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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성 마켓보로 대표 &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 

‘끈기’의 창업자, 믿고 기다려준 투자자 

식자재 유통 시장을 바꾸겠다고 나선 스타트업 CEO가 있다. 이 CEO가 가진 생각을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도운 투자자도 있다. 빛나는 성공 뒤엔 항상 믿고 기다려준 투자자가 버티는 법이다.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와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의 인연이 바로 그랬다.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왼쪽)와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 2016년 강 파트너는 임 대표가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찾아갔다. 인공지능(AI), 핀테크보다 식자재 유통이란 주제가 왠지 솔직해 보여서다. 개인투자자 자격으로 투자했던 강 파트너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로 자리를 옮겨 마켓로보의 길잡이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창업만 6번째입니다. 중국 알리페이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했고, 요새 흔해진 ‘사이렌 오더’ 같은 툴도 만든 개발자였죠. 가맹점 유치하러 나갔던 식당에서 사장님의 고민을 듣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하기 전부터 개인 자격으로 투자했던 회사예요. 임 대표를 몇 번 만나면서 기억에 남은 건 고집과 사명감이었습니다. 사업 초기에 인원도 줄이고, 재정 불안에 시달렸어도 3년 넘게 무료 서비스를 고수하더라고요.”-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

제1호 개인투자자와 스타트업 대표가 나눈 얘기다. 벤처투자를 통해 마켓보로 성장을 도왔던 지난 3년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11월 4일 강남 한 사무실에서 만난 임사성(42) 마켓보로 대표(이하 임 대표)와 강준열(45)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이하 강 파트너)는 투자가 이뤄지고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날 때 서로 믿고 기다려준 얘기를 풀어냈다. 강 파트너는 “대다수 스타트업이 핀테크, 인공지능(AI)같이 좀 있어 보이는(?) 사업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데 반해 식사재 유통 같은 1차 산업을 화두로 삼은 마켓보로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확신했다.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 규모는 46조원, 이 중에서 대기업이 10% 좀 넘게 차지하고 나머진 영세업체가 맡는다. 소금, 설탕, 고추장 등 각종 양념류와 농축산물까지 상품의 종류와 가격도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업체가 얼마에 어느 정도 양을 공급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는 오프라인 식자재 유통방식을 온라인으로 가져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3년, 마켓보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식자재 유통 관리 서비스 ‘마켓봄’은 현재 2000여 개 거래처와 3만 건이 넘는 발주 건수를 기록했고, 지금까지 누적 취급고만 3000억원이 넘는다. 올해 4월엔 식당 전용 B2B(기업 간 거래) 오픈마켓 ‘식봄’를 출시했다.

사업주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선 낯선 이름이다. 풀어 설명하면 마켓봄은 외식업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업주를 대상으로 전사적자원관리(ERP) 서비스를 제공해 온라인 기반 유통 중개를 이끈 플랫폼이다. 또 식봄는 지금껏 쌓아온 유통 데이터를 기반으로 음식점이 식자재와 유통업체를 검색하고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직거래 플랫폼이다. 현재 수익모델은 마켓봄에서 나오는 수수료다.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유통업체라도 사용료로 월정액 5만5000원을 낸다. 임 대표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유통업체라면 매월 ERP 유지비용으로 200만원 정도 쓸 것”이라며 “마켓봄을 이용하면 비용을 5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 파트너뿐만 아니라 마켓보로를 인정하는 투자자가 속속 나타났다. 올해 5월엔 나우아이비캐피탈, 지에스에이프라이빗에쿼티와 더터닝 포인트 등 기관 투자사들로부터 30억원 규모 투자 유치를 완료했고, 최근에도 추가 투자 유치가 진행 중이다. 여기까지 지독하게 버티며 달려왔다는 임 대표, 그리고 그를 믿고 기다려준 강 파트너의 얘기를 좀 더 들어봤다.

어떻게 만났나.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이하 강준열): 2016년 마켓보로가 마켓봄이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찾아갔다. 멋들어진 기술로 미래를 바꾸겠다는 스타트업이 많은데 유독 식자재 유통을 고수하는 마켓 보로가 눈에 띄었다. 일단 만나보고 싶었다. 당시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소속도 아니라서 순수 개인투자자 자격으로 찾아갔다. 서비스를 보니 이게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 오프라인에서 발로 뛰며 거래처 DB를 쌓고, 그 불편함이 뭔지까지 설득하고 다녀야 했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인데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엔젤투자자를 만났다.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이하 임사성): 정말 강 파트너는 구세주였다.(웃음) 마켓보로는 6번째로 창업한 회사였다. 중국 알리페이가 한국에 진출할 때 일을 도왔다. 결제 바코드를 인식하거나 태블릿과 POS(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를 연동하는 작업 등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초기 사업자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자였다. 자연스레 영업망을 넓히려 식당을 찾았는데 한 사장님이 “이런 거 말고 식자재나 좀 싸게 살 수 있는 걸 만들어 줘!”라는 말을 했다. 이거다 싶었다. 실제 식자재 시장은 공급자, 구매자 모두에게 정보가 투명하지 않은 곳이었다.

뭐부터 시작했나.

임사성: 식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마다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식자재 유통업체를 만나야 했다. 역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아니 뭐 지금도 잘 유지하고 있는데… 굳이….” 사실 불편함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사장님도 극소수였다. 그냥 장사 자체가 바쁘고 힘들었다. 매일 물건을 받고, 정산하는 체제도 아니었다. 순댓국밥집이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음식 부자재를 한 업체에서 받았다. 식당 측도 단가 계산은 엄두도 못 낼뿐더러 공급자가 같은 가게인데도 납품가가 다른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죽어라 설득했다.

효과가 있었나.

임사성: 다들 꺼렸다. B2C(기업·고객 간 거래) 시장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소비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팔려는 공급자 간 치열한 두뇌 게임이 전개된다. 이에 따른 시스템도 나날이 발전해왔는데 지역 B2B 시장은 완전 20~30년 전 수준이었다. 새로 식당을 차려도 지역 식자재 업체를 몰라서 옆 가게에 묻는 수준이었다. POS 기기를 들여도 그냥 카드 결제용으로만 쓰는 거지 식자재 출납을 제대로 정산하거나 수요를 예측할 만한 정보를 가공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계속 설득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마켓봄 가입자가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에 인건비로 투자금을 소진해가고 있었다.

강 “스타트업, 현실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야”


투자자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강준열: 스타트업 시장 얘기부터 좀 하고 싶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초기에는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어떤 스타트업 CEO는 화려한 학벌을 자랑하며, 현실 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풀 것인지보다 이상만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운 좋게 투자를 받아도 무작정 사람만 늘리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상당수 스타트업이 사라진다. 사업해보면 알겠지만, 투자금이 인건비로 순식간에 사라진다.(웃음) 임 대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임사성: 서비스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 국내 굴지의 IT 업체와 계약했다. 보통 스마트업을 하면 CEO는 앞만 볼 수밖에 없다. 나조차도 자신감이 좀 지나쳤다. 사람도 11명이나 뽑았다. 하지만 계약을 끝맺지 못했고, 사업 성과는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급여를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했고, 4명만 남았다. 1명은 마켓봄 서비스를 유지하고, 나머지 3명은 타사에서 일감을 받아가면서 버텼다. 2018년쯤 되니 빚도, 세금도 다 갚을 수 있었다. 여유자금도 생겨 직원도 한두 명 더 뽑았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중간에 몇 번이고 강 파트너를 찾아가고 싶었다.(웃음)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강준열: 안타까웠다. 그래도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겪는 데스밸리였기에 기다렸다. 사실 그런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이런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서 성장한다. 사실 개인투자자 신분이었다면, 당장에라도 돕고 싶었다. 하지만 민간 자금을 끌어모은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 발을 들였기에 투자를 하려면 나름의 프로세스를 통과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개뿐. 나머지는 임 대표 몫이었다. 다행히도 회사 측에서 임 대표의 플랫폼 마인드를 긍정적으로 봤다. 당장 회원 몇 명한테 뜯어낼 돈보다 이용자가 쓰고 싶은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노력, 실제 늘어나는 이용자 수가 중요했다. 플랫폼이 돈을 버는 건 수많은 이용자가 플랫폼 속에서 생태계를 꾸려갈 때 가능한 일이다.

강 파트너가 정말 은인이겠다.

임사성: 고마운 분이다. 결국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서 추가로 투자를 받아냈다. 데스밸리를 겪는 와중에도 현장에 나가 만났던 사업주들과 소통해온 얘기가 주효했다. 이대로 편협한 시장으로 남으면 공급자, 수요자 모두 손해라고 설파했다. 특이하게 이 시장은 최저가, 즉 가격이 모든 걸 좌우하진 않는다. 식당도, 식자재 유통업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식당은 좀 더 효율적으로 식자재 수급을 관리하고, 공급자는 좀 더 시장을 넓히는 게 목표다. 최근엔 대기업 산하 유통사도 마켓봄을 이용한다. 강 파트너가 액셀러레이터 역할까지 자청했기에 풀린 일도 많았다.

어떤 일을 도와줬나.

강준열: 스타트업 대표로서 놓치는 점을 조언해줬다. 투자했다고 해서 절대 갑이 아니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점을 살짝 조언하는 정도다.(웃음)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한국 굴지의 IT 회사에서 임원으로 있으면서 쌓은 경험이 이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실제 시장에서 통하는 바가 뭔지, 마켓보로를 알릴 때 어떤 투자 포인트를 강조해야 하는지, 계약이 진행되다 실패했을 때 리스크 관리하는 방법 등을 얘기해줬다. 궁합이 맞는 핀테크 회사가 있으면 소개도 해줬다.

정말 도움이 됐겠다.

임사성: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 사실 유통이란 비즈니스가 매력적인 건 아니다.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단계가 많고, 마진율도 박하다. IT 스타트업이 뛰어든다고 하면 또 다른 중간 유통상인지 의심하는 눈길도 많다. 다른 사업자처럼 우리가 그냥 제품 판매·물류까지 뛰어들어 마진을 높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원래 사업 취지가 훼손된다. 강 파트너는 나의 플랫폼 마인드를 잘 이해하고 받아줬다. 엮기 좋은 서비스가 뭔지, 제휴할 만한 기업들도 소개해줬다.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식자재 주문 서비스까지 맡고 있다.

임 “유통구조, 3단계로 줄이는 게 목표”


▎마켓봄 모바일 메인 화면&주문 화면
투자자 입장에서 유통은 어떤 분야라고 생각하나.

강준열: 난 유통 전문가가 아니다.(웃음) E-커머스 분야라고 하면 할 말이 좀 있다. 온라인에선 사실 비즈니스 기회가 엄청나게 많다. 발굴하는 자가 가져가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온라인 페이지에서 상위 노출 자리를 파는 리스팅 비즈니스, 플랫폼 사업자에게 검색 키워드를 사다가 검색 트래픽을 도소매로 연결하는 키워드 비즈니스 같은 영역이다. 이런 측면에서 마켓보로가 추구하는 데이터 비즈니스는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데이터는 곧 수요를 보는 힘이고, 힘이 쌓이고 커지면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 모두 수년간 적자였다. 이용자가 1000만 명이 넘어가면서부터 비즈니스 기회가 생긴 거지 처음부터 돈 욕심을 부렸다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회사다.

마켓보로는 어떤 길을 걷고 싶나.

임사성: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나도 시장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개발자 출신이라 음식점을 해본 게 아니어서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였다. 식자재 유통망의 정보 비대칭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나선 비즈니스 모델도 바꾸지 않았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양쪽 다 이득이 될 수 있는 게임이다. 어느 한쪽만 데이터를 쌓는 게 아니라 쌍방향 플랫폼을 표방했다. 서로 패를 숨겨서 얻는 이득보다 공개해서 얻는 상호 간 이익이 크다는 걸 모두가 깨닫고 있다. 6단계, 그 이상으로 이뤄진 유통구조를 생산자, 유통, 수요자 딱 3단계로 줄이는 게 내 목표다.

둘은 한동안 그간 있었던 사업 제휴 건이나 못다 한 고민을 나눴다. 최근 마켓보로는 국내 대표 식품기업, 물류유통 기업과도 협력할 점을 모색하는 모양이었다. 강 파트너도 데이터와 인프라를 어떻게 연결할지 다양한 각도에서 조언을 해줬다. 강준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는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초기에 투자한 80~90개 회사 중 10개 정도는 사라졌습니다. 투자 초기엔 화려함에 끌린 적도 있었지만, 비전과 현실의 조합을 명확히 그렸던 CEO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지금 직원 수백 명을 이끄는 CEO가 됐습니다. 우선 투자가 적중해서 좋고,(웃음) 두 번째는 훌륭한 사람들한테 투자할 기회를 얻어 영광이었습니다. 많이 배웠다는 생각도 듭니다. IT 회사 임원으로 더 있었으면 저도 ‘꼰대’가 됐을지 모르죠. 특히 임 대표에게서 배운 건 ‘끈기’ 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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