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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3)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리더십 

조직의 리더는 외부 위기보다는 내부 위기에 대처하기 더 어렵다. 내부 위기는 실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다가는 다른 한쪽의 마음을 잃기 십상이다. 이런 내부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진: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위기에는 ‘외부 위기’와 ‘내부 위기’, 두 가지가 있다. 외부 위기는 문자 그대로 위기가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쟁·테러·전염병 같은 물리적 위협이나, 유가·환률의 급등락이나 국제 경기침체 같은 경제적 위협 등이 있을 수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내부 위기는 위기의 요인이 조직 내부에 있는 것이다. 조직의 내부 갈등, 사기 저하, 일부 구성원들의 모럴 해저드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위기의 강도는 외부 위기가 셀 수 있지만 더 위험한 것은 내부 위기다. 외부 위기는 강도가 강한 만큼 조직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대처할 수 있다.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부 요인으로 인한 위기는 구성원들의 의견 또는 이해 차이로 인해 조직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로서도 외부 위기보다는 내부 위기에 대처하기가 더욱 어렵다. 외부 위기는 실체가 분명해 조직 구성원들을 탈출구를 향해 나아가도록 설득하기가 쉽지만, 내부 위기는 실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다가는 다른 한쪽의 마음을 잃기 십상이다. 때로는(상당히 많은 경우가 그렇다) 누가 어떤 편이고, 또 누가 다른 편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자칫 위아래 모든 구성원의 지지를 상실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부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역사에서 예를 한번 살펴보자.

한나라 경제 때 황제의 동생인 초양왕이 자객을 보내 오나라 재상인 원앙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황제는 전숙을 파견해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그런데 전숙은 사건의 시말을 조사한 뒤, 모든 자료를 태워 없앴다. 그러고는 빈손으로 돌아와 경제 앞에 섰다. 경제가 물었다.

“양왕이 자객을 보내 원앙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오?”

“예, 황제 폐하. 불행하게도 모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이 있소?”

“모두 소각해버렸습니다.”

“뭐라고? 증거를 소각하다니 무슨 말이오?”

안색이 변한 경제 앞에서 전숙은 태연히 말했다.

“폐하께서는 양왕과 원앙의 일을 더는 문제 삼지 마소서.”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양왕의 죄를 추궁하시고도 죽이지 않으면 나라의 법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양왕을 죽이신다면 태후의 침식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폐하의 심기인들 어찌 편안하시겠습니까?”

경제는 전숙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전숙의 심모원려에 감동한 경제는 그를 노나라 재상으로 삼았다.

전숙의 지혜를 이해하려면 사건의 내막을 조금 더 알아야 한다. 당시 황제의 후사 자리를 놓고 후궁 간 암투가 심했다.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후궁 율희는 자신의 아들 유영을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경제의 누나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도 공주와 사이가 틀어졌고, 훗날 한무제가 되는 유철의 어머니 왕지가 이 틈을 파고들어 관도 공주와 연합해 율희를 공격했다. 결국 유영은 황태자에서 폐위되고 만다.

그러자 경제의 어머니인 효문태후가 작은 아들이자 경제의 동생인 양효왕을 황제 자리에 올릴 계획을 세운다. 효문태후는 오초7국의 난을 진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양효왕 유무를 황태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내비쳤고, 양효왕 역시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대신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고, 대신들을 대표해 원앙이 경제에게 “장자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제국의 원칙”이라고 진언했다. 원앙은 이에 그치지 않고 효문태후를 찾아가 물었다.

“태후께서는 양왕을 황태자로 세우라 이르셨으나, 만일 양왕이 죽으면 그때는 누구를 황태자로 세우려 하십니까?”

“그때는 황제의 아들을 다시 후계로 삼겠소.”

이에 원앙은 역사의 예를 들어 태후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춘추시대 송나라 선공은 태자 여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인 자화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자화는 세 번이나 사양했지만 선공의 뜻이 완강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바로 송 목공입니다. 하지만 목공은 재위 9년 만에 죽었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아들 빙 대신 형의 아들 여이에게 양위했습니다. 그가 바로 송 상공입니다. 상공은 정나라에 몸을 피해 있는 빙을 없애기 위해 정나라를 쳤지만 실패했고 대부 화독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처럼 선공이 올바르게 후계를 세우지 않아 송나라는 5세에 이르도록 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태후 마마께서는 한나라가 송나라 꼴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원앙의 진언을 듣고 크게 깨달은 태후는 양효왕으로 하여금 황위를 잇는 것을 포기하고 봉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이 일로 양효왕은 원앙에게 원한을 품게 됐고, 자객을 파견해 원앙을 죽이려 했다. 그때 보낸 자객 수가 10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 원한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양효왕의 죄를 덮어준 전숙의 지혜

하지만 사사로이 황제의 신하를 해친 것은 엄연히 국법으로 다스려야 할 문제다.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면 자식과 동생을 잃은 태후와 황제가 마음이 아플 것이고, 양왕을 벌하지 않으면 한 나라에서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만천하에 떠드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칫 국기가 흔들리고 말 것이다.

문제를 삼은 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바에는 아예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내부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해 넘기는 원숙의 지혜였던 것이다. 특히 그것이 군주 또는 군주 일가와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원앙의 살해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물을 엎지른 군주를 꾸짖는 대신 조용히 걸레로 물을 닦은 뒤 없었던 일로 만들어 군주의 체면을 살려준다면 고마움을 느낀 군주가 포상을 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인류 역사상 이런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한고조 유방이 흉노족에 포위돼 위기에 처했을 때 미인계를 써 황제를 구한 진평 역시 이러한 내부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유방의 정비인 여후와 유방이 총애하는 후궁 척부인과의 세력 싸움에 말려든 것이다. 회남왕 영포의 난을 진압할 당시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악화돼 자리에 누운 유방은 척부인 소생인 유여의에게 제위를 물려줄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개국공신인 번쾌가 유여의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참소가 올라왔다. 번쾌는 연왕 노관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는 임무를 띠고 출정해 있었다. 격노한 유방은 진평과 주발을 불러, 진평에게 번쾌의 목을 베고, 군대는 주발이 대신 지휘하라는 칙명을 내렸다.

진평과 주발은 황제의 명을 따르면서도 최대한 행보를 늦추었다. 그러다 진평이 꾀를 냈다.

“번쾌는 황상의 고향 친구이자 오랜 신하이고 공적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소. 게다가 황제와 동서지간(번쾌는 여후의 동생 여수의 남편이었다)이니 그 친밀함을 다른 사람은 도저히 따를 수 없지 않소. 지금은 황상이 진노해 그를 주살하라고 했지만 앞으로 분명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오. 여후가 품을 원한은 또 어떻소? 그런 때가 오면 우리의 처지가 오도 가도 못할 게 뻔합니다. 그러니 우리 손으로 번쾌를 죽이지 말고, 장안으로 압송합시다. 주살을 해도 황상께서 친히 주살하도록 함이 옳을 것이오.”

두 사람은 번쾌의 군영에 도착한 뒤 번쾌를 불러 칙명을 받들게 했다. 그러고는 번쾌에게 귀뜸해 저항하지 않도록 이른 뒤 수레에 실어 장안으로 압송했다. 주발은 번쾌의 군사를 거느려 연왕의 난을 평정했다.

진평 일행이 장안에 가까울 무렵 한고조가 붕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후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한 진평은 급히 사람을 궁 안으로 보내 번쾌가 살아 있음을 알렸다. 황후는 사자에게 시켜 진평으로 하여금 형양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명을 기다리라는 칙지를 보냈다. 번쾌가 장안을 떠나자마자 진평은 군대를 두고 홀로 장안으로 달려가 그간의 사정을 여후에게 고했다. 그러나 여후는 “돌아가 쉬라”며 그를 외면했으나 진평은 무릎을 꿇고 울며 간청했다.

“폐하께서 붕어하셨는데 신하가 어찌 집에 있겠습니까. 제발 궁중에 남아 한고조의 영위를 지키도록 허락해주소서.”

진평은 그가 장안에 없는 사이 누군가 자신을 헐뜯는 참소를 올렸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황제의 명을 받들 뿐 사심이 없음을 보인 것이다. 그제서야 여후는 진평에 대한 의심을 풀고 그를 금위군 낭중으로서 고조의 영위를 지키게 했다. 이후 번쾌의 부인인 여수가 진평에 대한 참소를 여러 번 올렸으나 여후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진평의 지혜

그렇다고 진평이 아첨과 맹종만 일삼은 것은 아니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을 따름이었다. 유방이 죽자 한나라는 여씨 천하가 됐다. 유방의 뒤를 이은 혜제는 명목상 황제일 뿐이었다. 여태후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의 친인척을 고위직에 앉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태후는 혜제의 뒤를 이을 황제를 여씨 중에서 고르려고 했다. 당시 우승상이던 왕릉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왕릉은 곧은 인물로 직언을 잘했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유방이 죽기 전 여후가 상국 소하의 후임으로 누가 좋으냐고 물었다. 유방이 대답했다.

“조참을 시키시오. 다음으로는 왕릉이 가하지만 너무 우직하니 진평의 도움을 받도록 하시오.”

이에 여태후는 혜제 6년 상국 조참이 죽자, 왕릉을 우승상, 진평은 좌승상을 시켰다. 기원전 188년 혜제가 붕어하자 여태후는 본심을 드러냈다. 여씨들을 왕으로 봉하는 게 어떠냐고 좌우에 물은 것이다. 여씨 황제를 세우기 위한 전 단계 작업이었다. 그러자 왕릉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고황제께서 백마를 베어 맹세하시기를,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려거든 천하는 함께 그 자를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여씨를 왕으로 세우려는 것은 선제의 뜻에 어긋납니다.”

불쾌해진 여태후는 진평과 주발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두 사람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조회를 마친 뒤 왕릉이 진평과 주발을 꾸짖자 진평이 대답했다.

“얼굴을 맞대고 조정에서 쟁론하는 것은 우리가 당신만 못합니다. 하지만 사직을 온전히 하고 유씨의 뒤를 안정시키는 것은 당신이 우리만 못합니다.”

이에 왕릉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조직 내부의 문제에 대해 명분만 따지며 논쟁을 벌이다가는 자칫 조직 자체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결정적 순간은 오고야 만다.

여태후는 왕릉을 태부로 승진시켰지만 실권이 없는 자리였다. 왕릉은 고향 땅에 은거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왕릉을 칭찬하고 진평을 비난했다. 하지만 진평에게는 다른 뜻이 있었다. 그가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린 것은 자신을 노리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후의 동생 여수는 진평을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고, 여씨 일가는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유방의 측근들을 모조리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8년 세월이 흘렀다. 천년 만년 살 것 같던 여태후도 병들어 죽었다. 후사를 둘러싸고 관리들이 여씨 일족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사이 진평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주발 등 개국공신들을 모아 기습적으로 궁궐을 점령하고 여씨 일가를 숙청했다. 이어 유방의 후예인 유황을 새 황제로 옹립했다. 그가 바로 한 문제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거사였다. 치밀함과 대담함이 없었으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내부 위기를 키우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눌러놓고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이르자 행동으로 옮겨 단번에 해결해낸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의 종묘사직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진평 스스로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이다. 어느 날 한 문제가 진평과 주발에게 한 해의 세수와 그 쓰임새에 대해 물었다. 주발이 쩔쩔매자 문제는 진평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러자 진평이 말했다.

“폐하, 그런 질문은 담당관을 불러 하시는 게 옳습니다.”

문제가 역정을 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재상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이오?”

이번에는 진평이 거침없이 답했다.

“재상의 본분은 황제를 도와 천하의 음양을 조화롭게 통하게 하고 만물이 제대로 이뤄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 밖으로는 오랑캐와 제후들이 경거망동하지 않게 잘 단속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고, 주발이 물러난 뒤 바로 진평을 우승상에 앉혀 나라 살림 전체를 맡겼다. 진평은 항우에게서 쫓겨나다시피 떠나고 유방 휘하에 들어와서도 박힌 돌들로부터 모함과 견제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는 내부 문제를 최소화해 해결하는 리더십으로 만고의 충신으로 우뚝 선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진평은 한나라의 종묘를 평안하게 하고 사직을 안정시킨 주인공”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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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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