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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RUBELL MUSEUM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일수록 매료되죠” 

아트뉴스(ARTNEWS)에서 발표한 ‘2019 톱 컬렉터 200’을 살펴보면, 부부 컬렉터가 무수하다. 엘리 브로드 부부, 베르나 아르노 부부, 스티브 코헨 부부, 가엘 넬슨 부부, 크리스티앙 보로스 부부, 레온 블랙 부부, 허브와 도로시 부부가 대표적이다. 그중 메가 컬렉터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부 컬렉터는 메라&도널드 루벨(Mera & Donald Rubell) 부부다.

▎Mera and Don Rubell in front of Kerstin Bratsch's artwork When You See Me Again It Wont Be Me(from Broadwaybratsch/ Corporate Abstraction series), 2010. Photo Credit: Chi Lam. Courtesy of the Rubell Museum
커플이 된 이후에 동반자로 함께 살아야 하는 기간은 짧게 보아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같은 취미를 향유하는 커플이 있는 반면, 각자 다른 열정을 가진 커플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독 아트 컬렉션을 함께하는 커플들은 예순을 넘기고 여든이 되어도 여전히 살갑게 애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허브와 도로시 보겔 부부다. 우체국 야간 직원,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부부는 남편 허브의 수입 전부를 오로지 예술품 구입에 지출했다. 허브가 죽기 전까지 부부가 50년 동안 구입한 개념미술 작품은 4700여 점이었다. 허브의 연 소득 2만3000달러(2700만원)는 미니멀 아트, 팝아트, 사진 등을 구입하는 데 모두 쓰였다. 도로시는 남편과 함께한 아트 컬렉션이라는 열정이 있었기에 평생 누구보다 행복했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예로 파리 DSL 컬렉션의 부부 컬렉터인 도미니크 르비는 “남편 실방 르비가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 열정 이외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 겨를조차 없었다”며 “그래서 남편과 컬렉션의 길을 동행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루벨 부부의 예술품 수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소련의 타슈켄트 출생인 메라 루벨은 독일 나치 체제에서 탈출한 폴란드 부모를 두었다. 브루클린에 도착했을 때 메라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12세 소녀였다. 예술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메라는 도널드 루벨과 결혼하면서 함께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부부의 수집은 허브와 도로시처럼 겸손하게 시작했다. 일주일에 25달러(소비자물가지수 인플레이션 계산기로 환산해보면 2020년엔 207달러, 즉 24만원 정도다). 부부는 당시 빠듯한 수입 중 25%를 예술품 구입에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부부는 예산에 맞는 작품들을 찾기 위해 동시대 작가 중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에게 포커스를 두었다. 그러기 위해서 부부는 작가의 아틀리에를 직접 방문해 작품을 구입했다. 부부의 첫 소장품은 1964년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의 페인팅이었다.


▎(left wall): Rosemarie Trockel, Colony, 2007 (sculpture): Thomas Schutte, Große Geister Nr. 2, 2003 (right wall, left to right): Rosemarie Trockel, Untitled, 1986 Rosemarie Trockel, Untitled, 1986 / Rosemarie Trockel, Untitled, 1986 / Rosemarie Trockel, Untitled, 1990 / Photo credit Chi Lam. Courtesy of the Rubell Museum
의사였던 도널드의 수집 예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났고 지금도 부부는 갤러리와 페어 등을 다니며 다양한 선택을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초기 신조를 지키고 있다. 부부의 수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셀 수 없이 늘어갔다. 장 미셀 바스키아, 키스 해링,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신디 셔먼, 카라 워커, 앤디 워홀 등. 그리고 루벨 부부의 애정 또한 예술품과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더욱 깊어졌다.

그들은 작품을 구입할 때 재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고 선택했다. 만약 재판매를 해서 자산을 증식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무명 작가만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벨 부부는 수집 초기부터 50년간 약 5000점을 구입했지만 판매한 작품은 단 20점밖에 되지 않았다. 동시에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들은 박물관 기증을 목적으로 작품을 수집하지도 않았다.

1964년에 부부가 설립한 재단의 이름이 루벨패밀리컬렉션(Rubell Family Collection)인 것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예술을 향한 행로를 상징한다. 루벨 가족을 예술로 이끈 인물이 있다. 1989년 에이즈로 사망한 도널드 루벨의 형제로 1975년에 스튜디오54를 개업한 스티브 루벨(Steve Rubell)이다. 이언 슈레거(Ian Schrager)가 공동 오너인 스튜디오54는 맨해튼에 있는 디스코 클럽 겸 대극장이다.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케니 샤르프 등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즐겨 찾았던 클럽이며, 작가들뿐 아니라 브룩 쉴즈 같은 영화배우와 데이비드 보위, 그레이스 존스, 존 레논 등 가수, 트럼프 등 기업인,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도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세계적인 명곡이 된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가 대중에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첫 폭발탄을 쏘아 올린 곳도 스튜디오54였다.


▎George Condo, K-9 Explosion, 1986, oil on canvas, 82 1/2×74 in.(209.5×188㎝), acquired in 1986. ⓒGeorge Condo, Courtesy of the Rubell Museum


12년에 걸쳐 100여 개 아틀리에 방문


▎Maurizio Cattelan, La Rivoluzione Siamo Noi, 2000. ⓒMaurizio Cattelan, Courtesy of Rubell Museum.
도널드 루벨이 수많은 작가와 교류했던 스티브 루벨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은 절호의 기회였고 부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루벨 부부는 미국 작가들을 중심으로 수집을 하다가 1984년 독일 작가 로즈메리 트로컬(Rosemarie Trockel)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면서 유럽 작가에게도 수장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다각적인 예술 작품은 사진, 드로잉, 조각 및 오브제, 비디오 및 설치물로 구성됐다. 로즈메리는 1982년 쾰른에서 개인전을 한 이후 특히 뉴욕 현대 박물관, 시카고 현대 미술관, 보스턴 현대 미술관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도널드 루벨은 스티브 루벨의 사망 이후 유산을 받아 미술품 수집의 야망을 넓혀갔다. 2005년 웨이드 가이튼, 스텔링 루비, 루시 도드, 네일 벨루파, 오스카 무리요 등 작가 영역을 넓혀가며 몇몇 작가를 루벨패밀리컬렉션 재단에 초대해 6개월간 레지던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1993년 루벨 부부는 마이애미로 이전했고 1994년 아들 제이슨과 함께 대중에게 오픈 공간, CAF(Contemporary Arts Foundation)를 설립했다. 그들에게 수집은 이제 더는 최상의 목표가 아니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한 후에 그 작가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카탈로그를 제작하고 순회 전시를 기획하면서 메세나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01년부터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데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특히 중국의 혹독한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12년에 걸쳐 100여 개 아틀리에를 방문하면서 아이웨이웨이(Ai Weiwei)를 선두로 허샹위(He Xiangyu), 천웨이(Chen Wei) 등 중국 작가 28명을 선택했다. 루벨 가족은 2014년에 이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바젤 마이애미 기간 동안 특별전을 기획했다.


▎Marlene Dumas, Miss January, 1997, oil on canvas. ⓒMarlene Dumas, Courtesy of Rubell Museum.


초기에 미국 작가들을 지원하던 루벨 부부는 새로운 대륙의 작가들을 탐험하며 야망을 실현해갔다. 브라질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탐험은 이어졌으며 1000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 7300여 점을 수집했다. 2018년 말 인수한 알라페타(Allapattah) 구역의 새로운 공간(Miami’s Allapattah District)은 초기 전시 공간 면적의 3배에 달하며 셀도르프 건축사무소의 걸작으로 루벨박물관(Rubell Museum)이 탄생됐다.


독일 쾰른 출신의 건축가 셀도르프는 자하 하디드와 함께 손꼽히는 여성 건축가다. 건축가인 아버지 허버트 셀도르프(Herbert Selldorf), 근대건축, 루드비히 미스 반 데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셀도르프가 완성한 전시공간으로는 Hauser & Wirth, The Whitney, Gladstone Gallery, Michael Werner, David Zwirner, Acquavella Galleries, Frieze Art Fair's Frieze Masters 등이다.

루벨박물관은 6개 산업형 건물의 새로운 적응형 구조로 셀도르프에 의해 재조정된, 면적 9300㎡의 단일 캔버스 건물이다. 확장된 단층 건물은 대중에게 예술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시키는 역할에서 멈추지 않았다. 마이애미의 맑은 하늘이 돋보이는 나무들과 식물들로 무성한 안뜰 정원은 이전의 로딩도크(loading dock, 작품의 운반·적재소)를 대체했고 40개 갤러리와 유동적인 공연 공간, 연구 도서관, 서점 및 실내, 실외 레스토랑으로 구성된 건물 내부는 안뜰로 연결돼 효율적인 이동 순환을 가능하게 했으며, 수장고에 창문을 전략적으로 삽입해 자연광을 내부에 침투시키는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루벨 부부는 루벨박물관이 동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의 전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들은 컬렉터가 소장품을 대중과 공유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느끼고 있다.


▎Exterior view of the Rubell Museum porch and courtyard garden. Photo credit: Nicholas Venezia, Courtesy of Selldorf Architects


마이애미 루벨박물관은 2019년 12월 4일에 개관했다. 개관전으로 40개 갤러리에서 작가 100명의 300점이 소개됐다. 개관전에 소개된 루벨 부부의 소장품 중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신디 셔먼의 Untitled Film Still (#21) (1978), 제프 쿤스의 New Hoover Convertible(1980), 키스 해링의 Statue of Liberty(1982), 조오즈 콘도의 K-9 Explosion(1986), 로즈메리 트로켈의 Untitled(1986), 리처드 프린스의 Untitled(cowboy) (1987),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Burkhard Riemschneider(1995), 케리 제임스 마셜의 Untitled(1998~1999)이었다. 독일 작가들로는 이자 젠켄, 안셀름 키퍼, 네오 라우 등이 소개되었고 그 외에 토마스 하우즈아고, 존 발다사리, 마이크 켈리, 바바라 크루거, 폴 메카시, 피터 할레, 제니 홀저, 로버트 롱고 , 크리스토퍼울,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이 포함됐다.


▎Don Rubell, (left to right) Kehinde Wiley Sleep, 2008 oil on canvas, 132×300 in.(335.3×762㎝), and Keith Haring, Untitled, 1981. Enamel on fiberboard. 48×48 in.(121.9×121. 9㎝). ⓒKeith Haring Foundation Photo credit Nicholas Venezia, Courtesy of Selldorf Architects


루벨 부부의 뛰어난 안목과 과감한 도전을 증명하는 영국 조각가 토마스 하우즈아고(Thomas Houseago)의 수집 이야기는 미술계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화다. 토마스 하우즈아고는 뛰어난 조각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향과 암스텔담, 브뤼셀 등 유럽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일푼이 되어 아내의 고향 LA로 돌아와 이름 없는 석공으로 살고 있던 2006년, 그의 아틀리에를 두드린 수집가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루벨 부부였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관장이며 딜러인 제프리 데이치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아틀리에를 방문했던 부부는 한눈에 토마스 하우즈아고의 실력을 감지했고 첫 방문에서 여러 점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이 소식은 곧 미술계에 퍼졌고 그가 성공하는 데 첫 디딤돌이 되었다. 현재 토마스 하우즈아고는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등 대형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가장 실력 있는 생존 조각가의 대열에서 있다.


▎Thomas Houseago works in the Rubell Museum’s inaugural exhibition. Photo credit Chi lam. Courtesy of the Rubell Museum


루벨 부부에게 “당신들은 왜 수집을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은 왜 등산을 하죠? 예술품 수집은 모험이며 발견이고 개척이에요. 배우고 또 배울 것이 많기 때문에 수집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에 더욱 매료되죠. 왜냐하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하기 때문이에요.”


▎(left wall): Julian schnabel, saint Vulture, 1983 (right wall): Robert longo, Men Trapped in Ice, 1979 Photo credit Chi lam. Courtesy of the Rubell Museum
루벨 부부의 답은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예술을 통해 평생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고 있는 메라 루벨과 도널드 루벨은 2020년에 77세, 79세가 됐다. 부부는 함께 배우고 함께 즐기는 수집 항로를 걸으며 둘의 손을 꼭 잡고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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