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66명이 말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적 개념들을 모았다. 전 세계 과학 및 기술 분야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모인 에지재단(Edge Foundation)이 펴낸 『This will make you smarter: New Scientific Concepts to Improve Your Thinking(당신을 현명하게 만드는 신과학개념)』은 200개 과학 개념을 집약했다. 이 중 당신의 인지능력을 높여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울 과학 개념을 엄선했다.
1. 외부효과 | 로버트 커즈번(Robert Kurzban)심리학자, 펜실베이니아 실험 진화 심리학 연구소(PLEEP) 소장, 『왜 모든 사람은 (나만 빼고) 위선자인가』 저자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때 주위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불편을 끼친다. 부주의해서 피해를 주는 경우 대부분은 특별히 보상할 필요가 없다. 외부효과(Externalities)는 이러한 사례를 지칭하며, 특히 상호 복잡하게 연결된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목표를 추구할 때 여러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개념이 중요하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장소에서의 행동이 지구 저편의 사람들에게 잠재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외부효과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어떤 기기를 제조할 때 생산 공정의 부작용으로 공장 주변 사람들이나 심지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폐기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들이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에 대해 보상할 필요가 없다면, 부정적 외부효과를 제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개인 단위의 외부효과는 일상생활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출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가면 교통량이 증가한다. 외부효과 개념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사회의 주의를 기울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외부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체증의 해결책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잠재적으로 외부효과에 더 효율적인 방법은 출퇴근 시간에 통행료를 징수함으로써 운전자에게 부정적 외부효과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런던이나 싱가포르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체 요금은 이 부정적 외부효과를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외부효과를 치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복잡하고 통합된 시스템의 특정한 부문에서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나며 부정적 효과를 줄일 수 있다. 외부효과의 요점은 우리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정책에서 의도했던 비용과 편익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영향력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일상생활에서 외부효과를 고려할수록, 의도하지 않은 폐해에 늘 주의를 기울이게 되며 우리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 전체론 | 니콜라스 A. 크리스타키스(Nicholas A. Christakis)예일대 교수, 의사, 휴먼네이처랩 소장, 『사회적 관계망이 우리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 공동저자전체론(Hollism)은 쉽게 말하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로 요약된다. ‘전체(whole)’는 분명 ‘부분(part)’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다. 예를 들어 탄소원자는 특정 물리적·화학적 속성이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결합해 흑연이나 다이아몬드가 된다. 이러한 물질의 특성(색, 연성, 경도 등)은 탄소원자의 속성이 아니라 탄소원자의 집합 속성이다. 원자의 조합이 갖는 특성은 전적으로 원자가 어떠한 형태로 결합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러한 특성은 부분 간의 연결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전체론의 통찰력은 세상의 여러 현상을 분석하는 적절한 과학적 견해를 갖는 데 매우 중요하다.전체가 부분의 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복잡성을 갖는 경우도 있다. 간단한 예가 SNS(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다. 한 그룹에 10명이 있다면 이들은 최대 45(10×9÷2)의 연결이 가능하다. 사람 수가 1000명이라면 가능한 관계수는 499,500(1000×999÷2)으로 늘어난다. 관계를 맺는 사람 수가 100배 증가하면 가능한 연결 횟수는 1만 배 이상 증가했다.전체론은 복잡성의 단순성·일관성에 대한 인식이다. 경험주의와 달리 전체론은 습득하고 인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과학은 물질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기체를 장기, 조직, 세포, 소기관, 단백질, DNA 등으로 분해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은 이해를 위해 다시 구성부분들을 전체적으로 합치는 작업은 쉽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과학 발전 과정의 성숙기에 나타난다.
3. 계산되지 않은 리스크 | 안토니 개릿 리시(Antony Garrett Lisi)이론물리학자인간은 확률을 다루는 데 매우 취약하다. 우리는 웰빙과 관련된 확률적 계산이 필요한 상황을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무능함은 우리의 언어에도 반영돼 있다. 가능성을 표현하는 일반적 단어는 ‘아마도’와 ‘일반적’으로, 모호하게 50~100%의 확률을 암시한다. 불확실한 표현을 피하기 위해서 ‘70% 확실성’과 같은 표현이 필요하지만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의외의 정밀한 확률 표현은 오히려 무심코 듣는 사람들의 의구심만 키울 수 있다. 우리의 집단의식에서 확률로 다룰 수 없는 사각지대는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실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두려움에 휩싸여 결국 나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우리의 비이성적인 두려움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달콤한 도넛을 본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은 그것을 소비하려는 욕구로 나타난다. 그러나 심장병 리스크 증가 등 도넛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우리의 반응은 합리적으로 두려움과 거부 중 하나여야 한다. 도넛(혹은 담배)을 두려워하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이 반응은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합리적으로 반영한다.낮은 확률의 주요 사건 리스크는 관리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테러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일례로 엑스레이 보디스캐너는 테러로 인한 리스크보다 더 큰 암 유발 리스크를 증가시킬 수 있다. 테러리스트가 거리를 활보하게 해서는 안 되지만 합리적으로 관련 리스크도 관리해야 한다.또 다른 예로 한 판사는 줄기세포 연구자금 지원금지 명령을 내렸다. 즉각적으로 일부 과학자는 돈을 받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리스크는 훨씬 더 중대하다.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해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이 된다면 긍정적 영향이 클 수 있다. 결과를 고려하고 확률을 근사하면 판사의 결정이 확률론적 기대에 근거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예상 값이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 결과의 가중평균이다. 리스크에 대한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언어를 개선하고 직관을 재교육해야 한다.
4. 예측코딩 | 앤디 클라크(Andy Clark)스코틀랜드 애딘버러대학교 철학·심리학·언어과학대학교수기대와 충족 여부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궁극적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예측코딩(Predictive Coding)은 뇌가 입력 신호를 이해하고 사용해 지각, 사고, 행동을 유도하는 데 예측과 기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형태의 코딩이 지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의사결정, 추론, 신념에 정보를 제공하는 수학적 원리와 모델을 연구한다. 기본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세상을 인식할 때 자신의 감각 상태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뇌는 세상에 대해 저장된 지식, 여러 상황에 따른 확률을 이용해 현재 상태가 무엇인지 예측한다. 예측과 수신된 신호 사이의 불일치는 오류신호를 생성해 예측을 미세조정하거나 학습이나 유연함을 유도한다. 우리의 인식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증거축적 프로세스’를 통해 간단한 것부터 고급 모델로 구축하는 하향식이다. 예측코딩은 이 순서를 뒤짚는다. 초기부터 일련의 예측을 적용해 하위 수준을 결정한다. 세상에 대한 본질과 상태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로 시작해 점점 제약조건을 반영해 예측을 미세조정한다. 예측코딩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에 힘을 부여하고 잠재적 함정을 파악하게 한다. 우리의 기대를 간결하고 기술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과학, 법, 윤리, 일상생활에서 단지 이해를 넘어 강력한 인지도구를 형성한다.
5. 합리적 무의식 |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발달심리학자, UC버클리 교수, 『정원사 부모와 목수 부모(The Gardener and the Carpenter)』 저자20세기 과학적 통찰력 중 하나는 프로이트의 비합리적 무의식이었다. 대부분의 심리적 과정에 의식이 없다는 것으로, 과학적 근거는 약했지만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져왔다. 무의식과 관련해 실제 과학적, 기술적 진보를 이룬 것은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Alan Turing)의 합리적 무의식(The Rational Unconscious) 개념이다. 증거를 바탕으로 진실을 추론할 때 인간은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견해다. 반복되는 결과에 대해서 무의식적인 컴퓨터처럼 과정을 인스턴트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지식인들의 집단 캠프인 브레츨리 파크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할 때, 여성 직원들은 일상 업무에서 의식적으로 계산을 수행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도 동일한 수준의 강력하고 정확한 연산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정 공간에서 시각이미지의 혼란이 있거나 일상 의사소통에서도 마치 나치의 복잡한 암호를 찾듯이 숨은 메시지를 정확히 찾아냈다.
▎앨런 튜링의 일생을 영화화한 [이미테이션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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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의사결정과 관련해 마케팅 담당자들은 소비자들이 의식 수준에서 결정한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무의식 의사결정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가치는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무의식과 의식, 합리성의 유무를 잘 이해한다면 기업은 브랜드와 제품을 성공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매 빈도가 높은 제품(예: 세제)과 자주 구매하지 않는 제품(집, 자동차)으로 분류한다면, 마케팅은 전자에 대해 무의식 과정에서 메시지에 집중하는 반면, 후자는 의식 처리에 관여해야 한다. 보험회사 가이코(Geico)는 의식과 무의식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보험 상품의 특성상 구매 빈도에 의한 두 가지 분류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가이코는 ‘15분만 투자하면 보험료 15% 절감’이란 의식적 마케팅을 하는 동시에 도마뱀 캐릭터를 통해 무의식 상태에서 긍정적 감정으로 재가입을 유도한다. 한 번 의식적 의사결정을 내린 가입자는 합리적 무의식을 통해 다시 가이코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기적 편향 | 데이비드 G. 마이어스(David G. Myers)호프칼리지 심리학과 교수우리 대부분은 스스로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린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일컫는데, 일부 재밌는 점도 있지만 때때로 위험한 현상을 동반한다. 자신의 실패보다는 성공을, 나쁜 행위보다는 선행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재밌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사람들에게 무언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여긴다. 반면 실패를 이야기하면 불운이나 문제 자체의 불가능성을 언급하며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다. 일례로 스크래블(글자 맞추기 보드게임)에서 이겼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적 기량 덕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게임에서 지면 철자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마찬가지로 이기적 편향은 운동선수(승리 또는 패배 후), 학생(시험 성적), 운전자(사고 발생 후), 경영자(이익 혹은 손실 후)에게도 흔히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10명 중 9명은 자신이 평균 운전자보다 실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수도 90% 이상이 동료 교수보다 자신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부부 사이에서도 집안일에 공헌하는 비중, 또는 팀워크의 개인 공헌 평가에서도 자신에 대한 추정치는 일반적으로 100% 이상으로 조사된다.이기적 편향과 관련 개념(현상낙관주의, 자기 정당화, 집단 편견)은 문학과 종교가 이제까지 심어준 관념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한다. 교만은 종종 타락하기 전까지 지속한다. 스스로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호적으로 인식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희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 편향은 가정 불화, 흥정, 거만한 선입견, 국가적 오만, 전쟁 등을 야기한다. 이기적 편향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짓으로 겸손한 척하지 않고 자신 혹은 상대방의 진정한 재능과 미덕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7. 규모분석 | 줄리오 보칼레티(Giulio Boccaletti)물리학자, 환경 및 경제 지속가능성 전문가, 자선환경단체 네이처컨저번시 최고전략책임자과학에서 많은 분석이 선형으로 일반화하지만 실제세계에는 비선형이 훨씬 많다. 시스템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형 모델의 관점에서 세상을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선형과 비선형 사이의 견고한 가교가 바로 규모분석(Scale Analysis)이다. 규모분석을 통해 더 간단한 모델의 관점에서 복잡한 비선형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직면한 문제에 가장 중요한 양(Quantities)을 묻는다. 둘째, 그 수량에 대한 예상 크기와 중요한 치수가 무엇인지 묻는다. 두 번째 질문은 물리적 행동이 수량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단위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추상적이지만 주어진 전문용어 지정이 없다면 규모분석이 실제 불가능하다.규모분석은 단순히 규모를 비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물리학자 G.I 테일러는 복잡한 시스템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접근법으로 시연했다. 1950년대 핵폭탄의 폭발력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실수로 폭발 사진 몇 장을 노출했다. 이를 통해 테일러는 차원 논쟁에서 폭발의 반경, 폭발시간, 방출된 에너지 및 주변 공기의 밀도 등을 연결하는 규모에 변하지 않는 수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사진 몇 장만으로 테일러는 폭발 반경과 타이밍을 추정했고 폭발 에너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추정했다.규모분석은 스케일과 치수의 분석이 많은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업계획 및 재무분석에서 확률과 기준점(benchmark)은 규모분석을 위한 첫 번째 단계다. 공통적인 경영관리 도구 테일러리즘에서 시간은 수량을 사용하여 관계를 유추하기 위한 중요한 치수다.
8. 은닉층 |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MIT 물리학자, 200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세상에 숨겨진 아름다움의 과학(A Beautiful Question)』 저자은닉층(Hidden Layers)은 외부 현실과 우리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과정의 이해다. 은닉층은 인공지능(AI) 역사에서 지금의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에 기반한 딥러닝이 비약적인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2006년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전 토론토대학 교수가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을 이용한 은닉층에서의 데이터 전처리 방법을 제시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대 전환을 맞게 했다.더 원론으로 들어가면 은닉층의 뇌 신경망 연구에서 비롯됐다.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게임을 습득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낄 때 뇌의 은닉층 매커니즘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 이 매커니즘은 무언가를 광범위하게 식별할 수 있게 하는데 외부 세계로부터 직접 입력받는 게 아니라 다른 뉴런과 통신하는 숨겨진 층이다. 신경회로에서 새로운 은닉층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망의 기원에서 벗어나 은닉층 개념은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특정 패턴이 인식되면 물리학자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고 일관된 것으로 정제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제까지 없던 개념을 정의할 때 은닉층의 역할을 볼 수 있다. 윌첵이 애니온(anyon, 핵에 있는 양성자보다 전자가 더 많아 음으로 하전된 이온·음이온)을 발견했을 때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얼마나 훌륭하게 진화하고 구체화할지는 예상치 못했다. 이런 경우 생각의 은닉층에서 새로운 명칭은 새로운 노드를 만들어낸다.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 ‘쿼크’ 개념을 제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닉층에 의해 인식되는 특징과 명칭은 사고를 유용한 개념으로 구체화, 내재화한다. 은닉층은 그 자체로 매커니즘을 파악하는 유용한 개념이며 사고가 일하는 방식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9. 포지티브섬 게임 |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하버드대학교 인지심리학과 교수, 『다시 계몽의 시대(Enlightenment Now)』 저자제로섬 게임에는 확실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 Sum Games)에서는 모두가 승자다. 흔히 ‘윈윈상황’으로 불린다.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이 1944년 게임의 수학적 이론을 제시했을 때 여러 개념(제로섬, 비제로섬, 플러스섬, 마이너스섬, 상수섬, 가변섬 게임 등)을 도입했다. 사람들은 상호작용 상황에 놓이면 제로섬 게임인지 아닌지를 곧바로 결정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은 협상 테이블의 몇몇 선택사항을 무시하며 실제 제로섬 게임이 아닌데도 제로섬 게임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작용의 게임이론적 구조를 의도적으로 (제로섬인지 아닌지를) 인식한다면 안전, 조화, 번영과 같은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드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트러블메이커 성향을 가진 직장동료나 친척들에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거나 패배를 쿨하게 인정하기로 서로 합의하면 어떨까. 의견 대립 상황에서 서로 승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비용을 감수하기보다는 결과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도모할 수 있다.포지티브섬 게임일지라도 당사자는 공동의 이익을 희생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경쟁 게임으로 설정함으로써 발생하는 리스크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게임이 반복되는 경우 한 라운드에서 모두 차지하려는 유혹은 다음 라운드에서 역전으로 인해 쓰디쓴 패배를 맛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지난 1950년대 이래 제로섬 또는 비제로섬 게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대결구도를 지양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이 이뤄졌다. 이 기간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쟁, 대량 학살, 민족 폭동 등은 감소했고 동시에 개발도상국들은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뤘다.
10. 회의론적 경험주의 | 제럴드 홀턴(Gerald Holton)하버드대 명예 과학사 교수, 『Einstein for the 21st Century (21세기 아인슈타인)』 저자회의론적 경험주의(Skeptical Empiricism)는 우리가 단순히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어떤 것의 존재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즉, 과학적 관찰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회의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제럴드 홀턴 교수는 정치와 사회 부문에서 많은 중요한 결정이 너무 긴밀한 전제, 이데올로기, 교리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장기적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실용주의에 따르고 있고 지적한다. 그는 과학으로 용의주도하게 검증된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회의론적 경험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가 원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존재를 믿기 거부한 과학자 겸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의 실증적 경험론과는 다르다.정치와 일상생활에서는 일정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데이터를 비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신속한 결정에 따른 결과가 중대할수록 오히려 회의론적 경험주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
11. 기준선 변동 증후군 | 폴 케드로스키(Paul Kedrosky)투자자, 작가 및 기업가어업은 지난 500년 동안 호황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외곽의 그랜드뱅크는 지난 1992년 대구 어업이 붕괴됐고 캐나다 정부는 이곳의 어업을 완전히 패쇄해 어민 3만 여 명이 실직했다. 이후에도 이곳의 어업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질서한 대규모 포획과 부적절한 감독 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단계에서 재난을 재난으로 인지하지 않고 정상(Normal)상태로 봤기 때문이다. 수자원이 풍부했던 시절부터 어업의 붕괴까지 전체 경로는 하나의 상태로 간주됐다. 정상이다. 1995년 어업과학자 대니얼 폴리는 “각 세대 어업과학자들은 경력을 시작하는 시점의 수자원 재고량을 기준점으로 삼고 변화량을 평가했다”며 “다음 세대가 일을 시작했을 때 재고량은 크게 줄어든 상태지만 새로운 기준점을 설정하고 재고량을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는 기준점이 점진적으로 변화했고 무비판적으로 수자원 감소를 ‘정상’으로 수용해버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이 아닌 상태가 수없이 많다. 기준선이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겨울이 늘 이렇게 따뜻했다고 생각하거나 늘 이렇게 눈이 많이 왔다고 여긴다. 선진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늘 정상이다. 개인이든 과학이든 시계열 데이터 부족으로 인해 주변 세계의 중요한 장기적 변화를 놓치는 기준선 변동 증후군(Shifting Baseline Syndrome)을 겪고 있다. 이는 심각하고 위험한 결과를 야기한다.기준선 변동 증후군을 이해하고 나면 정상이 대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적어도 현 상태가 왜 정상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 ‘경영자의 뇌를 자극할 필수 과학 개념’은 각 개념을 소개한 사상가들의 글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에 맞게 일부 각색했음.※ 에지(Edge)는··· 존 브로크만이 운영하는 에지(www.edge.com)는 1981년 설립한 리얼리티 클럽(Reality Club)에서 출발했다. 이 모임은 산업시대 이후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지식인들의 비공식적 모임으로 1997년 에지(Edge)로 이름을 변경했다.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상가 회원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지고 기고를 모아 서적으로 편찬하고 있다. 『This will make you smarter: New Scientific Concepts to Improve Your Thinking』도 ‘어떤 과학 개념이 인지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져 166명의 기고를 모았다.-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