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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9)] 우리 민족의 DNA를 빚다, 달항아리 작가 권대섭 

“달 항아리를 왜 만드냐고?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미니멀하고, 가장 완벽한 추상이니까!” 

권대섭(67)은 백자 달항아리를 만든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79년 일본으로 훌쩍 건너가 조선 도공의 흔적부터 찾기 시작한 세월이 어느새 40년이나 흘렀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복학생은 인사동 거리에서 마주친 백자의 무엇이 그리 좋았기에 캔버스는 내팽개치고 흙을 만지기 시작했을까. 조선시대 관요(官窯)가 있던 경기도 광주에서 어린 딸과 사금파리를 줍고, 만져보고, 혼자서 공부에 연구를 거듭했던 그의 내공을 드디어 세상이 알아차렸다. 벨기에의 세계적인 컬렉터 악셀 베르보르트도 그중 하나다. 남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긴 박여숙화랑이 재개관전의 주인공으로 그를 삼은 것도 필시 이유가 있으렷다.

▎가마에 들어가기 직전의 달항아리를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는 권대섭 작가.
파편 주워 공부하며 조선 왕실 도자기 비밀 터득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이석리. 잔잔한 팔당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그의 가마와 살림집이 있다. 마당 끝 벚나무 잎사귀는 이미 가을로 물들었다. 작업장 문을 열자 크고 잘생긴 허연 귀공자 같은 달항아리 네 점이 시야에 가득 찬다. 그 자태에 숨이 턱 막힌다. 가마 속 불구덩이를 잘 견뎌내야 할, 귀한 몸들이다.

생각보다 꽤 크네요. 키가 60㎝도 넘겠어요. 달항아리 키는 보통 45㎝ 정도 아닌가요.

구워내면 여기서 20% 정도 줄어듭니다.

흙은 최고급을 쓰시겠죠.

그럼요. 고령토는 경남 진주와 하동산으로, 전문가들이 직접 골라준 좋은 놈들로 받습니다. 여기에 백토, 점토 등 ‘마약’을 많이 섞죠. 뭘 얼마나 섞느냐가 노하우입니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상태가 다 있거든요.

장작은 강원도산 소나무입니까.

옛날엔 그랬는데, 요즘은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못 옮기게 합니다. 그래서 인근에서 오래된 집을 허물면 거기서 나오는 목재를 쓰지요.

불도 잘 다뤄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장작을 하나 더 넣느냐 덜 넣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그만큼 예민한 작업입니다. 지금도 숙제예요. 조금 더 땔까 그만 넣을까 늘 고민하죠.

그때 옆에 있던 부인 김지영 여사가 “40년 동안 했으면 이제 잘 나오는 방법을 알 법도 하건만, 그대로 하지 않고 꼭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요”라고 살짝 눈을 흘긴다. “그런 재미도 없으면 힘만 들어 어쩌냐”는 게 권 작가의 응수다. “40년 동안 보아온 덕분에 당신은 이제 딱 보면 누가 얼마에 사 갈지도 알잖아”라고 덧붙이는 작가의 표정이 재밌다.

달항아리는 커다란 사발(大壺) 둘을 붙여 만든다. 덩어리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려면 반쯤 마른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물레를 밟아 돌려가며 한 아름이나 되는 사발을 만들고, 이것들을 다시 아래위로 붙이는 작업을 변변한 조수도 없이 거의 혼자서 하고 있다.

성공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반반 정도? 두 달에 한 번가량 제작하는데, 가마가 작아서 한 번에 네 점밖에 못 들어가요. 한 해에 열두서너 점 정도 완성하려나.

맘에 안든 건 깨버리나요.

네. 그런데 도자기 다큐멘터리를 보면 왜 그렇게 깨는 것만 보여주는지 몰라. 아니, 깨기 위해 만드나? 잘못 만들어 깨는 건데, 실패가 자랑인가요? 물론 어렵다는 걸 강조하려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잘 만들어야죠.

내공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친구 아버님인 설국환 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도자기로 유명한 일본 규슈 나베시마요(鍋島窯)의 오가사와라 선생 밑으로 들어갔죠. 가르침을 받았다기보다 그냥 옆에서 보고 배웠어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1985년 우연히 알게 된 신창호 회장님의 도움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사금파리를 주워가며 공부했죠. 덕원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1995년까지 17년간 공부만 했어요.

사금파리는 왜 주웠나요.

한국 도자기의 역사가 그 파편에 다 있거든. 박물관에 있는 것을 꺼내 부술 수는 없잖아요? 파편의 맛, 그 자체에 감동이 있어요. 왕실 백자의 비밀을 깨달아가는…

장식적이지 않은 것이 달항아리의 가장 큰 매력


▎권대섭 작가의 미소에는 어린 소년의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 비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10월 10일 박여숙화랑에서 시작된 ‘권대섭전’(11월 11일까지)이다. 서울에서 9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달항아리와 백자호 등 18점이 나왔다. 그동안은 해외 전시에 치중해왔다. 2009년 스위스 바젤 마이애미 디자인 아트페어에서 작품 다섯 점이 평균 2만 달러에 팔린 이래 전 세계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다. 2013년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위크의 트리엔날레에서 열린 ‘법고창신’전에 나갔고, 2015년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관과 2016년 독일 뮌헨 바이에른 민족박물관에서 열린 ‘코리아 나우! 한국의 공예와 디자인, 패션, 그래픽디자인’전에도 출품해 한국 문화의 미감을 유럽에 알렸다. 눈 밝은 유럽 컬렉터들이 그를 놓칠 리 없었다.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2014년쯤인가, 서울에 온 그를 만났어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며 한 점을 사 갔죠. 그런데 그 작품을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신의 공간인 ‘팔라초 포투니(Fortuny)’에 전시하더라고요.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다’고 편지를 보내오더니 그해 가을 다시 와서 다섯 점을 더 사 갔어요.

그걸로 전시도 했나요.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자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주더라고요. 지난해 전시 때 벨기에에서 출간하려던 도록도 이제야 나왔어요. 도록도 악셀 갤러리에서 만들어준 겁니다. 문덕관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좋다면서 책으로 만들자 하더라고요.

지난해 가을에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좋은 소식도 있었죠.

처음 크리스티 연락을 받았을 때 좀 무서웠어요. 그 전에 서울옥션에서 다섯 점이 다 잘 팔렸는데, 혹시 그 가격보다 낮게 거래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거든요. 보통 4만 달러 수준인데, 그보다 더 높아서 기뻤습니다(2018년 10월 경매에서 그의 달항아리는 5만2500파운드, 약 9700만원에 낙찰됐다).

이제 정말 뜨셨군요.

에이, 40년 만에 돈 꾸러 다니지 않게 된 정도예요. 많이 만들지도 못하잖아요. 제자도 없고. 힘든 일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달항아리의 매력은 뭘까요. 덩치가 커서 그럴까요.

중국이나 일본에는 더 큰 도자기도 많아요. 그런데 다른 나라 도자기는 점점 더 장식적이 되었는데, 달항아리만 장식이 없어지고 더 단순해졌죠. 저는 이것이 달항아리가 갖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달항아리의 미감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달항아리를 많은 사람의 공통 언어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그런 동기가 됐으면 합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말씀이죠.

저는 전통을 잇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달항아리를 만드는 이유는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미니멀하고, 가장 완벽한 추상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예가가 아니라 현대미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은 공예라는 한계에 묶여 공방 근처에서, 도자기 축제나 정부 기관 근처에서 빙빙 돌고 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안 돼요.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있나요.

저는 국내에 스승도 없었고, 도예 인맥도 없습니다. 도예가협회에도 가입하지 않았어요. 도자기 축제에도 거의 나가지 않습니다. 혼자 공부했고, 그래서 작품 발표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이제 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현대미술로서 제 도자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 참, 작업실 천장 밑에 붙어 있던 오래된 현판은 뭡니까.

‘낙호재(洛壺齋)’. 18세기 이름난 서예가였던 백하 윤순 선생의 글씨입니다. ‘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죠. 경매에서 샀어요.”

그랬다. 그는 여전히 항아리 속에 있다. 그 속에서 항아리를 만들고 있다.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벨기에 컬렉터 악셀 & 메이 베르보르트 부부와 달항아리 전시장에서 함께 한 권대섭·김지영 작가 부부.



▎작업실 풍경. 탁자 위 비닐에 싸여 있는 것은 질 좋은 고령토다.



▎작가의 볕 좋은 살림집 거실은 다실(茶室) 이자 선방(禪房)이다.



▎완성된 달항아리. 박여숙화랑에서 1월 1일까지 볼 수 있다.
-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사진:신인섭 기자, 박여숙 갤러리, 작가 문덕관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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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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