 1년 새 30배 넘게 뛰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지난해 10월 750억원을 주고 GP클럽 지분 5%를 사들였다. 지금도 김 대표가 나머지 9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김 대표의 얘기는 포브스와의 인터뷰로 풀었다. 여기선 나머지 세 기업인(재산가치순)을 소개한다.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린 김대일(39) 펄어비스 의장은 최연소 부자로, 50대 부자 중 유일한 30대다. 다소 생소한 이름인 펄어비스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사막’으로 성공한 게임개발사다. 한국 게임시장의 3대 거목 이른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김대일 의장이 2010년 창업한 펄어비스는 8년 만에 누적 이용자 100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시가총액 2조4000억원짜리 회사로 성장했다. 대표작 ‘검은사막’은 PC용, 스마트폰용, 콘솔용까지 출시하며 전 세계 12개 언어로 150여 개국 유저가 참여하는 글로벌 게임으로 거듭났다. 펄어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은 건 자체 게임 엔진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도 개발자 출신으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현역 개발자’란 명패를 고수하고 있다. 2000년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재학 시절 가마소프트에서 개발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2003년 NHN으로 이직했고 첫 데뷔작 ‘R2’ 개발을 총괄했다. 이 게임은 출시한 해에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차기작 ‘C9’도 2009년 대통령상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IT 대기업에서 탄탄하게 입지를 다졌음에도 그는 독립에 나섰다. 2010년 7월 펄어비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4년간 개발에 매달렸고, ‘검은사막’이 탄생했다. 출시 후 2년 뒤인 2016년 북미·유럽 서비스를 시작했고, 1년간 최고 인기게임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게임 엔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기에 PC부터 스마트폰, 각종 게임콘솔에 이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토종 게임으로 지적재산권(IP) 매출만 누적 1조원을 돌파(2019년 4월 기준)했다.

그가 개발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펄어비스의 개발자 대우도 남다르다. 펄어비스 직원 750여 명 중 450명가량이 개발자다. 이들은 펄어비스의 게임 엔진은 물론 각종 게임 개발 도구들도 모두 자체 제작한다. 당연히 우수한 개발자 영입에 업계 최고 수준을 내걸었고, 최고 수준의 복지도 갖췄다. 2017년엔 업계 최초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고, 전 직원에게 복지카드(매년 204만원), 미성년 자녀 양육비(월 50만원), 회사 인근 거주자 지원(월 최대 50만원), 치과 진료비 지원(연간 최대 255만원)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마련했다.

김 의장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차세대 게임 엔진 개발과 플랫폼 다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엔진팀 인력만 50명 이상으로 여타 개발사가 비용 문제로 외국 게임 엔진을 사용하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올해도 검은사막 IP의 성공을 이어갈 프로젝트 K·V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음은 플랫폼 다각화다. 기존엔 특정 디바이스를 위해 개발했다면 김 의장은 기기와 상관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클라우드 게이밍’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서버에서 게임을 구동하고 이용자는 스마트폰 등 여러 디바이스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스타트업계 맏형 장병규 의장

한국 인터넷 벤처업계에는 ‘은둔형 경영자’가 많다. 네이버·카카오·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을 창업한 이들은 수년간 언론과 접촉을 피하며, 노출을 꺼리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장병규 크래프톤(전 블루홀) 의장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2기째 연임하며 스타트업 창업계의 맏형 역할을 자처했다.

그가 스타 CEO 반열에 올라선 데는 서바이벌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공이 크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전 세계 이용자 수만 4억 명을 돌파했다. 국내 게임사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외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은 크래프톤이 처음이다. 현재 시장에선 크래프톤의 시장가치를 5조원 이상으로 평가한다. 장 의장은 현재 크래프톤 지분(보통주+우선주) 17.7%를 보유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펍지(블루홀 자회사)와 온라인게임 ‘테라’를 만든 블루홀 등을 밑에 두고 있다.

물론 그도 개발자 출신이다. 대구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학사,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까지 수료했다. 1996년 포털 네오위즈 공동창업자로 한국 1세대 IT 창업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검색업체 첫눈, 게임사 블루홀, 스타트업 투자사를 창업해 모두 성공시켰다. 특히 2007년 블루홀을 만들면서 차린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에서 우아한형제들, 윙버스 등 120개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해 성공한 바 있다. 그는 그간 스타트업 현장을 훑으며 부딪혔던 경험을 업계에 풀고 싶어 했다. 항상 자금에 쪼들릴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경영 환경, 최근에야 기류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게임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자리한 사회 분위기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그의 평소 의지 덕분인지 2017년 9월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장 의장은 ‘민간주도 정부 조력’이란 소신으로 벤처업계와 정부의 입장 차를 좁히는 데 노력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 프로그램(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이 대표적이다. 팁스는 민간에서 투자한 기업에 정부가 매칭해 투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다. 물론 그도 벤처업계에 몸담은 시절엔 정부를 향한 날 선 불평불만을 일삼았지만, 최근에는 직접 관료 조직을 ‘법적인 문제나 필요한 문서 등 행정 업무 전문가’라 평가하기도 했다. 또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환경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데 창업과 성장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마스크팩 하나로 돌풍을 일으킨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도 ‘자산 1조 클럽’에 합류했다. ‘A.H.C’ 브랜드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 카버코리아는 2017년 글로벌 화장품 회사 유니레버에 매각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전 회장은 ‘이보영 크림’으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과 글로벌 화장품 회사 유니레버에 분산 매각을 감행했고, 그는 40대 나이에 1조원을 거머쥔 현금 부자가 됐다.


이 전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화장품으로 번 돈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패밀리오피스 ‘너브’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 중이다.

투자 영역도 영화제작사, 디자인 회사, 항균필터 회사 등 다양하다. 너브가 투자한 회사를 보면 씨앤투스성진(필터 및 마스크 제조), 모팩(영화특수효과, 애니메이션 제작), 에이스메이커(영화투자), BA엔터테인먼트(영화제작사), 사람엔터테인먼트(연예기획사), 플러스엑스(브랜드 디자인), 표준F&B(음식프랜차이즈), SR컨설팅(부동산, 미디어 컨설팅) 등 분야도 다양하다. 얼핏 보면 잡다해 보이지만, 모두 먹고 마시고 즐기는 소비 산업을 타깃으로 하는 회사들이다. 일각에선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작은 CJ그룹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충 여유자금을 찔러보는 식이 아니다. 기존 제도권 금융회사가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 위주로 투자하고 있으며, 사업을 정교화하기 위해 굴지의 기업과 로펌에서 수많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장 의장이 정부 감투를 쓰고 벤처업계를 지원사격하고 있다면 이 전 회장은 뭉칫돈으로 직접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와 육성에 뛰어든 셈이다.

최근 너브의 보폭은 더 빨라지고 커졌다. NHN의 모바일 결제 자회사 NHN페이코에도 투자했다. 지난 7월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생명과 너브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NHN페이코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각각 500억원과 2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로써 너브는 NHN페이코 지분 3.4%를 취득하게 됐다. 업계는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너브가 최근 핀테크 기술 강화에 힘을 쏟고 있어서라고 풀이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908호 (2019.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