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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에리카 호프만-쾨니게 

다른 차원에서 영감을 얻다 

베를린에 있는 개인 박물관을 대중에게 공개한 독일 수집가, 에리카 호프만-쾨니게(Erika Hoffmann-Koenige). 1960년대부터 수집을 시작한 에리카는 후에 남편 롤프 호프만(Mr. Rolf Hoffmann)과 함께하는 수집가의 삶으로 더욱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수집품들은 컨템퍼러리아트 작품들 중 가장 섬세한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했다.

▎Erika HOFFMANN-KOENIGE Photo by Alexander Gehring courtesy Sammlung Hoffmann, Berlin
조지 마키우나스, 존 케이지, 레이 존슨, 백남준 등과 함께 플럭서스(음악, 시각예술, 무대예술, 문학과 시 등을 통해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 행위예술 등에 영향을 끼친 1960~70년대의 전위예술운동) 부문에서 활동했던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는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다(Every Man is An Artist)”라고 했다. 그 배경에는 그가 사회를 ‘유기체’로 파악하고 미술 작품은 ‘새로운 사회적 유기체’로 본 것에 있다. 보이스에게 우리는 사회 구성원인 동시에 이 사회의 실체들이다. 즉, 우리 삶의 모든 형태가 곧 예술 작업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예술가란 것이다.

그가 세운 개념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미술의 영역을 확대하는 개념으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컬렉터들에게 예술품에 대한 사고를 넓히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이미 예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독일 컬렉터들이 요제프 보이스는 특히 중요한 작가다. 독일 컬렉터들은 예술을 통해 영적이며 물질적인 독창성을 되찾게 하는 ‘사회적 조각’ 개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회적 실천 자체를 ‘사회적 조각’이라 하며 이로 인해 결국 사회적 변화에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에리카 호프만-쾨니게(Erika Hoffmann-Koenige)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에리카 호프만은 미술품 수집과 수집 이후의 작품 공개, 특별 전시 기획, 작품 대여 등을 위해 젊은 예술가, 예술사 학자, 과학 연구가, 음악가, 작가, 기록 연구가 등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대중과 이 모든 과정과 열정을 공유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 또한 ‘사회적 조각’의 형태라고 간주한다. 예술을 향한 그녀의 삶은 다양한 모든 분야의 창의성을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모아 사회적으로 공헌하려는 것에 근거한 ‘사회적 조각’임이 분명하다.

에리카 호프만은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은 아이디어가 예술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혁명이다(La Rivoluzione Siamo Noi) Photography, 1972]를 포함해 에디션 작품 두세 점만 보유할 뿐 다량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요제프 보이스가 남긴, 사회 변화에 영향을 끼친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그녀에게는 보이스의 아이디어가 물리적인 대상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에리카는 작가가 클레베(Kleve)에서 전쟁 경험을 되찾아가면서 시골에 머물며 작업했던 드로잉들은 일종의 치유 방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요제프 보이스가 첫 박물관 전시를 하기 전에 여러 번 만났으며, 당시 받았던 강한 인상을 잊지 않고 있다.

에리카는 남편 롤프 호프만(Mr. Rolf Hoffmann)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할 때 예술품을 함께 옮겼다. 호프만 부부가 자리 잡은 곳은 옛 재봉틀 기계 공장으로 19세기 말에 H. 멜리히(H. Mehlich)가 건축한 벽돌 건물이다. 그들은 이곳을 소피-깁스-호프(Sophie-Gips-Hofe)라고 불렀다. 호프만 부부는 1997년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전시장인 1500㎡에 달하는 이곳을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 건물의 꼭대기 층에 두 사람의 개인 공간인 아파트가 있다.


▎Frank Stella, “ngeragrag (series: bamboo)
에리카가 처음 예술품을 구입했을 때 미래에 개인 박물관을 설립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없었다. 젊은 시절, 1950년대 미술사를 공부하고 예술과 함께하는 여행을 즐겼던 에리카는 1968년 타키스(Takis)의 [시그널(Signal) TS 1, 1966~1968]을 구입했다. 이 작품은 집에 소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운영하는 부티크에 두려고 구입했다. 1968년 오픈한 그녀의 부티크는 패션, 음악, 커피바가 조화를 이룬 세련된 공간이었다. 우주에서 온 신호와 가벼운 메시지를 전하는 타키스의 작품은 교통 혼잡으로 간주되는 플래시로 인식되면서 더는 부티크에 보관할 수 없었다. 에리카가 집으로 작품을 가지고 오자 남편은 에리카를 비웃었다. 왜냐하면 부부는 물건에 욕심을 내는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예술 작품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을 받았다. 동시에 부부는 연구하고 공유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특정한 아이디어를 지녀 개인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작품만 구입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진지하게 컬렉션의 방향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들어 롤프 호프만이 그의 회사 ‘반 라크(Van Laack)’를 정리하면서부터였다. 부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인식하면서 컨템퍼러리아트에 관해 더욱더 깊이 연구하게 됐다.


▎West Fassade of Factory building Sophie-Gips-Höfe, Wall piece by Thomas Locher, Wunsch und Wille/ (Entweder/Oder), 1996, courtesy Sammlung Hoffmann, Berlin
호프만 부부는 우선 그들의 컬렉션 방향이나 주제를 미리 정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오로지 열정적으로 두 사람 모두를 흥분하게 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기억, 경험,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만으로 만족했다. 이는 미술시장에서 이미 높이 평가받고 있는 작품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영감을 얻고자 했던 그들만의 특별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모든 컬렉션에는 매우 개인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대중이나 예술 전문가들에게 특별히 인정을 받는 작품들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외부의 자문을 받지 않았고 오로지 부부의 개인적인 연구와 관심을 바탕으로 수집을 했다.

정신적 허기를 채워준 컨템퍼러리아트


▎William Engelen,
1980년대 부부는 뮌헨글라트바흐에 살았다. 이곳에서 가까운 도시, 뒤셀도르프에는 많은 작가가 활동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만날 수 있었다. 만약 호프만 부부가 뮌헨글라트바흐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부부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굶주렸는데 당시 부부의 허기를 채웠던 유일한 것은 동시대 작가들의 컨템퍼러리아트뿐이었다. 시립박물관 관장으로 요하네스 클라데르스(Johannes Cladders)가 부임하면서 그가 기획하는 전시들은 부부에게 놀라운 자극을 심어주었다. 요하네스는 1967년에 요제프 보이스의 첫 회고전을 기획한 디렉터였다.

호프만 부부가 개인적 관심을 바탕으로 수집한 작품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부가 적응했던 결과와 흡사하다. 1960년 대에는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던 독일 작가들, 특히 제로 그룹(Group ZERO)에 속했던 군터 위커,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를 발견했고, 뮌헨글라트바흐 박물관 전시에서 발견한 작가들은 마르셀 브로타에스, 제임스 리 바이어스, 브라코 디미트리예비치였으며, 보훔스 갤러리(Bochum’s Gallery) 전시에서 프랑수아 모렐레, 리처드 세라, 아르눌프 라이너 등을 발견했다.

호프만 부부가 미국, 일본, 중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현지에서 강한 감동을 받았던 작가들은 빌 베클리, 프랭크 스텔라,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노부요시 아라키, 히로시 스기모토, 팡리준이다.


▎Claes Oldenburg, “London Knees”, 1966; Monica Bonvicini, “White”, 2003; Jenny Saville, Closed Contact # 7 und #15, 1995/96; courtesy Sammlung Hoffmann
그들이 선택한 여성 작가들은 낸시 스페로, 아나 멘디에타, 캐롤리 슈니먼, 야오이 쿠사마이며, 쾰른에서 살 때 구입한 작가들은 아스트리드 클라인, 크리스 뉴먼, 이자 겐츠켄, 토마스 루프, 볼프강 틸만스다.

그들은 폴란드와 러시아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는데 부부의 시선을 끌었던 작가들은 카타르지나 코지라, 주잔나 야닌, 올가 체르니세바였다. 21세기가 다가오면서 피필로티 리스트, 율리안 로제펠트 & 피에로 스테인르, 야엘 바르타나, 모티카 본비치니, 에르네스토 네토, 카타리나 그로세의 광대한 비디오 작품과 설치 작품들로 부부의 수집품은 더욱 다양해졌다.

외부의 자문 없이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하는 길은 오로지 스스로의 연구에 달려 있다. 부부는 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바쳤다. 그 덕분에 에리카는 전문 큐레이터 수준의 높은 기획력을 갖추게 됐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에 영향을 받아 디자인한 드레스 15벌을 1979년 그무진스카(Gmurzynska) 갤러리와 LA 라크마 박물관에서 열린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여성 예술가(Women Artists of the Russian Avant-Garde) 1910~1930] 전시에 소개했다.

그리고 1991년 부퍼탈에 있는 폰 데어 호이트 미술관(Von der Heydt-Museum)의 [문자 그대로(Buchstablich)] 전시에서는 큐레이터로 초대받기도 했다. 2008년에는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미술관(Rijksakademie)에서 [베를린 암스테르담 쇼]를 기획했으며 드레스덴의 쿤스탈 박물관에서 열린 [자전거와 함께 은하수로(With the Bicycle to the Milky Way)]도 그녀의 기획력을 자랑했던 전시였다. 에리카가 시도한 일련의 자극적인 도전들은 여전히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에 동행하는 실천력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롤프 호프만은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에 해당하는 베를린의 상인 ‘Natinoal Gallery Friends Award/Preis der Freunde der Nationalgalerie’을 설립했으며, 200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테이트 박물관과 MoMA 국제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Iwalja Klinke, “Musselmalet I, Ⅲ und Ⅱ”, 2013 courtesy Sammlung Hoffmann, Berlin
2018년, 드레스덴 국립미술관(SKD Museum,The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은 호프만 부부의 개인 소장품 1200점을 선물 받았다. 부부가 선물한 장 미셀 바스키아, 트레이시 에민, 이자 겐츠켄, 시그마 폴케, 브루스 나우먼, 볼프강 틸만스, 사이 톰블리,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묀헨글라트바흐, 쾰른, 베를린에 살면서 구입한, 부부의 혼신이 담긴 노력의 결과물이다. 수집품들은 한결같이 보편적인 규범에 도전하며 관례를 부숴버린 혁신적인 예술가들에게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SKD박물관의 관장, 마리온 아케르만은 “호프만 부부의 수집품들은 로컬 작가와 국제적인 작가,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 저명한 작가와 무명작가들의 중요한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작품이 한결같이 예술사에 대한 지식의 차이를 메우고 시야를 넓히는 보물들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류는 끊임없이 깨달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진화한다. 동시대에 생존하는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음의 과정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는 에리카 호프만의 삶은 사회의 주체로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개인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잠을룽 호프만(Sammlung Hoffmann)에 소개되는 작품들과 SKD 박물관에 기증된 작품들은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아를 통해 어떻게 정신적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일깨워준다.


▎Katharina Grosse,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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